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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작가: 경옥
이명유의 안색이 음침하게 굳었다. 그녀는 계연수가 뒤돌아서 자리를 뜰 때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계연수를 따라왔던 용춘은 조금 전 그녀의 말을 듣고 통쾌한 기분이 들었지만 걱정도 되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만약 또 나으리께 가서 고자질을 하면….”

이런 일은 처음 있는 게 아니었다. 이명유는 겉보기에 온순하고 선한 인상을 주지만 뒤에서 간사한 술수를 부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필 사옥현은 그녀를 편애하며 한 번도 부인인 계연수의 말을 믿은 적이 없었다.

계연수는 요 며칠 안에 사옥현과 화리에 관한 일을 상의할 생각이었으니, 이명유가 고자질을 하든 말든 중요치 않았다.

그녀와 사옥현은 처음부터 함께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옷깃을 여미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말고 먼저 돌아가자꾸나.”

긴 치맛자락이 축축이 젖은 돌바닥을 스치고 지나갔다.

죽림을 지날 때, 앞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아침에 입도 벙긋 못하는 거 봤나요? 아무리 분해도 지가 참는 것 외에 더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

“애초에 그런 초라한 혼수를 들고 시집을 온 게 뻔뻔한 거지. 옥현이 아니면 누가 그런 거렁뱅이를 거두어 주겠어?”

말을 마친 그녀는 또 한숨을 쉬었다.

“그년만 끼어들지 않았으면 옥현이도 명유도 잘 어울리는 한쌍이 되었을 텐데.”

계연수는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좀 불쌍하지 않나요?”

“계씨 집안이 건재할 때 얼마나 위풍당당했나요? 저희 가문은 쳐다도 볼 수 없는 자리에 있었죠. 하루아침에 그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또 다른 목소리가 비웃음을 터뜨렸다.

“동정할 필요 없어. 이게 팔자인 것이지.”

“형님이 왜 그년에게 살림을 안 맡기는지 아니? 그년이 집안의 돈을 빼돌려서 병든 자기 어미의 탕약을 사는데 보탤까 봐 그러는 것이지. 외조부 가문도 몰락했으니 그런 년에게 살림을 맡기면 집안살림이 다 거덜 날 것이야.”

“형님은 줄곧 그년을 경계하고 있었다고.”

대화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고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용춘은 멍하니 계연수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목소리는 둘째 부인과 그 며느리의 목소리였다.

계연수는 고개를 들고 힘없이 아래로 추락하는 마른 나뭇잎과 흩날리는 눈을 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밤, 그녀는 처소 뒤편에 있는 작은방에서 서신을 쓰기 시작했다.

이 방은 평소 계연수가 서재로 쓰고 있었다. 사옥현 자신은 매일 서재에 머물면서도 그녀에게는 집안의 서재에 접근도 하지 못하게 했다. 내원의 서재도 마찬가지였다.

계연수는 그가 복잡한 공무를 처리하다 보니 타인이 서재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타당하다고 생각하여 맨 뒤편의 허름한 방에 서재를 만들었다.

이곳은 창고와 맞닿아 있어서 평소에 인적이 드물었다. 계연수 본인도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집안 살림을 돌볼 필요도 없으니 한가할 때면 이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슴푸레한 등불은 방안을 밝게 비추진 못했지만 책상 하나를 비추기엔 충분했다.

계연수는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붓대를 들고 서신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계씨 가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외가에도 오래 머무를 수 없으니 화리한 후를 미리 대비해 두어야 했다.

서신을 마무리한 그녀는 살며시 품에 안긴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그녀가 주워온 길고양이지만 사옥현이 싫어해서 이곳에서만 길러왔다.

용춘이 다가와 서신을 접고 봉투를 봉했다. 계연수는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가능한 한 서둘러야겠어.”

용춘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계연수는 반쯤 완성된 그림을 펼치고 다시 붓대를 들었다.

사옥현이 처소로 돌아왔을 때는 온몸에 이른 겨울의 한기가 돌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지만 안채는 텅 비어 있었다.

그는 매번 돌아올 때면 다가와서 망토를 들어주고 따뜻한 탕을 손에 쥐여주던 계연수를 떠올렸다.

그가 언제 돌아오든 그녀는 늘 이곳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사옥현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어멈이 다가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작은 마님은 뒤편의 작은 방에 계십니다. 소인이 불러드릴까요?”

사옥현은 말없이 옷을 갈아입었다. 그의 뜻을 알아차린 어멈은 조용히 물러갔다.

안채에서 나온 그는 망토를 아무렇게나 던지고 서재로 향했다. 문앞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약이 끓고 있었다. 쓴 탕약의 향기가 안뜰을 은은하게 채웠다.

탕약을 다리던 시녀는 그의 시선을 느끼고 다급히 일어섰다.

“소인은 작은 마님을 위한 풍한 약을 달이고 있었습니다.”

소인은 그날 계연수가 기침을 몇번 했던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미 이삼 일이 지난 후였다.

부관이 저택으로 의원을 부른 일도 알고 있었다.

그가 기억하는 계연수는 한 번도 병을 앓은 적이 없었다. 늘 잔병에 시달리는 사람은 이명유였다.

그는 입술을 깨물고는 말없이 앞을 향해 걸었다.

계연수는 밤이 되어서야 안채로 돌아왔다. 그림을 너무 집중해서 그리다 보니 사옥현이 돌아왔는지 신경 쓸 여유가 없어서 늦었던 것이다.

안채로 돌아오니 방 안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어두컴컴한 등불을 보니 그는 오늘도 안 돌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 앞을 지키던 시녀가 다가와 작은 소리로 아뢰었다.

“나으리께서는 왔다가 가셨습니다.”

계연수는 걸음을 멈추었다.

시녀가 다급히 말했다.

“나으리께서는 서재에 계십니다.”

계연수는 옆에 있는 누각을 바라보았다. 주변은 어두컴컴하고 누각 위층의 창문에서만 밝은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창가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녀는 한눈에 그 그림자를 알아보았다.

계연수는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그녀는 한 번도 발을 들인 적 없는 서재이지만 이명유는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했다.

계연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채로 향했다.

사옥현은 이곳에 돌아와 밤을 묵는 일이 거의 드물었다. 서재로 간 것을 보니 이명유를 위해 간 것 같았다.

최근 그녀는 여전히 기침을 앓고 있었다. 그가 돌아왔다고 해도 얼마 못가 또 나가버릴 것이다.

잠기가 예민한 그는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녀는 사옥현을 기다려 하루라도 빨리 화리 사안을 논의하고 싶었다.

시녀가 다가와서 작은 소리로 아뢰었다.

“방금 전에 나으리께 보신탕을 보내드렸는데 다시 돌려보내셨어요. 아직 따뜻한데, 한모금 드시겠어요?”

안채로 들어간 계연수는 흔들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난로에 손을 뻗었다.

그러고 보니 시녀에게 다시는 사옥현에게 보신탕을 보낼 필요 없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전에는 싫다고 했지만 그가 바쁜 공무에 지쳐가는 것이 안타까워서 매일 보내줬던 것이다.

매번 되돌아온 보신탕은 아까워서 그녀가 마셨다.

계연수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시녀에게 말했다.

“너희가 마시거라. 그리고, 앞으로는 달일 필요 없어.”

시녀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멍하니 계연수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정말… 입니까?”

계연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녀를 물리고 뻐근한 어깨를 주물렀다.

용춘이 탕약을 가져오며 말했다.

“풍한은 대체 언제 나으려나 모르겠네요.”

“가벼운 풍한인 줄 알았는데 이리 오래 갈 줄은 몰랐지.”

계연수는 말없이 탕약을 들었다. 탕약의 쓴맛에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이때,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형수.”

고개를 들어 보니 사옥현과 이명유가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사옥현은 마치 그녀를 지키려는 듯이 그녀보다 한발 앞에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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