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심씨 노부인은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심정우와 심정민은 모두 그녀가 어려서부터 지켜보며 키운 귀한 손자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심정우를 유난히 아끼고 사랑했다. 아이는 속에 꿍꿍이가 없었고, 살가운 말로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할 줄도 알았다. 비록 예전에는 심정민만큼 철이 들지 못했고 글공부에도 뜻이 없었지만, 타고난 심성만큼은 누구보다 반듯했다.심씨 가문의 자손이라면 마음이 그릇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아이였다. 하물며 저토록 사랑스러운 자신의 손자이니, 어찌 매를 맞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수 있겠는가.심씨 노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곧장 심태숙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가 쥔 채찍을 빼앗으려 손을 뻗는 한편, 시종들에게 어서 심정우의 몸을 묶은 줄부터 풀라고 명했다.심태숙은 노부인이 채찍을 붙잡으려 하자 감히 힘을 줄 수가 없었다. 화들짝 놀라 다급히 손에 힘을 거둔 덕분에 가까스로 노부인을 치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다.“어머니께서 이 불효막심한 놈을 왜 감싸십니까? 이놈은 이제 집안의 체면도, 예법도 안중에 없습니다.”심태숙의 목소리에는 아직 분이 가시지 않았다.“혼인한 다음 날 달아난 것도 모자라 내일 친정에 인사드리러 가는 자리에도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었습니다. 이 일이 바깥에 알려지면 사람들은 제가 이런 망나니 같은 자식을 낳고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며, 심씨 가문의 가풍까지 흉볼 것입니다.”그는 분을 삭이지 못한 채 거친 숨을 내쉬었다.“게다가 제가 사돈댁에는 무슨 낯으로 설명한단 말입니까!”심씨 노부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심태숙을 쏘아보았다.“그래서 이렇게 죽도록 때리면 모든 일이 해결되느냐? 그러다 몸이라도 크게 상하기라도 한다면 정말 친정에 갈 수 없게 될 것이다. 정녕 그래야만 네 속이 시원하겠느냐?”노부인은 의자에 엎드린 심정우를 가리켰다. 마디 굵은 손끝마저 분노로 가늘게 떨렸다.“잘 보아라. 네 친아들이다. 네 손으로 아이를 대체 어떤 꼴로 만들어 놓았는지 똑똑히 보란 말이다!”심태숙은 평소에
솔직히 말해 백씨의 말은 이수옥의 마음을 조금 움직였다.이야기를 듣고 보니 심정우에게 따로 마음에 둔 여인은 없는 듯했다. 아직 남녀의 정에 눈뜨지 못했다는 말도 그럭저럭 납득이 갔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느 사내가 갓 혼인한 부인을 내버려 둔 채 떠나 버리겠는가. 보통 사내라면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일이었다.더구나 그날 심정우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만큼 만취해 있었다. 설령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해도 제대로 해낼 수는 없었을 터였다.그렇게 생각을 이어 가던 이수옥은 어느새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아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심정우가 돌아오면 붙잡고 제대로 물어볼 생각이었다. 대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똑똑히 들어야 했다.백씨는 할 말을 모두 알아듣게 일러 주었다고 여겼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당분간은 친정에도 이 일을 알리지 말거라. 결국 너희 부부가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니냐. 모두 부모가 정해 준 혼인인데도 다른 이들은 평안히 잘만 살아간다. 네가 못 할 이유가 무엇이겠느냐?”말투는 담담했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분명했다. 앞으로 이런 일로 자신을 번거롭게 하지도 말고, 친정에 돌아가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말라는 뜻이었다. 다른 부부들은 금슬 좋게 살아가는데 자신만 그러지 못한다면, 결국 부인으로서 제 몫을 다하지 못한 탓이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이수옥은 문득 혼인 전까지 제법 온화하고 다정해 보였던 백씨가 시어머니가 되고 나니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겉으로는 부드러운 말을 건네면서도 그 안에는 며느리를 옥죄는 차가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그래도 반드시 확인해야 할 일이 하나 남아 있었다.“그럼 삼 일 뒤 친정에 인사드리러 갈 때는 부군도 돌아오시는 건가요?”이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중요한 문제였다. 심정우가 함께 가지 않는다면 이수옥이 굳이 친정에 돌아가 하소연하지 않아도, 친정 식구들이 사정을 단번에 알아차릴 터였다.백씨 역시 지난 이틀 동안 바로 그 일로 골머리를 앓
하지만 지금의 심정우는 예전과 달랐다. 방탕하게 세월을 보내던 때를 뒤로하고 마음을 다잡아 공을 세웠으며, 이제는 휘하의 병사들을 직접 거느리는 어엿한 천종이 되었다. 갑옷을 걸치고 군영을 오가는 그의 모습에는 전과 다른 무게가 실려 있었다. 이수옥 역시 그런 심정우를 보며 그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처음 어머니가 이 혼담을 꺼냈을 때만 해도 그녀는 제법 만족스러웠다. 심씨 가문은 떠오르는 해처럼 기세가 드높았고, 심정우만 뜻을 세워 정진한다면 그 앞날 또한 탄탄대로일 테니까.그러나 막상 시집와 마주한 현실은 그녀가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예전에는 그토록 제멋대로 굴던 사람이 어쩌다 하루아침에 군무밖에 모르는 사내로 변한 것일까. 그에게는 이제 자신보다 군영의 일이 더 중요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자신이 싫어 이토록 냉담하게 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정말 자신이 싫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혼인 전에는 분명 이렇지 않았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수록 가슴속에 서늘한 불안이 고였다. 이수옥은 시어머니에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묻고 싶었다.*한편 백씨는 본래 곧장 자신의 처소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가슴속에 맺힌 울화가 풀릴 길이 없어 발걸음마저 무거웠다. 찬 기운이 스민 회랑을 걷는 동안에도 속에서는 수많은 개미가 기어다니는 듯 초조함이 끊임없이 일었다.특히 심씨 노부인이 계연수의 손을 다정히 잡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가슴속 원망이 불길처럼 치솟았다. 노부인의 따스한 손길도, 계연수를 향한 살가운 눈빛도 모두 눈에 거슬렸다.그러다 무심코 시선을 돌린 백씨는 곁에 선 이수옥의 표정을 발견했다. 이수옥은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이면서도 끝내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백씨는 차가운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쉬었다. 어쩌면 이렇게 마음 놓이는 일이 하나도 없는지 모를 노릇이었다.심정우는 초야조차 치르지 않은 채 옷자락을 털고 훌쩍 떠나 버렸다. 백씨가 가까스로 집안사람들의 입을 막아
계연수는 슬며시 백씨의 안색을 살폈다. 얼굴에는 분명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주방을 맡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사실 심서준도 전날 밤 이 일을 꺼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계연수는 굳이 백씨에게 맡기자는 말을 하지 말라고 만류했다.그녀는 본래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무엇을 차지하려 다투지도 않았고, 자신의 일로 다른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게다가 지금 주방에는 온통 자신이 들인 사람들만 있었다. 백씨가 주방을 넘겨받았다가 다시 사람을 바꾸기라도 하면, 그 뒤처리 또한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닐 터였다.계연수가 필요 없다고 말하려던 찰나, 백씨가 먼저 환하게 웃으며 받아들였다.“동서는 아무 걱정 말고 태교와 몸조리에만 힘쓰거라. 주방 사람들은 손대지 않을 테니, 지금까지 해 오던 대로 두면 된다. 일 처리 역시 동서가 세워 둔 규정에 맞추어 하마. 지금은 동서와 뱃속의 아이가 가장 중요하니, 다른 일은 마음에 담아 두지 말거라.”계연수는 뜻밖이라는 듯 백씨를 바라보았다.혹시 심서준이 따로 불러 단단히 경고하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백씨도 이제는 정말로 온 집안이 화목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것일까.그러나 후자만큼은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심씨 노부인은 백씨의 대답을 듣고 제법 만족스러워했다. 한편으로는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요즘 보니 네 안색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구나. 혼자 감당하기 벅차거든 큰며느리에게 맡겨도 된다. 그 아이도 이제 집안일을 배울 때가 되었지.”갑자기 이름이 언급된 최씨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다가 백씨의 눈치를 살폈다.백씨가 웃으며 말했다.“어머님 말씀이 옳습니다. 그 아이에게 주방을 맡겨도 괜찮겠지요. 제 맏며느리이니 이번 기회에 집안일을 배우게 하는 것도 좋겠습니다.”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심씨 노부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최씨를 바라보았다.“그러면 당분간 네가
심씨 노부인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서준이가 직접 찾아와 부탁하더구나. 네가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다면서, 날씨도 아직 추우니 문안을 드리러 오게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생각해 보니 그 말도 옳았다. 너는 본래 몸이 썩 튼튼하지 못해 걸핏하면 앓으니, 오지 않는 편이 낫겠구나. 괜히 오가다가 뱃속의 아이에게 무슨 탈이라도 생기면 어쩌겠느냐.”심씨 노부인은 말을 마치고 곁에 앉은 백씨를 바라보았다.“너는 내가 편애한다고 생각하지 말거라. 예전에 태숙이가 찾아와 똑같이 부탁했다면, 너 역시 문안을 면제해 주었을 게다.”백씨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말이야 그럴듯하고 공평하게 들렸지만, 자신이 배가 남산만큼 불러서도 노부인을 시중들던 때에는 언제 한 번 안쓰럽게 여겨 준 적이 있었던가.그녀는 다시 계연수를 바라보았다. 붉은 입술과 흰 치아, 혈색이 곱게 오른 얼굴은 어디 한 군데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저런 모습이 대체 어디가 몸이 약하다는 것인가.문득 심태숙까지 떠올랐다.그는 늘 자신만을 마음에 품고 있다고 달콤하게 속삭였다. 그러나 심서준과 비교하고 나니 그 차이가 선명하게 보였다. 심서준은 계연수를 아끼는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 주었지만, 심태숙은 듣기 좋은 애정 표현만 늘어놓았을 뿐이었다.이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한 사내가 여인을 진정으로 아끼는지는 그가 얼마나 달콤한 말을 하는가가 아니라, 그녀를 위해 무엇을 해 주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을.심태숙은 지금까지 백씨를 위해 무엇 하나 해 준 적이 없었다. 심씨 노부인 앞에서 부인을 감싸며 제 뜻을 강하게 내세운 적도 단 한 번 없었다.가슴 깊은 곳에 씁쓸한 감정이 차올랐지만, 백씨는 얼굴에 억지로 미소를 띠고 대답했다.“동서는 귀한 몸이고, 도련님께서 동서를 아끼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제가 어찌 어머님께서 편애하신다고 말씀드리겠습니까. 저 역시 동서가 몸조리를 잘하여 건강해지기만을 바랍니다.”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심씨 노부인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계연
말을 마친 심서준은 고개를 숙여 계연수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느리고도 깊게 이어지는 입맞춤에 계연수는 어느새 정신이 아득해졌다. 달뜬 숨을 고르며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언제 옮겨졌는지도 모르게 침상 위에 누워 심서준의 몸 아래 갇힌 뒤였다.그때 눈앞에서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다.계연수는 괴로운 듯 욕망을 참아 내는 심서준의 얼굴과 이마에 맺힌 가느다란 땀방울을 보고서야 상황을 알아차렸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지 못한 그녀는 결국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심서준은 눈이 휘도록 웃는 계연수를 잠시 말없이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녀의 뺨을 가볍게 꼬집고는 양팔로 몸을 받쳐 천천히 일어났다.“먼저 자고 있거라. 나는 옷을 갈아입고 목욕을 하고 오겠다.”계연수는 서둘러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불 속으로 얼굴을 파묻고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잠시 후 돌아온 심서준은 몸을 깨끗이 씻어 한결 산뜻한 모습이었다. 그는 곁눈으로 계연수를 바라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조금 전 그녀가 무엇 때문에 웃었는지 모를 리 없었다.심서준은 계연수를 품으로 끌어당겨 옆으로 안고 물었다.“그렇게 재미있었느냐?”계연수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그렇게까지 재미있었던 건 아니에요.”심서준은 눈을 감은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어머니께는 이미 말씀드렸다. 아이를 가진 동안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문안을 드리지 않아도 된다.”계연수가 놀라 물었다.“어머님께서 허락하셨어요?”심서준이 짧게 대답했다.“그래.”“그리 쉽게 허락하실 분은 아니잖아요?”심서준은 다시 눈을 뜨고 계연수를 바라보았다.“어머니께서 때로 예법을 지나치게 중히 여기시기는 하지만, 네 배 속에 있는 아이만큼은 몹시 기다리고 계신다. 내가 말씀드렸을 때도 별다른 반대는 하지 않으셨다.”계연수는 심씨 노부인이 그토록 선뜻 허락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곰곰이 생각해 보니 심씨 노부인은 다른 집안의 모진 시어머니들보다는 훨씬 나은 사람이었다.*이튿날 계연수가 아침 식사를 막 마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