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다희의 결혼 소식은 결국 윤소현까지 알게 되었다. 그녀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차피 그냥 비서 결혼하는 거잖아. 뭐가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윤소현은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때 방 안에서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고 아무리 달래도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소란스러움에 짜증이 난 윤소현이 날카롭게 소리쳤다.“대체 뭐 하는 거야? 애 하나도 제대로 못 보면서 무슨 보모야? 당장 데리고 나가! 시끄러워 죽겠으니까.”보모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이가 우는데 안쓰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귀찮다는 듯 밖으로 내보내라고 하다니. 역시 세상 모든 부모가 다 자식을 사랑하는 건 아니었다.마침 지나가던 정수미가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이를 보고는 아이를 안아 들었다.“무슨 일이야?”“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 아이는 유난히 잘 우네요.” 보모가 답하자 정수미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아기들이야 울기 마련이지만 이유 없이 우는 건 아닐 텐데.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닐까? 의사부터 불러봐.”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윤소현이 급히 나왔다.“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애들은 원래 우는 게 정상이에요. 배가 고픈 걸 수도 있잖아요.”그러고는 보모를 향해 지시했다.“이런 사소한 일로 엄마까지 신경 쓰이게 하지 마. 얼른 데려가서 배불리 먹이도록 해.”“네.”보모는 아이를 안고 한숨을 쉬며 방을 나섰다.정수미는 그런 윤소현의 모습을 보며 결국 조심스럽게 타일렀다.“소현아, 그래도 네 친딸인데 좀 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겠니?”윤소현은 태연하게 받아쳤다.“제가 신경 안 쓴다고 생각하세요?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애들은 다 그런 거예요. 크면 괜찮아질 거니까요.”윤소현의 머릿속에는 다혜의 안위 따위 전혀 없었다. 오로지 정수미가 작성한 유언장만이 그녀의 관심사였다.정수미가 무언가 더 말하려 하자 윤소현이 재빨리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엄마, 다혜가 엄마의 친손녀는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차별하지는 말아 주세요. 다혜가 태어났을 때부터 남
“다혜가 위험해요. 지금 의식을 잃었어요. 언제쯤 시간이 돼요?”윤소현의 목소리는 눈물에 젖어 떨리고 있었지만 유남우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다.“내 딸도 아닌데 나랑 무슨 상관이야?”그 말을 듣는 순간, 윤소현의 가슴에 날카로운 바늘이 찔린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하지만 당신이 원해서 낳은 아이잖아요.”윤소현은 다혜가 태어나면 유남우가 자신에게 조금은 더 잘해 줄 거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다혜는 그저 유남우가 자신에게 복수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 복수의 이유는 바로 과거 윤소현이 유남우에게 약을 먹인 일이었다.“말이 많네. 차라리 그 시간에 애부터 치료하는 게 낫겠어.”유남우는 무심하게 전화를 끊었다.그의 곁에는 홍주영이 서 있었다. 비록 통화 내용 전체를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유남우의 말만으로도 그녀는 가슴이 서늘해졌다.“도련님, 다혜가 아픈 건가요?”그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는데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다니.유남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응.”“별일은 아니겠죠? 병문안이라도 가야 할까요?”홍주영도 다혜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아이는 사랑스러웠고 늘 해맑았다.하지만 유남우는 단호하게 답했다.“홍 비서, 그 애는 내 친딸이 아니야. 앞으로 신경 쓸 필요 없어.”그 말을 듣는 순간, 홍주영은 속으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유남우는 다시 화제를 돌렸다.“그보다, 하민재가 최근에 널 찾아오진 않았어?”홍주영은 순간 머뭇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아니요.”사실 하민재는 몇 번이나 그녀를 찾아왔었지만 홍주영은 매번 그를 문전박대했다.“만약 또 찾아와서 너를 괴롭히면 반드시 나한테 말해.”유남우는 단호하게 말했다.“네.”“됐어, 이제 나가봐.”“네.”홍주영이 방을 나와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마침 하민재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주영 씨, 처음에 주영 씨를 찾았던 건 유남우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달라요.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줘요.
홍주영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오랜만이네요. 다들 여긴 어쩐 일이세요?”“근처 구경 좀 하려고요.” 진서연이 답했다.가벼운 인사를 나눈 뒤, 일행은 곧 흩어졌다. 그러다 민수아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저 사람이 유남우의 비서예요?”“네.” 진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되게 매력 있네요.” 민수아가 감탄하듯 말했다.홍주영은 첫눈에 사람을 사로잡는 미인은 아니었지만 직장 여성 특유의 세련된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 점이 오히려 남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일행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던 순간, 갑자기 뒤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박민정과 친구들이 돌아보자 그곳엔 홍주영과 그녀를 가로막고 있는 하민재가 있었다.홍주영은 가던 길을 가려 했지만 하민재가 길을 막아서며 단호하게 말했다.“주영 씨,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줘요. 네?”그는 주변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홍주영은 눈살을 찌푸렸다.“미안하지만 우리 더 이상 할 말 없어요.”그녀는 관계를 질질 끄는 걸 싫어했다. 한 번 인연이 아니라 판단하면 미련 없이 선을 긋는 사람이었다.그녀는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하민재는 그녀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으며 애타게 말했다.“잠깐만요, 가지 마요.”“손 놔요!”홍주영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그 광경을 지켜보던 진서연 일행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대낮부터 이게 뭐야?”진서연은 소매를 걷어붙였다.“여자가 싫다는데도 안 놓는다고?”그러고는 박민정을 돌아보며 그녀의 의견을 물었다.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이자 진서연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곧장 그들 쪽으로 향했다.주변엔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구경하고 있었고 박민정도 걱정이 되어 민수아와 함께 따라갔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 들었잖아요, 손 놓으라고.”진서연은 두 사람 앞에 서서 단호하게 말했다. 그제야 하민재가 그녀를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누구죠?”“홍 비서의 친구예요.”진서연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이
하민재는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네 명의 여자의 시선과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하는 시선에 일단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됐어요.”그는 떠나기 전에 진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방금 놀라게 해서 죄송해요.”그가 자리를 뜨자 주변의 구경꾼들도 하나둘씩 흩어졌다.홍주영은 감격의 눈빛으로 그녀들을 바라보며 고마움을 표시했다.“고마워요.”“아니에요. 같은 여자끼리 서로 도와야죠.”진서연이 웃으며 말했다.“맞아요.”홍주영이 이만 떠나려고 할 때 박민정이 그녀를 다시 불러세웠다.“같이 돌아다닐래요?”박민정은 하민재가 다시 나타날까 봐 걱정됐다. 홍주영은 박민정의 말에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그녀들은 같이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음식을 먹으면서 구경했다.박민정 말대로 하민재는 정말 떠나지 않았고 멀리서 홍주영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민재의 부하들도 이 상황이 살짝 어이없었다.“형님, 이렇게 한 여자를 몰래 감시하는 게 좀 아닌 것 같아요.”부하는 그들이 살짝 변태 같다고 생각해서 말을 꺼내자 하민재가 차에 올라타면서 반박했다.“네가 뭘 알아? 남자는 얼굴이 두꺼워야 해.”그의 뻔뻔스러운 말에 부하는 할 말을 잃었다.“왜 같이 돌아다니는 거지?”하민재는 그녀들을 바라보며 골치가 아팠고 여자들은 쇼핑하면 정말 끝이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박민정이 홍주영을 회사까지 데려다주자 그는 더 이상 어찌할 방법이 없어서 그저 돌아가기로 했다.한편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받은 유다혜는 건강 상태가 매우 나빴고 유전적 질환이 있는 것으로 나왔는데 아마도 아이의 아버지로부터 유전된 것일 수 있었다.“어떻게 이런 일이...”정수미는 믿을 수 없었고 윤소현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그녀는 그 남자들한테 그런 병이 있고 자신의 딸한테까지 유전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이 아이는 태어나지 말아야 했어요. 진작에 알았더라면 절대 낳지 않았을 거예요.”정수미는 독한 말을 내뱉는 윤소현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위로했다.“지금은 이런 얘기를 할 때가
이때 박민정도 진서연과 민수아와 같이 저택으로 돌아왔고 마침 가만히 서 있는 정수미를 보게 되었다.진서연은 의혹스러운 듯 물었다.“왜 또 왔을까요?”“민정이 보러 왔을 거야.”박민정은 그 말을 듣고 두 사람을 먼저 들어가게 하고 홀로 정수미를 향해 걸어갔다. 정수미는 멍하니 서서 박민정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정 대표님.”박민정이 소리를 내자 정수미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민정아.”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무슨 일로 오셨어요?”정수미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별로 없고 그냥... 그냥 와본 거야.”그 말을 듣고 박민정이 막 떠나려는데 정수미가 그녀를 불러세웠다.“민정아, 나랑 같이 걸으면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그녀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고 박민정은 애원하는 듯한 그녀의 눈빛을 보고 거절하기가 어려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정수미는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다.그녀는 조심스럽게 박민정에게 다가가 나란히 걸으며 마치 평범한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에게 안부 묻듯 입을 열었다.“오늘 어디 갔었어?”“그냥 밖에 나가서 여기저기 돌아다녔어요. 친구가 내일 결혼하거든요.”박민정이 답했다.“그랬구나.”정수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그럼 나도 내일 참석해도 될까?”그녀는 엄마로서 박민정의 친구들을 당연히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박민정은 약간 당황한 듯했다.“그게...”“곤란하면 됐어. 괜찮아.”정수미는 서둘러 말하며 박민정이 자신을 더 꺼릴까 봐 걱정됐는데 박민정은 그녀의 말을 듣고 오히려 미안함을 느꼈다.“친구 결혼식이라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박민정이 특별히 그녀에게 설명하자 정수미는 마음 깊이 감동을 받았다.“그래. 알겠어. 네 친구니까 내일 따로 축의금을 보내줄게.”기대감으로 가득 찬 그녀의 얼굴을 보고 박민정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정수미는 묵묵히 이 일을 마음속에 새겼다.얘기를 나
“다행이에요.” 박민정이 대답했다.정수미는 그녀의 오른쪽 뺨에 난 흉터를 바라보며 목구멍이 마치 바늘에 찔린 듯 아팠다.“난 이만 갈게.”“네.” 박민정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고 정수미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더욱 아파졌다.그녀는 감정을 억누른 채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택시에 올라탄 후 그녀는 박민정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뒤를 돌아보다가 핸드폰을 들어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결혼 축의금을 준비해 줘.”비서는 약간 의아했다.“고객 가족 중 최근에 결혼하는 분이 없는데요.”“민정이의 친구가 결혼한대. 반드시 가장 중요한 고객 기준에 맞춰 준비해 줘.” 정수미가 말했다.“알겠어요.”비서는 대답한 후 즉시 준비하러 갔다.비서는 박민정한테 정 대표님 같은 친엄마가 있다는 게 부러웠고 두 사람이 오랜 시간 동안 떨어져 지낸 게 안타까웠지만 만약 박민정이 버림받지 않고 입양되지 않았다면 분명 정 대표님은 박민정을 굉장히 귀하게 키웠을 거였다....박씨 가문 옛 저택.박민정은 돌아온 후 민수아와 함께 결혼 준비를 하러 갔다.민수아의 고향은 이곳이 아니어서 원래는 호텔에서 신부맞이를 하려고 했지만 박민정은 박씨 가문 옛 저택이 충분히 크고 호텔보다 낫다고 생각해서 옛 저택에서 하기로 했다.서다희가 고용한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도 모두 도와주러 왔다.“민정아, 나 너무 긴장돼.” 민수아가 침대에 앉아 박민정의 손을 잡으며 말하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괜찮아. 내일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푹 쉬고 내일 가장 아름다운 신부가 돼야지.”그 말을 마치자 그녀의 머리가 은은하게 아파지기 시작했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서 벽에 기대어 있는데 갑자기 결혼 전날이 떠올랐다.박형식도 자신한테 가장 아름다운 신부라고 똑같이 위로해 줬었다.박민정의 눈앞에 다시 피비린내 나는 장면들이 떠올랐는데 박형식이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병상에 누워서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장면이었다.“민정아
박민정은 좀 내키지 않았다.“나 이미 수아랑 약속했어요.”“내가 민수아에게 전화할게. 이해해 줄 거야.” 유남준이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려고 하자 약속을 어기고 싶지 않은 박민정은 곧바로 그의 휴대폰을 빼앗으려 했다. “하지 마요. 전화하지 마요.”유남준은 그녀보다 한 뼘이나 더 컸기 때문에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박민정은 도저히 그의 핸드폰을 빼앗을 수 없었다.그녀는 발끝을 들어 올린 채 두 손을 들어 빼앗으려고 애를 썼다.막 도착한 김인우는 그 광경을 보고 참지 못하고 기침을 두 번 했다.그제야 박민정은 자신이 거의 유남준에게 안길 뻔했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이 붉어진 채급히 몇 걸음 뒤로했다.김인우는 아무것도 못 본 척하며 걸어왔다. “형, 다른 일 없으면 나 먼저 갈게. 안심해. 형수님 정말 괜찮아. 가끔 두통이 있는 건 정상적인 현상이야.”박민정은 그 말을 듣고 따라 말했다.“인우 씨가 괜찮다고 하잖아요. 날 돌아가게 해줘요. 수아에게 전화하지 말고요.”김인우도 내일이 서다희와 민수아의 결혼식인 것을 알고 있었고 그도 이미 축의금을 준비해 결혼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다.“결혼식에 참석하는 건 아무 문제 없을 거야.” 그가 박민정을 도와 말하자 그녀는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김인우는 박민정으로부터 이런 눈빛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예전에 그는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렀어서 박민정이 그에게 고마움은커녕 좋은 감정조차 없었다.유남준은 박민정이 계속 고집을 부리고 김인우 또한 그렇게까지 말하니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손을 내렸다.그의 손이 막 떨어지자 박민정은 즉시 그의 핸드폰을 빼앗아 손에 꽉 쥐었다.다른 여자가 유남준의 핸드폰을 건드리려 했다면 그는 정색하고 화를 냈을 거였지만 박민정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애틋함으로 가득했다.“알았어. 전화하지 않을게.”“고마워요.”박민정은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나서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이 결혼식에 참석하는 데 왜 유남준의 동의가 필요한 거지? 그리고 내가 왜
아침 7시, 서다희는 신랑 들러리들과 함께 도착했는데 오늘 이 자리에 많은 진주시 유명 인사들이 참석해 그의 체면이 서는 듯했다.결혼식에 참석하러 온 사람들은 박씨 가문 옛 저택을 보며 감탄했다.“서 비서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일반 부자들의 결혼식보다 더 좋아 보이는데요.”“유남준 씨의 오른팔이잖아요. 일반 부자는 비교도 안 돼요.”그들은 옛 저택을 둘러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한편 박민정과 진서연은 신부방 문을 막고 있었는데 그녀들은 신랑 들러리들에게 온갖 장애물을 설계했고 분위기는 매우 뜨거웠다.방 안에 앉아 있는 민수아는 매우 긴장됐지만 그녀들에게 잊지 않고 당부했다. “너무 심하게 하지 말고 다희한테 술 먹이지 마. 걔 술을 잘 못 마셔.”“알겠어요. 아직 시집도 안 갔는데 벌써 서다희편에 서고 친구보다 남편이 더 중요한가 봐요.” 진서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에 있던 민수아 아버지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지금은 고생 좀 시켜야 해. 너무 쉽게 내 귀한 딸을 데려가면 소중히 여기지 않을 거야.”민수아 어머니가 그의 손을 때리며 말했다.“당신이 날 데려갈 때는 왜 몰래 친척들에게 봐달라고 했어요?”전형적인 사랑꾼인 민수아 아버지는 아내의 말을 듣고 말문이 막혔다.민수아 어머니는 서다희가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딸은 모든 면에서 평범했지만 서다희는 달랐고 그녀는 십억대 연봉을 받는 서다희가 회사 대표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그런 민수아의 부모님을 바라보며 갑자기 자신이 결혼했을 때 박형식과 한수민이 대화했던 장면이 떠올랐다.그 당시 박형식은 그녀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말했다.“결혼 후 억울한 일이 있으면 꼭 아빠한테 말해. 아빠는 영원히 네 편이야.”그의 말을 듣고 한수민이 입을 열었다.“시골에서는 딸을 시집보낼 때 지참금도 없는데 당신은 딸을 시집보내면서 오히려 돈을 더 얹어주다니, 정말 처음 보는 상황이에요.”박형식이 비꼬며 말했다.“지금은 옛날과 달라. 우리는 딸을 시집보내는 거지, 딸을
“엄마, 아빠랑 이혼 잘하셨어요.”유남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유남준 앞을 지나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내가 능력이 없어서 이번에도 졌네.”유남준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째려봤다.유남우는 사실 그가 어떻게 반격할지 걱정되기보다 이번에도 졌다는 게 더 분통했다.밖으로 나온 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라도 걸고 싶었지만 딱히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연락처를 훑어보다가 홍주영에서 멈칫하더니 결국에는 통화버튼을 누르지도 못한 채 핸드폰을 다시 꺼야 했다.실내 안.거실은 유난히 조용했고 유지욱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남우가 왜 저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 예전에는 말도 잘 듣고 착한 아이였는데.”고영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그가 말하는 ‘예전’이 정확하게 언제인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고영란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모습에 유지욱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아니에요.”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말을 이었다.“이번 달은 될수록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요. 그리고 이혼 숙려기간이 끝나는 대로 다시 가서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아요.”고영란은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이혼하고 싶은데 지금 이혼하려면 한 달씩이나 기다려야 했다.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이 한 달 동안에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이 뭔지 좀 생각해 보고요.”말을 마친 뒤 유지욱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한편.박씨 가문의 옛 저택.박민정은 유남준이 너무 걱정되어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왔다.비록 서다희가 괜찮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이때, 밖에서 들리는 차 소리에 박민정이 다급히 차창 밖을 내다보니 유남준의 차도 마침 도착해 있었다.박민정은 빠르게 차에서 내린 뒤 유남준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괜찮아요?”그러자 유남준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당연하지, 다희가 나 괜찮을 거라고 알려줬잖아.”박민정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
유석진의 입에서 갑자기 자기 둘째 아들의 이름이 거론되자 고영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또한 왜 두 아들 사이에 지금 저런 모순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유남준도 괜히 고영란이 중간에서 난처하게 된 것 같아 일부러 유남우를 빤히 바라보며 유석진에게 말했다.“이번 일은 사과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에요. 큰아빠가 아무리 남우랑 같이 벌인 일이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가만있지 않겠습니다.”별로 무겁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 위협감이 느껴졌다.순간 유석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이때, 그의 며느리인 최현아가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끼어들었다.“남준 씨, 그래도 한 가족인데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그러자 유성혁도 한마디 거들었다.“남준아, 우리도 잘못했단 걸 알고 있어. 아버지가 이제 연세도 많아서 상황판단이 안 될 때가 많아.”유석진도 사실 지금 자존심을 부려서 될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지금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말해주면 내가 다 들어줄게.”사실 유남준은 이 말만을 기다렸다.“금방 인수한 시내 중심에 있는 그 건물을 저한테 넘겨주세요.”그 땅은 유명훈의 땅이고 죽기 전 유석진에게 물려준 유산인데 지금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올랐다.유석진이 이 땅의 주인이 됨으로써 그곳의 상권을 손에 쥔 거나 다름없었는데 나중에 아무 건축물을 세워 올려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건 안되지!”역시나 유석진이 단번에 거절했다.그가 오랫동안 눈독 들였던 땅이었는데 유명훈이 죽어도 물려주지 않으려 해서 여태껏 애를 먹고 있었다가 이제 겨우 손에 들어온 땅이고 또 자기만의 계획이 따로 있었다.“그러면 조만간 IM 그룹의 변호사를 만나셔야겠네요.”유남준은 더 이상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고 유석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안 도우미에게 외쳤다.“모셔다드려!”그렇게 도우미들은 그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고 거실에는 유남준 가족들만이 남게 되었다.유지욱과 고영란은 눈앞의 두 아들에게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유남준이 잡혀갔다는 소식에 유석진 가족들은 조용히 자축하고 있었다.최현아도 너무 기뻐했지만 유독 유성혁만 우울한 얼굴로 그들에게 물었다.“아빠, 그래도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꼭 이래야 할까요? 남준이가 잡혀가도 우리한테 아무런 이득도 없잖아요. 그리고 만약 다시 풀려나서 우리가 한 짓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요.”그러자 유석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답했다.“왜 쓸데없는 일을 벌써 걱정하고 그래? 간이 그리도 콩알만 해서 큰일 하겠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유성혁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다만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유지훈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저는 할아버지가 한 행동이 맞다고 봐요. 사람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러자 유석진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껄껄거리며 웃었다.“하하, 역시 우리 손자가 똑똑하다니까. 네 말이 맞아. 사람은 무조건 자기가 일 순위여야 해. 절대 네 바보 같은 아빠를 닮아서는 안 된다.”그러자 유지훈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 저도 알고 있어요.”그리고 유석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그들은 너무 일찍 기뻐했던 게 오후가 되자마자 유남준은 바로 풀려났다.그길로 옛 저택으로 오게 되었고 동시에 유석진네 식구들과 유남우를 전부 집으로 불러 모았다.이 시각, 유지욱도 마침 그곳에 있다가 눈앞의 상황에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남준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아빠, 제가 지금부터 저 사람들의 실체에 대해 다 밝히려고요.”그리고 서다희가 한 무더기의 자료와 증명서를 건네주자마자 그는 유석진네 식구들에게 뿌려줬다.종이들이 공중에서 흩날리다가 전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유석진은 그중 한 장을 주워 읽어보고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말했다.“남준아, 다 오해야. 우리가 왜 그런 짓을 하겠니?”그러자 유남준이 눈살을 찌푸리고 그에게 되물었다.“우리 회사에 심어둔 사람들을 제가 다 데려올까
유남준은 사실 진작에 유남우와 유석진 쪽에 사람들을 붙여서 그들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하고 있었지만 도대체 무얼 하려는지 궁금해서 일단 내버려두고 있었다.이튿날, IM 그룹으로 세무국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러자 서다희가 눈살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대표님을 감옥에 보내려고 아주 별짓을 다 하네요. 이런다고 그 사람들한테 득이 되는 게 뭔지 정말 모르겠어요.”특히 유남우는 왜 자기 친형을 왜 이렇게까지 괴롭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조사해 보니 역시나 회사 장부에 문제가 있었고 회사 자금을 불법으로 돌렸다는 증거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그러나 이 모든 게 다 그들이 일부러 만들어낸 가짜 장부들이었다.그렇다고 해도 유남준은 회사 법인으로서 조사를 받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연행되었다.가면서도 서다희에게 당부했다.“민정이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서다희는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뉴스에서 하루 종일 보도될 예정이라 아마 얼마 안 돼서 알게 될 것이다.역시나 박민정은 출근길에 그에 관한 뉴스 기사를 보게 되었다.“어떻게 이럴 수가?”이때, 고영란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민정아, 남준이한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그러나 박민정도 아직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저도 방금 기사를 봐서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 당장 다희 씨한테 전화해 볼 테니까 어머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그래.”고영란은 착잡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유지욱과 이혼하겠다고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들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서다희는 빠르게 박민정에게 전화해서 유남준이 시킨 대로 알려줬고 모든 일은 다 대비되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박민정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이때 서다희가 한마디 더 했다.“그런데 이 일은 절대 고영란 사모님한테 말하지 말아 주세요.”“알겠어요.”어쩌면 유남우 귀에도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이니까 더 이혼하자는 거예요. 굳이 남은 인생을 당신한테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고영란은 말을 마치자마자 안방에 들어갔다.그러나 유지욱은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그러다가 문득 여태껏 이혼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심술부리는 원인이 분명 아버지 재산 때문인 것 같았고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이튿날.유명훈의 장례식은 계속 진행되었고 박민정의 친구들도 모두 오게 되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손연서의 말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씩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는데 장례식의 침울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최현아는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한쪽에서 사람들과 유명훈의 유언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욱과 고영란 두 사람 사이는 여전히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그렇게 유명훈의 장례는 총 3일 동안 진행 후 끝났다.고영란은 담담한 얼굴로 박민정과 유남준, 그리고 유남우에게 말했다.“나랑 네 아버지는 이만 갈라서려고 해.” 순간 모든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옆에 서 있던 유지욱의 안색도 좋지 못했다.그는 원래 유명훈의 장례가 끝나면 계속해서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었는데 뜬금없이 고영란한테서 이혼 통보를 받게 되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일시적으로 심술부리는 거라 생각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지금 애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해, 진짜 이혼하려고?”“네.”고영란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이고 지금처럼 사는 게 저는 너무 괴로워요. 지금 당장 법원에 갑시다.”고영란은 지금 그들의 의견을 구하려는 게 아니다.유지욱도 자존심이 꽤 센 사람이라 단번에 그러자고 하더니 두 사람은 법원으로 출발했고 두 아들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자식들도 이미 다 컸고 자기 혼인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유남준과 같이 돌아가는 차 안
고영란도 유석진의 고함에 깜짝 놀라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리고 여태껏 모든 집안일을 아내한테 떠넘긴 채, 홀로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유지욱이 원망스럽기만 했다.한 사람에 대한 단념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이런 실망감이 천천히 쌓이면서 식어가는 것이다.보아하니 오늘 저녁에도 잠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유지욱이 도착해보니 유씨 가문의 모든 친척이 다 모여있었다.그리고 이미 상복으로 갈아입은 고영란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왜 진작에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그의 물음에 고영란은 실망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제가 말해주지 않았다고요? 한 달 전에 전 분명히 아버님 건강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으니까 와서 회사 일 좀 도와드리라고 귀띔해 줬어요.”“난 네가 우리 아버지 재산 때문에 나더러 오라는 줄 알았지.”유지욱의 말에 고영란은 큰 충격을 받고 잠깐 멍해졌다가 다시 두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유지욱 씨, 정말 어이없네요. 맞아요, 제가 빨리 돌아오라고 했던 원인이 아버님의 재산이 조금이라도 공평하게 지욱 씨한테도 나눠줬으면 했어요. 그런데 그 재산이 전부 아주버님한테 넘어갔네요?” 그러나 유지욱은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이었다.“그깟 돈 몇 푼 가지고 왜 그래? 우리가 모두 한 식구인데 주면 줬지.”유지욱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님들을 맞이하러 떠났다.그리고 유석진과도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에 고영란은 제대로 마음이 상했다.박민정도 손자며느리로서 유남준과 같이 손님들을 맞이하다가 우연히 시부모님이 서로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녀는 사실 유씨 가문에 시집온 이후로 시아버지인 유지욱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유지욱은 젊었을 때부터 고집불통에 집안 사업에도 관심이 없었고 그저 매일 여행이나 다니면서 자유롭게 사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고 했다.하여 유지욱과 고영란은 1년 중에도 만날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박민정은 유남준에게 살짝 다가가 그에게 말했다.“남준 씨, 가서 어머님 좀 위로해 주세요.”여자
유남준의 아버지, 유지욱은 계속 외국에서 살다보니 이 자리에 없었다.그러자 고영란이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지욱 씨는 지금 당장 오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방금 비행기 탔다고 했으니 적어도 두 시간은 걸릴 거예요.”그러자 유석진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그러면 지욱이가 도착하고 나서 다시 말할 테니까 외부인은 참견하지 말아요.”순간 고영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 집에 들어와서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줬는데도 제가 아직 외부인인가요? 저는 오늘 아버님께서는 왜 그리도 자식들을 편애하시지 꼭 물어봐야겠어요!”“제 아들들이 능력이 뛰어나면 이런 불공평한 대우도 다 받아들여야 하나요?”여태껏 유명훈은 많은 주식을 갖고 있었다.비록 유남준이 현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유명훈의 지분이 그대로 유석진네로 넘어가게 되면 유남준의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더구나 유남우도 그의 재산이 필요한데 말이다!게다가 유명훈은 오랜 세월 동안 주식 말고도 분명 많은 재산을 모았을 텐데 그 돈마저 전부 저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모습을 고영란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유석진은 유명훈의 앞을 가로막으며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여태껏 지욱이를 잘 붙잡아 두지 못한 제수 씨를 탓해야죠! 지욱이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소용없어요!” 고영란이 뭐라고 대꾸하려는데 유남준이 그녀를 말렸다.“엄마, 그만해요.”여태껏 유명훈이 유석진네만 편애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던 그이기에 지금 아무리 그와 말싸움해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유남우도 불쾌했지만 애써 덤덤한 척 그녀에게 말했다.“엄마, 형 말이 맞아요. 할아버지께서 결정하신 대로 받아들이면 되니까 싸울 필요 없어요.”이 시각, 침대에 누워있던 유명훈은 호흡이 점점 더 가빠져 헐떡거리기 시작했다.그런데도 눈앞에서 자식들이 자기 재산 때문에 싸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씁쓸하기만 했다.“지욱이...”그는 힘겹게 유지욱을 불렀다.유지욱은 평소에도 그의 말을
최현아는 손까지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지만 박민정은 그저 냉담한 얼굴로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세요?”그러자 그녀는 뻘쭘해진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일은 무슨, 윤소현이 드디어 판결받았다고 해서 축하해주려고 왔지.”박민정은 분명 다른 속셈이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최현아와 그의 시아버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고 있었는데 왠지 그럴수록 더 수상했다.“감사합니다. 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일 하러 갈게요.”말을 마치자마자 박민정이 뒤돌아서니 역시나 최현아가 빠르게 그녀의 팔을 부여잡았다.“민정아,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까지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박민정은 이제 와서 한 식구라는 그녀의 말이 그저 가소로웠다.“도대체 할 말이 뭔가요?”그리고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최근에 할아버지 건강이 점점 악화하면서 동서랑 남준 씨가 그립기도 하고 우리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도 보고 싶은가 봐. 혹시 오늘 밤 할아버지 뵈러 같이 가지 않을래?”최현아는 최대한 상냥하게 물었다.사실 박민정도 할아버지의 건강이 여태껏 좋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오늘 두 사람을 부른 이유도 아마 자신이 얼마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네, 알겠어요.” 최현아는 그제야 박민정의 팔을 놓아줬지만 그녀가 떠나가자마자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그리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한껏 불쾌한 얼굴로 중얼거렸다.“재수 없는 것, 운발로 지금 자리에 올라앉은 주제에.” 차에는 낯선 남자 한 명이 더 있었다.“박민정한테 화낼 필요 없어.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조건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할아버지의 주식이랑 모든 돈을 너한테 넘길 수 있도록 잘 구슬리는 거야.”그러자 최현아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나도 알아, 저번에 이미 할아버지랑 말해봤다니까? 유남준 씨랑 민정이는 괜히 고고한 척하면서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말한 상황이라 우리 쪽에 전부 몰리게 되어있긴 한데, 난 지금 성혁 씨 얼굴만 봐도 짜
조하랑은 그제야 화가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그러면 왜 저 여자한테 찾아갔어요?”“당연히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러 갔죠. 그리고 이지원에 대해 정신감정도 의뢰했거든요. 만약 진짜로 정신에 이상이 있는 거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이 모든 게 다 쇼하는 거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으려고 했어요.”김인우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다가 조하랑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예전에 제가 지원이한테 어떻게 가스라이팅 당했는지 하랑 씨도 잘 알잖아요. 만약 저를 구해줬던 사람이 형수님이었단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절대 그 애를 도와주지도 않았을 겁니다.”“지금은 그저 마땅히 받아야 할 벌만 받았으면 좋겠고요.”조하랑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제가 오해했네요. 정말 미안해요. 저는 인우 씨가 또 그새를 못 참고 다른 여자한테 찝쩍거린다고만 생각했어요.”그녀의 말에 김인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못 참고 되물었다.“하랑 씨, 혹시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순간 조하랑의 얼굴이 새빨개졌다.“누, 누가 질투한다는 거예요? 그저 저를 배신한 인우 씨한테 화나고 그런 사람을 좋아했던 나한테 실망했을 뿐이라고요!”“알겠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고 의사도 임산부가 흥분하면 아이한테 안 좋다고 말했잖아요.”말을 마치자마자 김인우는 다정하게 조하랑을 품에 안았는데 순간 그녀는 얼굴이 더욱 빨개진 채 온몸이 굳어버렸다.당연히 김인우도 눈치채고는 빠르게 물었다.“왜요, 부끄러워요?”“그, 그럴 리가요...”조하랑은 말까지 더듬으며 애써 덤덤한 척했다.“저도 안을 줄 알거든요?”그리고 똑같이 김인우를 꼭 안아줬는데 이번에는 김인우가 속으로 움찔했다.추운 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꼭 껴안아 줬는데 거리를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 그들에게 멈춰졌다 가곤 했다.조하랑도 어느새 그걸 느꼈는지 재빨리 김인우를 밀쳐냈다.“됐어요. 이제 병실로 돌아가 봐야 하니까 인우 씨도 그만 돌아가요.”“저랑 같이 안 가고요?”김인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