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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울리면

作者: 유월
last update 公開日: 2026-09-24 02:32:38

“이번에는 우리가 저들을 초대하는 거야.”

라엘의 말이 끝나자 침실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침대 곁에는 카시안과 루시안, 데미안, 세레나가 둘러서 있었고, 탁자 위에는 독침과 협박문, 동부 종탑에서 압수한 문서들이 놓여 있었다.

그중 누구도 라엘의 제안에 곧바로 동의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카시안이었다.

“안 돼.”

“아직 설명도 안 했는데.”

“설명을 들으면 네가 독에 중독된 몸으로 결혼식장에 나가 미끼가 되겠다는 계획이 갑자기 안전해지나?”

“독은 거의 다 빠졌어.”

침대에서 일어나려던 라엘은 곧바로 어깨를 눌렸다. 카시안은 한 손으로 그녀를 다시 베개에 기대게 한 뒤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 올렸다. 의원이 절대 안정을 명했다는 이유로 그는 한 걸음 떨어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거의라는 말은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지.”

“네 상처에 관해서는 그렇게 생각 안 하던데?”

“내 상처와 네 목숨을 같은 선에 놓지 마.”

카시안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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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은 성녀를 심판하러 왔습니다   명령을 기다리지 마

    댕―.댕―.댕―.열네 개의 종이 수도 전역에서 같은 간격으로 울렸다. 서로 다른 크기와 음색을 지닌 종들이었지만 이상할 만큼 하나의 소리처럼 겹쳤다. 성벽과 지붕, 좁은 골목 사이를 파고든 진동이 황궁의 유리창까지 떨게 했다.복도 끝에서 무릎을 꿇은 병사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명령을 기다립니다. 명령을 기다립니다. 명령을…….”그의 동료가 조심스럽게 어깨를 붙잡으려 하자 병사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초점이 사라진 눈이 라엘을 향했다. 그는 허리에 찬 검을 뽑으며 몸을 일으켰다.“가짜 성녀를 제거하라.”칼날이 번뜩였다.카시안이 라엘의 앞을 막아서는 것과 데미안이 병사의 손목을 쳐 내는 것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검이 바닥을 긁으며 멀리 미끄러졌지만 병사는 고통조차 느끼지 못한 듯 맨손으로 달려들었다. 데미안은 그의 목을 치는 대신 팔을 비틀어 등 뒤로 꺾었다. 병사가 거세게 몸부림치자 기사 두 명이 더 달라붙어 겨우 바닥에 눌렀다.“정신 차려!”“명령을 수행해야 합니다. 놓아라. 가짜 성녀를 죽여야…….”라엘은 벽에서 손을 떼고 그에게 다가갔다. 독기운이 남은 다리가 휘청였지만 멈추지 않았다.카시안이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가까이 가지 마.”“이름을 확인해야 해.”“지금 널 죽이려 했다.”“저 병사의 의지가 아니야.”라엘은 카시안의 팔 안에서 병사의 제복을 살폈다. 가슴에 작은 나무패가 달려 있었다. 황궁에 근무하는 하급 병사의 이름을 새긴 표식이었다.“테온.”병사의 몸부림이 순간적으로 멈췄다.라엘이 다시 불렀다.“테온, 네 이름은 테온이야.”“명령을…….”“누구의 명령을 기다리는데?”병사의 입술이 떨렸다.“종이 울리면…… 명령을 기다려야…….”“그 종은 네 주인이 아니야.”라엘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카시안이 붙잡으려 했지만 그녀는 병사와 시선을 맞출 수 있는 높이까지 몸을 낮췄다.“네가 지금 있는 곳은 어디지?”“지하…… 제단…….”“아니야. 바닥을 봐. 지하

  • 죽은 성녀를 심판하러 왔습니다   종이 울리면

    “이번에는 우리가 저들을 초대하는 거야.”라엘의 말이 끝나자 침실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침대 곁에는 카시안과 루시안, 데미안, 세레나가 둘러서 있었고, 탁자 위에는 독침과 협박문, 동부 종탑에서 압수한 문서들이 놓여 있었다.그중 누구도 라엘의 제안에 곧바로 동의하지 않았다.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카시안이었다.“안 돼.”“아직 설명도 안 했는데.”“설명을 들으면 네가 독에 중독된 몸으로 결혼식장에 나가 미끼가 되겠다는 계획이 갑자기 안전해지나?”“독은 거의 다 빠졌어.”침대에서 일어나려던 라엘은 곧바로 어깨를 눌렸다. 카시안은 한 손으로 그녀를 다시 베개에 기대게 한 뒤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 올렸다. 의원이 절대 안정을 명했다는 이유로 그는 한 걸음 떨어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거의라는 말은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지.”“네 상처에 관해서는 그렇게 생각 안 하던데?”“내 상처와 네 목숨을 같은 선에 놓지 마.”카시안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라엘은 반박하려다 그의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화가 난 것처럼 보였지만, 눈 깊숙한 곳에 남은 것은 분노보다 두려움이었다. 독에 중독된 라엘이 그의 품에서 의식을 잃은 지 겨우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라엘은 이불 위로 그의 손을 찾아 손가락을 끼웠다.“결혼식 날까지 스무 날 남았어. 오늘 당장 미끼가 되겠다는 게 아니야.”“스무 날 뒤에도 안 돼.”“카시안.”“결혼식을 미룬다.”“싫다고 했잖아.”“이번에는 네 뜻을 들어줄 수 없어.”두 사람 사이의 팽팽한 기류를 지켜보던 데미안이 조심스럽게 헛기침했다. 그러나 어느 쪽도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세레나는 익숙하다는 듯 의자에 앉았고, 루시안은 손에 든 협박문을 다시 읽으며 형과 라엘의 다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라엘이 먼저 물었다.“결혼식을 미루면 저들이 멈출 것 같아?”“그사이에 잔당을 찾아내면 된다.”“누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제국의 모든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찾겠다.”“그러면 저들

  • 죽은 성녀를 심판하러 왔습니다   황후가 되어도 라엘

    “가족의 결혼식이니까요.”루시안의 말이 떨어진 뒤, 작은 식당 안에는 한동안 포크와 나이프가 부딪치는 소리만 들렸다. 가족이라는 단어 하나에 카시안이 지나치게 오래 침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라엘은 포도주잔 너머로 두 형제를 번갈아 보았다. 루시안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뒤늦게 깨달은 사람처럼 접시만 내려다보고 있었고, 카시안은 고기를 썰기는커녕 같은 자리를 몇 번이나 칼끝으로 누르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저녁이 끝날 때까지 누구도 다음 말을 꺼내지 못할 것 같았다.“결혼식에서 맡고 싶은 역할 있어?”라엘이 먼저 물었다.루시안이 고개를 들었다.“제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까?”“신전의 축복은 받지 않을 거고, 황실의 공식 혼인식도 아니야. 카시안과 내가 서약서를 읽고 서명하면 끝이야. 그러니까 정해진 역할도 없어.”“그런데 왜 물으십니까?”“없으면 만들면 되니까.”루시안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백관의 지하 감옥에서 목숨을 걸고 버틸 때보다 결혼식 이야기를 나눌 때 더 불편해 보였다.“저는 결혼식에 참석해 본 적이 없습니다.”“나도 없어.”“수백 년을 사셨으면서요?”“천계에서는 결혼을 안 해. 영원을 사는 존재끼리 굳이 평생을 약속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카시안이 나이프를 내려놓았다.“그런데 나와는 하겠다고 했지.”“너는 영원히 안 사니까.”“매우 낭만적인 이유군.”“마음에 안 들면 취소하고.”카시안의 손이 곧장 라엘의 손목을 붙잡았다. 식탁 아래에서 이루어진 움직임이라 루시안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손가락에 들어간 힘만으로도 그가 조금 전 말을 전혀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라엘이 웃음을 참으며 손을 뒤집어 그의 손가락 사이로 제 손가락을 끼웠다.“농담이야.”“결혼에 관한 농담은 금지하겠어.”“누구 마음대로?”“내 마음대로.”“황제의 권력 남용이네.”“기꺼이 처벌받지.”그 대화를 듣던 루시안의 입가가 미세하게 풀렸다. 카시안이 그 변화를 알아차리고 시선을 돌리자 루시안은 곧바로

  • 죽은 성녀를 심판하러 왔습니다   이름을 돌려주는 장례

    레오폴드의 두 번째 심리를 앞둔 아침, 라엘은 황제의 침실에서 눈을 떴다.정확히 말하면 잠에서 깬 것은 해가 뜨기 전이었다. 아직 어둑한 방 안에서 카시안의 팔이 허리를 단단히 감고 있었고, 등에 닿은 가슴에서는 느리고 규칙적인 심장 소리가 전해졌다. 상처가 다시 벌어진 뒤로 그는 의원의 지시에 따라 똑바로 누워 자야 했지만, 잠든 사이에도 라엘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어느새 몸을 기울인 채 그녀를 품고 있었다.라엘은 조심스럽게 그의 팔을 들어 올렸다. 오늘 심리에 제출할 최종 의견서를 한 번 더 읽어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겨우 손 하나가 빠져나갔을 때 허리를 감은 팔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어디 가지?”잠이 덜 깬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서류 보러.”“해도 안 떴는데.”“그러니까 조용히 볼 수 있잖아.”“황제의 침실보다 조용한 곳은 없어.”“황제가 안 놔주니까 문제지.”라엘이 몸을 돌리자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 아래로 카시안의 푸른 눈이 드러났다. 늘 빈틈없이 정돈된 모습만 보던 사람들은 지금의 그를 황제라고 알아보지 못할지도 몰랐다. 느슨하게 풀린 잠옷 사이로 붕대가 보였고, 아직 잠이 묻어 있는 얼굴은 평소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라엘은 손끝으로 붕대 가장자리를 확인했다. 다행히 피가 배어 나오지는 않았다.“아픈 곳은?”“네가 일어나려 해서 마음이 아프군.”“거기는 의원도 못 고쳐.”“네가 고칠 수 있어.”카시안은 라엘의 손목을 잡아 제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손바닥 아래로 단단한 근육과 체온,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뛰는 심장이 느껴졌다. 인간이 된 뒤 라엘은 유독 이 소리에 약해졌다. 신력을 사용해 생명의 흐름을 들여다보던 때와는 달랐다. 이제 그녀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피부 아래에서 뛰는 작은 진동뿐이었다. 멈출 수도 있고, 다칠 수도 있으며, 영원하지 않기에 더욱 선명한 소리였다.“잘 뛰고 있지?”카시안이 물었다.“응.”“그러니 조금 더 자.”“오늘 네 아버지 판결이 나올 수도 있어.”그 순간 카시안

  • 죽은 성녀를 심판하러 왔습니다   용서가 아닌 진실

    “카시안.”라엘이 그의 입술을 손으로 막았다. 아쉬움이 역력한 푸른 눈이 내려다보았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한 달 뒤에 결혼하려면 그때까지 살아 있어야지.”“키스 몇 번으로 죽을 만큼 약하지는 않아.”“키스만 할 얼굴이 아닌데?”카시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라엘의 허리를 감싼 손이 천천히 등을 쓸어 올라왔다. 얇은 옷감을 사이에 둔 손길인데도 피부가 뜨거워지는 듯했다. 인간의 몸은 천족의 몸보다 훨씬 솔직했다. 입술이 닿으면 숨이 가빠졌고, 손끝 하나에도 심장이 제멋대로 뛰었다. 라엘이 아직 익숙해지지 못한 반응이었다.“그건 네가 너무 잘 알아서 문제군.”그가 낮게 속삭이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라엘은 피하지 않았다. 다만 입술이 맞닿기 직전 그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눌렀다.카시안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좁혀졌다.아주 짧은 변화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알아보지 못했겠지만 라엘은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곧장 그의 옷깃을 벌리자 붕대 가장자리에 붉은 피가 번져 있었다.“이래도 안 약해?”“조금 터진 것뿐이야.”“네 몸에 난 상처는 왜 항상 ‘조금’이고, 내가 손가락이라도 베이면 당장 제국 최고의 치유사를 부르려는 건데?”“너는 이제 인간이니까.”“너도 인간이야.”라엘이 차갑게 쏘아붙이자 카시안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를 의자에 앉히고 탁자 위의 작은 종을 울렸다. 문밖에서 기다리던 시종이 들어오려다 잠금쇠에 걸려 문을 덜컹거렸다.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문으로 향했다.라엘이 천천히 카시안을 돌아보았다.“정말 잠그라고 했어?”“명령을 잘 따르는 자야.”“칭찬할 일이 아니거든.”그녀가 직접 문을 열어 시종과 의원을 불러들였다. 의원이 카시안의 붕대를 교체하는 동안 라엘은 팔짱을 낀 채 곁에 서 있었다. 황제의 위엄을 세우려는 듯 무표정하던 카시안도 그녀의 시선을 견디다 못해 먼저 입을 열었다.“한 달이면 낫는다.”“그때까지 침실에서는 내 말 들어.”붕대를 감던 의원의 손이 잠시 멈췄다. 시종은 못 들은 척 필사

  • 죽은 성녀를 심판하러 왔습니다   인간으로 맞는 첫날 밤

    “그러니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아.”카시안의 목소리가 라엘의 입술 위로 낮게 내려앉았다.도망가면 황제가 직접 잡으러 오겠다는 말이 장난만은 아니라는 것을, 허리를 감싼 단단한 팔이 알려 주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벌어진 상처를 치료받던 사람답지 않은 힘이었다.“제국을 두고 쫓아오겠다는 황제는 처음 봐.”“도망가겠다는 약혼녀도 처음 봤어.”“가정이었거든.”“나는 어떤 가능성도 남겨 두고 싶지 않아.”카시안의 엄지가 라엘의 아랫입술을 천천히 쓸었다. 금빛 눈이 그 손길을 따라 흔들리는 순간, 그의 시선이 더욱 짙어졌다.“말로 약속하는 것만으로 부족해?”“부족해.”“욕심이 많네.”“오늘부터 황제니까.”“황제는 욕심을 줄여야 하는 자리 아니야?”“제국에 대해서는.”카시안이 라엘의 허리를 끌어당겼다.“너에 대해서는 줄일 생각 없어.”입술이 겹쳤다.이번에는 어느 쪽도 서두르지 않았다. 반란도, 죽은 성녀도, 지하에서 밀려오던 어둠도 사라진 밤이었다. 방문은 잠겨 있었고, 시종과 관료들에게도 긴급한 일이 아니면 접근하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졌다.처음으로 아무것에도 쫓기지 않은 채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카시안의 입술은 느리고 집요했다. 짧게 닿았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라엘의 반응을 살피다가, 그녀가 셔츠 자락을 움켜쥐자 기다렸다는 듯 깊게 파고들었다. 얽힌 숨 사이로 뜨거운 체온이 번졌다.라엘은 그의 가슴에 감긴 붕대를 누르지 않도록 조심하며 목 뒤로 팔을 둘렀다. 카시안은 그 작은 허락만으로도 인내가 무너진 사람처럼 그녀의 등을 쓸어 내렸다. 손바닥이 등선을 따라 허리까지 내려올 때 얇은 드레스가 함께 당겨졌다.몸이 빈틈없이 맞붙었다.“카시안.”라엘의 입술 사이로 이름이 흘러나왔다.그가 잠시 입맞춤을 멈췄다.“왜?”“그냥 불렀어.”카시안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눈앞의 사람이 정말 살아 있는지 다시 확인하듯 뺨과 턱선을 천천히 쓸었다.“한 번 더.”“카시안.”“또.”“몇 번이나 불러야 믿을 건데?”“네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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