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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화. 남편의 확인

Penulis: YuIm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10-27 13:15:45

“앞에 보낸 말도 있어.”

서윤은 자기 휴대폰을 켜서 도현에게 내밀었다. 채령이 잘라 보낸 문장 바로 위에는 담당 편집부에 비공개 검토를 요청하겠다는 말이 남아 있었다. 대화창을 더 올리면 그전에 보낸 원본 사진들도 나왔다.

도현은 화면을 읽고도 자기 휴대폰을 거두지 않았다.

“채령이는 지금 이걸 밖에 퍼뜨리겠다는 말로 들은 거야.”

“편집부에 제출한다고 썼잖아.”

“받는 사람이 그렇게 느꼈다는데.”

서윤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림을 보여 주려고 앞쪽으로 옮겨 둔 종이가 팔에 걸려 바닥으로 흘렀다. 도현이 먼저 허리를 숙여 주워 주었다. 종이는 순서대로 놓지 않고 한데 모아 건넸다.

“이런 건 말로 풀어. 글로 보내니까 서로 오해하잖아.”

“오늘 만나서 얘기했어.”

“좀 더 좋게.”

“그림을 쓴 경위를 알려 달라고 했어. 어떻게 더 좋게 말해야 해?”

도현은 대답하지 않고 스케치북 표지를 보았다. 서윤은 원본을 보관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부터 다시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쳤다. 하지만 그가 그림을 보지 않은 채 나가게 두고 싶지는 않았다.

“당신도 이거 알아.”

“안다고 했잖아.”

“그럼 누가 그렸는지도 알잖아.”

도현은 잠시 고개를 들었다.

“네가 그렸지.”

대답이 너무 쉽게 나와 서윤은 다음 말을 바로 잇지 못했다. 도현이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기 전에 종이 한 장을 그의 앞에 펼쳤다.

“그걸 채령 언니한테 말해 줘.”

“그게 지금 무슨 도움이 되는데.”

“내가 자기 자료를 가져간 것처럼 얘기하잖아. 그건 아니라고 말해 줘.”

도현은 원고를 내려다보다 종이를 반듯하게 맞췄다. 옆면에 채령의 소개서가 겹쳐 있었다. 그는 그쪽을 위로 올려놓았다.

“옛날 습작 얘기하고 지금 나오는 작품 얘기는 다르지. 채령이가 새로 만든 부분도 있잖아.”

“내가 그 부분까지 달라고 했어?”

“회사에서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겠냐고. 복귀 직전에 남의 아내가 나타나서 자기 이름 넣어 달라는데.”

서윤은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남의 아내라는 말이 도현의 입에서 나왔다. 지금 그의 앞에 선 사람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지 잠깐 알 수 없어졌다.

“지금 내가 누구 아내인 게 왜 나와.”

“사람들이 그렇게 보니까.”

“당신까지 그렇게 말하면 나는 누구한테…….”

도현은 손에 든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그는 오늘은 더 얘기해 봐야 싸우기만 하겠다며 방을 나갔다. 서윤은 그를 따라가지 않고 책상 위의 소개서를 옆으로 치웠다.

원본의 첫 장에는 자신의 이름이 있었다. 이름 옆을 손으로 눌러 펴자 오래된 종이의 접힌 자국이 남았다.

월요일 오전, 대학 때 같은 모임에 있던 사람에게 메시지가 왔다.

[혹시 이거 너 얘기야?]

짧은 글 뒤에 이미지 몇 장이 붙어 있었다. 채령의 복귀 소식을 전하는 업계 대화방에서 넘어왔다고 했다. 서윤은 처음에는 자신이 보낸 그림인 줄 알아보고도 왜 거기에 들어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월요일 낮까지 답변이 없으면 원본과 오늘 나눈 이야기도 함께 제출하겠습니다.

잘린 말풍선 아래로 설명이 붙어 있었다. 오래전 공동 자료를 본인의 단독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복귀 일정을 앞두고 작가를 압박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보낸 사람의 프로필 사진은 흐려져 있었지만, 유명 작가의 배우자라는 말은 지워지지 않았다.

다음 이미지에는 『물의 가장자리』 행사 사진이 있었다. 객석에 앉은 서윤과 미숙에게 작은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서윤은 사진을 확대했다. 손목 보호대를 가리려고 소매를 내리던 순간이었다. 카메라 쪽을 보고 있지도 않은 자신의 얼굴이 어떤 설명보다 먼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같은 모임에 있었던 사람에게 답을 썼다.

[내가 보낸 메시지는 맞아. 앞부분이 빠져 있어.]

곧바로 전체 대화와 스케치북의 표지를 보냈다. 왜 연락했는지 설명하려고 문장을 더 붙이는데 상대의 답이 왔다.

[그럼 저 얘기가 잘못된 거네. 일단 나한테 온 쪽에는 그렇게 말할게.]

서윤은 고맙다고 썼다. 다만 그 사람이 처음 나온 곳까지 찾아 정정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서부터 퍼졌는지 물었지만 여러 번 전달된 이미지라 잘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채령의 홍보 페이지에도 짧은 글이 올라와 있었다.

오래전 함께 검토했던 연습 자료에 대한 이견이 있어 제작사와 경위를 확인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누구의 이름도 쓰지 않았지만, 아래에 붙은 댓글들은 이미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공개된 그림 보고 선만 다시 따서 자기 원본이라고 하는 거 아닌가.

유명한 남편 있으면 본인도 작가인 줄 아나.

서윤은 화면을 내리다가 멈췄다. 종이에 연필로 남아 있는 손이, 이제는 채색된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린 것이 돼 있었다.

그 사이에는 다른 댓글도 있었다. 정말 예전 원고라면 시점부터 확인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잘린 대화만 보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말도 보였다. 서윤은 그 문장을 읽고 나서야 자신이 숨을 참은 채 화면을 보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원본을 펼쳐 보여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사람에게 보내는 사진과 공개된 페이지에 올리는 자료는 달랐다. 원고 여백에는 합평 모임 사람들의 이름과 당시 연락처가 남아 있었다.

서윤은 필요한 부분만 복사한 파일을 만들었다. 이름과 번호를 가리는 동안에도 새 댓글 알림이 붙었다. 잘못이 아닌 것을 설명하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알 수 없었다.

개인 계정으로 짧은 답글을 남겼다.

해당 콘티를 그린 사람입니다. 공개 미리보기를 보고 새로 만든 그림이 아닙니다. 원본과 전체 대화를 보관하고 있으며 담당 창구에 확인을 요청하겠습니다.

공개 답글에는 원고의 일부만 붙였다. 사람들의 연락처를 지운 페이지였다. 누군가는 자료를 더 봐야겠다고 했고, 다른 사람은 당사자끼리 해결하라고 했다. 그 답글만으로 이미 전달된 사진의 설명이 바뀌지는 않았다.

서윤은 채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끝까지 갔지만 받지 않았다. 대화방에 전체 메시지가 잘린 채 퍼지고 있다고 쓰고, 원본을 공개 미리보기에서 따라 그린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 달라고 요청했다.

읽음 표시가 붙은 뒤 한참 지나서 답이 왔다.

[내가 네 이름을 공개한 적은 없어. 확인 중이라고 썼잖아. 나도 회사랑 얘기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서윤은 화면을 보다가 물었다.

[제가 언니 그림을 따라 그린 건 아니라고 말씀해 주세요.]

그 메시지에는 답이 오지 않았다.

점심을 지나서 미숙에게 전화가 왔다. 서윤은 어머니가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묻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에서 한숨부터 들었다.

“너 채령이라는 사람이랑 무슨 일 있니?”

“누가 그래?”

“사진이 돌아다니잖아. 나도 거기 같이 찍혀 있는데. 도현이는 알고 있어?”

서윤은 책상 위의 원고를 보았다. 어머니에게 보여 주려고 가져갔다가 꺼내지도 못했던 태블릿이 그 옆에 있었다.

“내가 옛날에 그린 걸 그 사람이 썼어. 그래서 확인해 달라고 했고.”

“그렇게까지 똑같이 썼대?”

“응. 같은 장면이야.”

“그런데 저쪽에서는 네가 따라 했다고 한다며.”

“엄마, 종이 원본이 나한테 있어.”

미숙은 잠시 말이 없었다. 서윤은 어머니가 어떤 자료를 보여 달라고 할지 기다렸다. 스케치북을 사진으로 보내겠다는 말을 꺼내려는데 미숙이 먼저 물었다.

“도현이가 뭐래?”

“지금 내 그림 얘기하고 있잖아.”

“내가 알아야 얼마나 아니. 그쪽 일을 아는 사람이 봐야지.”

“도현 씨도 내가 그린 걸 알아.”

“그럼 남편한테 맡겨. 네가 나서서 싸우면 그 사람까지 곤란해지잖니.”

서윤은 책상 옆에 세워 놓은 복사본을 눕혔다. 어머니는 그림을 보여 달라는 말 대신 도현이 뭐라고 했는지부터 물었다.

“사위가 곤란한 건 걱정돼?”

미숙이 말을 멈췄다. 서윤도 자신이 그런 질문을 했다는 사실에 잠깐 놀랐다. 하지만 이미 나온 말을 없던 것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내 얼굴이 돌아다니고 있잖아, 엄마.”

“그러니까 조용히 해결하라는 거지. 네 생각을 안 해서 그러겠니.”

“내가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하는데.”

“일단 네가 좀 참아. 도현이가 알아서 얘기하겠지.”

서윤은 지금은 더 통화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숙이 무슨 말을 보태기 전에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책에 사인을 받았다는 메시지 아래로 어머니의 부재중 전화가 다시 쌓였다.

서윤은 전화를 다시 받는 대신 제작사 홈페이지를 열었다. 채령이 보내 주지 않은 연락처를 직접 찾아야 했다. 홍보 문의와 입사지원 사이에 권리 관련 문의 주소가 작게 적혀 있었다.

주소를 복사해 새 메일의 받는 사람 칸에 붙였다. 아직 제목은 쓰지 않았다.

저녁에 들어온 도현은 서윤의 공개 답글을 이미 본 상태였다. 그는 식탁에 가방을 놓자마자 댓글을 왜 썼느냐고 물었다. 서윤은 원고를 그대로 들고 나왔다.

“내가 따라 그렸다고 하니까.”

“회사에서 확인하고 있잖아.”

“그 회사가 나한테는 아무것도 안 물었어.”

도현은 외투를 벗으며 지금 연락해서 묻겠다고 했다. 서윤은 그의 팔에서 외투를 받아 주지 않고 종이를 식탁 위에 놓았다.

“먼저 이것부터 봐.”

그는 의자를 당기지 않은 채 서서 그림을 내려다보았다. 서윤은 사진을 확대하지도, 전체 이야기를 다시 설명하지도 않았다. 수정 종이를 들어 첫 손그림이 드러나게 했다.

“이 손, 당신이 고치라고 했지.”

도현은 종이를 보다가 눈을 들었다.

“손가락 하나 많다고. 기억 안 나?”

“기억나.”

“그때 내가 그리고 있던 거였잖아.”

“그랬지.”

서윤은 스케치북 옆에 채령의 그림을 놓았다. 가방 손잡이 바깥으로 손톱 하나가 더 나와 있었다. 도현의 시선이 그곳에서 멈췄다.

“이걸 보고도 내가 채령 언니 걸 따라 그렸다는 말이 맞아?”

“누가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는데, 나까지 그런 말을 했다는 식으로 몰지 마.”

“그러니까 아니라고 말해 달라는 거야.”

“채령이가 가져간 파일에 네 그림이 있었을 수는 있어. 그런데 그걸 쓰지 말라고 한 적은 없잖아.”

“색 연습해 보라고 했지. 연재하라고 한 게 아니고.”

“그때 그런 얘기를 정확히 했는지 어떻게 알아.”

서윤은 더 찾아볼 자료를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기억이 나지 않아 못 믿는 게 아니라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도현은 자신이 수정하라고 했던 손을 보고도 원고를 돌려놓고 있었다.

“그림은 내가 그렸어. 그건 당신도 안다고 했잖아.”

“지금 나오는 걸 네 작품이라고 하라는 거야?”

“내가 만든 장면까지 언니 거라고 하지는 말아 줘.”

도현은 채령의 소개서를 집어 원본 위에 올렸다. 맨 위에 문채령이라는 이름이 보이도록 종이를 반듯하게 맞췄다.

“그건 채령이 작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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