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향안 위에서 가느다란 향 연기가 피어올랐다. 황제는 낮게 한숨을 내쉬고 계연수를 데려오라 명했다. 전각 안에 있던 이들에게도 잠시 물러가라고 했다.심서준의 수하였던 도찰원 관리 둘은 계연수가 오문 밖에 무릎을 꿇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음속으로 짐작하는 바는 있었으나, 감히 더 묻거나 살피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물러났다.계연수가 들어섰을 때, 황제는 상석의 긴 탁자 뒤에 앉아 있었다. 전각 안에는 바닥을 덥히는 불길이 세차게 타올랐고, 문과 창은 굳게 닫혀 있었다. 후끈한 공기에 용연향 냄새까지 뒤섞여 숨을 짓누르는 듯 답답했다.계연수는 전각 한가운데 무릎을 꿇었다. 눈을 내리깔고 예법에 맞춰 큰절을 올린 뒤, 소매 안에 넣어 온 고소장을 꺼냈다. 두 손으로 받쳐 머리 위로 높이 들었다.“저 계연수는 태후마마를 고발하고자 합니다. 태후마마께서는 제 넷째 형수인 백씨와 결탁하여, 제가 출산하는 틈에 제 아들을 바꿔치기하고 심씨 가문의 대를 끊으려 하셨습니다. 증거가 갖추어져 있으니, 부디 폐하께서 진상을 밝혀 주십시오.”목소리만 들어도 계연수가 남은 힘을 끌어모아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운은 부족했으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또렷하고 단단했다.황제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길고 깊은 눈을 조금 들어, 전각 한가운데 무릎 꿇은 흰옷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가냘픈 두 손 위에 고소장 한 장이 받쳐져 있었다.황제는 계연수가 심서준 때문에 입궁한 줄 알았다.죽은 부군을 위해 공정한 처분을 구하러 온 것이라 생각했다. 심서준을 평부진으로 보낸 사람이 자신이었으니까.평부진이 얼마나 썩어 있는 곳인지도 황제는 잘 알고 있었다. 오랜 세월 쌓인 폐단은 마음에 박힌 가시와 같았다. 늘 뽑아내고 싶었지만, 아무리 해도 뽑히지 않는 가시였다.그곳의 사정은 너무도 혼탁했다. 보낸 사람들은 번번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보고했지만, 황제는 알고 있었다. 평부진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다만 누구도 밝혀내지 못할 뿐이었다.심서준을 보낼 때는 큰 기대를 걸
심정우는 행색이 흐트러져 있었고,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호위는 먼저 정중히 인사를 올린 뒤 대답했다.“셋째 도련님, 둘째 부인께서는 안 계십니다.”심정우는 멈칫했다. 이제 막 아이를 낳았는데, 처소에서 몸을 추스르지 않고 어디로 갔단 말인가.“오숙모께서는 어디 가셨느냐?”곧바로 또 물었다.“어젯밤에는 무사하셨느냐?”호위는 입술을 다문 채 심정우를 바라보았다. 저토록 다급한 모습을 보니 대답을 해 줘야 할 것 같았지만,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지 판단하기 어려웠다.호위들은 어젯밤의 일을 모두 알고 있었다. 부저 안에 내통한 자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부인은 자리를 비웠고, 떠나기 전에 누구도 들이지 말라고 했을 뿐, 어떤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는 일러 주지 않았다.호위가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자 심정우의 가슴이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 한 걸음 다가서며 재촉했다.“오숙모께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호위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어젯밤 둘째 부인을 해치려는 자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일이 벌어졌습니다.”심정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밤사이에 정말 변고가 생겼을 줄은 몰랐다.“누가 오숙모를 해치려 했느냐?”“태후이십니다.”호위가 잠시 머뭇거렸다.“그리고…”큰부인의 이름까지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아직 확정된 일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셋째 도련님은 장방의 사람이었다. 함부로 입에 올릴 이야기가 아니었다.심정우는 더욱 굳어졌다.태후라니…“또 누구냐?”“태후와 부저 안의 내통자입니다. 내통자가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심정우의 속이 불안하게 뒤틀렸다. 어제 어머니를 모시고 돌아갔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차를 마시라고 했고, 그 차를 마신 뒤부터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 뒤의 일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감히 더 생각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왜 그런 일을 했는지, 그 이유를 떠올리는 것조차 두려웠다.“오숙모께서는 지금 어디 계시느냐?”호위는 고개를 저었다.그것만큼은 정말 몰랐다. 둘째 부인은 행선지를
심소연에게는 아이의 성별이 참으로 중요한 문제였다. 딸이라면 심씨 가문을 이을 사람이 없었다. 이 집안의 막대한 재산과 부귀를 누구에게 물려주겠는가.결국 아버지와 큰오빠의 차지가 될 터였다. 그런 좋은 일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심소연은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이수옥은 그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무엇을 바라는지도 잘 알았다. 조금 전 오숙모의 처소에 갔을 때, 자신 역시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오숙모는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았고, 아이의 얼굴조차 보여 주지 않았다.솔직히 이수옥은 몹시 불쾌했다. 아이를 낳았으면 낳은 것이지, 무엇 때문에 그리 감춘단 말인가. 아들인지 딸인지조차 말하지 않는 것은 분명 자신들을 경계한다는 뜻이었다.그렇게 경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평생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닌데.심소연이 그 이야기를 꺼내자 다시 울화가 치밀었다.“우리를 경계해서 말도 안 해 주시더라.”그러다 문득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설마 딸을 낳아서, 나중에 의지할 데가 없을까 봐 아이를 바꾸려는 건 아니겠지? 아들을 데려다 몰래 바꿔 놓으면 아무도 모르잖아. 오숙부도 안 계시니, 앞으로 이 집안은 그 모자 차지가 되는 거고.”심소연의 얼굴이 굳었다.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다급히 물었다.“우리 어머니는 어디 계시지? 아침 내내 안 보이시던데. 어머니께 얼른 오숙모 처소에 가 보시라고 해야겠어. 정말 그런 짓을 하게 둘 수는 없잖아. 우리 집안에 남의 핏줄을 들이겠다는 건데.”이수옥이 미간을 찌푸렸다.“나도 어머님이 어디 가셨는지 못 봤어. 부군도 보이지 않고.”“아버지는 아침에 할머님께 잠깐 들르셨다가 바삐 가셨거든. 어쩐지 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이수옥은 고개를 저으며 이마를 짚었다. 밤새 노부인 곁을 지키느라 제대로 쉬지 못했다. 직접 시중들 일이 없어도 자리는 지켜야 했기에, 작은 탁자에 기대어 잠깐 눈을 붙였을 뿐이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해 그저 돌아가 쉬고 싶었다.노부인이 깨어나셨는데
계연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노부인이 문득 물었다.“다른 아이는… 이름을 지었느냐…”“예. 나으리께서 지어 주셨습니다. 심여상이라고 합니다.”계연수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덧붙였다.“바꿔치기당한 아이의 이름은 심균호이고요.”노부인의 흐린 눈에서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여상을 데려와 이 할미에게 보여 줄 수 있겠느냐?”계연수는 잠시 말이 없었다.“아이는 지금 제 처소에서 잘 보살피고 있습니다. 제가 돌아온 뒤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노부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어서 가 보거라…”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거듭 당부했다.“무슨 일이 있어도 네 몸부터 지켜야 한다. 황후마마께도 미리 말씀을 드리고… 이 집안에는 네가 있어야 한다. 너마저 잘못되어서는 안 돼.”계연수는 조용히 대답하고 침상 기둥을 짚어 몸을 일으켰다. 일어서는 순간 눈앞이 검게 흐려졌다. 한참을 그대로 버티고서야 어지럼이 조금 가셨다.방 어멈이 휘장을 걷어 주었다. 그 바깥에는 노부인이 시집올 때부터 함께했던 어멈 둘이 서 있었다. 계연수는 그들에게 일렀다.“어머님 몸이 좋지 않으시다. 곳간에 있는 묵은 산삼 두 뿌리를 모두 가져다 약을 달이거라. 정성을 다해 보살펴 다오.”당부를 마친 계연수는 바깥방으로 향했다. 조금 전 노부인 곁에 있던 여인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계연수가 나오자 모두 길을 비키며 문안을 올렸다.젊은 새댁 하나가 조심스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오숙모님, 제가 부축해 드릴까요?”둘째 도련님의 정실인 진씨였다. 평소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며, 좀처럼 입을 여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계연수는 괜찮다는 뜻으로 손을 가볍게 내젓고 혼자 걸어 나갔다.계연수가 떠나자 여인들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물론 적잖은 이들이 마음으로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심씨 가문이 지금의 지위를 누리는 것은 모두 오숙부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사라진다면 이 집안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저마다 불안
노부인은 계연수의 굳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주름진 손이 가늘게 떨리며 계연수의 뺨을 감쌌다.“너는…”슬픔에 잠긴 목소리가 힘겹게 이어졌다.“너는 지금… 괜찮은 게냐…”계연수는 그 손의 온기조차 느끼지 못했다. 아니, 지금은 무엇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감각마저 무뎌져 있었다.심서준을 생각할 때마다 밀려오는 슬픔도 가슴 가장 깊은 곳에 눌러 두었다. 감정이 흐르는 대로 자신을 내맡길 수 없었다. 마음껏 울어 볼 시간조차 계연수에게는 없었다.빛이 옅어진 눈으로 노부인을 바라보며 나직이 답했다.“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노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계연수의 얼굴을 살폈다. 이제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이 아이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아무리 울고 쏟아 내도 가슴에 맺힌 슬픔은 덜어지지 않았다.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찾아와 안부를 묻고 몸을 살폈다. 하나같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듣기 좋은 말, 비위를 맞추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었다. 말없이 해야 할 일을 해내는 사람은 계연수뿐이었다.정작 큰일이 닥쳤을 때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도 오직 계연수였다.노부인은 끝내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계연수의 품에 기대어 통곡했다.“나는 믿을 수가 없구나. 내 아들… 내 아들이.”“어려서부터 그리 뛰어난 아이였는데, 어찌 이렇게…”계연수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자신에게도 남은 힘이 얼마 없었다. 노부인을 달랠 기력조차 없이 몸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곁을 지키던 방 어멈이 다가와 노부인을 달래며 다시 침상에 기대도록 부축해 준 덕에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계연수는 노부인이 조금 진정하기를 기다렸다가 그 손을 꼭 쥐었다.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지금까지 밝혀낸 것은 어머님 곁의 벽월과 양아, 두 시녀뿐입니다. 다른 시녀들은 아직 조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어머님께서 시집오실 때부터 데려와 오래 지켜보신 이들은 믿고 쓰셔도 될 듯합니다. 당분간 약과 음식은 그처럼 속속들이 아는 사람
노부인은 북받치는 슬픔을 이기지 못한 채 계연수의 어깨에 기대어 숨을 헐떡였다.“내가 그 고생을 하고, 내 아들만 바라보며 사십 년을 살았거늘… 어찌 그 아이가 나보다 먼저…”“이제는 손자마저 이리되었으니, 이 늙은 것이 무슨 낙으로 살겠느냐. 나도 너와 함께 입궁하겠다. 폐하께서 심씨 가문에 합당한 답을 주지 않으시면, 그 앞에서 머리를 찧고 죽을 게야. 심씨 가문이 폐하를 어떻게 보필했는데! 폐하께서 어찌 은혜를 저버리시는지 온 천하가 알게 하겠다.”노부인은 말을 할수록 격해져, 기어이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쇠약해진 몸에는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계연수가 받쳐 주지 않았다면 그대로 침상 아래로 굴러떨어졌을 터였다.계연수는 힘겹게 노부인을 부축해 다시 눕혔다. 지금은 침상에서 내려오는 것조차 어려운 몸이었다. 이 상태로 입궁하는 것은 무리였다.“어머님, 이 일은 제게 맡겨 주세요.”계연수는 숨을 고르고 차분히 말을 이었다.“폐하를 몰아붙이면 당장은 뜻을 굽히실 수도 있습니다. 헌데 훗날 화근이 될 수 있습니다. 심씨 가문이 지난 은혜를 내세워 자신을 압박했다고 여기실 테니까요. 지금은 부군도 안 계시니, 강경하게 나서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폐하께서는 늘 황실의 체면을 중히 여기셨습니다. 더구나 태후는 폐하의 친어머니입니다. 저희가 조금의 여지도 남기지 않고 맞서 폐하의 위엄을 훼손한다면, 앞으로 심씨 가문에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지금은 아이를 되찾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다음 일은 아이를 찾은 뒤에 차근차근 도모하면 됩니다.”노부인은 눈물 어린 눈으로 계연수를 바라보았다. 부저에 이토록 큰일이 닥쳤는데도 계연수는 침착하게 앞일을 헤아리고 있었다. 이 아이마저 없었다면 어떻게 해야 했을지, 생각만으로도 막막했다.부군도 곁에 없으니 의논할 사람조차 없었다. 그런데 태후와 내통한 자가 다름 아닌 백씨라니. 그 은혜도 모르는 자가 집안에서 이런 짓을 벌였다는 사실이 노부인을 더욱 무너뜨렸다.노부인은 계연수의 손을 꼭 쥐었다. 안쓰러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