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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3화

Author: 경옥
“너는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이 진짜라는 것만 알면 된다. 그 사람의 말을 믿든 말든 네 선택이고,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 그 밖의 일은 더 말하지 않으마.”

큰형수의 말을 듣는 동안 백씨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대체 이 편지에 무엇이 적혀 있기에 이러는 것일까?

게다가 명씨의 말은 아무리 들어도 일이 벌어지기 전에 자신과 분명히 선을 그으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백씨는 더 묻지 않고 그 자리에서 봉투를 뜯으려 했다. 그러나 봉인을 건드리기도 전에 명씨가 손을 뻗어 그녀의 손등을 눌렀다.

백씨가 고개를 들자 명씨도 흔들림 없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편지는 잠시 후에 보렴. 그전에 너와 나눌 이야기가 있다.”

백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겁니까?”

명씨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큰일이 벌어졌다. 너도 알다시피 아버님께서는 누구보다 명성을 중시하는 분이시다. 헌데 작위까지 삭탈당한 데다 후손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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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문춘귀   제1174화

    황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걷잡을 수 없는 증오가 서려 있었다. 계연수는 눈을 내리깔고 소맷자락을 움켜쥐었다.태후가 이토록 악독할 줄은 그녀도 미처 몰랐다. 막을 수 있었던 일이건만, 번번이 일이 어긋나고 말았다.심정우에게 단단히 당부해 두었으나 정작 그때 그는 자리에 없었다. 용춘을 보내 호위들을 불렀지만, 그들 역시 제때 도착하지 못했다.무엇보다 백씨가 태후와 결탁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다. 어쩌면 태후는 자신보다 먼저 심서준에게 변고가 생겼음을 알았을지도 몰랐다. 그 소식을 빌미로 백씨가 물불 가리지 않고 일을 저지르게 한 것이리라.커다란 돌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듯 숨이 막혔다. 계연수는 눈을 감고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폐하께서는… 아이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셨습니까…”황후는 계연수를 부축하여 등 뒤의 푹신한 베개에 기대게 했다.“본궁이 사람을 보내 여쭈어보았다. 이미 아이를 찾으러 사람을 보내셨다더구나.”황후는 그녀의 손등을 가만히 두드렸다.“너무 걱정하지 마라.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계연수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태후께서 아이를 어디로 데려가신 것입니까?”황후는 근심으로 가득한 계연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폐하께서 우선은 본궁도 묻지 말라 하셨다. 금의군을 보내 찾고 있으니, 곧 소식이 올 것이다.”계연수가 황후를 바라보았다.“어찌 묻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태후께서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셨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 아이가 어디로 보내졌는지만이라도 알아야 합니다.”그녀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불을 걷어 내려고 했다.“제가 직접 폐하께 여쭙겠습니다…”황후는 얼른 계연수의 어깨를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지금 계연수의 몸은 몹시 상해 있었다. 아이를 낳자마자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과 고통을 겪었고, 쉬기는커녕 찬바람까지 맞았다. 게다가 얇은 옷차림으로 오문 밖에서 거의 반 시진을 버텼으니, 쇠로 된 몸이라도 견디기 어려웠을 터였다.이제는 고열까지 올라 온몸이 불덩이 같았다.

  • 주문춘귀   제1173화

    태후는 사람을 보내 산적들을 매수했다. 심서준이 가는 길에 변을 당하게 하려던 것이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이번에는 주원길에게 서신을 보내 심서준을 없애라고 했다.주원길에게도 구린 구석이 있다는 것을 태후는 알고 있었다. 예전에 그를 도와준 적도 있었다. 그러니 주원길로서도 심서준을 제거해야 했다. 그가 돌아와 자신의 치부를 물고 늘어지게 둘 수는 없을 터였다.태후가 끝내 입을 열지 않자 황제의 얼굴에 서릿발 같은 냉기가 내려앉았다. 그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매를 떨치며 자리를 떠났다.이런 일은 얼마든지 조사하여 밝혀낼 수 있었다. 지금 급한 것은 계연수의 아이를 찾아 돌려주고 사태를 가라앉히는 일이었다.남원 입구에 이른 황제는 금위병을 불러, 앞으로는 누구도 남원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라고 명했다. 태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이전에는 태후가 남원으로 거처를 옮긴 뒤에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마저 막혔다. 사실상 완전히 유폐된 셈이었다.황제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금의군 지휘사를 불러오라 명했다.*한편 계연수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오후였다. 마음에 걸린 일 때문인지 오래 정신을 잃고 있지는 않았다. 정오가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의식을 되찾은 것이다.곁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황후가 아니라 방 어멈이었다. 계연수가 깨어난 것을 본 방 어멈은 붉어진 눈으로 서둘러 따뜻한 차를 가져왔다.“부인, 우선 목부터 좀 축이십시오.”계연수는 고개를 저었다. 눈에 익은 방 안의 가구며 장식을 보니 황후의 처소였다. 지난번 자신이 머물렀던 바로 그 방이었다.“폐하께서 다녀가셨느냐?”방 어멈이 고개를 저었다.“아직 아니십니다.”“지금은 몇 시냐?”“막 신시가 지났습니다.”계연수는 속으로 시간을 헤아렸다.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가슴이 죄어들었고, 불길한 예감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황제가 과연 아이를 찾아 줄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심씨 가문을 그토록 미워하는 태

  • 주문춘귀   제1172화

    황제의 말이 끝나자 태후의 얼굴에 잿빛이 어렸다. 계연수가 오문 밖에 무릎을 꿇고 억울함을 호소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냉혹하게 굳은 황제의 얼굴을 바라보던 태후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황제, 나는 너의 어머니다. 네가 황제이니 이 천하가 모두 우리 것인데, 계씨가 대체 무엇이라고 이러는 것이냐? 심씨 가문의 아이가 뭐 그리 대단하단 말이냐? 고작 아이 하나 때문에 애가와 등을 지겠다는 것이냐?”황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조금 전 그토록 이해득실을 짚어 주고 조정의 형세까지 설명했건만, 태후는 단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사사로운 원한만 가득했다.다시 눈을 뜬 황제가 태후를 차갑게 바라보았다.“영청후부의 죄를 조사하라고 심서준에게 명한 것은 짐입니다. 짐은 오래전부터 영청후부를 손볼 생각이었습니다.”태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황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처음 보위에 올라 기반이 흔들리던 때를 잊었느냐? 너의 앞길을 막는 자들을 없애고 반대 세력을 몰아낸 것은 모두 너의 외사촌 형이었다. 헌데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이냐…”황제는 뒷짐을 졌다. 가늘고 긴 눈에 냉기가 서렸다.“그렇다고 조정을 어지럽히고 무고한 이들을 함부로 모함하라고 허락한 적은 없습니다. 외사촌 형이 짐을 도와 많은 자를 제압한 것은 사실입니다. 헌데 그들이 기세등등하게 횡포를 부리고 악행을 저지를 때, 짐도 그 공을 생각하여 눈감아 주었습니다.”황제의 시선이 태후에게 깊이 박혔다.“더구나 영청후부가 그 지경에 이른 것은 모후께서 그들을 감싸고 내버려 두셨기 때문이 아닙니까?”그는 몸을 돌려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끝내 사실대로 말씀하지 않으시겠다면 더는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모후 곁에 있는 자들을 심문해도 알아낼 수 있으니까요. 다만 그때는 형부에 넘겨 심문하게 할 것입니다. 뒤늦게 후회하지 마십시오.”황제가 정말로 떠나려 하자 태후의 가슴에 덜컥 겁이 내려앉았다.“황제, 잠깐만 기다리거라.”황제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

  • 주문춘귀   제1171화

    더구나 평부진의 일은 본래 태후와 옛 영청후부에도 얽혀 있었다.조정의 정사는 차치하더라도, 심씨 가문은 황제의 즉위를 도운 공신이었다. 지난 세월 한결같이 충성을 다했으며, 누구에게도 지탄받을 만한 일을 저지른 적이 없었다. 황제 자신도 심서준에게는 갚지 못한 마음의 빚이 있었다. 그런데 태후가 이런 짓까지 벌였으니, 온 세상의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터였다.황제의 낯빛이 점점 차갑게 굳어졌다. 이미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린 그는 서늘한 눈으로 태후를 바라보았다.“모후, 계씨가 오문 밖에 무릎을 꿇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십니까? 이제 누구나 그 여인이 그곳에 꿇어앉은 까닭을 궁금해할 것이고,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러시면 짐은 무슨 낯으로 천하를 대하란 말입니까?”태후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얼굴에는 여전히 대수롭지 않다는 냉담함이 남아 있었다.“계씨가 오문 밖에 꿇어앉아 황제를 협박하는데, 황제가 무엇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냐? 그 계씨에게 무슨 억울한 사정이 있단 말이냐? 존귀한 이와 비천한 이의 분수도 모르는 자는 마땅히 정장으로 다스려야 한다.”황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지금 계연수에게 정장을 내렸다가는, 형벌이 끝나기도 전에 온 조정이 들끓을 것이 뻔했다.문득 손보경이 심서준을 고발했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 태후를 폐위해야 한다는 상소가 얼마나 빗발쳤던가. 태후의 덕이 그 자리에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이제야 황제는 선황이 어찌하여 늘 모후를 달가워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모후의 식견은 이토록 얕고 좁았다. 자신마저 어리석어 모후의 말에만 따르는 꼭두각시였다면, 조정은 진작 태후와 정씨 가문의 손아귀에 넘어갔을 것이다. 정씨 일족은 거리낌 없이 악행을 일삼으며, 나라를 좀먹는 벌레처럼 조정을 남김없이 갉아먹었으리라.황제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고는 담담하게 물었다.“심서준의 아이는 어디에 있습니까?”태후가 경악한 눈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지금 나를 의심하는 게냐

  • 주문춘귀   제1170화

    황후가 계연수를 부축해 보련에 오르기도 전에 그녀는 정신을 잃었다. 황후도 크게 놀라 상궁에게 계연수를 받쳐 마차에 태우라 이르고, 서둘러 임 원정을 불러오게 했다.황후 역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심서준의 변고로 곤녕궁에는 침통한 기운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다만 계연수가 이토록 빨리 그 소식을 알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황제에게도 며칠만 계연수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 청해 둔 터였다. 적어도 아이만큼은 무사히 낳게 해 주고 싶었다.황제가 밖으로 나왔을 때는 황후에게 부축받는 계연수의 옷자락 한 귀퉁이만 보였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태후의 처소로 갈 채비를 하라 명했다.황제가 도착했을 때, 태후는 남원행궁에서 웃으며 새를 어르고 있었다. 전각의 바닥에는 온기가 가득했고, 곁에 선 내시 둘은 듣기 좋은 말로 태후의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궁녀는 태후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과일 껍질을 벗겼다. 겉으로는 더없이 온화하고 화기애애한 풍경이었다.황제가 들어서자 태후가 웃으며 물었다.“황제가 어찌 이곳까지 올 짬이 났느냐?”태후가 요양을 위해 남원행궁으로 거처를 옮긴 뒤, 황제는 한 번도 문안을 온 적이 없었다.황제는 태후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두 사람 사이의 탁자에는 정교하게 만든 새장이 놓여 있었고, 그 안의 앵무새는 태후가 어르는 대로 위아래를 오르내렸다.“모후께서는 참으로 여유로우십니다.”태후가 미소 지었다.“이제는 아무 일에도 관여하지 않고 여생을 편히 보내고 있지 않느냐. 새를 어르고 꽃을 가꾸는 것 말고 달리 할 일이 있겠느냐.”태후의 얼굴에는 흡족함이 가득했다. 마음도 그보다 못하지 않았다.수하가 계연수의 아이를 데려왔으니, 산파가 일을 해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계연수 역시 지금쯤 죽어 가고 있을 터였다.심서준도 죽고, 계연수도 죽고, 두 사람의 아이마저 죽었다.이제야 가슴에 맺힌 울분을 풀고 원수를 갚은 것이다.태후라는 존귀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제 혈육 하나 지키지 못했다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비웃었던가.

  • 주문춘귀   제1169화

    그로 인해 주원길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아침에 이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황제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심서준이 일을 제대로 해내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제 목숨조차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주원길의 죄증을 남길 방도를 찾고, 성안의 백성들까지 지켜 냈다는 사실에는 만감이 교차했다.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 심서준을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세상에 두 번째 심서준은 없었다.황제는 고개를 내려 계연수의 눈을 마주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동자를 보니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그조차 심서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하물며 눈앞의 여인은 어떻겠는가. 온몸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고 얼굴은 눈물로 젖어 있었다. 금이 간 도자기처럼, 조금만 건드려도 산산이 부서질 듯했다.그 잔혹한 진실을 차마 제 입으로 전할 수는 없었다.잠시 침묵하던 황제가 입을 열었다.“심씨 부인, 지금 가장 급한 것은 아이를 찾는 일이다.”그러고는 사람을 시켜 황후를 들라 했다.계연수는 넋을 잃은 채 바닥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문득 오그라들듯 아팠다.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작은 기대가 남아 있었다. 누군가 이 모든 일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 주기를 바랐다.그러나 황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침묵이야말로 계연수를 가장 깊은 절망에 빠뜨렸다.이윽고 심 황후가 들어왔다. 차림은 여느 때처럼 단정하고 품위 있었으나, 초췌한 얼굴과 다소 흐트러진 걸음에는 당혹감이 묻어 있었다.황후는 계연수를 보는 순간 알았다. 심서준의 일을 이미 전해 들은 것이다.수수한 옷차림에 비녀나 장신구 하나 없는 모습, 온통 눈물로 젖은 얼굴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계연수가 오늘 아침 오문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고는 황후도 예상하지 못했다. 황제의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혹여 계연수에게 노여움을 품었을까 두려웠다. 심씨 가문은 더 이상의 화를 감당할 수 없었다.게다가 갓 아이를 낳은 몸으로 입궁하다니. 저 몸이 어떻게 버텨 내겠는가.황후는 황제의 눈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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