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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화

Author: 유리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24 13:46:36

5화 완벽한 가면을 부수는 방법(1)

오후 2시.

지안은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과거의 서지안이었다면, 오늘 같은 날에는 강민우가 좋아하는 연한 파스텔 톤의 원피스를 입었을 것이다. 그는 항상 지안에게 '지켜주고 싶은 여자'의 이미지를 원했다. 하늘하늘한 시폰 소재, 옅은 화장, 수줍은 미소. 그것이 강민우가 세팅해 놓은 서그룹 후계자의 '목줄'이었다.

하지만 지금 거울 속에 비친 여자는 완전히 달랐다.

몸의 실루엣이 날카롭게 떨어지는 짙은 블랙 슈트. 발목을 아슬아슬하게 드러내는 스틸레토 힐. 그리고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핏빛 레드 립스틱까지.

마치 장례식장에 가는 사람 같기도 했고, 누군가의 목을 치러 가는 처형인 같기도 했다.

똑똑.

“지안아, 준비 다 했어?”

문밖에서 들려오는 부드러운 목소리. 강민우였다.

지안은 천천히 화장대에서 몸을 돌려 방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고, 지안의 모습을 확인한 강민우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묘한 이질감이 스쳤다.

“어…… 지안아. 옷이…….”

“왜. 이상해?”

“아니, 이상한 건 아닌데. 오늘 우리 웨딩드레스 가봉하러 가는 날이잖아. 샵 스태프들도 다 볼 텐데, 너무 어두운 거 아닌가 해서. 네가 평소에 입던 스타일도 아니고.”

강민우는 눈웃음을 지으며 지안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 했다. 지안은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기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 허공에 머문 강민우의 손이 어색하게 갈 곳을 잃었다.

“평생 한 번 입는 웨딩드레스 보러 가는 날인데, 옷이 무슨 상관이야. 드레스만 하야면 됐지.”

지안의 무심한 대답에 강민우의 미간이 아주 미세하게 좁혀졌다. 하지만 그는 이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이 맞네. 우리 지안이는 뭘 입어도 예쁘니까. 가자, 늦겠다.”

1층으로 내려가자,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두드리던 서유라가 벌떡 일어났다.

“어? 언니 다 입었어? 헉, 언니 오늘 스타일 완전 세다. 어디 시상식 가?”

“넌 왜 여깄어.”

지안이 싸늘하게 묻자, 유라는 민우의 곁으로 쪼르르 달려가 팔을 붙잡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형부, 아니 민우 오빠가 나도 같이 가자고 했단 말이야. 언니 드레스 고르는 거 봐주라고. 나 미대생이잖아. 내 안목이 또 기가 막히거든.”

강민우가 멋쩍게 웃으며 거들었다.

“아무래도 남자 눈보단 동생인 유라가 봐주는 게 낫지 않을까 해서. 불편해?”

불편하냐고?

지안은 코웃음이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과거에도 그랬다. 웨딩드레스를 고르는 날, 신혼집 가구를 보러 가는 날, 심지어 예물을 맞추는 날까지 서유라는 항상 그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때는 동생이 언니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도와주려 한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것은 서유라 특유의 기만이자 조롱이었다.

자신이 빼앗을 남자의 결혼 준비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며, 뒤에서는 강민우와 은밀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지안을 바보 취급했던 것이다.

“상관없어. 가자.”

지안은 두 사람을 지나쳐 먼저 현관 밖으로 나섰다. 등 뒤에서 민우와 유라가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굳이 돌아보지 않았다.

청담동에 위치한 최고급 VVIP 웨딩드레스 샵, '루미에르'.

예약제로만 운영되는 이곳은 재벌가 자제들이나 톱스타들만 올 수 있는 곳이었다.

세 사람이 샵에 들어서자, 원장을 비롯한 스태프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서지안 본부장님, 강민우 이사님.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원장은 지안의 시크한 블랙 슈트를 보고 잠시 흠칫했지만, 이내 프로다운 미소를 지으며 일행을 프라이빗 룸으로 안내했다.

방 안에는 고급스러운 벨벳 소파와 샹들리에, 그리고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거대한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최고급 샴페인과 마카롱이 세팅되어 있었다.

“오늘 피팅하실 드레스는 총 세 벌입니다. 민우 이사님께서 세 달 전부터 이탈리아 밀라노 본사에 특별히 오더를 넣어서 공수해 온 하이엔드 라인들이죠. 이사님께서 신부님을 얼마나 생각하시는지, 저희 스태프들 다 감동했잖아요.”

원장의 너스레에 강민우는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유, 원장님도 참. 지안이한테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만 입혀주고 싶은 게 제 마음인걸요.”

“어머어머, 오빠 진짜 로맨티스트다. 언니, 좋겠다~”

서유라가 호들갑을 떨며 박수를 쳤다.

지안은 소파에 깊숙이 기대앉아, 샴페인 잔을 만지작거리며 그들의 삼류 연극을 무표정하게 감상했다.

역겨웠다. 저 주둥이에서 나오는 활자 하나하나가 구더기처럼 기어 다니는 것 같아 속이 매스꺼웠다.

“그럼, 첫 번째 드레스부터 입어보실까요, 본부장님?”

지안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스태프들의 안내에 따라 피팅룸 안으로 들어갔다.

사방이 거울로 된 피팅룸 안.

스태프들이 조심스럽게 첫 번째 드레스를 가져왔다.

순백의 실크 소재, 어깨선이 우아하게 드러나는 오프숄더 디자인, 그리고 수천 개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이 수놓아진 화려한 베일.

그 드레스를 보는 순간, 지안의 숨이 턱 막혔다.

기억난다.

전생에서 지안이 입었던 바로 그 본식 드레스였다.

이 드레스를 입고 버진로드를 걸으며, 하객들의 축복 속에서 강민우의 손을 잡았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라고 자부했었다.

하지만 그 행복의 끝은 처참한 지옥이었다.

차디찬 강물 속으로 떨어지던 순간, 거센 물결에 찢겨 나가던 하얀 실크 자락. 피투성이가 된 채 굳어버린 자신의 얼굴.

“헉…… 하아…….”

지안은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치며 거울을 짚었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본부장님? 어디 불편하신가요?”

스태프가 놀라 다가오자, 지안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아니다. 나는 죽지 않았다. 다시 돌아왔다. 저들에게 당하기 전으로.

공포를 삼키고, 그 자리에 차가운 분노를 채워 넣었다.

“입혀주세요.”

지안의 목소리는 서릿발처럼 차가웠다.

잠시 후, 피팅룸의 무거운 커튼이 좌우로 천천히 열렸다.

무대 위로 눈부신 조명이 쏟아졌다.

소파에 앉아 샴페인을 홀짝이던 강민우와 서유라의 시선이 일제히 무대 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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