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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화. 다시 그릴 수 있을 때까지

Penulis: YuIm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10-27 13:15:29

도현은 서윤이 잠든 뒤에 돌아왔다.

아침에 일어나니 현관 앞에 벗어 둔 구두가 나란하지 않았고, 식탁에는 편의점 봉투가 놓여 있었다. 봉투 안에 든 푸딩 2개가 미지근해져 있었다.

“냉장고에 넣지 그랬어.”

서윤이 침실 쪽을 보며 말하자 도현이 셔츠 소매에 팔을 끼우면서 나왔다.

“깜빡했네. 오는 길에 생각나서 샀어. 너 그거 좋아하잖아.”

좋아했었다. 퇴근길에 역 앞에서 하나씩 사 먹던 때가 있었다. 도현은 여전히 같은 맛을 골랐고, 서윤은 반가워해야 할 것 같아서 봉투를 접어 주방에 두었다.

“어제 늦었어?”

“응. 대표님이 2차까지 가자고 해서.”

“원고는 봤고?”

“봤지. 잘했더라.”

서윤은 그 말을 듣고 찬장 문을 닫았다. 물을 끓이려던 참이었다. 어젯밤에 고친 장면 중 어느 부분이 좋았는지 물을까 하다가 도현이 먼저 휴대폰을 보여 주어서 그쪽으로 다가갔다.

은수에게 받은 메시지였다.

마지막 우산 장면 좋습니다. 이 흐름이면 다음 회차 첫 장면도 자연스럽겠네요.

“거봐. 내가 고백 좀 미루자고 하길 잘했지.”

도현은 메시지를 올려 읽으며 말했다. 서윤은 화면에서 그의 얼굴로 눈을 옮겼다.

“미루자는 건 내가…….”

“그러니까. 네 얘기 듣고 내가 그쪽으로 정했잖아.”

주전자가 끓기 시작했다. 도현은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찻잔을 꺼냈다. 서윤이 컵 받침을 내미는 동안에도 메시지 창을 보고 있었다.

“다음 주엔 들어가서 안는 데까지 가면 되겠다.”

“아직 그 여자는 할 말이 남았어.”

“그건 안고 나서 하면 되지. 우리 독자들 이런 거 오래 끄는 거 싫어해.”

서윤은 끓인 물을 찻잔에 부었다. 도현이 입을 대기 전에 잔을 조금 당겨 손잡이를 돌려놓았다. 그가 오른손으로 편하게 잡는 방향이었다.

“그 여자, 싫다는 말은 안 했어.”

서윤이 말했다.

“지난 회차에서 혼자 있고 싶다고 한 거잖아. 잠깐 혼자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렇다고 돌아온 사람이 자기 할 말부터 해 버리면…….”

“알았어, 알았어. 그럼 네가 한번 잡아 봐.”

도현은 웃으며 찻잔을 들었다. 그렇게 웃고 넘어가려는 얼굴을 보면 서윤은 다음 말을 고르게 됐다. 지금 더 설명하면, 아침부터 굳이 싸움을 거는 쪽이 자신일 것 같았다.

“나 오늘 미팅 늦어. 점심 먼저 먹어.”

“내가 이번 주는 좀 쉬면 안 될까?”

도현이 잔을 내려놓았다.

“어디 아파?”

“그런 건 아니고. 내 걸 조금 해 보고 싶어서.”

“네 거?”

“예전에 그리던 짧은 것들. 몇 개 더 모였거든.”

“지금?”

그가 시계를 보는 바람에 서윤도 그쪽을 보았다. 약속 시간에 늦은 것은 아니었다. 아직 30분이나 남아 있었다.

“이번 시즌 끝나고 해도 되잖아.”

“시즌 끝나면 단행본 수정 있잖아.”

“그건 양이 많지 않아.”

지난번에도 같은 대답을 들었다. 양이 많지 않다던 수정에는 3주가 걸렸고, 끝나자 다음 시즌 예고편을 만들었다. 서윤은 그 말을 하려다가 찻잔에 남은 물을 보았다. 도현은 벌써 외투를 집어 들고 있었다.

“퇴근하고 다시 얘기하자.”

문이 닫힌 뒤 서윤은 그의 잔을 치웠다. 푸딩을 냉장고에 넣으면서 유통기한을 확인했다. 뚜껑의 작은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주방 불을 하나 더 켰다.

처음 그가 사다 주었던 푸딩은 밤새 방치되지 않았다.

그때는 서로의 것을 빼앗아 먹겠다고 플라스틱 숟가락을 들고 장난을 쳤다.

결혼한 지 2달쯤 되었을 때였다.

두 사람이 살던 집에는 책상을 나란히 놓을 공간이 없었다. 도현이 책상을 쓰면 서윤은 낮은 식탁에서 그림을 그렸고, 밥을 먹을 때마다 종이와 펜을 창가로 옮겼다.

도현은 데뷔 단편으로 주목을 받은 뒤 첫 장편을 준비하고 있었다. 계약 이야기가 오간 뒤부터 도리어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멀쩡한 그림을 지우고,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가, 돌아와서 또 같은 얼굴을 그렸다.

“얼굴은 잘 그려졌는데.”

서윤이 책상 뒤에서 말했을 때 그가 웃지도 않고 대답했다.

“얼굴만 있잖아.”

그의 화면에는 멀끔한 남자가 서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 누구를 기다리는지 모르는 남자였다. 서윤은 옆에 앉을 의자를 찾다가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오늘은 그만하자. 같이 뭐 좀 먹고.”

“나 계약 깨질 수도 있어.”

“아직 정해진 건 아니잖아.”

“저쪽에서 기다리는 것도 한계가 있지. 벌써 2번 미뤘는데.”

서윤은 무릎 위에 손을 모았다. 자신이 도울 수 있는 부분을 찾고 싶었다. 이야기 하나를 꺼냈다가, 지금 그런 조언을 들으면 더 힘들 것 같아서 삼켰다.

도현이 먼저 서윤의 스케치북을 가리켰다.

“넌 뭘 그렇게 그려?”

“그냥 생각난 거.”

“보면 안 돼?”

서윤은 식탁 위에서 스케치북을 가져왔다. 인물 소개나 기획 의도도 없이, 떠오를 때마다 짧게 그린 장면들이었다. 버스 안에서 본 아이, 비가 오면 비닐을 덮는 시장 좌판, 늘 불이 늦게 꺼지는 세탁소가 서로 다른 종이에 있었다.

도현이 한 장씩 넘기기 시작했다. 그가 오래 멈춘 페이지에서 서윤은 괜히 손을 뻗었다.

“그건 아직 뒤가 없어.”

“뒤가 있어야 하나?”

“응?”

“지금 이대로도 좋은데. 여기서 끊기니까 다음을 생각하게 되잖아.”

그가 종이 한쪽을 톡 건드렸다. 서윤이 별생각 없이 그렸다가 지우려던 부분이었다. 혼자 볼 때는 대수롭지 않던 그림이 그의 손가락 아래에서 조금 다른 것이 되었다.

“너는 왜 이런 걸 안 올려?”

“다 그린 게 없어서.”

“전에도 그 말 했어.”

그 말에 서윤이 웃었다. 연애할 때 도현은 서윤이 단편을 올리던 계정을 구독했다. 새 그림이 뜨면 본인도 알림을 받는다면서, 다른 사람 댓글이 달리기 전에 꼭 메시지를 보내 왔다.

오늘 건 3번째 컷이 좋다.

앞에서 보던 사람이 뒤돌아보니까 다른 기분이 난다.

이 인물 다음에도 나와?

무엇이 좋았는지 말해 주는 사람이었다. 서윤은 그 질문에 답하려고 평소보다 한 장을 더 그리기도 했다.

도현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오래된 구독 목록에 윤슬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지금도 기다리는 독자 있어.”

서윤이 그를 쳐다보자 그가 자신을 가리켰다. 푸딩 뚜껑을 손가락으로 누른 채 어깨를 으쓱하는 모습이 우스워서, 서윤은 결국 웃고 말았다.

그날 밤, 도현은 서윤의 스케치북을 책상 옆에 놓았다. 자꾸 뒤를 돌아봐도 된다는 허락을 구하듯이 올려다보기에 서윤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장편의 첫 제안이 거기서 시작됐다.

서윤은 자신이 모아 둔 이야기들을 이어 보았다. 짧은 장면에만 있던 인물에게 살던 동네와 오래된 친구를 붙였고, 둘이 앉을 집을 그렸다. 새벽까지 한 장을 고치고 다음 날 그 뒤를 이었다.

도현은 옆에서 그림을 보다가 말했다.

“이렇게 가면 되겠다.”

며칠 뒤 담당자에게서 회신이 왔다. 이 기획으로 한번 만나자는 말이었다. 도현은 그제야 긴 숨을 내쉬었고 서윤을 끌어안았다.

“나 진짜 끝난 줄 알았어.”

서윤은 그의 등에 손을 얹었다. 잘됐다, 다행이다, 그런 말만 몇 번이고 했다. 그가 다시 자기 그림 앞에 앉을 수 있다면 조금 도와주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만남을 앞두고 파일을 정리하던 도현의 손이 멈췄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내가 같이 했다고 하면 되잖아.”

“계약은 나랑 하기로 얘기가 됐는데. 지금 작가가 바뀐다고 하면 처음부터 다시 봐야 할 수도 있어.”

서윤은 종이들을 모아 들고 있었다. 도현은 담당자에게 쓸 메일을 몇 번이고 고치고 있었다. 서윤의 이름이 들어간 문장을 지웠다가 다시 적었다. 그의 데뷔작을 좋아했던 사람들,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는 댓글들이 떠올랐다.

“이번엔 당신 이름으로 내.”

말을 하고 나니 생각보다 쉽게 들렸다.

도현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서윤이 말을 보탰다.

“다시 그릴 수 있을 때까지만. 내가 옆에서 도와줄게.”

“서윤아.”

“대신 내 것도 봐 줘. 나는 맨날 끝을 못 내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윤의 종이를 받아 들면서 손등을 한번 쓸어 주었다.

“당연하지. 다음엔 네 거 하자.”

서윤은 그 약속을 믿었다. 당시에는 자기 것을 한다는 말 속에, 도현이 옆에 앉아 있는 모습도 들어 있었다.

냉장고가 낮게 웅웅거렸다. 서윤은 열린 문을 닫고, 식탁 아래에 굴러간 푸딩 숟가락을 주웠다. 손잡이를 감싼 비닐이 그대로였다. 쓰지 않은 숟가락을 서랍에 넣다가, 오래된 자료를 아직 갖고 있는지 생각했다.

작업실 맨 아래 칸에 작은 외장 저장장치가 있었다. 케이블을 연결하자 예전 컴퓨터에서 옮겨 둔 폴더들이 나타났다. 졸업 작업, 결혼 사진, 이사 전 집 사진. 정리할 시간이 없어서 날짜만 붙여 놓은 폴더도 많았다.

서윤은 처음 제안서를 만들던 해를 열었다. 그 안에는 도현이 쓰던 파일명과 자신이 쓰던 파일명이 섞여 있었다. 같은 이야기의 앞부분을 조금씩 다르게 그린 사본도 있었다.

하나를 열자 그림보다 먼저 당시의 메모가 보였다.

문을 닫는 소리는 다음 칸에.

얼굴보다 손 먼저.

지금도 좋아하는 흐름이었다. 서윤은 모니터를 가까이 당겼다. 10년 전 자신이 어디에서 망설였는지, 무엇을 빼고 싶었는지 기억이 났다. 그때는 모자라 보였던 선이 지금 보니 꼭 지워야 할 것은 아니었다.

점심때 도현에게 전화가 왔다.

“밥 먹었어?”

“이제 먹으려고.”

“아까 네가 한다던 거, 얼마나 걸리는 건데?”

서윤은 열린 파일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오래 걸리는 건 아니야. 짧은 그림들이라서.”

“그럼 틈날 때 하면 되겠네.”

“당신 원고랑 겹치지 않는 시간을 정하고 싶어.”

“우리가 회사 다니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까지 정해. 그때그때 맞추면 되지.”

서윤은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

“처음엔 잠깐만 돕기로 했잖아.”

수화기 너머로 잠깐 조용해졌다. 사람들 말소리가 멀어지는 걸 보니 도현이 자리를 옮긴 것 같았다.

“지금 와서 그런 얘긴 왜 해?”

“그런 얘기가 아니라, 나도…….”

“우리가 남이야? 나는 밖에서 일하고 넌 집에서 같이 만드는 거잖아. 지금까지 그렇게 잘해 놓고 갑자기 잠깐이니 뭐니 하면 나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

그의 목소리가 높아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서윤도 작게 말했다.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서.”

“또 너무 깊이 생각한다.”

도현은 저녁에 이야기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서윤은 한동안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같은 말을 2번 들었는데도 저녁이 되면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화면에는 처음 제안했던 원고가 떠 있었다. 표지 아래로 조금 내려가자 글자 자리를 덮어 놓은 흰 띠가 보였다. 당시에는 종이 색과 같았을 텐데, 화면을 바꾸고 나니 가장자리가 희미하게 구별됐다.

서윤은 그것을 없애지 않았다.

확대해 보다가, 수정하지 않은 채 파일을 닫았다.

폴더에는 날짜가 남아 있었다. 다시 그릴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고 말했던 해였다.

폴더 창을 닫은 뒤에도 서윤은 식탁으로 가지 못했다. 저녁에 다시 얘기하자던 도현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았다.

다시 그릴 수 있을 때까지만. 그 약속을 한 지 벌써 10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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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일 오전, 서윤은 진료 대기실에서 예약 문자를 다시 확인했다. 산부인과의 후속 진료를 마치면 같은 건물의 다른 층으로 가야 했다. 지난주에 잡아 둔 소화기 진료였다.의사는 유산 이후의 상태를 확인하고 이후에 살펴야 할 증상을 설명했다. 서윤은 안내를 듣고 나온 뒤 다음 진료과에 최근의 일을 알렸다. 임신 사실과 유산한 날짜를 말하는 동안, 접수 직원은 필요한 항목을 조용히 입력했다. 그 말을 끝까지 들은 사람에게는 별도의 변명이 필요하지 않았다.소화기 진료실에서 서윤은 몇 달 전부터 속이 답답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끼니가 늦어져서라고 생각했고, 다음에는 임신 때문인 줄 알았다고 했다. 의사는 어느 쪽으로도 바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식사량과 통증, 최근의 변화에 관해 차례로 물었다.“유산 전에도 먹는 양이 많이 줄었어요?”“네. 배가 고픈데 먹기 시작하면 금방 못 먹겠어요.”최근 검사 결과를 확인한 의사는 위내시경 검사를 권했다. 서윤은 검사 방법과 준비 사항을 듣고 가능한 날짜를 골랐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그 시간을 선택하면서도 남편의 작업 일정을 먼저 열어 보지는 않았다.4월 8일의 검사가 끝난 뒤,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설명을 기다렸다. 의사는 병변이 있어 조직을 채취했다고 말했다. 검사 결과를 확인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추가 촬영 일정을 잡았다. 서윤은 그가 화면의 어느 곳을 가리키는지 보았지만 색과 형태만으로는 알아볼 수 없었다.“안 좋은 건가요?”“확인이 필요한 소견입니다. 조직검사와 영상검사 결과를 같이 보고 설명드릴게요.”집에 돌아와 내시경 사진을 펼쳤다가 다시 덮었다. 인터넷에서 비슷한 이미지를 찾아 나란히 놓아도 무엇이 같은지 알 수 없었다. 한 사람은 별일 아니었다고 했고, 다른 사람은 전혀 다른 결과를 적었다. 서윤은 검색 창을 닫고 병원에서 받은 다음 예약을 확인했다.도현은 그녀가 책상 앞에 오래 있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날 저녁에도 컴퓨터가 꺼져 있는 작은 방을 들여다보았다.“검사 아직도 안 끝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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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현은 현관 거울 앞에서 셔츠 소매를 접고 있었다. 서윤이 부엌에서 물을 마시는 동안 그는 재킷을 걸쳤다가 벗었다. 문채령의 행사 사진에 어떻게 나올지 휴대전화로 확인하느라, 신발을 신고도 한참 나가지 않았다.“오늘 저녁은 늦어. 뒤풀이까지 가야 할 것 같아.”서윤은 벽 달력을 보았다. 4월 5일의 날짜 위에 남편이 행사 이름을 크게 적어 놓았다. 그 아래에 자기 약속을 덧쓰려던 흔적은 없었다. 병원 일정은 이제 작은 방에 둔 종이에만 적었다.“나 오늘은 쉬어야겠어.”“알아. 어제 보낸 부분은 봤어.”“원고 말고, 몸이 안 좋아.”도현은 손에 든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떼었다. 그녀의 앞에 놓인 물컵을 보더니 냉장고 쪽을 한번 돌아보았다.“먹을 게 없으면 시켜 먹어. 굳이 나 기다리지 말고.”현관문이 닫힌 뒤 서윤은 물을 조금 더 마셨다. 아랫배의 통증은 아침부터 있었다. 며칠 전 진료 이후 출혈이 줄어드는 듯해 안심했던 것이 전날 밤이었다. 지금은 화장실에 다녀올 때마다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병원에서 받은 안내지를 식탁에 펴 놓고 전화부터 했다. 토요일 진료 시간 안이었다. 증상을 설명하는 도중 통증이 심해져, 서윤은 잠시 말을 멈췄다. 수화기 너머의 간호사가 이름을 다시 불렀다.“듣고 있어요. 그런데 아까보다…….”그녀는 몸을 일으키다가 식탁에 다시 기대었다. 출혈이 갑자기 늘었고 어지러웠다. 간호사는 혼자 움직이지 말고 즉시 응급 도움을 받으라고 했다. 서윤은 통화를 마치자마자 119를 눌렀다.주소를 말하는 동안 휴대전화가 미끄러지지 않게 식탁에 올려놓았다. 현관문을 열어 두라는 안내를 듣고 천천히 걸어가 잠금을 풀었다. 가방은 가까운 의자에 있었다. 그녀는 병원 봉투와 신분증을 챙겨 넣은 뒤, 더 움직이지 말라는 말에 따라 현관 근처에 앉았다.도현에게 먼저 전화를 걸지 않았다. 누군가의 허락을 받거나 도착을 기다릴 시간이 아니었다. 현관문 밖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자 서윤은 안쪽에 있다고 답했다.병원에서는 비슷한 질문에 몇 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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