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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7화

Penulis: 금붕어
가슴 안쪽이 묘하게 답답해져 송미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는 몸을 돌려 다시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뒤, 층수 버튼을 눌렀다.

최수빈의 병실에서는 그녀가 노트북을 끌어안은 채 업무를 보고 있었다.

주민혁이 07 전투기 프로젝트의 시스템 연동 작업을 맡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매일 아침이면 려운이 보내온 프로젝트 자료가 어김없이 그녀의 메일함에 도착했다.

주민혁의 처리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코드 구조와 모듈 설계 안에는 천공의 핵심 기술이 너무 많이 얽혀 있었고 그걸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좀처럼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였다.

“또 자료 보고 있어?”

막 데운 곰탕을 들고 들어온 송미연이 컴퓨터 화면을 살짝 눌렀다.

“의사 선생님이 전자기기 좀 줄이라고 했잖아. 눈이 못 버틴다니까. 주민혁이 맡아서 한다며. 너도 이제 좀 쉬면 안 돼?”

최수빈은 뻐근해진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노트북을 닫고 숟가락으로 국을 한 입 떴다.

“일은 잘하고 있어. 다만 천공 내부 시스템이랑 맞물리는 몇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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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289화

    최수빈은 병실에 있었다.그때 갑자기 누군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더니 그녀를 다른 방으로 끌고 갔다.“뭐 하려는 거예요?”“얌전히 있어. 우린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는 거니까.”다음 순간, 최수빈은 캄캄한 방 안으로 거칠게 밀려 들어갔다.차가운 철제 침대에 앉게 되자 손목은 거친 밧줄에 묶였고 살이 쓸려 핏자국이 둥글게 남았다.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알 수 없었다.철컥.문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임하은이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값비싸 보이는 카멜색 코트를 걸친 데다 화장도 흐트러짐 없이 완벽했지만, 그런 차림은 이 낡아빠진 병실과 너무도 어울리지 않았다.임하은은 최수빈의 앞에 다가와 멈춰서더니 그녀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곧 미쳐 버릴 듯한 광기가 뒤섞여 있었다.“그거 알아요?”임하은은 낮게 말하더니 손을 뻗어 최수빈의 창백한 뺨을 천천히 쓰다듬었다.“지금 민혁 씨가 살지 죽을지는 수빈 씨의 말 한마디에 달려 있어요. 총알이 심장을 스치고 지나갔거든요. 아주 조금만 빗나갔어도, 아니 조금만 더 깊었어도 그대로 죽었을 거예요. 의사가 살 수 있을지 없을지는 결국 본인 의지에 달렸다고 했어요. 그런데 난 그 사람한테 꼭 알려 주고 싶어요. 그 의지라는 것도 결국 내 손안에 있다는 걸.”최수빈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들지도, 몸부림치지도 않았다.목이 바짝 말라 있는 터라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이 긁는 것처럼 따끔거렸다. 그래도 그녀는 힘겹게 몇 마디를 뱉으려 했다.목소리가 쉰 데다 갈라져 있었지만 전하려는 뜻만큼은 확실했다.“살아 있기만 하면 돼요.”살아 있기만 하면 된다. 주민혁에게 숨이 붙어만 있다면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아직은 버틸 수 있었고 다시 뒤집을 가능성도 남아 있었다.최수빈 자신이 어떻게 되든 이제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살아만 있으면 된다고요?”임하은은 기가 막힌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텅 빈 병실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288화

    임하은의 몸이 휘청거렸다.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린 얼굴 위로 눈빛마저 서서히 꺼져 갔다.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자존심과 집착은 그 순간 심종연의 말에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심종연은 넋이 빠진 듯 서 있는 그녀를 바라봤지만, 눈빛에 동정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그저 다 알고 있었다는 듯한 싸늘한 냉기만 서려 있었다.심종연은 그대로 몸을 돌려 복도 끝으로 걸어갔고 임하은만 그 자리에 홀로 남았다.그제야 그녀는 알 것 같았다. 자신이 그렇게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건 결국 우스운 착각에 불과했다는 걸.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던 그 남자는, 단 한 번도 임하은을 마음에 둔 적이 없었다.감당하기 힘든 상실감과 절망이 밀려와 한순간에 온몸을 집어삼켰다.그녀는 천천히 차가운 벽에 몸을 기댔다. 어깨가 심하게 떨리더니 끝내 참아 왔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그동안 임하은은 수도 없이 스스로를 속여 왔었다. 주민혁과의 약혼이 온갖 속셈으로 얼룩져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가 최수빈에게 남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걸 뻔히 보면서도, 그래도 그 남자의 마음 한구석에는 분명 자기 자리가 있을 거라고 고집했다.어쩌면 어느 늦은 밤 건넸던 다정한 말 한마디였을지도 몰랐고, 어쩌면 위험한 순간 내밀어 준 손길 한 번이었을지도 몰랐다. 임하은은 그런 사소한 흔적들 속에서 억지로 애정을 찾아냈고 그 조각들을 끌어모아 스스로를 속일 수 있는 환상을 만들어 왔다.하지만 조금 전 병실에서 마주한 주민혁의 냉담한 태도와, 심종연의 가차 없는 말들은 망치처럼 그녀의 오랜 집착을 산산조각냈다.주민혁이 보여 줬던 다정함이라는 건 결국 목적을 이루기 위한 연기에 불과했던 것이다.그녀가 자랑스럽게 여기던 집안도, 재능도, 주민혁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주민혁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최수빈만 있었던 것이다.그리고 임하은은 그저 주민혁의 인생이라는 체스판 위에 올려진 하나의 말일 뿐이었다. 필요하면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 말이다.스스로를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287화

    임하은은 창백하면서도 여전히 냉랭한 주민혁의 옆얼굴을 바라봤다.가슴속에서는 복잡한 감정이 거세게 소용돌이쳤지만 결국 이를 악물고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원한다면 내가 여기서 빼내 줄 수도 있어요.”그녀가 입을 열었다.“민혁 씨가 고개만 끄덕이면 민혁 씨는 여전히 임씨 가문의 사위인 거예요. 앞으로의 삶도 여기 누워 남들 손에 휘둘리는 것보단 훨씬 나을 거고요.”그녀는 이 조건이면 주민혁도 흔들릴 거라고 믿었다.임씨 가문의 힘은 여전히 건재했다. 때문에 다시 임하은의 곁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심종연의 위협 따위는 더는 문제가 되지 않을 터였고 예전의 명예와 자리도 다시 손에 넣을 수 있었다.주민혁은 천천히 시선을 들어 그녀를 봤다.검은 눈동자에는 흔들리는 기색이 전혀 없이 차갑고도 노골적인 비웃음만이 서려 있었다.그는 아직도 사태파악을 하지 못하는 여자를 보며 조롱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네 인생에는 사랑 말고 남은 게 없나 봐? 한 번 크게 당하고도 또다시 그 안으로 걸어 들어오겠다는 거야?”가볍게 던진 그 두 마디는 얼음이 밴 칼날처럼 임하은의 가슴을 깊이 후벼 팠다.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손가락은 잔뜩 움켜쥔 채 굳어 있었고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며 욱신거리는 통증을 남겼다.“민혁 씨!”그녀는 이를 악물고 낮게 쏘아붙였다. 목소리에는 억누르지 못한 분노가 진하게 섞여 있었다.“옛정을 생각해서 기회를 준 거예요. 나중에 가서 나 원망하지나 마요!”그러자 주민혁의 눈빛에 있던 비웃음이 한층 더 짙어졌다.더 상대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 그는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그런 주민혁의 태도에 임하은은 울분과 분노가 한꺼번에 치밀어 올랐다. 그 감정이 거의 온몸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더 머물러 봐야 모욕감만 더 짙어질 뿐이었다.그녀는 벌떡 몸을 일으켜 병실 문 쪽으로 향했다. 화를 억누르지 못한 탓에 발걸음이 조금 흐트러졌다.그러나 문을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286화

    임하은은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몸에 딱 맞게 떨어지는 흰 원피스 차림이어서 피부가 더욱 희고 선명해 보였다.하지만 그녀의 입가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한 웃음이 떠 있었다.그녀는 병상 곁으로 다가가 누워 있는 주민혁을 내려다봤다. 손끝이 침대 난간의 차가운 금속을 천천히 스쳤다.“민혁 씨, 이런 날을 맞게 될 줄 생각이나 해봤어요?”주민혁은 눈을 내리깔았다. 길게 드리운 속눈썹이 눈 밑에 옅은 그림자를 만들었다.그는 임하은을 보지도, 대답하지도 않았다. 마치 그녀가 있어도 없는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임하은은 그런 냉담한 태도쯤은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의자를 끌어다 앉더니 몸을 조금 앞으로 숙였다. 그러고는 오랫동안 눌러 둔 원망이 짙게 배인 목소리로 말했다.“처음부터 나를 이용할 생각으로 접근하고 약혼까지 꾸며 내고 우리 임씨 가문의 힘을 발판 삼아 올라설 때는 이런 결말이 올 줄 몰랐어요?”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확 높아졌다. 말끝에는 살짝 떨리기까지 했다.“그때의 민혁 씨의 선택을 후회한 적은 있어요? 나한테, 단 한 번이라도 진심이었던 적은 있었어요?”그 질문들은 오래전부터 임하은의 가슴에 박혀 있던 가시였다.약혼하던 날 들떠있던 기분, 진실을 알았을 때 느껴졌던 처절한 절망, 그리고 지금 이렇게 초라하게 무너진 주민혁을 바라보는 순간까지...마음속에서는 온갖 감정이 뒤엉켜 들끓고 있었다. 원망도 있었고 분노도 있었고 끝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미련도 조금 남아 있었다.주민혁은 여전히 시선을 푹 내린 채 표정은 소름이 끼칠 만큼 고요했다. 그녀의 추궁 따위는 처음부터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한 태도였다.임하은은 아무런 반응도 없는 주민혁에 화가 치밀었지만 곧 애써 눌러 삼켰다.그러고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씁쓸하게 말했다.“사실 난 민혁 씨가 불쌍하기도 해요. 그리고 이해도 해요. 가문의 이익이냐, 자기감정이냐. 그 사이에서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죠. 나도 마찬가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285화

    심종연의 발소리가 복도 끝으로 완전히 사라진 뒤, 병실 안은 적막하기만 했다.주민혁은 병상에 누운 채 천장의 형광등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눈 부신 빛에 눈 안쪽이 시큰시큰거렸다.가슴의 상처는 아직도 은근히 욱신거렸고 숨을 쉴 때마다 온몸의 근육과 뼈가 함께 당겨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 정도 아픔은 마음속을 태우는 초조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최수빈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딸 율이는 무사할까.심종연이 두 사람에게 손을 대지는 않았을까.‘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 심종연의 뜻대로 끌려다닐 수는 없다고.’주민혁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기력이 달려 손끝이 살짝 떨렸다.그러더니 그는 손등에 꽂힌 수액 바늘을 움켜쥐고 망설임 없이 힘껏 뽑아냈다.바늘이 혈관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고, 곧 바늘 자리를 따라 따뜻한 피가 배어 나왔다. 피는 하얀 시트 위로 뚝뚝 떨어지며 선명한 붉은 얼룩을 만들어 냈다.그는 팔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하지만 몸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겨우 조금 들썩였다 싶더니 가슴을 찢는 듯한 통증에 다시 침대 위로 내동댕이쳐지듯 쓰러졌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자 이마에는 금세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버텨 보려 했지만 돌아온 건 더 격렬한 통증과 눈앞을 덮치는 새까만 어지럼증뿐이었다.그제야 깨달았다. 지금의 자신에게는 몸을 일으킬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그때 병실 문이 열리더니 간호사 두 명이 치료 카트를 밀고 들어왔다. 뒤로는 담당 의사까지 따라 들어왔다.주민혁의 손등에 번진 피와 바닥에 떨어진 수액 바늘을 본 순간, 모두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환자분, 이게 무슨 일이에요?”간호사가 급히 다가와 그의 손등에 있던 바늘 자리를 솜으로 눌렀다.“지금은 상처가 심해서 절대 안정을 취하셔야 해요. 함부로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의사도 다가와 상처 상태를 살펴보더니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지금 환자분 몸 상태로는 조금만 무리해도 안 됩니다.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284화

    장성훈이 말했다.“무엇보다... 아가씨도 저를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진 않으시니까요.”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돌려 이훈에게 짧게 지시했다.“아가씨 잘 모셔. 한순간도 혼자 두지 마. 무슨 일 생기면 즉시 나한테 보고하고.”“알겠습니다, 도련님.”이훈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마지막으로 장성훈은 강지안을 한 번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쉽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너무 많이 얽혀 있었다.하지만 끝내 그는 아무 말도 더 하지 않은 채 몸을 돌렸다. 그리고 성큼성큼 복도를 빠져나갔다.발소리는 점점 멀어지더니 마침내 복도 끝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강지안은 텅 빈 복도를 바라보다가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 와 숨조차 쉬기 힘들어졌다.그녀는 헛웃음을 흘렸다. 너무 가벼워서 제 귀에만 들릴 만큼 작은 소리였다.“그럴듯한 핑계는.”강지안이 모를 리 없지 않은가. 장성훈은 결국 자신과 선을 긋고 싶었던 것뿐이었다.‘그 예쁜 약혼녀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겠지.’겉으로는 할 도리를 다하는 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깔끔하게 관계를 정리하려 드는 모습이 참 뻔뻔하기 짝이 없었다....그 시각, 다른 한편.소독약 냄새가 병실 구석구석까지 짙게 배어 있었다. 숨이 막힐 만큼 차갑고 날 선 공기였다.심종연은 병실 문가에 서서 병상 위에 누운 남자를 무거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닷새째 되는 아침, 규칙적으로 울리던 모니터 소리 사이로 마침내 미세한 변화가 스며들었다.속눈썹이 가볍게 떨리더니 주민혁은 이내 천천히 눈을 떴다.흐릿하던 시야가 서서히 선명해졌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심종연의 얼굴이었다. 의미심장한 웃음을 띤 그 얼굴이 정면에서 주민혁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었다.심종연은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손가락 사이에는 불도 붙이지 않은 시가 한 대가 끼워져 있었고 태도는 한없이 느긋했다.“깼어요?”심종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서는 감정이 전혀 읽히지 않았다.“이제야 조건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762화

    강지안이 말을 이었다.“그래도 괜찮아. 장성훈이 재빨리 반응해서 나를 끌어당겼어.”“장성훈은 참 좋은 경호원이야.”주민혁은 차갑게 말했다. “그가 있으면, 누구도 네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할 거야.”강지안은 긴장한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놀리는 말투로 물었다. “그럼 전에 나한테 여자 친구 역할을 해달라고 한 건, 결국 최수빈을 막기 위한 방패로 쓰려던 거였어?”주민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강지안이 또다시 물었다.“그럼 지금은?”“앞으로는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802화

    그는 모든 걸 알고 있었으나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최수빈과 아이에게 무관심한 척, 그들과 완전히 선을 긋고 싶은 척, 그리고 그들을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는 척해야 했다.그래야만 그들을 숨어 있는 위험들로부터 멀리 떼어놓을 수 있었고 그래야만 모녀가 아무 탈 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점심 식사를 마치고 도우미가 그릇을 정리하러 들어가자 거실에는 최수빈과 주민혁 둘만 남았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고요한 분위기, 그 사이로 창밖에서 가끔 새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최수빈은 주민혁의 무릎 위에 올려진 손을 바라보았다.한때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806화

    그때 이미 알아봤어야 했다. 이 사람은 오래전부터 자기 목숨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걸.“넌 수도 없이 스스로 생을 끝내고 싶어 했어.”강지안의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주민혁의 병력 기록이 떠올랐다.불면, 환청, 자해 충동 등등 빽빽하게 적힌 글자 하나하나가 전부 칼날 같았다.“하지만 그 사람들 때문에 끝까지 마음이 안 놓이는 거잖아. 그렇지?”주민혁은 대답하지 않았고 그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그 사람이 꼭 고마워할 거라는 보장도 없어.”강지안의 말이 그의 생각을 다시 끌어당겼다.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805화

    주민혁의 목젖이 작게 움직였다. 손끝은 옆에 늘어진 옷자락을 무의식중에 움켜쥐고 있었고 눈빛 깊은 곳에서는 꾹 눌러 참아 온 감정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일렁였다.몇 초간의 침묵 끝에 그는 아주 미세하게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사랑해, 아주 깊게.”최수빈의 눈동자가 순간 크게 흔들렸다. 손끝이 반사적으로 오그라들었고 숨마저 한 박자 늦게 이어졌다.여전히 복잡한 감정이 뒤엉켜 있는 그의 눈을 바라보면서도 최수빈은 목 안이 부드러운 솜으로 막힌 듯 말을 잇지 못했다.이런 대답을 들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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