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목요일 저녁.송유지는 퇴근을 준비하다 엄마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이번 주 토요일 저녁 시간 비워.유지는 화면을 한참 봤다.엄마가 먼저 약속을 잡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다.하지만 뒤이어 온 메시지가 조금 달랐다.—도하도 같이 와.유지의 손이 멈췄다.예전처럼 가족 식사에 우연히 마주치는 것도 아니고.무슨 일이 있어서 부르는 것도 아니었다.그냥.같이 오라고 했다.유지는 바로 채도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엄마가 토요일에 같이 오래요.답장은 금방 왔다.—무슨 일 있대?—아니요. 그냥 저녁 먹자고.잠시 뒤.—알겠어.유지는 화면을 보고 웃었다.별것 아닌 대답인데.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뛰었다.토요일 저녁.유지와 도하는 나란히 부모님 집에 들어갔다.엄마는 주방에서 음식을 정리하고 있었다.“왔어?”“응.”엄마는 도하를 한번 보고 말했다.“너도 앉아.”예전 같으면 그 한마디에도 긴장했을 텐데.이제는 조금 달랐다.도하도 자연스럽게 외투를 벗고 자리에 앉았다.아버지가 거실에서 나와 말했다.“오늘은 웬일로 셋 다 시간 맞았네.”엄마가 바로 대답했다.“그냥 밥이나 먹자고.”정말 그게 끝인 것 같았다.아무도 둘의 관계를 묻지 않았다.친척 이야기도.언니 이야기도.꺼내지 않았다.그냥 평범한 저녁이었다.식사 도중.엄마가 도하에게 물었다.“요즘 유지 보러 자주 내려간다며.”유지의 젓가락이 멈췄다.도하도 아주 잠깐 멈췄다가 대답했다.“네.”“힘들지 않아?”“괜찮습니다.”엄마는 반찬을 도하 쪽으로 밀었다.“그래도 운전 오래 하면 피곤해.”유지는 엄마 얼굴을 슬쩍 봤다.잔소리였다.그런데 이상하게.그 잔소리가 너무 평범했다.“엄마.”“왜.”“도하 씨 걱정해?”엄마가 바로 유지 쪽을 봤다.“운전 오래 한다잖아.”“그게 걱정하는 거잖아.”“밥이나 먹어.”아버지가 웃었다.“그만 놀려.”유지는 입술을 눌러 웃었다.잠시 후.엄마가 다시 말했다.“유지 복귀 날짜 확정됐지?”“응.”
일요일 오후.송유지는 엄마에게서 온 메시지를 한참 보고 있었다.—오늘 저녁 시간 되면 집에 와.짧은 문장이었다.그런데 왠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이모가 둘의 관계를 알게 된 뒤.친척들 사이에서도 이야기가 조금씩 퍼진 모양이었다.유지는 잠깐 고민하다 채도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엄마 집 가요.답장은 금방 왔다.—무슨 일 있어?—아마 친척들 얘기 때문인 것 같아요.잠시 뒤.—같이 갈까?유지는 화면을 바라봤다.예전 같으면 혼자 가겠다고 했을 것이다.그런데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네.저녁.부모님 집에 들어가자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다.엄마는 식탁에 앉아 있었고.아버지도 옆에 있었다.유지와 도하가 나란히 앉자 엄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이모가 오늘 또 전화했어.”유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뭐래.”엄마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친척들 몇 명이 알게 된 것 같아.”유지의 손끝이 굳었다.도하가 옆에서 조용히 있었다.“그래서?”엄마는 유지 얼굴을 잠깐 보더니 말했다.“너한테 직접 연락할 수도 있대.”“나한테?”“응.”유지는 순간 휴대전화를 떠올렸다.모르는 번호.가족 단체방.메신저.벌써 머리가 복잡해졌다.“뭐라고 하려고.”엄마의 표정이 굳었다.“좋은 말 하려고 연락하는 건 아니겠지.”잠시 정적이 흘렀다.그때 도하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제가 먼저 연락드릴까요?”유지가 바로 그를 봤다.엄마도 마찬가지였다.“왜 네가.”“유지가 직접 들을 필요 없는 말이라면.”도하는 차분하게 말했다.“제가 듣는 게 낫습니다.”유지의 표정이 굳었다.“도하 씨.”그런데 엄마가 먼저 잘랐다.“아니.”도하의 시선이 엄마에게 향했다.엄마는 생각보다 단호했다.“네가 나설 일도 아니야.”“그래도.”“둘 다 나서지 마.”유지는 엄마를 바라봤다.엄마가 한숨을 쉬었다.“내 가족이야.”“엄마.”“내가 말할게.”유지는 예상하지 못한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엄마는 식탁 위에 놓인
금요일 오후.송유지는 팀장이 내민 서류를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파견 종료일 조정 확정.예정보다 정확히 한 달 빨랐다.“그럼 이 날짜에 본사로 복귀하는 거죠?”“네. 신규 프로젝트 준비 때문에 조금 당겨졌어요.”유지는 입꼬리를 숨기지 못했다.“알겠습니다.”회의실을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채도하에게 전화를 걸었다.신호가 두 번도 가기 전에 연결됐다.—응.“확정됐어요.”잠깐 정적.—복귀?“네.”유지는 웃으며 말했다.“한 달 빨리 올라가요.”수화기 너머로 도하가 짧게 숨을 내쉬었다.—진짜?“네.”—날짜 언제야.유지가 알려주자 잠시 조용했다.“왜요?”—달력 보는 중.“벌써?”—응.유지는 웃었다.“집 보러 가는 날 앞당기려고요?”도하도 낮게 웃었다.—그것도.“또 뭐 있는데요?”—네가 돌아오는 날 비우려고.유지의 웃음이 천천히 부드러워졌다.“마중 나오게요?”—당연하지.퇴근 후.유지는 숙소로 돌아와 달력을 열었다.원래 표시해뒀던 복귀 예정일을 지우고.한 달 앞 날짜에 새로 적었다.돌아가는 날.이번에는 그 아래에 작은 글씨도 덧붙였다.도하 씨 만나는 날.사진을 찍어 도하에게 보내려던 순간.엄마에게 전화가 왔다.“응, 엄마.”—퇴근했어?“응. 방금 들어왔어.”—복귀 빨라진다며?유지는 눈을 크게 떴다.“어떻게 알았어?”—아까 네가 아빠한테 말했잖아.“아.”점심시간에 가족 단체방에 짧게 남긴 게 떠올랐다.유지가 웃었다.“한 달 빨리 가.”—잘됐네.엄마 목소리도 전보다 가벼웠다.—도하도 좋아하겠다.유지는 순간 잠깐 멈췄다.엄마가 먼저 도하 이야기를 꺼내는 게 아직도 가끔은 낯설었다.“엄청 좋아하던데.”—그래.엄마는 잠시 조용했다.그러다 이상한 말을 했다.—근데 유지야.“응.”—너희 둘 이제 다른 사람들한테도 그냥 말하고 다니니?유지의 표정이 굳었다.“갑자기 왜?”수화기 너머에서 엄마가 잠깐 머뭇거렸다.—오늘 이모한테 연락 왔어.유지의 손이 멈췄다.“이모
월요일 오전.송유지는 출근하자마자 팀장에게 호출을 받았다.처음에는 연장 제안을 거절한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회의실에 들어가자 팀장이 서류 한 장을 밀어줬다.“송유지 씨 파견 종료 후 배치안입니다.”유지는 눈을 조금 크게 떴다.“벌써요?”“이번 프로젝트 평가가 좋아서요.”서류를 내려다보던 유지의 손이 멈췄다.기존 자리로 복귀.그런데 그 아래에 다른 문장이 있었다.본사 신규 프로젝트 실무 책임자 검토.“이게…….”팀장이 웃었다.“연장은 거절했지만 성과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요.”유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복귀하면 지금보다 맡는 범위가 커질 가능성이 높아요.”“그럼 직급도…….”“조정 검토 중이고요.”유지의 심장이 조금 빨라졌다.자신은 연장을 거절하면서도 한편으로 걱정했다.좋은 기회를 스스로 놓친 건 아닐까.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다른 기회가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점심시간.유지는 채도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저 오늘 좋은 일 있었어요.답장은 금방 왔다.—뭔데.—전화할래요?몇 초 뒤 바로 전화가 왔다.“이렇게 빨리요?”—좋은 일이라며.유지가 웃었다.“저 돌아가면 자리 바뀔 수도 있대요.”—어떻게.“새 프로젝트 맡을 수도 있고.”잠깐.“직급도 조정 검토 중이래요.”수화기 너머가 잠시 조용해졌다.유지가 물었다.“왜 말이 없어요?”—좋아서.유지의 표정이 풀렸다.—축하해.“진짜?”—응.도하는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잘했어.그 말 한마디에.유지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길게 내쉬었다.“저 사실 조금 걱정했거든요.”—뭘.“연장 안 한 거.”유지는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나중에 후회하면 어떡하지 싶어서.”—지금은?“좀 덜해졌어요.”도하가 낮게 말했다.—네가 돌아온다고 해서 일이 멈추는 것도 아니었네.유지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그러게요.”퇴근 후.유지는 숙소에 돌아와 서류 사진을 다시 확인했다.복귀.새 프로젝트.새로운 자리.그동안 돌아간다는 말
파견 생활이 시작된 뒤.송유지는 주말마다 달력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언제 채도하가 내려오는지.자신이 언제 올라갈 수 있는지.그리고.복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처음에는 날짜를 세는 게 답답했다.그런데 요즘은 조금 달랐다.끝이 있다는 걸 아니까.기다리는 시간도 견딜 만했다.금요일 저녁.유지는 숙소에서 저녁을 먹다가 도하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이번 주는 내가 못 내려갈 것 같아.유지는 잠깐 멈췄다.—왜요?—일이 생겼어.—많이 바빠요?—조금.유지는 아쉬웠지만 바로 답했다.—그럼 이번 주는 쉬어요.잠시 뒤.—괜찮아?유지는 화면을 보고 웃었다.—안 괜찮아도 어떡해요.—서운해?이번에는 조금 고민하다 솔직하게 보냈다.—조금.읽음.그리고 곧.—미안.유지는 바로 답했다.—미안 금지.잠시 뒤.—알겠어.유지는 피식 웃었다.예전 같으면 이런 주말 하나에도 괜히 불안했을 것이다.하지만 이제는 달랐다.못 만나는 주말이 있다고 해서.관계까지 멀어지는 건 아니었다.토요일 오후.유지는 혼자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왔다.그런데 엘리베이터 앞에 익숙한 사람이 서 있었다.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다.“도하 씨?”도하가 고개를 들었다.유지의 눈이 커졌다.“일 있다면서요.”“끝났어.”“그래서?”“왔지.”유지는 한동안 그를 바라봤다.“말도 안 하고?”“이번에도 놀라게 하려고.”유지는 들고 있던 장바구니를 내려놓을 뻔했다.“진짜.”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웃음이 계속 났다.도하가 장바구니를 받아 들었다.“무거워.”“제가 들 수 있어요.”“알아.”“근데 왜 뺏어요.”“들고 싶어서.”유지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숙소에 들어온 뒤.도하는 처음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안을 둘러봤다.“여기도 이제 익숙하네.”유지가 웃었다.“몇 번 왔다고.”“그래도.”유지는 장바구니를 정리하다가 말했다.“도하 씨.”“응.”“저 진짜 돌아가면.”“응.”“집 보러 갈 거죠?”도하가 바로
토요일 오전.송유지는 달력을 보고 있었다.파견을 시작한 지도 어느새 몇 주가 지났다.처음에는 낯설었던 숙소도 이제는 제법 익숙했다.출근길.자주 가는 식당.편의점 위치까지.그런데 한 가지는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다.주말마다 채도하를 기다리는 일.오늘은 도하가 내려오는 날이었다.유지는 아침부터 몇 번이나 시간을 확인했다.그러다 결국 메시지를 보냈다.—몇 시쯤 와요?답장은 바로 왔다.—두 시쯤.—아직 멀었네.잠시 뒤.—보고 싶어?유지는 고민하지 않았다.—네.읽음.그리고.—나도.그 짧은 대답 하나로 기분이 좋아졌다.오후 두 시 조금 전.유지는 숙소 근처 카페에서 도하를 기다렸다.문이 열릴 때마다 자꾸 고개가 돌아갔다.그리고 정말 도하가 들어오는 순간.유지는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도하는 바로 알아차렸다.“많이 기다렸네.”“아니거든요.”“표정이 그런데.”“그냥 반가워서.”도하가 맞은편에 앉았다.“그게 기다린 거지.”유지는 더 반박하지 않았다.둘은 늦은 점심을 먹고 근처를 걸었다.도하도 이제 유지의 동네에 조금 익숙해진 상태였다.“저기 편의점 맞지?”유지가 고개를 끄덕였다.“응.”“저쪽이 네가 자주 간다는 식당이고.”“맞아요.”유지는 웃었다.“이제 저보다 잘 알겠어요.”“몇 번 왔으니까.”“몇 번이나 왔다고.”도하는 태연하게 말했다.“앞으로 더 올 거고.”유지는 그 말을 듣고 걸음을 조금 늦췄다.“도하 씨.”“응.”“진짜 계속 내려올 거예요?”“가능하면.”“힘들잖아요.”“너 올라오는 것도 힘들잖아.”유지는 잠깐 말이 없었다.이제 둘은 누가 더 애쓰는지 따지지 않았다.가능한 사람이 움직였다.그게 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잠시 뒤.둘은 공원 벤치에 앉았다.유지가 휴대전화를 보다가 문득 말했다.“도하 씨.”“응.”“제가 연장 안 하기로 한 거.”“응.”“아직도 좋아요?”도하는 바로 대답했다.“응.”유지가 웃었다.“너무 솔직하네.”“말해달라며.”“그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