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황금색 자수가 박힌 부드럽고 귀한 재질의 옷이 그리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을까. 누가 봐도 고귀한 귀족의 복식이며, 대단한 가문을 상징할 것이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화려한 의복이었다.
"마리, 혹시 몰라. 네가 이 망토를 가지고 있어. 옷은 내가 지니고 있을 테니까."
"왜? 아린, 네 옷이잖아."마리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러자 아처린은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의 가녀린 허리를 살며시 끌어안으며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마리가 몸을 움찔거렸지만, 이내 따스하게 밀려드는 그의 입술을 수줍게 받아들였다.
"네가 내 여자라는 징표야. 꼭 가지고 있어. 그리고 라이칸스로프 마정석도 난 필요 없어."
마리는 어느새 붉어진 얼굴로 눈만 깜빡였고, 아처린은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듯
신조차 농락하는 지독한 우연.아처린과 함께 캔돔령 저잣거리 한복판에서 할 로드와 레이나를 마주치게 되다니.그저 입맛이 없어 저잣거리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이나 나누며 아처린과의 소소한 시간을 보내려 했을 뿐인데, 상황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거대하게 틀어져 버리고 말았다."마리? 오랜만이야!"할 로드는 나를 반기면서도 아처린을 의식하면서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아, 할 로드 님······. 반가워요."나 역시 그가 반갑지만, 이내 아처린의 팔짱을 조심스레 꼭 끼고는 혹시나 이곳에서 칼부림이 생길까 조심스러워 마른침만 삼켰다.어쩌다 이렇게 넷이서 만나게 되는 날이 오게 된 걸까."밥이나 같이 먹을까?"합석을 제안하는 그의 손은 허리춤의 검 자루에 올려놓고 있어 그 본능적인 경계심이 내 마음마저 서늘하게 차갑게 식혀놓았다.레이나는 놀라 나처럼 할 로드의 팔을 꼭 잡으며 떨고 있었다."그건 좀······, 저희가 같이 한 식탁에 앉아 식사할 사이는 아니잖아요. 이만 일어날게요."내가 아처린의 소매 끝을 잡아당기며 돌아서려 할 때였다."······아린, 우리 그냥 가자. 기분이 바뀌었어."아처린은 턱을 괸 채 매혹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내 가녀린 팔목을 단단히 붙잡아 챘다.마치 나의 주저함을 진작부터 다 계산하고 있었다는 듯한 느긋한 움직임이었다."마리. 할 로드라는 이름은 들어봐서 그런지, 이리 보니 기분이 묘하군."순간 이 자리는 공
7월의 첫날.작렬하는 태양이 온 제국을 뜨겁게 달구는 바야흐로 한여름의 한복판이었다.레이나의 입덧은 날이 갈수록 하늘을 찔렀고, 결국 그녀는 예전에 먹던 저잣거리의 음식이 미치도록 생각나, 할 로드를 채근해 캔돔령으로 직접 나들이를 감행하기에 이르렀다.안전상 공작 부부라는 신분을 그대로 드러내며 저잣거리를 활보할 수는 없었기에, 두 사람은 차림새를 간소하게 다듬었다.구 도르하르 제국의 황태자이자 이제는 도르하르 공작가의 주인인 할 로드는, 예전 캔돔가 기사 시절에 입던 소박하지만 날렵한 가죽 갑주 차림을 선택했다. 레이나 역시 화려한 드레스 대신 수수한 하위 귀족 여성의 차림을 갖추었다.하지만 타고난 기품과 수려한 이목구비까지 숨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저잣거리의 서민들이 보기에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눈부신 미남미녀였기에, 두 사람이 발을 내딛는 곳마다 자연스럽게 이목이 쏠려들었다."각하, 아니지······. 여기서는 그냥 '할 로드'라고 불러도 되지?""그럼. 나 역시 이 편이 훨씬 달콤하고 좋아, 레이나. 그대와 이렇게 소박하게 손을 잡고 걸으니 예전이 떠오르는군."할 로드가 낮게 읊조리며 레이나의 가녀린 손가락 사이로 제 긴 손가락을 얽어매어 왔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저잣거리 데이트에 레이나의 가슴은 설렘으로 사정없이 두근거렸다.할 로드 역시 제 품 안에서 조금씩 활기를 되찾아가는 레이나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다정하게 말아 올렸다."아, 너무 좋아. 이렇게 푹푹 찌는 여름인데도 할 로드랑 걸으니 에너지가 치솟는 것 같아.""그래, 그대 이쪽으로 와. 내가 그늘을 만들어 줄 테니."할 로드가 듬직한 체구로 그녀의 곁에 밀착해 햇빛을 가려주며, 단단한 팔로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꼭 감싸 안았다. 닿
유난히 무더위가 일찍 찾아온 6월의 끝자락.한여름의 열기 속에서 임신한 레이나의 체온은 쉴 새 없이 치솟았고, 무거워진 몸과 사정없는 입덧 탓에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운 나날의 연속이었다."우욱, 읍······!""레이나!"레이나의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 구역질로 일그러질 때마다, 할 로드는 부서질 듯 여윈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은 채 깊게 패인 목덜미에 입술을 깊이 묻었다."부드러운 수프를 끓여 오고, 과일과 타르트도 종류별로 당장 준비해!"매일 불규칙하게 당기는 음식과 먹자마자 토해버리는 음식이 쉴 새 없이 바뀌니, 그녀의 식사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뭘 좀 삼켜야 기운을 차릴 텐데······."어느 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하다가도, 또 어떤 날은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세상을 하직할 것처럼 고통스러워하니 도무지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었다."레이나, 오늘은 뭐가 좀 생각나?""음, 저기······. 작년에 미하엘 님과 데뷔탕트 때 먹었던 그 사과 셔벗이······."할 로드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이내 아하, 하고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레이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그대는 참 대단하군. 그 아수라장 같던 난리통에 까마득히 잊혔던 음식을, 1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떠올리다니.""에효, 이제 라이신은 엄연한 황태자비 전하이신데 만들어 달라고 를 쓸 수도 없고."레이나는 침대에 털썩 앉아 식은땀을 닦아내며 골골거리더니, 이내 옆으로 힘없이
서아리노 길드 상점 내부는 평소처럼 수많은 용병과 귀족가 수하들의 문전성시로 어수선한 소음이 가득했다.마정석과 다양한 모험가들이 구해온 전리품, 그리고 각종 광물을 거래하려는 상인들과, 무기 및 마법 물품의 가치를 정정하려는 자들이 소란스럽게 대화를 나누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상점 안으로 들어선 아처린은 그저 번거로운 일 없이 깔끔하게 거래만 마치고 싶었다. 누군가 옆에 다가와 귀찮게 구는 상황이 싫었던 그는 은근하게 고압적인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어, 어서 오십시오······. 어머! 손님!"상단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레나는 아처린을 알아보자마자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아처린은 주변의 쏠리는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아공간에서 오늘 파르교산에서 획득한 마정석들을 후두둑 카운터 위로 올려놓았다. 주변에 있던 이들은 오만한 자태로 유유자적 서 있는 아처린을 향해 공포와 경악에 찬 눈빛을 보냈다."오늘 이 마정석의 시세는 어찌 되는지 궁금하군."아처린의 낮게 깔린 음성이 서늘하게 상점 내부를 울렸다. 레나는 눈을 반짝이며 천천히 입꼬리를 올리곤, 얼른 부길드장인 리노를 불렀다."상급 마정석 기준으로 순도와 크기에 따라 은화와 금화로 챙겨드리겠습니다. 혹시 파르교산이라도 다녀오셨나요? 워낙 희귀한 마정석을 가져오셨군요." "그렇소."아처린은 슬며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그의 손에서 떨어진 마정석들을 리노가 하나하나 분류하며 묵직한 마찰음을 내었고, 고급 목재 카운터 위로 은화와 금화를 내어놓기 시작했다.라이칸스로프 정도는 아니더라도, 오늘 획득한 마정석 역시 주위의 빛을 흡수할 듯 짙은 흑빛과 찬란한 푸른빛을 동시에 뿜어내는 최고 순도라는 설명이 덧붙여졌다."대단하시군요. 손님,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시고요? 포션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포션이라는 말
나는 어쨌든 아처린과 함께 아름다운 해안가에서의 특별했던 하루를 지내고 그곳에서 벗어났다.페르도트 백작령은 아무래도 캔돔가의 가신의 가문이라 그런지, 치안도 대단하고 곳곳마다 호위 기사들이 신분 검사도 하는 등 삼엄한 분위기였다.어쨌든 묘한 기분이 드는 바람에 완전히 벗어난 뒤에야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아처린과 함께 간밤 결계는 쳤지만, 노숙을 이어오며 소소한 일들을 겪어왔기에 피곤이 몰려왔다."아린, 우리 이번에는 남부로 가 볼까?""그래, 도시도 산도 바다도 보았으니, 이제 조용한 시골 마을도 한번 가 보지 뭐."마침내 우리는 캔돔 가문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 평범하고 한적한 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캔돔가의 엄격한 치안이 미치지 않는 영지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곳이라는 뜻이기도 했다.저잣거리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분위기부터가 확연히 달랐다. 무기를 차고 험악한 인상을 찌푸린 자들이 길가에 늘어서서 우리를 훑어보는 시선이 여간 흉흉한 게 아니었다."여기는 좀 무섭네.""너와 내가 뭐 저들보다 약할 것 같지는 않아."하긴 이제 아처린이 자신조차 감당하기 힘들 만큼 강력한 마력을 구사하게 되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인적 드문 길목에서 떼거리로 몰려드는 도적떼와 일일이 칼부림을 벌이는 것은 생각만 해도 피곤하고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그냥 숙소나 잡아서 편히 쉴까?""레이디 뜻대로."내가 속으로 중얼거리던 그 찰나, 아처린은 그 특유의 예리한 감각으로 나의 기색을 살피고 있었다.한여름의 무더위 탓에 내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히는 것을 발견한 그는, 망설임 없이 저잣거리 한복판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번듯해 보이는 상점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그리곤 묵직한
"전하, 괜찮을까요?"라이신은 아처린이 엄청난 마력을 지녔으며, 라이칸스로프를 사냥해서 다시 나타난다고 예고한 사실을 결코 허투루 여길 수가 없었다."그자가 아처린 전 황태자가 맞다 한들 달라질 것은 없다. 기억을 잃은 채 떠도는 자일 뿐. 다시 나타난다 해도 우리의 입지가 흔들릴 이유는 없어."바아르가 차분하면서도 위엄이 서린 음성으로 선포하듯 말하며, 장내를 채운 가신들의 불안을 눌러앉혔다. 그러자 세이바로와 서아리노가 차례대로 입을 열어 보고를 이어갔다."예, 전하. 하지만 그가 왜 캔돔령 주변을 맴도는지는 의문입니다.""황금빛 오러가 파도를 갈라치던 그 위압적인 기세는 과거 황태자 시절보다 훨씬 유려하고 치밀해진 모습이었습니다."이미 레투니카 가문이 다스리던 옛 제국은 역사의 뒤편으로 완벽히 사라졌다.현재는 캔돔 가문이 새로운 황가로 입지를 다진 엄연한 현실이었다.상석에서 경청하던 페르도트 백작이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그자가 기억을 되찾는다면 옛 레투니카 황가와 결속력이 깊었던 귀족 세력과 손을 잡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게다가 감옥에 수감된 피르닉스는 조만간 전 황태자가 제국의 정통성을 되찾으러 올 것이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습니다."가신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무엇보다 황태자비인 라이신의 안위였다.그때, 조용히 경청하던 할 로드가 한마디를 덧붙였다."키요리타 산맥 오두막에 보관되어 있던 마정석이 사라진 일도, 어쩌면 아처린 전 황태자가 지하 미궁에서 탈출하며 가져간 것일지도 모르겠군요."그 순간 서아리노가 아하, 하고 작게 탄성을 내지르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그자는 함께 다니는 레이디는 지극히 아끼는 듯해 보였습니다. 그녀를 위해 성을 사주겠다는 말까지 흘렸으니까요. 마리라는 그 여인은 과거 캔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