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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0화

Author: 금붕어
“그래? 정말 그렇게 생각해?”

주선웅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은 사람처럼 낮게 웃었다.

“주상 그룹이 위기에 처해 있는데 여자 하나쯤이 대수겠어?”

그가 한 걸음 다가서자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고 공기에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주선웅은 목소리를 낮추며 상대를 흔드는 듯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잘 생각해 봐. 네가 고개만 끄덕이면 가로채인 그 주문들 전부 플라잉 테크에서 원래대로 돌려놓게 할 수 있어. 거기다 주상 그룹이 입은 손해까지 보상하게 만들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주상 그룹의 상황은 단숨에 안정되고 그 틈에 해외 시장도 더 넓힐 수 있지. 너한테 이보다 더 좋은 선택지가 또 있을까?”

주민혁은 무심한 듯 담배를 쥔 손가락을 움직였다. 손끝의 온기는 담뱃종이보다도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러다 그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주선웅을 올려다보았다.

“수빈이를 내줘서 주상 그룹이 잠깐 안정되는 게, 정말 가치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해?”

“가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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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634화

    “지안 씨는 환자를 치료할 때 그림을 활용해서 상태를 평가하는 습관이 있었어요.”최수빈이 옆에서 조용히 설명했다.“많은 환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말하지 못하거나,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하죠. 하지만 지안 씨는 선의 흐름이나 구도, 명암만 보고도 그 사람이 숨기고 있는 감정을 정확하게 파악했어요. 그건 지안 씨만의 능력이었어요. 다른 사람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재능이기도 하고요.”강지안은 손에 쥔 목탄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내가 이렇게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과거의 내가... 이렇게 강한 사람이었다고?’그녀는 천천히 목탄을 내려놓더니 최수빈을 바라봤다.차분한 눈빛이었으나 그 안에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그것은 의사로서의 냉정함과 전문성, 그리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었다.기억을 잃었다고 해서 사라질 수 없는 뼛속 깊이 새겨진 강지안의 모습이었다.“수빈 씨, 주민혁 씨의 병력 기록을 보여줘요.”최수빈은 순간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전체 기록을 확인한 뒤에...”강지안은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그다음에 주민혁 씨를 데려와 줘요. 다시 한번 제대로 평가해볼게요. 예전의 내가 치료할 수 있었다면, 지금의 나도 할 수 있을 거예요.”부탁하는 것도 아니고 확신을 얻기 위해 묻는 것도 아니었다. 한 명의 의사로서 자신의 전문성을 믿는 말이자 몸에 새겨진 책임감에서 나온 말이었다.최수빈은 그런 강지안을 바라보며 눈빛을 조금 누그러뜨렸다.기억을 몇 번이나 잃어도, 많은 상처를 받아도, 강지안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타인을 향한 선함, 끝까지 버티는 강인함, 그리고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의사의 마음, 그 무엇도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다만...“지안 씨.”최수빈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자신을 되찾고 싶어 하는 것도 알아요. 민혁 씨를 돕고 싶은 마음도 알아요. 하지만 지금 지안 씨의 몸은 겨우 회복된 상태예요. 감정도 아직 완전히 안정된 건 아니고요. 고양이 일도, 민채영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633화

    차는 결국 한 채의 하얀 건물 앞에 멈춰 섰다.간판도 없고 특별한 표식도 없었다.겉모습은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단순하고 담백했지만 이상하게도 깨끗하고 전문적이며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느껴졌다.“도착했어요.”최수빈이 조용히 말했다.강지안은 차 문을 열고 내려서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눈앞의 하얀 건물을 올려다봤다.그 순간,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낯설지도, 신기하지도 않았고 그저 집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건물의 선 하나하나, 창문의 위치, 벽돌의 모양, 햇빛이 내려앉는 각도까지...모든 것이 마치 강지안의 마음속 가장 편안한 곳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듯했다.강지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무언가에 이끌리듯 천천히 앞으로 걸어갈 뿐이었다.문을 여는 순간, 익숙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은은한 색감의 인테리어, 눈부시지 않고 부드러운 조명, 조용히 이어진 복도, 과하지 않은 벽면의 질감, 상담실의 구조, 휴게 공간에 놓인 소파, 그리고 공기 속에 은은하게 퍼지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향까지...모든 것이 그녀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지점에 정확히 맞춰져 있었다.그때 안쪽에서 인기척을 들은 간호사가 걸어 나왔다.강지안을 본 순간, 그녀는 잠시 얼어붙더니 곧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고는 감격과 존경이 섞인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강 선생님... 돌아오셨군요.”강 선생님, 그 한마디에 강지안은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내가 정말... 의사였구나.’“전... 그쪽을 기억하지 못해요.”강지안이 미안한 표정으로 조용히 말했다.“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간호사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돌아와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모두가 계속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병원은 계속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어요.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상담실도, 사무실도, 선생님 물건들도... 전부 원래 모습 그대로 두었어요.”강지안은 아무 말 없이 안쪽으로 걸어갔다.최수빈은 조용히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재촉하지도, 방해하지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632화

    강지안은 멍하니 최수빈의 말을 듣고 있었다. 심장이 가볍게 떨렸다.‘나만의 병원이 있다고? 나만의 일이 있다고? 뼛속 깊이 새겨진 나만의 능력이 있다고?’누군가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었다.누군가의 보호 아래 갇힌 사람도 아니었다.강지안, 그녀는 의사였다.“나...”강지안은 목이 메인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나는... 내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은 한 번도 못 했어요.”“지안 씨는 단순히 평범한 환자들만 치료한 게 아니에요.”최수빈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그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름을 꺼냈다.“주민혁, 그 사람도 한때는 지안 씨의 환자였어요.”강지안이 순간 고개를 번쩍 들었다.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주민혁, 그는 차분하면서도 압도적인 분위기를 지닌 사람, 거대한 정보망을 쥐고 누구보다 높은 곳에 서 있는 남자, 최수빈의 남편이자 겉으로 보기에는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그런 사람이 심리 치료를 받아야 했다고? 그것도... 나한테?’“그 사람의 경우는 조금 특별했어요.”최수빈은 숨기지도, 그렇다고 위험한 부분까지 억지로 건드리지는 않았다.“어릴 때부터 많은 일을 겪었고 감정 조절이나 수면 문제, 극심한 스트레스 반응까지 여러 문제가 있었죠. 국내외 유명한 전문가들도 많이 찾아갔지만 쉽게 안정되지 않았고 그러다 지안 씨를 만났어요.”강지안의 숨이 순간 멎었다.“지안 씨가 조금씩 그 사람을 무너져 내리기 직전의 상태에서 끌어올렸어요.”최수빈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지안 씨가 직접 치료 계획을 세웠고 가장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도록 곁에서 함께했어요. 그렇게 결국 민혁 씨가 평범한 가정과 안정된 감정, 평범한 삶을 되찾을 수 있게 만든 것도 지안 씨에요. 나에게도, 민혁 씨에게도 지안 씨는 단순한 친구가 아니에요.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나 다름없죠.”강지안은 의자에 앉은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창밖의 햇살이 그녀의 손등 위로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631화

    다음 날.강지안은 최수빈과 만나기로 한 카페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약속 시간보다 몇 분 일찍 도착한 그녀는 단정한 미색 린넨 셔츠에 청바지, 낮은 굽의 신발을 신고 있었다. 특별한 장식 하나 없이 머리는 대충 뒤로 묶어 올린 채였다. 덕분에 희고 갸름한 옆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장성훈의 숨 막히는 별장을 떠난 뒤, 강지안은 한결 차분해졌다.하지만 그 차분함은 이전과는 달랐다.더 이상 남의 집에 얹혀사는 사람처럼 눈치를 보지 않았고 장성훈을 마주할 때처럼 온몸에 힘을 주고 경계하지도 않았다. 기억을 잃은 뒤 느꼈던 막막함과 불안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그저 조용히 자리에 앉아 따뜻한 물이 담긴 컵을 두 손으로 감싼 채, 평온한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곧게 편 허리는 마치 이제야 자신의 땅에 뿌리를 내린 한 그루의 나무 같았다.그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강지안이 고개를 들었다. 최수빈이 카페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연한 브라운색 트렌치코트를 걸친 그녀는 부드러우면서도 확고한 분위기를 풍겼다. 멀리서부터 강지안을 발견한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천공연구원에서 보여주는 냉철하고 추진력 있는 ‘수빈 씨’와는 달랐다.강지안을 대하는 최수빈에게는 친구를 향한 다정함과 여유가 묻어났다.“오래 기다렸어요?”“아니요. 방금 왔어요.”강지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최수빈은 처음부터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먼저 커피 두 잔을 주문한 뒤, 가볍게 근황부터 물었다.“새로 구한 곳은 좀 익숙해졌어요?”“네.”강지안이 고개를 끄덕였다.“작긴 한데... 마음은 편해요. 누구 눈치 볼 필요도 없고 계속 긴장하고 있을 필요도 없어서요.”그 말을 들은 최수빈의 눈빛에 안타까워하는 기색이 스쳤다.그동안 강지안이 겪은 일은 너무나 힘겨웠다.독에 중독되고 기억을 잃고 자신이 있을 곳도 아닌 별장에 갇힌 채 살아야 했다.장성훈의 집착과 민채영의 괴롭힘을 견뎌야 했고 어렵게 살려낸 작은 고양이조차 끝내 지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630화

    “무슨 일이 생기든, 시간이 아무리 늦든... 나한테 전화 한 통만 해요. 그럼 바로 갈게요.”그의 목소리는 낮았다.억눌러 온 감정 때문인지 쉰 듯한 목소리에는 깊은 괴로움이 묻어 있었다.강지안은 걸음을 멈췄으나 뒤돌아보지도 대답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차갑게 ‘흥’ 하고 코웃음을 칠뿐이었다.그것이 그녀가 보인 유일한 반응이었다.이내 문을 열자 차가운 밤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흩날리는 머리카락과 함께 마지막 남아 있던 미련까지 날려 보내는 듯했다.작별 인사도 없었다. 뒤돌아보지도 않았다.그녀는 꼿꼿한 자세로 한 걸음 한 걸음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장성훈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강지안의 단호한 뒷모습을 바라봤다.현관문 너머로 그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보고 나서야 그는 시선을 내렸다.그리고 주먹으로 소파 팔걸이를 세게 내리쳤다. 뼈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둔탁한 소리가 울리며 끝까지 억누르던 고통이 마침내 아주 조금 새어 나왔다.“도련님.”어둠 속에서 수행원이 조용히 걸어 나왔다.“말씀하신 대로 준비했습니다. 지안 아가씨를 따라붙게 했고 절대 눈치채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안전에는 문제가 없을 거예요.”“조사해.”장성훈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당장 확인해. 고양이 일... 정말 민채영이 한 짓인지. 증거를 가져와. 완전한 증거.”“네.”수행원은 감히 지체하지 못하고 바로 돌아서서 움직였다.장성훈은 홀로 어둠 속에 앉아 한참 동안 미동도 하지 않았다.그는 그녀를 쫓아가지도 억지로 붙잡아 데려오지도 않고 그녀의 선택을 존중했으며 그녀의 자유를 존중했다.별장 단지를 빠져나온 뒤, 강지안은 택시 한 대를 잡았다.그리고 전에 우연히 휴대폰으로 봐두었던 단기 임대 가능한 원룸 주소를 말했다.비싸지 않았다. 깨끗했고 눈에 띄지 않았다.무엇보다 그곳은 온전히 자신의 공간이지 않은가.택시는 별장 단지를 벗어나 점점 멀어졌다.거대한 그 차갑고 답답한 공간에서 멀어지자 강지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629화

    “나 더 이상 그런 곳에 있고 싶지 않아요요. 언제든 누군가가 나를 노리고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걸 해칠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지 않아요. 만약 정말 채영 씨가 한 짓이라면...”그녀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서늘한 기운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예요. 누가 내 것을 건드렸든, 누가 내 고양이를 죽였든...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겁니다.”장성훈은 온몸에 가시를 세운 듯하면서도 놀라울 만큼 이성적인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리고 알았다.강지안은 이미 결심을 내린 상태였기에 누구도 그녀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한참 동안 침묵하던 장성훈이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어디로 갈 건데요? 지금 혼자 나가면 위험해요.”“내 일이에요.”강지안은 담담하게 대답했다.“갈 곳은 내가 알아서 찾을 테니까 신경 쓰지 마요.”“심종연이 아직 밖에 있어요. 제가...”“그것도 내 일이에요.”그녀가 다시 그의 말을 끊었다.“위험하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성훈 씨가 만든 울타리 안에 갇혀 살 수는 없어요. 나도 생각할 수 있고 내 두 발로 살아갈 수 있어요. 나는 성훈 씨의 죄수가 아닙니다.”“아가씨를 가두려는 게 아닙니다.”장성훈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떨렸다.“그냥... 아가씨를 지키고 싶은 거예요.”“보호와 구속은 달라요.”강지안은 그를 바라봤다. 차분하지만 날카로운 눈빛이었다.“성훈 씨가 말하는 보호 때문에 나는 내가 유일하게 의지하던 것마저 잃었어요. 더 이상 네 보호라는 이름 아래 더 많은 걸 잃고 싶지 않아요.”장성훈은 완전히 말을 잃었다.그녀의 말 하나하나가 가장 아픈 곳을 정확히 찔렀다.그는 그녀를 억지로라도 붙잡고 싶었다. 곁에 묶어두고 싶었다. 자신이 볼 수 있는 곳에 숨겨두고 싶었다.하지만 지금 눈앞의 강지안을 보니 그 어떤 강압적인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두려웠다.억지로 붙잡으면 그녀가 자신을 더 미워할까 봐.이번에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까 봐.정말로 자신의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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