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놀라워 아주!”그 순간, 김예훈의 반응에 종성우도 자극받은 모양새다. 지금까지 종성우가 대구 공씨 가문을 내세웠을 때, 아무리 신분 있는 이들도 어느 정도 예의를 갖췄었기에 김예훈 같은 깡다구는 난생처음이었다.종성우는 어이없는 듯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이봐, 김 씨. 죽고 싶어 날뛰는 것 같네. 딱 기다려. 사는데 경각심을 좀 가져야 할 거야. 세상은 생각보다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김예훈이 먼저 체면이고 뭐고 없었으니, 종성우 입장에서는 예의 차릴 것 없었다. 성남시 세력을 동원해서라도 눈앞의 인간을 생매장해 버리고 싶은 생각이었다.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서서 그들을 보고 있는 여자 일행들의 입가에는 비웃음이 서려 있었고 비아냥거리듯 수군거렸다.그녀들의 눈에는 김예훈 같은 허풍만 가득한 루저는 백요한이나 종성우 같은 명문가 도련님들 빵셔틀 하기에도 한참 모자라 보였다.“세상 무서운 줄도 모르고, 딴에 남자라 허세 피우기는.”“그러게, 뭔 생각하는 거야!?”굳이 백요한이 나서지 않아도 종성우가 김예훈을 매장하려고 마음먹으면 그는 뼈도 못 추릴 것이 분명했다. 곧 좋은 구경을 할 것 같은지 다들 흥미진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종우성과 김예훈 양측은 서로 불꽃 튀는 눈빛이 오갔지만, 정소현이 있는 관계로 잠시 피 튀기는 주먹다짐을 뒤로하고 자리했다.김예훈 곧장 정소현의 옆자리로 향했고 전혀 백요한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곧 보기에도 예쁜 음식들이 식탁에 올랐고 호주산 양주가 메인 자리를 차지했다. 그냥 봐도 꽤 가격 나가 보이는 양주는 따는 순간 향이 확 풍기여 그 자리를 가득 채웠다.백요한은 빙긋 웃어 보였다. 그가 입도 뻥긋하지 않아도 종성우가 알아서 다 움직여 줬다. 종성우는 이내 술잔에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학생이 술은 무슨. 선배, 저는 술 못 해요. 사양할게요. 술 대신 사이다로 할게요.”정소현의 앞에 술이 따라지자, 그녀는 바로 거절했다.“소현 후배. 오늘 우리가 모두 여기서 만난 게 인연도 인연인데,
김예훈은 담담하게 받아쳤다.“그쪽에서 이렇게 예의를 보이는데, 내가 마다할 이유야 없죠. 그런데 소현이는 강요하지 말죠.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다고 하는데 애 힘들게 하지 맙시다. 대신 소현이 몫은 내가 다 마실 터이니, 그렇게 하죠. 내가 형부기도 하고 남자 친구이기도 하니까 대신 마시는 건 불만 없겠죠. 다들?”얘기를 하던 김예훈은 바로 술잔을 들고 일어서더니 백요한, 종성우 둘과 시선을 마주했고 서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았다.종성우가 앞으로 나서며 분위기를 이끌었다.“예훈 씨 보기랑 다르게 시원시원하네. 뭐 아까는 우리가 오해한 것 같네요. 자자, 사과의 의미로 먼저 한잔 올리죠. 같이 한잔해요.”말과 함께 종성우는 김예훈에게 술 한 잔을 따랐다. 옆에 있던 정소현은 표정이 달라지더니 이내 김예훈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술 싸움 하지 말라고 눈치를 줬다.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든 백요한 무리의 호의적이지 않은 숨은 속내를 엿볼 수 있었다. 정소현이 눈치를 줬음에도 김예훈은 별다른 반응 없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이분이 사회생활을 잘하시네. 한잔하죠.”말을 마치더니 김예훈은 곧 술잔을 비웠고 그 모습을 본 백요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와서 가늘게 실눈을 뜨며 한잔 술을 더 권했다.“예훈 씨, 성격이 호쾌하네요.”백요한은 겉으로 말은 정중하게 하지만 속으로는 진작에 김예훈을 바보로 정의했다.이런 자리에서 우리랑 술로 대적한다고? 여기서 취해서 기절하기만 하면, 내가 정소현을 손에 넣는 방법은 수백 개도 되는걸.’이내 백요한의 눈짓에 한 무리 사람들이 김예훈에게로 다가와서 술을 권했다.“예훈 씨, 우리도 얼굴을 텄으니 한잔합시다.”“예훈 씨, 정말 멋있네요. 자, 한잔 들어요.”“술잔을 채워요!”김예훈은 빼려는 생각이 전혀 없는 듯이 오는 사람 마다하지 않고 술잔을 한잔 두잔 다 비웠다.“형부, 그만 마셔요. 더 마시다가 큰일 나겠어요.”술로 당하는 김예훈의 모습을 본 정소현은 속이 타들어서 울기 일보 직전의 얼굴로 계
술이 술을 부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예훈도 얼굴이 상기되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있던 백요한은 연신 냉소를 지어 보였다.‘인해전술에 걸린 줄도 모르고 저리 즐기고 있으니 정말 바보 같은 인간이야. 경험상 여기서 몇 잔 더 들어가면 김예훈 분명 못 버틸 게 뻔해. 지금같이 마시면 목숨은 여기 내놓은 거나 마찬가지. 죽지는 않아도 병원에는 실려 가겠어.’옆에 있던 종성우는 백요한이 잘나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듯 한 기색이다. 피 보지 않아도 쉽게 이기는 법을 능수능란하게 선보이니 말이다. 김예훈 같은 바보한테 제격인 방법이지 않나 싶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종성우는 다시 술잔을 채우고서 김예훈을 찾아갔다.곧 자리의 양주가 바닥이 났고 정소현은 김예훈을 끌어당기며 말했다.“형부. 이젠 그만 마셔요. 집으로 가요. 네?”“여자가 뭘 알아! 우리 사내들의 술잔치니까. 껴들지 마.”김예훈은 제대로 몸을 겨누지 못했고 눈동자가 몽롱해 보였고 눈도 풀리기 시작했다.“맞아, 맞아. 예훈 씨 말이 맞아요. 오늘 밤새워 마시고, 마음껏 마시자고.”“여기 술 줘요.”곧 고량주 한 박스가 새로 들어왔다. 백요한 등 사람의 생각대로라면 양주에 다른 술을 섞어 마시는 게 더 빨리 취하는 지름길이니 김예훈이 좀 더 일찍 쓰러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생각 외로 김예훈은 곧 잘 술을 들이켰고,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백요한 등 일행과 쉬지 않고 마셨다.정소현은 속이 타들어 가듯 급했고, 계속하여 김예훈을 말렸다. 하지만 김예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취기 어린 상태로 상대방과 술을 계속 들이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고량주 한 박스도 거덜이 났고 소란하던 이들도 점점 목소리가 줄어들면서 조용해졌다.백요한을 비롯한 사람들은 술기운이 오르는지 기색도 좋지 않았고 다들 자리에 앉아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몸도 비틀거리고 의식도 약간 흐려지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상태가 그렇기에 아직 버티고 있는 김예훈이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더 이상
털썩그 술을 마신 뒤, 백요한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거의 같은 시각, 자리에 있던 모두가 엎어졌고 김예훈과 정소현만 살아남았다. 김예훈은 그제야 손에 든 술잔을 집어 던졌고 그의 표정도 정상적으로 돌아왔다.“형부, 괜찮아요? 봤어요? 지금 혼자서 이 많은 사람을 술로 다 쓰러 눕혔어요.”정소현은 충격받은 얼굴로 걱정스레 물었고 김예훈은 웃어 보였다.“나 아직 멀쩡해. 더 마실 수 있어.”“그러니까, 저번에 언니랑 고객 접대하러 갔을 때 그건 취한 척한 거네요. 그때 내가 막아서지 않았으면 형부한테 속아서 언니를 그냥 넘겨줄 뻔한 거네요. 형부 속셈대로 우리 언니랑 잤겠네요, 맞죠?”정소현은 번뜩 눈을 굴리더니 문득 그때 일이 떠오른 듯 다그쳐 물었다. 김예훈은 하도어이가 없어서 정소현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살짝 쿵 밀었다.“무슨 그런 말을 해. 난 네 형부야. 언니랑 같이 자는 게 정상이지.”“아무튼, 안 돼요.”정소현은 무섭게 노려보며 쏘아붙였다.“어린 게 참 영특해.”김예훈은 그런 처제가 정말 알다가도 모를 것 같고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이제 소현이 너는 먼저 나가서 기다리고 있어. 나는 여기 정리하고 나갈게.”정소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얌전히 밖으로 걸어 나갔고, 그제야 김예훈의 눈동자가 무섭게 변했다.김예훈은 백요한을 일으켜 세워 그의 주머니에 든 무색의 액체가 든 물건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백요한이 지니고 다니면서 맘에 드는 여자를 취할 때 쓰던 물건이었다.김예훈은 곧바로 그 액상의 물건을 백요한의 입에 부어 넣었다. 그리고 난 뒤 종성우를 끌어 들고 화장실에 처넣고는 밖에서 문을 잠가버렸다....프라이빗 클럽을 나선 김예훈은 정소현을 데리고 프리미엄 가든으로 향했고 며칠 묵게 했다.김예훈은 백요한 무리가 감히 다시 나타나면 밟아 죽일 생각도 마다하지 않았으니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북악산 기슭에 있는 별원.인도 태권도 일인자 박용진이 잠시 별원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곳의 아름다운 강산을 바라보는 박영
“기관 측의 핑계요?”박용진은 실눈을 뜨고 물었다.“네.”이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상대의 신원은 밝혀진 게 있나요?”“확인 한 바로, 내 사람들에게 손을 댄 이가 김예훈이라고 합니다. 진주 곽 씨 측에서 전해 온 소식에 따르면 김예훈의 정체가 아무래도 경기의 일인자인 김세자 같다고 하네요. 김세자면 CY그룹을 장악한 인물이고 CY에서는 이미 리카 제국 임씨가의 자산과 저희 청별 그룹의 경기 자산을 융합해서 틀어쥔 상태입니다. 지금 CY는 상장 준비를 하고 있고요.”“빌어먹을!”박용진은 눈빛이 확 변해서는 욕을 하고는 잠시 뒤에 마음의 안정을 찾고 다시 입을 열었다.“나는 또 무슨 대단한 신분인 줄 알았네. 고작 별거 아닌 세자쯤이야. 우리 인도가 김세자든 박세자든 세자 하나 상대 못 할까요? 기관에서 뒷배까지 서준다고 하니, 우린 우리 방식대로 상대해 주죠. 이 대표가 김세자를 아예 밟아줬으면 하네요. CY그룹도! 내가 CY그룹을 상장 못 하게 할 것이고 김세자를 완전히 거지로 만들어 버려야겠네요. 우리 둘이 같이 성남으로 가죠.”박용진의 말에 이대정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미 박용진이 말을 뱉은 이상, 그는 청별 그룹의 한국에서의 더 많은 자금과 인맥을 동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원을 나선 이대정은 곧 성남으로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곽 씨 도련님?”...같은 시각, 로열 가든 그룹.최근 들어 업무로 바쁜 정민아는 그에 더해 로열 가든 그룹 임원 정리로 더 바빠졌다. 회사 모든 업무가 그녀 한 사람의 몫이었다. 어떨 때는 중요한 클라이언트마저 저녁 시간에 짬을 내서야 만날 수 있을 지경이었다.저녁 끼니를 때우려고 배달 음식을 주문하려던 차에 정민아의 핸드폰이 울렸다.“정 대표님, 대전 백씨 가문에서 손님이 오셨는데 백운 별장 건으로 세부 사항을 논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이분들 올려보내도 되는지요?”프런트에서 걸려 온 전화는 정중하게 그녀의 의사를 물어왔다.정민아는 잠깐 고민하더니 답했다.“그 사람들 회사
백요한이 말을 마치자마자 백요한 뒤에 있던 그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노골적인 시선으로 정민아를 훑어보았다.정민아는 표정이 조금 굳어졌지만 여태까지 여러 일을 겪어온 그녀는 이런 일이 익숙할 정도로 성장했다.빠르게 정신을 차린 정민아가 담담하게 얘기했다.“보잘것없는 제 남편이 혹시 백요한 도련님의 심기를 건드린 적이 있나요?”“보잘것없다고?”백요한은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당신 남편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보잘것없다니. 감히 나를 건드리는 사람이니 진짜 대단하지 않으면 진짜 멍청한 사람이겠지.”“제 남편이 도대체 뭘 한 건가요?”정민아가 담담하게 물었다.그 질문에 백요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멀지 않은 곳의 종성우는 저도 모르게 엉덩이를 부여잡고 화가 난 표정을 하고 있었다.두 사람은 다 유명한 도련님이고 그중에서도 악독하기로 소문이 난 사람들이다. 그런 두 사람이 어젯밤 김예훈 때문에 그런 수모를 겪었으니. 게다가 수치스러워서 다른 사람에게 그 사실을 말할 수도 없었다.얼마나 억울한가.억울해서 가슴이 답답했다.정민아가 그 일을 물어보기 전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정민아가 그 일에 대해 물어보자 백요한은 금방이라도 화가 폭발할 것 같았다.어두워진 얼굴로 백요한이 얘기했다.“정 대표, 우리 짧게 얘기하자고. 오늘 정 대표를 부른 건 시킬 일이 있어서야.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은 두 가지야. 첫 번째, 당신 남편에게 전화해서 이곳으로 오게 해. 내가 직접 당신 남편의 다리를 부러뜨릴 거야. 두 번째, 당신 여동생도 불러. 이 두 가지 일을 해주면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 하지만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당신과 김예훈은 다 죽게 될 거야!”그 말을 들은 정민아의 표정이 싹 굳어버렸다.“백요한 도련님, 도련님과 예훈이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대방을 존중하는 법부터 배우셔야 할 것 같네요.”“존중?”백요한은 차갑게 웃고 입을 열었다.“내가 대전 백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야. 내 뒤에는 부산 용문당
종성우 등 사람들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백요한 도련님이 대단했다.짝.정민아가 갑자기 종성우의 뺨을 후려치면서 차갑게 얘기했다. “백요한 도련님, 제발 사람을 존중하는 법부터 배우고 오세요.”“존중?”백요한은 갑자기 정민아의 팔을 잡고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나는 침대 위에서만 상대방을 존중해 줘. 아, 그리고 알려줄 게 있는데, 오늘 아침 최종호 님께서 연락이 왔어. 곧 성남으로 와서 나의 배후가 되어주겠다고. 정민아, 당신이 김세자를 배후로 뒀다는 걸 알아. 하지만 그런 김세자도 우리 최종호 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만약 당신이라면 그냥 순순히 내 말을 따르겠어. 혹시 알아? 내가 좀 부드럽게 대해줄지?”쾅.이때 누군가가 갑자기 룸의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백요한, 내가 만약 당신이라면 바로 꿇겠어. 그래야 죽지 않을 수 있거든.”차가운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오정범을 데리고, 김예훈이 차가운 표정으로 들어섰다.얼마 전, 오정범은 몰래 정민아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에게서 정민아와 백요한이 만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그래서 김예훈이 바로 달려왔다.“너 이 자식, 드디어 나타났구나!”백요한은 정민아의 턱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김예훈을 훑어보며 차갑게 얘기했다.“우리,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잖아?”아침에 깨나서부터, 백요한은 미친 듯이 김예훈의 행적을 알아보았지만 여전히 찾았다는 소식이 없었다.정민아를 이용해서 김예훈을 부르려던 것은 그저 가벼운 생각이었지만 인제 와서 보니 매우 성공적인 방법이었다.종성우는 그를 보자마자 얼굴이 벌게졌다. 아직도 길을 걸을 때 엉거주춤하며 걷고 있는 종성우에게 이런 수모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었다. 그는 이 모든 일이 김예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잠깐일 뿐이지만 수많은 사람이 몰려왔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김예훈을 죽이는 것이었다.김예훈은 많은 사람의 시선을 무시한 채, 정민아 앞으로 걸어가서 가볍게 얘기했다.“괜찮아?”“난 괜찮아. 넌 어쩌
정민아와 그가 데려온 경호원들이 함께 룸을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김예훈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백요한,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오늘 성남에서 죽지 않을까 걱정되지도 않아?”“성남에서 죽어?”백요한은 크게 소리 내 웃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얘기하는 거야? 네가 대전 백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을 무시할 수는 있어도 내 배후는 무시하지 못할 거야. 용문당이 무섭지도 않아? 네 배후가 양정국이라고 해도 용문당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야!”용문당은 한국 기관의 지하 세력이었다.전설에 의하면 용문당의 당주는 서울에서 온 사람인데 지위가 하늘을 찌를 만큼 높다고 한다. 과거에는 한국의 9대 장관 중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퇴직한 후, 용문당을 만들었다.용문당은 각 지역에 다 존재했다. 그중, 부산 용문당의 회장이 바로 최종호였다. 이렇게 봤을 때, 백요한은 확실히 건드리면 안 되는 신분이었다.“용문당?”김예훈은 가볍게 웃었다.“용문당 당주가 오더라도 내 앞에서는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있을 거다. 그런데 고작 부산 용문당의 회장으로 날 상대하려고?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나에게 있어서 널 죽이는 건 지나가는 개를 죽이는 것보다 쉬운 일이야.”종성우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화를 내며 물었다.“너 이 새끼, 뭐라고 했어! 내가 지금 당장 널 죽일 수도 있다는 걸 몰라?!”백요한은 손을 저으며 화를 내는 종성우를 제지했다.“급해하지 말아요. 우리가 지금 이곳에 있고 그 대단하신 김예훈 도련님도 바로 눈앞에 있잖아요. 어디 한번 우리에게 손을 써보라고 하죠. 김예훈, 네가 오늘, 날 건드리지 못한다면 오늘 네 아내와 처제는 다 내 침대에서 울게 될 거야. 그렇지 않으면 또 사람을 시켜 네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다 죽여버릴 거야. 어때, 어디 한번 날 건드려 봐. 그러지 못하겠으면 네 아내를 다 벗겨서 내 침대로 보내. 나도 기다리기 힘들거든.”백요한 옆의 따까리들
분위기를 압도하는 차가운 목소리에 골든 수비대 정예들은 하나같이 움츠러들면서 감히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이 순간 아무도 김예훈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미야다 신노스케마저 한 발로 밟아 죽일 수 있는데 무술을 배우지 않은 총잡이 김태빈 정도는 죽이려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바로 이때,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김태빈이 마침내 정신을 차리더니 눈가를 파르르 떨면서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는 김예훈이 이 정도로 미친 사람일 줄 몰랐다.‘분명 불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대놓고 내 뺨을 때리다니. 그것도 모자라 나를 발로 차기까지 해?’바로 이때, 김태빈은 처음으로 김예훈을 똑바로 응시했다.‘김현민도 이 자식을 두려워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네. 김현민이 예전 같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김예훈이 정말 괴물 같은 놈이었던 거야.’적어도 김태빈은 태어나서 김예훈 보다도 더 거만한 사람을 본 적 없었다.“이런 제기랄. 도련님을 놔줘.”“도련님을 놔주지 않으면 바로 죽여버릴 거야.”“잊지 마. 여기가 누구 구역인지.”한 무리의 골든 수비대 정예들은 그제야 반응하면서 하나같이 총을 들고 다시 김예훈을 겨냥했다.김윤후도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김예훈 도련님, 함부로 하시면 안 돼요. 김태빈 도련님을 죽였다간 수습할 수도 없어요. 안동 김씨 가문 서열 3위의 아드님이라고요.”김태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보면서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넌 끝났어.”김예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진주·밀양에서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었어. 곽영현, 진두준, 타케이 나오토...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모두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 알아?”빠직.김예훈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왼발로 김태빈의 왼쪽 손목을 부러뜨렸다.“이것이 바로 그들의 최후였거든.”“악!”처참한 비명이 울려 퍼지고, 김태빈은 고통스러워 바닥을 굴렀다. 김예훈이 가슴을 밟고 있지 않았다면 아마 펄쩍 뛰었을 것이다.이 모습은 현장에 있던 사람들
김태빈도 이 점을 염두에 둔 듯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하지만 곧 화도 내지 않고 평정심을 되찾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내 기억이 맞는다면 박연서 사모님은 안동 김씨 가문의 안주인이 맞긴 하지만 10년 전에 자식을 잃은 슬픔으로 인해 진작에 안주인으로서의 권력과 지위를 포기한 상태라고 알고 있어. 내가 규칙을 어겼다는 것을 증명하기 전에 박연서 사모님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아니라 예전 그대로의 안주인임을 증명해야 할 거야.”“이럴 줄 알았어.”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김윤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김윤후는 멈칫하더니 품에서 금색 패쪽을 꺼내 조심스럽게 김예훈에게 건넸다.퍽.김예훈은 그 패쪽을 김태빈의 얼굴에 던지면서 냉랭하게 말했다.“눈 똑바로 뜨고 봐. 이것이 바로 수장님이 사모님을 보호하기 위해 남겨둔 수장 패쪽이니까. 이 패쪽을 보는 것은 곧 수장님을 본 것과 같은데 무례를 범한 거에 대해 어떻게 사죄하려고? 아무렇지도 않게 범인을 데려가려 하다니. 그것도 모자라 여기를 평지로 만들어버리겠다고? 너는 물론 김현민이 직접 와도 여기를 조금이라도 건드리지 못할 거야.”“그래?”김태빈은 표정이 싸늘해지면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그는 총알을 장전하더니 패쪽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패쪽은 순식간에 뚫려 더 이상 원래의 모습이 아니었다.“수장님 패쪽이 어디 있는데? 난 왜 못 봤지? 수장님 패쪽이 없으면 이곳에서는 골든 수비대가 왕인 거야.”다음 순간, 김태빈이 무심한 표정으로 손을 휘둘렀다.“잡아! 방해하는 자가 있으면 바로 죽여버려.”“어디서 감히!”골든 수비대가 움직이기도 전에 김예훈이 먼저 나서서 김태빈의 뺨을 때렸다.쨕!미처 반응하지 못한 김태빈은 입가에 피를 흘리면서 어지러운 느낌에 뒤로 휘청거렸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정신이 혼미해져 있었다.골든 수비대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가 없어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하려고 자기 뺨을 때리기도 했다.별장 보디가드와 하인들 역시 정신이
충격에 빠진 골든 수비대 정예들과는 달리 김태빈은 이미 완전히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그는 갑자기 손을 휘두르더니 피식 웃었다.“그냥 이 자식을 무시하고 범인부터 잡아! 반항하는 자가 있으면 모조리 죽여버려.”이 명령을 듣자 골든 수비대 정예들은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하지만 아무리 겁이 나도 이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갈 뿐이다.이들은 김예훈 몸 곳곳에 있는 급소를 겨누면서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김예훈이 갑자기 자기들을 죽일까 봐 걱정이었다.이때 김예훈은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말했다.“내가 움직여도 된다고 했어?”그저 말 한마디뿐이었지만 포스가 장난 아니었다.마치 거대한 기운이 위에서 아래로 짓누르는 듯한 느낌에 정예들은 주춤하고 말았다.이 순간 김예훈을 향해 총을 겨누는 것이 일종의 모독이자 불경인 것만 같았다.부하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는 김태빈의 얼굴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그는 눈꺼풀을 살짝 떨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김예훈, 난 네가 싸움 잘한다는 거 알아. 미야다 신노스케는 물론 야마자키파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을 죽인 것도 알아. 아마미네 토시로는 심지어 정면으로 승부하지 못했다면서? 네가 대단한 건 알겠는데 한 가지 생각해본 적 있어? 싸움을 아무리 잘해봤자 총알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해? 혼자 이 50자루의 총을 상대할 수 있겠냐고. 우리 골든 수비대를 이길 수 있어도 안동 김씨 가문에는 아직 2천 명의 경호원이 있어. 정 안되면 진주·밀양 각 세력의 인원을 동원할 수도 있다고. 10만 명은 안 되어도 8만 명은 될 거야. 혼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상대할 수 있겠어? 용문당 체면을 생각해서 너랑 끝까지 싸우지 않는 거야. 그래도 네가 나랑 맞서려 한다면 주저 없이 죽여버릴 거라고.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할게. 범인을 데려갈 거니까 꺼지든가. 아니면 죽음을 맞이하든가 마음대로 해.”이 순간 김태빈은 김예훈에게 안동 김씨 가문이 진주·밀양에서의 절대적인 권
“왜? 이해 못 하겠어?”김예훈은 앞으로 걸어가 손을 내밀어 조심스럽게 김태빈의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이해 못 하겠으면 나를 죽여버리든가. 그럴 수나 있겠어?”김예훈의 담담한 표정에 김태빈은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다음 순간 더는 참지 못하고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 김예훈의 이마를 겨냥했다.“김예훈, 입 다물라고. 내가 말해주는데 여긴 안동 김씨 가문의 구역이야. 여기서는 내가 기라면 기고, 엎드리라면 엎드려야 하는 거라고. 넌 여기서 함부로 날뛸 자격은 없어. 난 킬러가 너를 다치게 했든 안 했든, 용문당이 심문하든 안 하든 상관없어. 한마디만 물을게. 범인을 넘길 거야. 안 넘길 거야. 안 넘기면 용문당 체면이고 뭐고 그냥 죽여버릴 거야. 싸움 잘하는 건 알겠지만 아무리 실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총알을 이길 수 있겠어?”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거의 오십 명에 달하는 골든 수비대 정예들이 동시에 김예훈의 전신을 노렸다.이 순간 김태빈이 한마디만 하면 바로 김예훈을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릴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전혀 흔들림 없이 피식 웃더니 어깨를 으쓱였다.“내 손에서 사람을 데려가려면 진짜 실력을 보여줘야 할 텐데. 그깟 총 몇 자루로는 나랑 상대할만할 자격이 없을 거야.”“자격?”김태빈은 피식 웃고 말았다.“안동 김씨 가문에서는 용전이든, 용연옥이든, 용의 부대든, 용문당이든 다 상관없어. 5대 문호, 10대 명문가 규칙에 따르면 우리 안동 김씨 가문이 바로 진주·밀양에서 왕이야. 네가 용문당 집법부대 당주든, 용의 부대의 보호 대상이든 전혀 상관없어. 단언컨대 진주·밀양에서는 넌 그저 나한테 협조할 수밖에 없어. 방해할 생각하지 마. 아니면 너를 죽여버리고 여기를 평지로 만들어버릴 거니까. 내가 사모님을 죽이지 못할 것 같아?”김예훈의 말에 자극받았는지 김태빈은 표정이 차가워지더니 살기가 가득했다.“여기를 평지로 만들어버리겠다고?”김예훈은 무슨 우스갯소리를 들은 것처럼 골든 수비대를 쳐다보았다.“너희들은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을 텐데
입구에는 오직 김예훈만이 제자리에 서서 김태빈의 앞길을 막고 있었다.김태빈은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네가 누구든. 어떤 사람이든 내 앞길을 막지 말고 꺼져.”김태빈의 거만한 말투에도 김예훈은 화를 내지 않고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날 못 알아보겠어? 태산 뒷산 금지구역에서 몰래 양상철 어르신이 아마미네 토시로를 죽이려는 걸 막은 사람이 너지? 일본인의 앞잡이가 되어 내가 아마미네 토시로를 죽이는 걸 방해해놓고 나를 모른 척하는 거 재밌어?”김예훈의 웃을 듯 말 듯 한 말투에 김태빈은 분노하고 말았다.“입 다물어.”저번에 김현민을 위해 나선 것은 은혜를 갚기 위함이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그런데 애써 숨겨온 신분이 김예훈 앞에서 바로 투명하게 밝혀질 줄 몰랐다.비록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김태빈은 경계심을 품기 시작했다.‘역시 김현민과 김서하 모두를 골머리 앓게 만든 사람이네.’“당연히 알지. 여자 등이나 처먹는 용문당 집법부대 당주인 김예훈이잖아. 내가 말해주는데. 네가 용문당 사람이라고 해서 내가 너를 어쩌지 못할 거라 생각하나 본데. 여긴 진주·밀양이야. 우리 안동 김씨 가문의 구역이라고. 용문당 집법부대 당주라고 해서 함부로 해도 되는 줄 알았으면 오산인 거야. 여긴 안동 김씨 가문의 말이 곧 법이거든. 용문당 집법부대 당주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내가 진주·밀양에서 한 달에 얼마나 많은 부잣집 도련님들을 죽이는지 알아? 내가 원한다면 너 하나쯤 죽이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야.”김태빈은 김예훈을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말했다.“너를 건드리지 않는 건 사모님의 체면을 봐서야. 아무리 그래도 여긴 사모님 별장이잖아.”“쯧. 사모님 별장이라는 거 알고는 있었어? 안동 김씨 가문의 안주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냐고.”김예훈은 가소로운 표정으로 그를 비웃고 있었다.“그러면 네가 지금 여기서 무슨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옳고 그름도 구분하지 못하고 어른을 모욕하는 거만한 짓? 골든 수비대
안동 김씨 가문에서 골든 수비대의 지위는 집행 기관과 유사하기도 했고, 폭력성을 띤 조직이기도 했다.그들은 안동 김씨 가문의 중요 인물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내부 안전을 수사하고 잠재적 위험 요소를 해결하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깨끗한 일이든, 더러운 일이든 모두 골든 수비대에서 책임지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그리고 장기간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해 골든 수비대 인원들은 매년 반년 동안 해외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이들은 정말 칼에 묻은 피까지 핥는 사람들이라 각자의 실력은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고, 평범한 경호원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었다.곧이어 흰 정장을 입고 머리를 뒤로 넘긴 남자가 앞장서서 50여 명의 장정을 이끌고 별장 안으로 들어왔다.아직 이곳을 떠나지 않은 김예훈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입구에 서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원래는 김현민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안동 김씨 가문의 절세 총잡이인 김태빈이 찾아올 줄 몰랐다.김예훈은 양상철이 했던 말이 떠올라 자연스레 시선이 그의 손으로 향했다.새하얀 손바닥에 박힌 굳은살을 보고 있자니 뭔가 무시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박연서의 전담 보디가드인 김윤후가 앞으로 나서서 차가운 시선으로 김태빈을 바라보았다.“셋째 도련님 맞으시죠? 어떻게 겁도 없이 이 시간에 쳐들어올 수 있는 거죠?”김태빈은 검은 우산을 펼치며 김윤후를 흥미롭게 쳐다보았다.“언제부터 하인 따위가 내 앞에서 함부로 떠들 수 있었던 거지? 내가 누군지 알고 있다면 내가 골든 수비대 책임자로서 안동 김씨 가문 고위층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도 알 텐데? 방금 거미파 킬러가 사모님을 암살하려 했다는 신고받고 왔어. 이건 우리 안동 김씨 가문 고위층의 안전과 체면에 중요한 일이라 범인을 데려가야겠어. 심문이 끝나면 처리해야 되는대로 처리할 거야. 때리든 죽이든 사모님께 명확한 답변을 드릴 거라고. 김윤후, 네가 아무리 사모님 전담 보디가드라고 해도 여기서 말할 자격은 없어. 난 특권을 받은 사람이야.
빅토리아 항구 사무실 안.김현민은 이제 막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그는 전화를 받는 순간 표정이 변하더니 결국 일그러지고 말았다.“왜? 이번 계획도 실패한 거야?”옆에 있던 김서하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김현민은 어두워진 표정으로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계획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 거미파 킬러가 박연서한테 잡혔다고 하네요. 그런데 그 킬러가 현재 혼수상태에 빠져서 아직 뭘 알아낸 건 없나 봐요. 박연서가 이미 수장님께 전화해서 심층 심문할만한 사람을 보내라고 했대요. 시간만 충분하다면 무조건 저희를 찾아낼 수 있을 거예요. 비록 증거는 없지만 이 또한 골치 아픈 일이 아니겠어요? 이 일이 소문이라도 나면 제가 수장 자리에 앉지 못하게 될 수도 있어요.”김현민은 일이 이렇게 복잡해질 줄 몰랐는지 이마를 문질렀다.김예훈 암살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 박연서 암살마저 실패했기 때문이다.이 순간 그는 자기 실력과 능력이 의심될 정도였다.김서하도 이 말을 듣고 소름이 끼쳤다가 잠시 후에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현민아, 어떻게든 그 킬러를 무조건 죽여야 해. 죽이진 못하더라도 우리가 잡아 와야 해. 아니면 정말 엄청난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어.”“저도 알고 있어요.”김현민은 한숨을 내쉬면서 뒷짐을 쥐고 걸어가 금고를 열어 암호화된 핸드폰을 꺼냈다.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지문인식과 홍채인식을 마치자 신속히 통화가 연결되었다.이때 전화기 너머에서 다소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이야.”김현민이 냉랭하게 말했다.“방금 들은 소식인데 거미파 킬러가 안동 김씨 가문 안주인 암살에 실패했대. 거미파가 또 다른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 킬러를 데려와야 해. 난 다른 사람이 이것을 내 약점으로 나를 모함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상대방은 잠시 침묵하다 담담하게 말했다.“김현민, 잘 기억해. 이번이 네가 마지막으로 안동 김씨 가문 차기 수장의 신분으로 나한테 명령한다는 거. 나도 최선을 다하겠
“김현민이요.”박연서는 이번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전체 안동 김씨 가문에서 저한테 손댈만한 기회와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그리고 제가 눈치채지 못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김현민뿐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저를 죽이지 못해 안달나 있을 줄은 몰랐네요. 제가 곧 호적상으로 엄마가 될 텐데 말이에요.”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그러니까 제가 저번부터 김현민은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잖아요.”박연서가 담담하게 말했다.“그렇게 단정 지을 수만은 없어요. 제가 십 년 전 사건을 다시 들추기로 한 이상 많은 이들의 이익을 건드릴 수밖에 없어요. 김현민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제가 죽기를 바랄 거예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저를 죽이고 싶어도 제가 무서워서 차마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저는 어차피 아직은 안동 김씨 가문 수장의 아내이자 서열 2위니까요. 이 많은 사람 중에 저한테 손댈만한 사람은 얼마 없어요. 그리고 김현민은 그중에서 단언컨대 제일 겁 없는 사람이고요.”김예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러면 이번 사건을 통해 십 년 전 사건을 주도한 사람이 김현민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거예요?”박연서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한참을 머뭇거리다 말했다.“김현민은 그때 당시 겨우 열네 살에 불과했어요. 그 어린아이가 이런 사건을 도모할 수는 없잖아요. 김현민과 얽히긴 했겠지만 뒤에서 누군가가 부추긴 것이 틀림없어요. 예를 들어 큰아주버님인 김태훈 씨나 막내 아가씨 김서하 씨말이에요. 형제들이 연합해서 꾸민 일이라고 해도 불가능할 건 없죠.”김예훈은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문질렀다.“비록 저한테는 그렇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사모님한테는 사방이 적이네요.”박연서가 또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십 년 전 사건에 참여한 사람은 이번에 저를 다시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함부로 움직여봤자 눈에 띌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정말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단 한 명. 바로 김현민이겠죠.”박연서는 감탄하기
쨍그랑.김예훈이 찻잔을 던지는 순간, 여자 부하는 본능적으로 한쪽으로 몸을 피했다.이어 본능적인 행동 때문에 신분이 드러났음을 깨달은 그녀는 표정이 차가워지고 말았다.이 순간, 그녀는 앞뒤를 가리지 않고 은침 무더기를 김예훈이 있는 곳으로 던졌다.김예훈은 차가운 표정으로 냅킨으로 그 모든 은침을 받아냈다.그 틈을 타 여자 부하는 몸을 낮추더니 어느샌가 손에 칼을 들고 있었다.그녀는 굴러서 박연서 앞으로 다가오더니 그녀의 목에 칼을 대려고 했다.피융. 피융. 피융.하지만 칼을 드는 순간 겉보기에는 힘이 전혀 없어 보이는 박연서가 어느새 손에 총을 쥐고 있었다.박연서가 무심한 듯 총을 쏜 것 같아도 여섯 발 모두 그녀의 몸에 박혔다.여자 부하는 잠시 몸부림치다 열국 일그러진 표정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겉보기에는 힘없어 보이는 박연서가 도대체 어디서 총을 꺼냈는지 말이다.“조사해봐. 가족 모두 한 명도 빠짐없이.”한 무리의 안동 김씨 가문의 보디가드들이 달려들어 오는 가운데, 박연서는 휴지로 손가락을 닦으며 아무렇지 않게 명령했다.“오늘 접촉했던 사람 모두. 개 한 마리라도 절대 놓치지 말고 철저히 조사해. 과연 누구를 접촉했는지, 또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 알아야겠어. 안동 김씨 가문의 별장에 반년이나 잠복한 걸 보면 반년 전부터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 했던 모양이야.”박연서의 명령에 따라 한 무리의 보디가드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 진주·밀양에 곧 피바람이 불지 않을까 싶다.곧이어 시체는 치워졌고, 식탁도 말끔히 정리되었으며 공기 중에는 은은한 향기마저 감돌았다.직접 두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누가 방금 이곳에 암살 사건이 벌어졌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김예훈은 박연서에게 한 수를 둔 것이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에 그녀를 흥미롭게 쳐다보았다.적어도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자신만의 생각에 잠겨 보이차를 마시고 있던 김예훈이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중요한 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