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008화. 내가 그린 그림

Penulis: YuIm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10-27 13:15:43

“원본까지 가져왔어?”

채령은 서윤의 가방에서 나온 스케치북을 보고 웃었다. 카페 창가에 앉아 있던 그녀 앞에는 커피가 2잔 놓여 있었다. 서윤은 코트를 벗지 않은 채 맞은편 의자에 가방부터 내려놓았다.

“직접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아직도 그걸 갖고 있네. 난 이사하면서 예전 건 거의 버렸는데.”

채령은 서윤의 커피를 조금 앞으로 밀어 주었다. 잔 밖으로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서윤은 따뜻한 물도 주문할 수 있는지 물은 뒤 스케치북을 펼쳤다.

금요일 오전의 카페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커피 머신이 돌아갈 때마다 목소리를 조금 높여야 했고, 그러고 나면 옆자리까지 이야기가 들렸을까 봐 신경이 쓰였다. 서윤은 원고를 채령 쪽으로 돌리며 말을 시작했다.

“소개서에 들어간 세탁소 장면이요. 여기부터 여기까지 제 콘티랑 같아요.”

채령이 종이 위를 내려다보았다. 손을 뻗어 페이지를 넘기려기에 서윤이 먼저 해당 장을 펼쳐 주었다. 오래된 접착 부분을 더 벌리고 싶지 않았다.

“이거 보여 주려고 보자고 한 거야?”

“네. 어떻게 쓰시게 된 건지 듣고 싶어서요.”

“우리가 그때 작업 같이 했잖아.”

채령은 어렵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듯 말했다. 서윤은 복사본을 한 장 더 올려놓았다.

“언니가 색 연습해 보고 싶다고 가져가셨어요.”

“응. 그래서 같이 해 봤지.”

“그림은 제가 다 그린 다음이었고요.”

채령은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 테이블 위에 놓인 손에는 얇은 반지가 2개 끼워져 있었다. 그녀가 잔을 놓자 컵 받침이 살짝 밀려 스케치북 아래로 들어왔다.

“서윤아. 색만 얹으면 그냥 네 그림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색은 언니가 하셨죠. 간판이랑 배경도 새로 그리셨고요. 그 부분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서윤은 가져온 종이에서 표시한 곳을 짚었다.

“가게 안을 가렸다가 보여 주는 순서, 여자가 돌아서는 위치, 손을 내미는 장면이요. 대사도 마지막 말만 바뀌었고요.”

“그런 구도는 많이 써.”

“따로 보면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이어지는 건 제가 만든 거예요.”

서윤의 손가락이 종이 위에서 다음 칸으로 움직였다. 채령은 그 손을 따라보지 않고 복사본 전체를 보았다. 마지막 장을 조금 들어 뒤집더니 아무것도 없자 다시 내려놓았다.

“이것만 보고 작품 전체를 얘기하면 곤란해. 내 건 이제 시작하는 장편이야. 뒤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

“그래서 이 장면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채령의 표정에서 웃음이 조금 옅어졌다. 서윤은 지금이라도 오래된 파일을 잘못 골랐다고 말해 주기를 기다렸다. 그렇다면 어디에 어떤 이름을 넣을지 정하면 됐다.

채령은 대신 손가락이 그려진 부분을 확대해 보았다.

“이건 나도 고쳐야겠네.”

가방 손잡이 옆의 작은 손톱이었다. 서윤은 곧바로 수정 종이를 들어 원본의 손을 보여 주었다.

“제가 고치기 전에 보낸 파일에 있던 거예요.”

“옛날 자료가 많이 섞여 있었으니까.”

“그 자료를 제가 보내 드렸고요.”

“그래. 네가 보내 준 것도 있었지.”

서윤은 손에 들고 있던 수정 종이를 내려놓았다. 있었다는 말에 자기 스케치북이 여러 사람의 낱장 중 하나가 됐다. 채령은 커피를 더 마시지도 않고 잔을 만지며 말을 이었다.

“모임에서 서로 아이디어 주고받던 건데, 10년도 더 지나서 누구 것인지 하나씩 나누자는 건 좀 그렇지 않아?”

“이건 합평 전에 제가 그려 간 거예요.”

“합평하고 고쳤잖아.”

“순서는 다시 원래대로 했어요. 그걸 언니가 가져가신 거고요.”

“그걸 지금 다 기억해?”

서윤은 스케치북의 앞장을 펼쳤다. 제목을 지웠던 흔적과 페이지 옆에 적힌 메모가 보였다. 채령은 그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원고를 본다는 느낌보다 서윤의 말을 끝까지 들어 준다는 태도에 가까웠다.

“네가 오래 갖고 있었던 건 알겠어.”

“갖고 있었던 게 아니라 제가 그렸어요.”

생각보다 큰 목소리가 나왔다. 커피 머신이 멈춘 뒤였다. 서윤은 옆자리를 돌아보지 않으려고 앞장에 놓인 자기 손만 보았다.

채령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도현이는 알아?”

“이 그림이 제 것인 건 알아요. 오늘 만나는 것도 말했고요.”

“그럼 남편이랑 먼저 잘 얘기해 보지 그랬어. 굳이 나한테 이렇게까지…….”

“언니 작품에 쓰인 거라서 언니한테 말씀드리는 거예요.”

채령은 답하지 않았다. 창가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테이블 위에 그림자를 남겼다. 서윤은 스케치북 위로 떨어지는 그늘 때문에 자꾸 눈을 좁혔다. 원고를 조금 옆으로 당기자 채령이 그제야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뭔데?”

서윤은 가방에서 짧게 적어 온 종이를 꺼냈다. 말을 하다 놓칠 것 같아 아침에 써 온 것이었다. 채령에게 종이를 건네지는 않고 자기 앞에 놓았다.

“이 장면의 콘티를 제가 만들었다는 걸 밝혀 주세요. 앞으로 쓰실 때는 어떤 범위로 쓸지도 먼저 얘기하고요.”

“작가 이름을 같이 넣어 달라는 거야?”

“표기는 편집부랑 정하면 되잖아요. 연습해 보시라고 드린 걸 연재에 쓰는 건 얘기가 다르니까요.”

“이제 와서 계약을 바꾸라고?”

“언니가 그린 부분까지 제 이름을 달라는 게 아니에요.”

“회사에서 그걸 그렇게 간단하게 나눌 수 있겠니.”

서윤은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제작 과정을 간단히 나눌 수 없다면 같이 확인하면 됐다. 하지만 채령은 담당자와 논의해 보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럼 담당자분과 함께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채령의 손이 컵 받침에서 떨어졌다.

“내가 알아서 얘기할게.”

“제가 자료도 설명하고 싶어요.”

“서윤아, 너 지금 많이 예민한 것 같아.”

테이블 아래로 발끝에 힘이 들어갔다. 서윤은 구두를 벗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예민하지 않다고 말하기 시작하면 왜 이런 말을 하는지부터 다시 설명해야 했다.

“잘못 전달되면 고치기가 더 어려우니까요.”

“내가 잘못 전달할 거라는 뜻이야?”

“제 작업은 제가 설명하겠다는 뜻이에요.”

채령은 휴대폰 화면을 한번 확인했다. 서윤이 말을 마치자 약속 시간이 다 됐다며 가방을 챙겼다. 위층 작업실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일단 내가 회사랑 얘기해 볼게. 네가 도와준 건 감사 인사에 넣을 수 있을 거야.”

“도움이라고만 쓰면 제가 만든 부분은 안 보이잖아요.”

“그것도 내가 부탁해야 하는 일이야.”

채령은 복사본을 모았다. 원본 스케치북까지 겹쳐 잡으려기에 서윤이 손을 뻗어 먼저 가져왔다.

“원본은 제가 갖고 갈게요.”

“그림을 봐야 설명하지.”

“복사본 드릴게요. 파일도 같은 걸로 보내 드리고요.”

채령은 손을 떼고 코트를 걸쳤다. 카페 입구 쪽에서 누군가 그녀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채령은 밝게 웃으며 답한 뒤 서윤에게 조금 전보다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혼자 끌어안고 생각하지 마. 도현이한테도 잘 얘기해 볼게.”

늘 하던 대로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서윤은 입을 열었다. 여기서 보내면 다음 답도 도현을 거쳐 올 것 같았다.

“제게 답 주세요.”

채령이 돌아보았다.

“이 얘기는 저랑 하고 계신 거잖아요.”

문이 닫힌 뒤 서윤은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지 못했다. 따뜻한 물은 거의 식었고, 커피에는 얼음이 몇 개 남아 있었다. 스케치북을 가방에 넣으려는데 복사본 한 장이 의자 밑으로 떨어졌다.

그것을 주워 스케치북에 끼웠다. 집에 돌아가면 오늘 보여 준 페이지를 파일로도 보내 둘 생각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도현은 없었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은 서윤은 외투도 벗지 않고 복도 끝 방으로 갔다. 빈 의자에 가방을 올려두었다가 내려놓고 앉았다.

아침에 적어 간 종이에는 말하지 못한 내용이 남아 있었다.

어떤 파일을 받았는지.

회사에 누구의 자료라고 설명했는지.

공개된 장면 외에도 사용한 부분이 있는지.

서윤은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채령이 답한 말들을 적었다. 답하지 않은 것은 빈칸으로 두었다. 색을 연습하겠다고 받았다는 자신의 기억과 채령이 공동 작업이었다고 한 말을 같은 문장으로 섞지 않았다.

그 뒤 채령에게 약속한 복사본 파일을 보냈다.

[오늘 보여 드린 원본의 해당 페이지입니다. 원고는 제가 보관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전송한 뒤 오래 망설였다. 담당자에게 전달하겠다고 했으니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말은 없었다.

서윤은 새 메시지에 원하는 답을 적었다.

[사용 경위와 표기 문제를 담당 편집부에 비공개로 검토 요청하려고 합니다. 함께 확인할 담당자 연락처를 알려 주세요.]

다음 메시지는 몇 번 고쳐 썼다. 처음에는 시간을 내주어서 고맙다고 적었다. 지우고, 자신이 언제 다시 연락할지를 적었다.

[월요일 낮까지 답변이 없으면 원본과 오늘 나눈 이야기도 함께 제출하겠습니다.]

2개의 말풍선 아래에 읽음 표시가 붙었다.

채령은 연락처를 보내지 않았다. 서윤은 휴대폰을 책상 옆에 놓고 자기 원고를 열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며칠 전 미뤄 둔 작은 만화의 마지막 장면이 아직 비어 있었다.

창가의 새가 날아간 뒤, 여자는 컵을 씻기 시작했다. 서윤은 처음처럼 물을 세게 틀지 않도록 손가락의 위치를 고쳤다. 화면에 내려오는 물줄기를 얇게 그리자 컵의 파란 선이 남았다.

도현이 들어온 것은 저녁 7시가 넘어서였다. 서윤은 거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원고를 저장했다. 채령에게서 연락이 왔는지 먼저 묻고 싶었지만, 방문 앞에 선 그의 얼굴을 보고 말을 멈췄다.

“채령이 만났어?”

“응. 오전에.”

“어떻게 얘기했는데?”

“내 원고에서 가져간 부분을 설명했어. 이름을 어떻게 넣을지, 앞으로 쓸 때는 먼저 얘기하자고.”

“그것만?”

서윤은 의자에서 몸을 돌렸다.

“그것만이라니?”

도현은 그녀의 책상 위를 보았다. 스케치북과 복사본, 오늘 대화를 적은 종이가 펼쳐져 있었다. 서윤은 그가 이제라도 그림을 보려는 줄 알고 비교한 페이지를 앞으로 옮겼다.

“여기 봐. 손가락까지…….”

“그건 나중에 보고. 회사에 문제 제기하겠다고 했어?”

“같이 확인할 담당자를 알려 달라고 했어.”

“그게 회사에 얘기하겠다는 거잖아.”

“언니가 나한테 답을 안 했으니까.”

도현은 자기 휴대폰을 책상 위에 놓았다. 서윤 쪽으로 돌린 화면에는 채령과 주고받은 대화가 떠 있었다. 서윤이 보낸 메시지를 잘라 붙인 이미지가 중간에 끼어 있었다.

담당 편집부에 비공개로 검토를 요청하겠다는 첫 말풍선은 보이지 않았다.

월요일 낮까지 답변이 없으면 원본과 오늘 나눈 이야기도 함께 제출하겠습니다.

그 문장 위에 채령이 보낸 말이 있었다.

[당신 아내가 나를 협박해.]

Lanjutkan membaca buku ini secara gratis
Pindai kode untuk mengunduh Aplikasi

Bab terbaru

  • 죽은 아내의 웹툰이 연재되기 시작했다   018화. 담당 종료

    5월 7일 오후, 서윤은 입원 가방을 옆에 세워 놓고 다시 진료를 기다렸다. 아침에 예정했던 절차는 바뀌어 있었다. 몸 상태를 확인받고 필요한 처치를 받은 뒤 다음 진료를 잡을 때까지, 가방은 의자 옆에 그대로 있었다.직원이 일정을 확인하며 물었다.“다음에는 이 시간에 오실 수 있으세요?”“네. 올 수 있어요.”서윤은 수첩에 날짜를 적고 새 예약을 확인했다. 다음 날 다시 병원에 왔고, 이어진 조정을 거쳐 5월 12일 입원했다.짐을 풀자 가방 속에서 구겨진 안내지가 나왔다. 지난주에 쓰려던 종이였다. 그녀는 그것을 버리지 않고 다른 서류 밑에 넣었다.입원 중의 하루는 검사와 진료 시간에 맞춰 흘렀다. 그사이에는 병상에 누워 쉬었다.도현이 파일 위치를 물으면 폴더 이름만 답했다. 집에 언제 오느냐는 질문에는 퇴원 날짜를 아직 모른다고 했다. 병원에서 컴퓨터를 쓸 수 있는지 묻는 말은 답하지 않은 채 남겨 두었다.의사는 병이 위 바깥까지 퍼져 있다고 설명했다. 수술로 모두 제거하기 어려운 상태였고, 약물치료를 포함해 가능한 방법을 따져야 했다. 서윤은 설명을 들으며 수첩을 펼쳤다가 펜을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다 적으려고 하지 않고 먼저 들었다.“그럼 수술은 안 하는 거예요?”“지금 확인한 범위에서는 수술로 없애는 치료를 우선하기 어렵습니다. 병의 진행을 억제하는 치료를 검토하면서, 식사와 통증 문제도 같이 조절해야 해요.”“아무것도 못 하는 건 아니죠?”의사는 현재 할 수 있는 일과 몸 상태에 따라 조정해야 하는 일을 나누어 말했다. 서윤은 치료를 받고 싶다고 답했다. 가능하다면 언제 시작할 수 있는지도 물었다.입원 중에는 먹을 수 있는 양과 불편한 증상을 알리는 일도 치료의 일부였다. 덜 아프다고 대답하면 빨리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던 습관이 남아 있어, 간호사가 물을 때마다 서윤은 잠깐 생각해야 했다. 어느 때 더 아팠는지, 먹은 뒤 무엇이 불편했는지 말하고 나면 시간이 좀 걸렸다. 그래도 그 말을 적는 사람이 있었다.퇴원 수납을

  • 죽은 아내의 웹툰이 연재되기 시작했다   017화. 잠긴 작업실

    5월 7일 아침, 여행 가방은 현관에 나와 있었다. 서윤은 병원에서 가져오라고 한 서류를 확인하고 휴대전화에 택시 호출 화면을 띄웠다. 아직 호출 버튼은 누르지 않았다. 도현이 뒤에서 종이 한 장을 내밀었기 때문이었다.“이거 한 줄만 봐.”서윤은 시간을 확인했다. 8시 55분이었다.“지금 나가야 해.”“병원 10시잖아. 읽는 데 1분도 안 걸려.”그가 가져온 것은 축하 영상의 대본이었다. 지난주에 자료를 보낸 뒤 추가 촬영용으로 다시 고쳐 달라는 요청이 왔다고 했다. 서윤이 쓰지 않은 문장이 중간에 들어가 있었다. 오래된 원고에서 인물의 대사를 떼어 작가 자신의 경험처럼 붙인 부분이었다.“이건 인물이 한 말이잖아.”“그래서 좀 이상하다고. 내가 한 말처럼 바꿔 줄 수 없어?”“빼면 돼.”“그걸 빼면 앞에 영상이랑 안 맞는다니까.”도현은 종이를 돌려 그녀 쪽으로 더 밀었다. 서윤은 휴대전화를 식탁에 놓고 잘라낼 문장에 표시했다. 출발 시각을 늦추지 않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했다. 선을 긋자 도현은 그 뒤에 이어질 말을 물었다.“그건 당신이 해. 생각해 둔 게 있잖아.”“지금 이 상태로 넘기라는 거야?”서윤은 펜을 내려놓았다. 도현은 촬영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30분 안에 보내겠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가능한지 묻지 않은 약속이었다.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서윤이 가방을 들자 그가 작은 방을 가리켰다.“원고도 같이 열어 봐야 해. 장면 순서가 달라져서.”“오늘 못 한다고 했어.”“입원해도 바로 뭘 하는 건 아니잖아. 접수만 조금 늦으면 되는 거 아니야?”“당신이 정할 일이 아니야.”목소리가 커지자 도현은 거실 창문 쪽을 보았다. 밖에서 들을 사람을 의식하는 그 동작 때문에, 서윤은 자신도 모르게 낮추려던 목소리를 그대로 두었다.“내가 병원에 가야 한다고 몇 번 말했어. 날짜도 2번 바꿨어.”“그러니까 오늘 끝내고 가라고.”도현은 같은 설명을 반복하며 촬영 담당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끝나면 나갈 수

  • 죽은 아내의 웹툰이 연재되기 시작했다   016화. 다음 입원일

    서윤은 돌려받은 봉투를 책상 서랍 안쪽에 넣었다. 은수가 보관할 원고 목록에는 그 봉투가 없었다. 목록을 접어 파일철에 끼운 뒤에도 책상 위에 남은 종이가 많아, 당장 필요한 병원 안내부터 가방에 챙겼다.4월 16일 진료에는 예약한 시각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앞선 검사 자료가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확인하고 앉아 있으니, 간호사가 최근 식사량을 물었다. 서윤은 잘 먹고 있다고 답하려다가 전날 먹은 것을 차례로 말했다. 말하고 보니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적었다.진료실에서는 검사 결과와 몸 상태를 함께 보았다. 의사는 병의 범위를 더 확인하고 치료 계획을 정하기 위해 입원 평가를 권했다. 먹는 양이 줄어든 문제도 같이 살펴야 했다.“며칠 정도 생각하면 될까요?”“검사와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우선 입원해서 필요한 평가를 진행하고 계획을 설명드리겠습니다.”서윤은 달력을 열었다. 의사가 기다려 주는 동안 남편의 일정이 화면에 나타나, 자기 예약을 적은 작은 수첩을 따로 꺼냈다. 4월 23일 옆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그날로 해 주세요.”그녀는 날짜를 받아 적었다. 병원에서는 그 사이에도 증상이 심해지면 예정일까지 기다리지 말고 연락하라고 했다.진료실을 나오자 다음 주 원고가 먼저 떠올랐다. 서윤은 메신저를 열려던 손을 멈추고 입원 준비물 안내부터 읽었다. 빠진 물건을 적어 둔 뒤 약국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도현에게 날짜를 말한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그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었다.“아직 몰라. 검사도 더 해야 하고, 치료 계획을 잡아야 한대.”“그럼 검사하는 데 시간을 얼마나 쓰는지도 모르는 거야?”“해 봐야 정할 수 있대.”서윤이 가방에서 안내를 꺼내 식탁에 놓았다. 도현은 종이를 읽는 대신 메신저에 올라온 수정 요청을 확인했다. 다음 주까지 넘겨야 하는 원고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인물이 싸우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었다.“내가 그 부분은 건드려 봤거든. 그런데 앞뒤가 또

  • 죽은 아내의 웹툰이 연재되기 시작했다   015화. 완성되지 않은 선

    원고를 가방에 넣으려니 가장 오래된 스케치북이 들어가지 않았다. 서윤은 모서리를 억지로 눌러 보다가 가방을 바꾸었다. 남편의 행사 자료를 넣던 큰 보조 가방이었다. 안쪽 주머니에서 지난 행사장의 안내 종이가 나와, 그것만 빼서 책상에 놓았다.4월 13일 오전, 바닥에 펼친 스케치북들은 크기부터 제각각이었다. 문구점에서 산 얇은 연습장 옆에는 표지가 떨어져 고무줄로 묶어 둔 것도 있었다. 종이마다 적힌 날짜는 몇 년씩 떨어져 있었고, 뒤쪽이 통째로 빈 공책도 눈에 띄었다. 남편의 원고가 급해질 때면 그리던 장을 덮어 두곤 했다.서윤은 완성한 그림에 붙여 둔 파란 표시를 확인했다. 말풍선과 동작만 잡아 둔 콘티에는 회색 표시를 붙였다. 선을 정리하지 못한 인물들은 얼굴이 동그라미뿐인 경우도 있었다. 어느 해의 것은 연필이 너무 흐려서, 나중에 촬영할 때 빛을 따로 비추어야 할 것 같았다.한 장을 넘기다가 여자가 혼자 빵을 먹는 그림에서 멈췄다. 봉투를 열기 전에는 맞은편에 의자가 하나 더 있었다. 먹기 시작한 뒤의 칸에는 여자가 벗어 놓은 외투 때문에 그 의자가 반쯤 가려졌다.서윤은 옷깃을 고쳐 그리려다 펜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고치는 날보다 무엇을 남길지 정하는 날에 가까웠다.몸이 허락하는 만큼만 하자고 생각하며 원고를 다시 묶었다. 다음 진료일이 적힌 종이는 가방 바깥 주머니에 넣었다. 계약을 한 다음에도, 원고를 고르는 아침에도 그 날짜는 필요했다.은수는 전날과 같은 상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노트북 옆에 빈 파일철과 촬영용 받침대를 준비해 놓았다. 서윤이 가방을 내려놓자 은수가 손을 뻗다가 먼저 물었다.“꺼내도 될까요?”서윤은 스케치북부터 꺼내 달라고 했다. 원고의 크기가 달라 책상 위에 한꺼번에 펴 놓을 수는 없었다. 은수는 몇 권만 펼치고 나머지는 의자 위에 세워 놓았다. 두 사람이 앉은 책상 사이로 연필 자국과 지운 흔적들이 이어졌다.“이쪽은 완성본이고요. 여기부터는 콘티예요.”서윤은 표시 색을 설명했다. 은수는 회색 표

  • 죽은 아내의 웹툰이 연재되기 시작했다   014화. 윤슬의 계약

    월요일 오전, 서윤은 진료 대기실에서 예약 문자를 다시 확인했다. 산부인과의 후속 진료를 마치면 같은 건물의 다른 층으로 가야 했다. 지난주에 잡아 둔 소화기 진료였다.의사는 유산 이후의 상태를 확인하고 이후에 살펴야 할 증상을 설명했다. 서윤은 안내를 듣고 나온 뒤 다음 진료과에 최근의 일을 알렸다. 임신 사실과 유산한 날짜를 말하는 동안, 접수 직원은 필요한 항목을 조용히 입력했다. 그 말을 끝까지 들은 사람에게는 별도의 변명이 필요하지 않았다.소화기 진료실에서 서윤은 몇 달 전부터 속이 답답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끼니가 늦어져서라고 생각했고, 다음에는 임신 때문인 줄 알았다고 했다. 의사는 어느 쪽으로도 바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식사량과 통증, 최근의 변화에 관해 차례로 물었다.“유산 전에도 먹는 양이 많이 줄었어요?”“네. 배가 고픈데 먹기 시작하면 금방 못 먹겠어요.”최근 검사 결과를 확인한 의사는 위내시경 검사를 권했다. 서윤은 검사 방법과 준비 사항을 듣고 가능한 날짜를 골랐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그 시간을 선택하면서도 남편의 작업 일정을 먼저 열어 보지는 않았다.4월 8일의 검사가 끝난 뒤,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설명을 기다렸다. 의사는 병변이 있어 조직을 채취했다고 말했다. 검사 결과를 확인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추가 촬영 일정을 잡았다. 서윤은 그가 화면의 어느 곳을 가리키는지 보았지만 색과 형태만으로는 알아볼 수 없었다.“안 좋은 건가요?”“확인이 필요한 소견입니다. 조직검사와 영상검사 결과를 같이 보고 설명드릴게요.”집에 돌아와 내시경 사진을 펼쳤다가 다시 덮었다. 인터넷에서 비슷한 이미지를 찾아 나란히 놓아도 무엇이 같은지 알 수 없었다. 한 사람은 별일 아니었다고 했고, 다른 사람은 전혀 다른 결과를 적었다. 서윤은 검색 창을 닫고 병원에서 받은 다음 예약을 확인했다.도현은 그녀가 책상 앞에 오래 있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날 저녁에도 컴퓨터가 꺼져 있는 작은 방을 들여다보았다.“검사 아직도 안 끝났

  • 죽은 아내의 웹툰이 연재되기 시작했다   013화. 한 화 비워 둠

    도현은 현관 거울 앞에서 셔츠 소매를 접고 있었다. 서윤이 부엌에서 물을 마시는 동안 그는 재킷을 걸쳤다가 벗었다. 문채령의 행사 사진에 어떻게 나올지 휴대전화로 확인하느라, 신발을 신고도 한참 나가지 않았다.“오늘 저녁은 늦어. 뒤풀이까지 가야 할 것 같아.”서윤은 벽 달력을 보았다. 4월 5일의 날짜 위에 남편이 행사 이름을 크게 적어 놓았다. 그 아래에 자기 약속을 덧쓰려던 흔적은 없었다. 병원 일정은 이제 작은 방에 둔 종이에만 적었다.“나 오늘은 쉬어야겠어.”“알아. 어제 보낸 부분은 봤어.”“원고 말고, 몸이 안 좋아.”도현은 손에 든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떼었다. 그녀의 앞에 놓인 물컵을 보더니 냉장고 쪽을 한번 돌아보았다.“먹을 게 없으면 시켜 먹어. 굳이 나 기다리지 말고.”현관문이 닫힌 뒤 서윤은 물을 조금 더 마셨다. 아랫배의 통증은 아침부터 있었다. 며칠 전 진료 이후 출혈이 줄어드는 듯해 안심했던 것이 전날 밤이었다. 지금은 화장실에 다녀올 때마다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병원에서 받은 안내지를 식탁에 펴 놓고 전화부터 했다. 토요일 진료 시간 안이었다. 증상을 설명하는 도중 통증이 심해져, 서윤은 잠시 말을 멈췄다. 수화기 너머의 간호사가 이름을 다시 불렀다.“듣고 있어요. 그런데 아까보다…….”그녀는 몸을 일으키다가 식탁에 다시 기대었다. 출혈이 갑자기 늘었고 어지러웠다. 간호사는 혼자 움직이지 말고 즉시 응급 도움을 받으라고 했다. 서윤은 통화를 마치자마자 119를 눌렀다.주소를 말하는 동안 휴대전화가 미끄러지지 않게 식탁에 올려놓았다. 현관문을 열어 두라는 안내를 듣고 천천히 걸어가 잠금을 풀었다. 가방은 가까운 의자에 있었다. 그녀는 병원 봉투와 신분증을 챙겨 넣은 뒤, 더 움직이지 말라는 말에 따라 현관 근처에 앉았다.도현에게 먼저 전화를 걸지 않았다. 누군가의 허락을 받거나 도착을 기다릴 시간이 아니었다. 현관문 밖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자 서윤은 안쪽에 있다고 답했다.병원에서는 비슷한 질문에 몇 번씩

Bab Lainnya
Jelajahi dan baca novel bagus secara gratis
Akses gratis ke berbagai novel bagus di aplikasi GoodNovel. Unduh buku yang kamu suka dan baca di mana saja & kapan saja.
Baca buku gratis di Aplikasi
Pindai kode untuk membaca di Aplikasi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