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계연수는 지금 당장 어머니를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득하지 못해도 상관없었다.어머니는 때로는 고집을 부렸으나 딸이 끝까지 밀어붙이는 일이라면 결국은 따라주곤 했으니 말이다.먼저 집을 구해버리면 된다. 일이 이미 굳어버린 뒤라면 어머니도 더는 어쩌지 못하실 것이다.계연수는 눈을 내리깔았다. 말없이 잠시 서 있다가 점점 여위어 가는 어머니의 몸을 바라보니 가슴이 저려왔다.“이 일은 나중에 다시 말씀드릴게요. 어머니, 오늘은 일찍 쉬세요.”고씨는 딸의 손을 꼭 잡았다. 더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계연수의 얼굴에 스친 피곤을 보고는 많은 말을 삼켰다.“그래….”계연수가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밤바람이 복도를 스쳤다. 그녀는 숨을 내쉬며 목소리를 낮추어 춘화에게 물었다.“큰 외숙모가 또 무슨 말씀을 하셨느냐?”춘화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작은 소리로 답했다.“큰 부인께서… 아가씨는 이제 큰 방에 기대어 사는 처지라 하시며, 은혜를 모른다 하셨습니다.”계연수는 밤빛 속에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눈빛이 한층 옅어졌다.얼굴에 스친 기색은 비웃음 같았으나 실은 깊은 씁쓸함이 더 짙었다.춘화는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과거 아버지가 계실 적, 고씨는 고가를 위해 아끼지 않았다. 두 외숙을 돕자고 늘 설득했던 이도 어머니였다.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냉대가 돌아왔다. 은혜를 모른다니, 그 말이야말로 아이러니였다.이 집안 두 사내의 입학에 힘쓴 이가 누구였던가? 계연수가 사옥현의 집에서 고단한 날을 보내면서도 명절마다 값비싼 물건을 보내왔던 일은 또 무엇이던가?그녀는 단 한 번도 계산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더 무엇을 바라란 말인가?초봄의 밤은 유난히 차가웠다. 계연수는 생각을 접고 다시 물었다.“오늘 새로 온 두 아이는 어떠느냐?”춘화가 재빨리 답했다.“훨씬 부지런합니다. 노부인 쪽에서 보낸 아이들입니다.”계연수는 비로소 안도했다.그러다 문득 오늘 밤 심서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마차 안에서 그가 단독으로 묻던
심서준은 말을 마치고 더 머물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휘장을 걷고 냉담한 기색 그대로 마차에서 내렸다.계연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심장이 가늘게 떨렸다. 저도 모르게 휘장을 들어 올려 다시 한 번 그를 찾았다.화등이 막 밝혀진 거리, 사람들로 가득한 인파 속에 그는 길게 선 학처럼 서 있었다. 검은 옷자락이 밤빛과 겹쳐 더욱 차갑게 보였다.하지만 그는 매번 그녀가 막다른 길에 설 때마다 손을 내밀었다. 방금도 아무 말 없이 열쇠를 남겨두지 않았던가.그는 언제나 침묵했고, 그러면서도 늘 그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서툴게 그의 품으로 쓰러졌을 때도 단 한마디 나무람 없이 묵직하고 안정된 힘으로 모든 상황을 정리해 주었다.지금 이 순간, 계연수는 그를 불러 세우고 싶었다. 왜 자신을 돕는지, 자신이 그의 마음속에서 어떤 자리인지 묻고 싶었다.그러나 그 냉정한 뒷모습은 점점 흐릿해졌다. 그의 화려한 마차 곁으로 호위들이 다가와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휘장을 들어 올렸다.두 사람 사이에는 겹겹의 산맥이라도 놓인 듯했다.그는 고귀했고 단정했으며 높은 자리에 있었다. 자신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설령 답을 안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계연수는 자신이 심서준을 향해 품은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의 곁에 서 있으면 마음이 놓였다. 그가 있으면 무슨 일이든 결국은 평온하게 정리될 것만 같은 기묘한 안도. 그것이 두려우면서도 놓기 싫은 감정이었다.*계연수가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이미 저녁을 마치고 침상에 기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방에 들어서자 어머니는 손을 흔들며 그녀를 불렀다.“연수야, 네가 큰 외숙모가 보낸 그 두 계집아이를 곤란하게 했다고 하더구나?”계연수는 옆에 선 춘화를 바라보았다.춘화는 황급히 손을 저었다.“아가씨, 저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헌데 오늘 큰 부인께서 오셔서 빈정대는 말을 한참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그녀가 말을 이으려 하자 어머니는 단번에 끊어버렸다.“춘화는
심정우는 솔직히 조금 어리둥절했다.어쩐지 오숙부는 자신이 계연수와 말을 나누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듯했다. 얼굴에 스친 노골적인 불쾌와 성가심은 유난히 엄격해 보였다. 더 묻고 싶었지만 감히 그럴 수 없었다. 그는 계연수를 한 번 더 바라본 뒤, 못내 아쉬운 기색으로 몸을 돌렸다.길 건너편으로 건너가면서도 뒤를 돌아보았다. 계연수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확인하자 손을 들어 가볍게 흔들었다.계연수가 시선을 거두는 순간, 마주한 것은 심서준의 눈빛이었다.그녀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심 대인께서… 오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셨습니까?”작게 물은 뒤, 고개를 숙였다.“오늘은 본래 제가 모시는 자리였는데….”심서준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장신구까지 전당에 맡긴 처지였다. 오늘 식사를 그녀가 계산했다면 또 무엇을 내놓아야 했을지 알 수 없었다.그는 대답 대신 짧게 말했다.“마차에서 이야기합시다.”계연수는 또다시 그가 자신의 마차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잠시 멈칫했으나 이내 따라 올랐다.소박하고 다소 비좁은 마차 안, 그녀는 구석에 얌전히 앉아 그가 먼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심서준이 물었다.“아직 떠나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계연수는 망설이다가 솔직히 답했다.“어머니께서 갑자기 병환이 깊어지셨습니다.”심서준은 별다른 표정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지금은 좀 나아졌습니까?”“네, 조금은….”잠시 정적이 흐른 뒤, 그가 다시 물었다.“갑작스러운 중병이라 했는데 원인을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계연수는 그가 세세히 묻는 데 놀랐지만 성실히 답했다.“태의께서 울체가 쌓여 생긴 병이라 하셨습니다. 심병이 토혈로 이어진 것이지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로 줄곧 기운이 없으셨지만 피를 토하신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심서준의 눈빛이 한층 차가워졌다.“다른 가능성은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까?”그 말에 계연수는 멈칫했다. 그의 깊은 시선이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했다.“설마… 누군가 독을 썼을 거라 보시는
심서준의 깊고 어두운 눈은 모든 장면을 놓치지 않고 담아내고 있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온 뒤, 복도 난간에 서서 아래층의 등불을 내려다보았다. 불빛이 겹겹이 흔들리는 밤이었다.문하는 주인의 등을 바라보았다. 저 고요한 뒷모습에 스며 있는 상실감은 아마 자신만이 알아챌 수 있을 터였다.밤바람이 천천히 스쳤다. 심서준의 눈동자는 잠잠했고 감정은 드러나지 않았다.계연수는 그의 곁에 있을 때 한 번도 심정우 앞에서 보이던 그 느슨한 표정을 지은 적이 없었다. 그에게는 늘 조심스러웠고 단정했으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그러나 심정우 앞에서는 달랐다. 가볍게 웃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나누고,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도 자연스러웠다. 그 장면 하나하나가 그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그는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 곁에 다른 사내가 있는 모습을.문하가 조심스레 다가와 속삭였다.“나으리, 안에 두 분만 계시면 좋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심서준은 문하를 한 번 바라보았다.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문 앞에 이르렀을 때, 안쪽에서 심정우의 시원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이로 계연수의 맑고 가벼운 웃음이 스며 있었다.그는 문을 밀어 열었다.문이 열리는 순간, 방 안의 소리는 한순간에 멎었다.심서준의 시선이 곧장 계연수에게 닿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직 웃음의 잔상이 남아 있었다. 환한 등불 아래에서 눈처럼 흰 피부가 더 또렷해 보였다. 본래도 고운 얼굴이었지만 웃을 때는 더욱 빛났다. 그 미소가 심정우의 눈에는 또 어떤 의미로 비치고 있을까?심정우는 스무 살. 그녀와 비슷한 나이였다.질투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기 위해 그는 시선을 낮추며 일렁이는 감정을 눌러 담았다.자리에 돌아온 후 계연수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작은 입이 쉬지 않고 움직였고 볼이 살짝 부풀어 올랐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마치 오래 굶은 아이처럼 맛있게 먹고 있었다.그의 입가에 희미한 기색이 스쳤다.그녀가 어느 정
계연수는 심정우가 내민 옥패를 보는 순간 잠시 멈칫했다. 둥근 고리에 두 마리 물고기가 맞물린 쌍어패였다. 빛깔만 보아도 좋은 옥임이 분명했고 오래 몸에 지녀 온 듯 윤이 났다.그녀는 곧장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다.이런 물건은 받을 수 없었다. 몇 번 마주한 사이에 이런 사사로운 물건을 주고받는다면 남의 눈에 띄었을 때 괜한 말이 돌기 쉬웠다.그러나 심정우는 물러서지 않았다.“값비싼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제게는 옥패가 여러 개 있지요. 계 아가씨께서 이혼했다는 소식을 어머니한테서 들었습니다. 지금 분명 어려운 일도 많으실 텐데 받아 두십시오. 혹시라도 꼭 써야 할 때가 있을지 모르지 않습니까.”그는 덧붙였다.“어릴 적 제가 아가씨를 괴롭힌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사과라 생각해 주십시오.”계연수는 그의 마음이 고마웠다. 어린 시절의 일은 이미 오래전에 잊어버렸다. 그럼에도 다시 고개를 저었다.그 순간, 두 사람 사이가 길게 뻗은 손에 의해 가로막혔다. 가늘고 긴 손가락이 심정우의 옥패를 가볍게 집어 들었다.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앞에 서 있던 심서준이었다.그의 얼굴은 여전히 냉정했고 눈빛은 차게 가라앉아 있었다.“생각이 있느냐? 사사로이 물건을 주고받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느냐?”심정우는 또 한 번 오숙부에게 꾸중을 들었으나 감히 대꾸하지 못했다.군영에서 지내며 여인들과 깊이 얽힐 일도 없었고 평소 떠드는 벗들과 어울리긴 했으나 그런 자리의 여인들은 천한 신분일 뿐이었다. 계연수에게는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솔직하게 대했을 뿐, 다른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이제야 말뜻을 깨닫고 얼굴이 굳어지며 급히 계연수에게 사과했다.계연수는 그가 단순한 성정임을 알았다. 그와의 대화에는 계산이나 속셈이 없었으니 굳이 헤아릴 것도 없었다.그녀는 무심코 고개를 돌려 심서준을 보며 조심스럽게 한마디 덧붙였다. 심서준은 입술을 다문 채 그녀를 한 번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옥패를 심정우의 손에 되돌려 던지듯 건넸다. 그대로
마차에서 내린 심서준이 곁에 섰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서 있었을 뿐인데도 큰 체구에서 묵직한 압박감이 흘러나왔다. 계연수는 몇 번이나 숨을 고르고 나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저쪽 득미거로 가겠습니다.”그리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덧붙였다.“혹시 심 대인께서 그 집 음식이 맞지 않으시면 다른 곳으로 옮겨도 됩니다.”심서준이 고개를 숙였다. 밤바람이 불어 그녀의 패모에 달린 흰 베일이 가볍게 흔들렸다.베일 끝이 마치 소박한 수묵화의 한 자락처럼 그의 소매를 스치고 지나갔다.그의 시선은 그녀를 지나 뒤편 인파로 흘렀다. 남녀가 나란히 걷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지금의 자신과 계연수 같았다.그의 눈매가 조금 누그러졌다.“그대가 정하십시오.”그 한마디에 계연수는 순간 낯설게 느껴지는 온기를 보았다. 예전에 사촌 오라버니의 벼루를 사던 날, 그가 잠시 보여주었던 부드러운 표정과 닮아 있었다. 높고 멀기만 하던 사람이 아니라 조금은 인간적인 빛이 스친 얼굴에 긴장으로 조여 있던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이 길을 건너려는 순간, 밝은 목소리가 날아왔다.“오숙부!”계연수가 돌아보니 심정우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푸른 원령포 차림에 수수한 복장이었지만 걸음은 경쾌했다. 가까이 와서야 계연수를 본 듯, 얼굴이 환해졌다.“연수….”오숙부의 시선이 스쳐오는 것을 느끼자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계 아가씨. 어찌 오숙부와 함께 여기 계십니까?”계연수는 심정우에게 고마운 마음이 남아 있었다. 그가 심서준에게 말을 꺼내주지 않았다면 일이 이렇게 빨리 풀리진 않았을 테니.그녀는 간략히 경위를 설명하고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심정우는 괜히 귀가 붉어졌다. 사실 자신이 한 일은 많지 않았다. 결국은 오숙부의 말 한마디가 모든 걸 움직였으니.그래도 계연수에게서 고마움을 받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들떴다.“계 아가씨를 돕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말을 마치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슬쩍 오숙부 쪽을 보니, 심서준이
사옥현의 말에 계연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른 뒤, 고개를 저었다.“원숭이 연희는 언제든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아가씨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나으리께서는 굳이 저를 챙기실 필요 없습니다. 어서 가보세요.”그 말에 사옥현은 문득 그날 눈 내리던 밤을 떠올렸다. 그날도 그녀는 같은 말을 했다. 명유가 기다리고 있으니 자신은 신경 쓰지 말라고.너무도 당연하고 지나치게 너그러운 태도였다. 마치 부군이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에게 가는 일이 그녀에게는 이미 일상이 된 것처럼 말이다. 가슴속에서 둔탁한 통증이 점점
가는 눈발이 흩날리는 가운데 심서준은 계연수의 힘없이 늘어진 허리를 받쳐 안고 고개를 숙여 품속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계연수의 얼굴은 어느새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몸에는 조금의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젖은 머리칼이 뺨에 달라붙어 있었고 온몸에서는 뜨거운 열이 올라 얼굴마저 축축했다. 이마에서 맺힌 땀방울이 머리칼을 타고 뺨으로 또르르 떨어지고 있었으니 분명 평범한 상태는 아니었다.붉어진 입술이 벌어지고 반쯤 뜬 눈동자는 초점 없이 흐트러져 있었다. 숨결에 실린 열기가 스며들 듯 퍼졌고 입술 사이로는 물을 찾는 낮은 듯한 신음소
그녀는 말을 잇다가 문득 사옥현을 바라보았다.“아가씨와 함께 원숭이 연희를 보러 가는 일이 급한 거라면 저는 길가에서 다시 마차를 부르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정말로 나으리를 탓하는 게 아닙니다.”그 순간, 사옥현의 곧게 펴 있던 등이 갑자기 눈에 띄게 무너졌다. 그는 계연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 얼굴에 스치는 미세한 표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바라보다가 문득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먼저 너를 집에 데려다준 다음에 명유와 나가겠다.”계연수는 사옥현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그의 이런 결정은 솔직히 말해 예상
그녀 자신에게는 그 은혜를 갚을 방법조차 없었다. 그에게 있어 자신은 하등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 오히려 번거로움만 더해 줄 뿐이었으니.계연수는 고개를 숙였다. 눈가에 뜨거운 것이 차올랐지만 심서준 앞에서는 끝내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늘 이런 식으로 초라한 모습만 보이게 되는 자신이 스스로도 혐오스러워졌다. 마치 자신이 무엇인가 크게 잘못해 온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한때는 모두가 말하던 청풍명월 같은 군자를 믿고 기대를 품은 채 시집을 갔을 뿐인데 어째서 인생의 끝자락이 이토록 처참한 잔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