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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Author: 해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9 00:35:43

"현아, 엄마가 바라는 건 하나야. 너까지 아프지 않는 거."

강현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평소처럼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그렇게 약한 사람은 아니잖아요."

병실을 나서기 전 그는 어머니의 이불을 다시 덮어 주고, 물컵을 손 닿는 곳에 놓은 뒤 저녁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문을 닫고 복도로 나오자 다리에 힘이 풀리는 듯했고, 벽에 등을 기댄 채 한동안 눈을 감아야 했다.

사랑했던 여자는 자신과의 삼 년을 오해라고 했고, 준혁은 그를 병원에서 쫓아내려 하고 있었다. 어머니 앞에서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당장 오늘 안에 치료비를 마련할 방법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서명만 하면 수당 처리해 줄게. 어머님 병원비 급하다며?]

오준혁이었다.

강현은 메시지를 끝까지 읽은 뒤 화면을 껐다. 준혁은 자신이 어느 부분을 누르면 결국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이 공개적인 모욕보다 더 끔찍하게 느껴졌다.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으려던 순간 손목 안쪽에서 작은 통증이 일었다.

아버지가 남긴 낡은 손목시계였다.

가죽줄에는 오래된 금이 가 있었고 시계판 유리에는 작은 흠집이 남아 있었는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부터 초침이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강현은 한 번도 수리를 맡기지 않았다. 연구실에서 밤을 새우던 아버지가 늘 차고 있던 물건이었고, 연구 노트와 함께 그가 끝까지 간직해 온 유품이기도 했다.

강현은 무심코 시계를 들어 올렸다.

딸깍.

멈춰 있던 초침이 한 칸 움직였다.

그는 숨을 멈춘 채 시계판을 바라보았지만, 다시 들여다본 초침은 원래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오래된 유리 표면에는 복도의 형광등만 희미하게 비쳤고, 방금 느꼈던 열기마저 손목 안쪽에 남은 착각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남긴 시계가 왜 하필 오늘 움직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복도 끝에서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VIP 병동 응급 호출입니다!"

***

백태산이 쓰러졌다는 소식이 병동을 가로질렀다.

백린그룹 명예회장이자 병원 이사장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인물이었기에, 복도에는 의료진과 수행원들이 뒤섞여 움직이고 있었다. 강현은 원래 그 병동을 지나갈 생각이 없었지만, 계단 쪽으로 향하던 중 의료 장비를 밀고 달려가는 직원들과 마주쳤고 열린 병실 문 사이로 침대에 누운 노인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시야 한가운데 붉은 숫자가 나타났다.

06:59.

처음에는 병실 모니터에 표시된 숫자인 줄 알았다. 그러나 눈을 깜빡이고 시선을 옮겨도 숫자는 백태산의 가슴 위에 떠 있었으며, 의료진이 침대 주변을 오가며 몸을 가려도 붉은 빛은 사람의 어깨 너머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06:58.

강현은 자신도 모르게 벽에 손을 짚었다.

밤샘 근무에 제대로 먹지도 못했으니 헛것을 보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차가운 타일의 감촉이 손바닥에 또렷하게 느껴지는 동안에도 숫자는 계속 줄어들었고, 그때마다 손목시계 아래의 피부가 바늘에 찔리는 듯 따끔거렸다.

병실 안에서는 모니터의 경고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혈압 더 떨어집니다!"

간호사의 외침과 함께 의료진의 움직임이 빨라지자 강현의 심장도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붉은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노인의 상태가 악화될수록 숫자가 줄어드는 속도가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때 간호사 한 명이 약물 투여 기록지를 들고 병실로 들어가려 했다.

강현의 시선이 무심코 종이 위를 스쳤다가 최근 변경된 약물의 이름에서 멈췄다. 아버지 서명진의 연구 노트에서 여러 번 보았던 성분이었고, 특정 약물과 함께 사용될 경우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고까지 기억났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의료 면허가 없는 자신이 환자의 상태를 진단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의 노트를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전문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고, 더구나 이곳은 허가받은 사람만 드나들 수 있는 VIP 병동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숫자는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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