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채원은 더 묻지 않았다.
병실 안에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곧바로 돌아갔고, 강현은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는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붉은 숫자와 사람의 몸을 따라 움직이던 빛, 그리고 아버지가 남긴 시계가 하나의 일처럼 이어져 있었지만 아직 무엇도 설명할 수 없었다.
***
백태산이 강현을 찾은 것은 그날 오후였다.
채원에게 연락을 받은 강현은 VIP 병실 앞에 섰다. 계약 해지 통보서는 여전히 처리되지 않았고 어머니의 치료비도 해결되지 않았기에, 백린그룹 명예회장이 자신을 찾는다는 사실은 반가움보다 불안함을 먼저 불러왔다.
"회장님 의식이 돌아오셨습니다. 다만 오래 이야기하실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니 짧게 면담해 주세요."
채원의 당부를 듣고 병실 안으로 들어서자 낮은 기계음이 들려왔다.
백태산은 침대 머리를 조금 올린 채 누워 있었고, 아침보다 얼굴빛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지쳐 보였다. 강현이 가까이 다가오자 회장은 한동안 그의 얼굴을 살폈는데, 마치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오래전 누군가의 흔적을 찾으려는 듯한 눈빛이었다.
"자네가 서강현인가?"
"그렇습니다."
"내 약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지."
강현은 침대 옆에서 걸음을 멈췄다.
"가능성을 말씀드렸습니다. 실제로 회장님을 살리신 건 윤채원 선생님과 의료진입니다."
백태산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떠올랐다.
"공을 탐내지 않는군."
강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회장은 물컵을 바라보다가 다시 강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네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셨나?"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강현은 잠시 멈칫했다.
"연구원이셨습니다."
백태산의 손가락이 이불 위에서 조금 움직였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지?"
"서명진입니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백태산의 표정이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 차분하던 눈빛이 흔들렸고, 이불을 쥔 손등에는 핏줄이 드러났다. 회장은 강현의 얼굴을 다시 살폈으며,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 눈가를 좁혔다.
"서명진……."
그가 이름을 되뇌는 목소리가 낮아졌다.
"자네가 그 사람 아들이었군."
강현은 가슴이 철렁했다.
"제 아버지를 아십니까?"
백태산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병실 문 쪽을 한 번 바라본 뒤 한동안 침묵했는데, 그 모습은 오래전 동료를 떠올리는 사람이라기보다 누군가 듣고 있는지 확인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자네는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다고 알고 있나?"
강현의 어깨가 굳었다.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누가 그렇게 말했지?"
"병원에서 들었습니다."
대답하면서도 강현은 오래전 일을 떠올렸다.
갑작스럽게 걸려 왔던 전화와 서둘러 치른 장례, 연구실에 남아 있던 자료들은 정리 중이라는 설명까지. 당시에는 아버지를 잃었다는 충격이 너무 커서 아무것도 따질 수 없었고, 어머니의 병세까지 나빠지면서 장례를 마친 뒤 곧바로 생활비와 치료비를 마련해야 했다.
아버지의 연구 노트 일부와 손목시계를 챙긴 것이 전부였다.
나머지 연구자료는 끝내 돌려받지 못했지만, 강현은 그동안 사고가 남긴 혼란 때문이라고 생각해 왔다.
"서명진은 죽기 전에 중요한 연구를 하고 있었네."
백태산의 말에 강현은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무슨 연구입니까?"
회장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연구가 누구 손에 들어갔는지…… 자네는 알아야 해."
강현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백태산은 강현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조금 전 자신을 살려 준 직원에게 보였던 호의와는 다른 감정이 어려 있었다.
"그날 일은 단순한 사고로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어."
강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는 사고라는 설명을 믿는 것 외에 아버지의 죽음을 이해할 방법이 없었는데, 지금 백태산은 그 믿음을 뿌리째 흔들고 있었다.
회장이 힘겹게 손을 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강현의 손목을 향했다.
"그 시계……."
강현은 본능적으로 손목을 감쌌다.
그는 여전히 병원 직원들의 시선이 떠올랐고, 어머니의 손을 잡은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순간이 가슴에 걸렸다.하지만 분노만으로는 어머니의 치료비를 낼 수 없었다.분노만으로는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았다고 증명할 수도 없었다.강현은 기록을 다른 저장 공간에도 복사해 두었다.그때 휴대전화가 진동했다.발신자는 세명대병원 법무팀이었다.문서가 첨부돼 있었다.강현은 화면을 열었다.상단에 병원 이름과 법무팀 명칭이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굵은 글씨로 제목이 표시돼 있었다.**내부 조사 출석 및 소명 요청서.**강현은 손가락을 멈췄다.문서에는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조사 대상자: 서강현.*그 아래에는 조사 사유가 이어졌다.*백태산 회장 응급 상황 당시 무면허 의료행위 의혹.*강현은 그 문장을 천천히 읽었다.어젯밤 자신이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오도록 도왔던 사람의 이름이, 오늘은 자신을 의심하는 문서에 적혀 있었다.그는 화면을 아래로 내렸다.*지정된 절차에 따라 소명 자료를 제출하고 조사에 출석하시기 바랍니다. 소명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현재 확보된 자료를 바탕으로 후속 조치 여부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강현은 마지막 문장에 시선을 고정했다.후속 조치.짧은 표현이었다.그러나 그 말이 뜻하는 것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의혹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다른 병원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일도 더 어려워질 수 있었다. 이미 계약 해지와 야간 수당 보류로 막막해진 생활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질 터였다.무엇보다 어머니가 있었다.강현이 다시 돈을 벌 수 있을 때까지 어머니의 치료가 기다려 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그는 손에 힘을 주었다.휴대전화 모서리가 손바닥을 파고들었다.한동안 움직이지 못하던 강현은 문서를 저장하고 수신 시각을 기록했다.그다음 자신이 작성한 동선 기록과 법무팀 영상의 시각을 다시 나란히 놓았다.상대가 제출한 영상은 강현이 의료진에게 접근하는 장면에서 끝났다.그러나 강현이 기억하는 실제 상황은 거기서 끝나
첨부된 CCTV 영상에는 강현이 복도를 달려오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의료진 가까이 다가가는 장면까지 이어지던 영상은 갑자기 끝났다.그는 영상을 다시 재생했다.이번에는 화면 구석의 시각 표시를 확인했다.영상이 시작된 시각과 끝난 시각을 적은 뒤, 자신이 아침에 정리한 동선 기록을 불러왔다.그날 자신은 채원에게 약물 이상 가능성을 알렸고, 의료진이 확인에 들어가자 처치 구역 밖으로 물러났다.그러나 제출된 영상에는 그 과정이 보이지 않았다.강현은 화면을 확대했다.복도 끝에서 의료진이 이동하는 모습은 보였지만, 자신이 실제로 환자에게 어떤 행동을 했는지 판단할 만한 장면은 없었다.이 영상이 원본에서 잘라낸 일부인지, 조사 목적으로 추출한 구간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다만 누군가가 이 자료를 근거로 자신에게 무면허 의료행위 의혹을 제기하고 있었다.강현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잠시 뒤 다시 화면을 켜고, 법무팀에 보낼 답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그는 분노가 담긴 문장을 몇 차례 지웠다.*왜 이런 식으로 사람을 몰아갑니까.*그 문장은 지웠다.*저를 범죄자로 만들 생각입니까.*그 문장도 지웠다.대신 확인 가능한 사실만 남겼다.*본인은 백태산 회장의 응급 상황 당시 약물 이상 가능성을 의료진에게 전달했으며, 환자에게 직접 의료행위를 시행하지 않았습니다. 제출된 영상에는 정보 전달 이후의 상황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므로, 당시 의료 기록과 전체 영상에 대한 정식 확인을 요청합니다.*강현은 문장을 다시 읽었다.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반박은 상대를 향해 소리치는 일이 아니었다.그들이 의혹이라고 부르는 말 앞에, 실제로 벌어진 일을 하나씩 놓는 일이었다.그는 답변을 전송하고 발송 시각을 기록했다.***오준혁은 법무팀에서 전달받은 강현의 소명 요청 내용을 읽고 서류를 내려놓았다.“전체 영상을 확인하겠다고요?”맞은편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본인이 의료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입장입니다. 당시 의료 기록과 영상 전체를 확인해 달
어제까지만 해도 야간 수당이 들어오면 급한 금액부터 맞출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모자란 돈은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 했다.하지만 그 돈마저 보류됐다.그리고 오늘은 일자리까지 완전히 잃을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강현은 어머니의 손을 잡은 채 고개를 숙였다.손등 위로 자신의 그림자가 내려앉았다.“엄마.”목소리가 조금 갈라졌다.“나, 잘하고 있는 거 맞지?”대답이 돌아올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묻고 말았다.그는 곧바로 고개를 들었다.어머니의 얼굴은 여전히 고요했다.강현은 자신이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후회했다. 지금 어머니에게 필요한 것은 아들의 불안이 아니라, 곁을 지키겠다는 확신일 터였다.그는 숨을 천천히 고르고 이불 끝을 정리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 할게.”말은 그렇게 했지만 손가락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그때 탁자 위에 놓인 낡은 손목시계가 눈에 들어왔다.아버지 서명진의 유품이었다.오래전에 멈춘 초침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다.강현은 시계를 집어 들었다.어제 백태산의 죽음이 가까워지던 순간, 분명히 이상한 움직임을 보였던 시계였다.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던 붉은 숫자와 함께,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그러나 지금 시계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강현은 유리 표면을 엄지로 쓸었다.아버지는 왜 이런 물건을 남겼을까.백태산은 왜 아버지의 이름을 알고 있었을까.의대에서 쫓겨난 자신이 백태산의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생각이 깊어질수록 관자놀이 안쪽에서 둔한 통증이 올라왔다.강현은 시계를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어젯밤부터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통증이었다. 잠시 후 손끝에 희미한 저림까지 느껴지자 그는 손가락을 움직여 감각을 확인했다.다행히 저림은 오래가지 않았다.그는 더 이상 시계에 매달리지 않았다.지금 자신의 앞에는 설명할 수 없는 능력보다 훨씬 분명한 문제가 있었다.어머니는 치료가 필요했다.치료에는 돈이 들었다.그런데 누군가는 자신이 돈을 벌고 병원에서 일할
“아직요. 열람 절차를 밟아야 해요. 하지만 제가 직접 본 상황은 분명합니다.”채원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강현 씨는 약물 이상 가능성을 알렸고, 환자 평가와 처치는 의료진이 했어요. 그 사실은 제가 책임지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강현은 눈을 감았다.어젯밤의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백태산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던 순간, 시야에 나타났던 붉은 숫자. 줄어드는 시간을 보면서도 자신은 환자에게 손을 댈 수 없었다.면허가 없었기 때문이다.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위험을 알아차리고, 실제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사람에게 알리는 것뿐이었다.그런데 이제 병원은 그 행동을 범죄 의혹으로 바꾸고 있었다.“윤 선생님.”“네.”“그때 제가 어디에 있었는지, 의료진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확인해 주십시오. 기억만이 아니라 당시 기록과 대조해 주세요.”“그렇게 하겠습니다.”“저도 제가 있었던 위치와 시각을 정리하겠습니다.”채원은 잠시 말을 멈췄다.“강현 씨, 지금 상황이 좋지 않아요. 내부에서 이미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그래도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안 돼요. 병원 기록을 무단으로 확보하려고 해서도 안 되고요.”“알고 있습니다.”강현은 주먹을 쥐었다가 천천히 폈다.“제가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주장하는 쪽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부터 남겨야겠죠.”채원은 더 이상 그를 말리지 않았다.“제가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확인하겠습니다. 혼자 모든 걸 감당하려고 하지는 마세요.”통화가 끝난 뒤 강현은 휴대전화 메모장을 열었다.어제 백태산의 상태가 급변하기 직전 자신이 있던 위치, 채원에게 말을 건넨 시점, 의료진이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을 차례로 적었다.기억이 완벽하다고 믿지는 않았다.그래서 더더욱 지금 기록해야 했다.자신의 기억이 틀린 부분이 있다면 그것도 확인할 생각이었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를 이기는 데 유리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진 일을 남기는 것이었다.강현은 메모를 저장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설명이 아니라 구경거리라는 생각이 들자, 강현은 굳어 있던 손가락을 천천히 폈다.그리고 다시 걸었다.그가 무슨 말을 하든 지금은 믿어 줄 사람이 많지 않을 터였다.***오준혁은 법무팀 회의실에서 서강현의 이름이 적힌 서류를 책상 위로 밀었다.“이 사람의 직원 출입 권한은 정지됐습니까?”“새벽에 처리했습니다.”“그럼 됐군요.”준혁은 대답을 듣고도 서류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맞은편에 앉은 법무팀 직원이 첨부 자료를 펼치는 동안, 그는 벽면 모니터에 띄워진 영상을 바라보았다.화면에는 강현이 복도를 달려와 백태산의 응급 상황이 벌어진 구역으로 접근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영상은 강현이 의료진 가까이 다가간 직후 끝났다.“이 정도면 문제가 분명하지 않습니까?”준혁의 말에 법무팀 직원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무면허 의료행위 여부를 판단하려면 실제로 어떤 처치가 있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현재 영상만으로는 강현 씨가 환자에게 의료행위를 했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준혁의 손가락이 책상 위에서 멈췄다.“단정하라는 게 아닙니다. 의혹을 조사하라는 겁니다.”“의료 기록상 소생 처치는 면허를 가진 의료진이 수행했습니다.”“그럼 서강현은 왜 그 자리에 있었습니까?”직원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준혁은 그 침묵을 놓치지 않았다.“의대에서 퇴학당한 사람이 VIP 환자의 응급 상황에 끼어들었습니다. 병원이 그 사실을 알고도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누가 책임지겠습니까?”그는 손끝으로 서류를 두드렸다.“무면허 의료행위 의혹에 대한 고발 검토 요청서를 올리세요. 사실관계 조사도 공식 절차로 진행하고요.”“고발 검토는 가능하지만, 실제 고발 여부는 조사 결과를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그 정도는 압니다.”준혁은 짜증을 감추지 않았다.그가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강현이 무슨 의료행위를 했는지가 아니었다.백태산이 의식을 회복한 뒤 강현에게 보였던 관심이 마음에 걸렸다. 특히 백태산이 서명진의 이름을 꺼낸
서강현의 출입증이 거부된 것은 오전 일곱 시 십이 분이었다.세명대병원 직원 출입구의 자동문은 평소처럼 열리지 않았고, 출입증 인식기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강현이 카드를 다시 갖다 대자 화면에 붉은 글씨가 떠올랐다.*출입 권한 정지.*그는 한동안 그 문구를 바라보았다.어젯밤까지만 해도 이곳은 강현이 매일 드나들던 출입구였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나올 때면 청소용 카트와 마주쳤고, 새벽 교대를 하러 들어오는 간호사들과 인사를 나누던 곳이었다.그런데 하루아침에 자신이 낯선 사람이 되어 있었다.“서강현 씨.”보안실에서 나온 직원이 강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손에 든 서류와 강현의 얼굴을 번갈아 확인하더니, 출입증을 내놓으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직원 출입증은 회수 대상입니다.”“계약 해지 절차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출입 제한에 대한 통보도 받지 못했고요.”“인사팀에서 내려온 지시입니다. 저희는 그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습니다.”강현은 출입증을 쥔 손을 내려다보았다.밤마다 병동과 물품 창고를 오가며 닳아 버린 카드였다. 플라스틱 모서리에는 작은 금이 가 있었고, 사진 속 얼굴은 지금보다 훨씬 멀쩡해 보였다.그 카드가 대단한 신분을 보장해 준 적은 없었다. 의대에서 쫓겨난 뒤 어렵게 구한 계약직 일자리였고, 병원 안에서도 누구나 대신할 수 있는 직원으로 취급받았다.그래도 그곳에서 일한 시간만큼은 자신의 것이었다.“회수 사유를 서면으로 주십시오.”“그런 건 인사팀에 요청하셔야 합니다.”보안 직원이 난처한 얼굴로 대답하는 사이, 뒤쪽에 출근하던 직원들이 하나둘 멈춰 섰다.“무슨 일이에요?”누군가 물었고, 다른 사람이 강현을 알아보았다.“어제 VIP 병실에 들어갔던 사람 아니야?”“그 사람 때문에 법무팀이 조사한다던데.”속삭임은 멀리서 시작됐지만, 강현이 서 있는 곳까지 또렷하게 들려왔다.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직원들의 발소리가 느려졌다가 다시 빨라졌고, 조금 전까지 자신과 같은 방향으로 걸어오던 사람들은 일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