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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
찍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
Author: 루니

1화

Author: 루니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6 18:57:41

“불륜 증거만 가져오세요. 얼굴은 꼭 나오게.”

의뢰인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강서하는 그 문장을 떠올리며 망원렌즈를 호텔 루멘 1807호에 맞췄다. 22시 17분. 윤태오는 19분 전 혼자 들어갔고, 검은 원피스의 여자는 8분 뒤 같은 호텔로 들어왔다.

여기까지는 너무 쉬웠다.

너무 쉬운 의뢰는 대개 뒤에서 귀찮아졌다.

NOCK에서 일한 지 5년째였고, 서하는 사람들의 거짓말이 어디서 티 나는지 대충 알았다. 배우자가 야근한다고 거짓말할 때는 주차장에서 들켰고, 출장이라고 둘러댈 때는 카드 내역에서 걸렸다. 호텔까지 따라온 경우는 더 간단했다. 같은 시간, 같은 건물, 같은 층. 찍을 것만 찍고 빠지면 됐다.

문제는 저 남자가 쉬운 피사체가 아니라는 데 있었다.

찰칵.

창가에 선 윤태오가 화면 안으로 들어왔다. 넥타이는 없었고 셔츠 단추가 2개쯤 풀려 있었다. 대충 기대 서 있는 것뿐인데 얼굴이 이상할 만큼 또렷했다. 조명이 한쪽을 먹어도 윤곽이 죽지 않았고,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다시 가장 잘 잡히는 위치로 돌아왔다.

서하는 카메라를 잠깐 내렸다.

“모델 했나.”

혼잣말이 튀어나왔지만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사람을 찍는 건 익숙했다. 잘생긴 남자도, 예쁜 여자도 10분이면 배경이 됐다. 중요한 건 표정이 아니라 증거였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남의 침대 사정에 호기심을 붙이면 이 일은 오래 못 했다. 서하는 보고 싶은 게 아니라 필요한 것만 봤다.

그런데 1807호 커튼은 계속 열려 있었다.

불륜을 들킬까 봐 호텔까지 온 사람이 가장 먼저 닫아야 할 걸 윤태오는 손도 대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가 창가에서 물러나자 그 자리를 자연스럽게 차지했고, 와인잔을 내려놓는 순간까지 카메라 쪽으로 몸이 돌아와 있었다.

찰칵.

서하는 한 장 더 찍었다.

검은 원피스의 여자가 가까이 붙었다. 이번엔 뭔가 잡히나 싶었으나 둘은 닿지 않았다. 여자는 손을 테이블에 짚었고, 윤태오는 잔 하나만 밀어줬다.

연인이라기엔 거리가 너무 정확했다.

여자의 표정도 이상했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윤태오를 제대로 보지 않았고, 손가락은 잔보다 휴대전화에 오래 머물렀다. 둘이 한 방에 있다는 사실만 필요해서 누군가 억지로 세워둔 사람들 같았다.

“둘이 진짜 붙어먹는 사이는 맞아?”

답할 사람은 없었다.

서하는 줌을 조금 당겼다가 바로 풀었다. 셔츠 사이로 드러난 피부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그의 자세였다. 마치 누가 어디서 보고 있는지 알고, 그 프레임 안에 몸을 맞추는 사람 같았다.

그때 윤태오가 소매를 걷었다. 손목이 드러났고, 잔을 들던 손이 멈추더니 창밖 어딘가를 한 번 짚었다. 서하는 반사적으로 셔터를 눌렀다가 바로 손을 뗐다. 찍으라고 준 장면을 받아먹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얼굴 잘 나오게 찍어주세요.]

의뢰인이었다.

서하는 화면을 내려다봤다.

아직 사진 한 장 보내지 않았다. 중간 보고도 없었다.

그런데 타이밍이 정확했다.

“보고 있나?”

서하는 답장하지 않고 발신번호를 다시 확인했다. 처음 계약할 때 받은 번호와 같았다. 이상은 없었다. 다만 의뢰인은 첫 통화에서도 윤태오가 누구와 만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얼굴만, 확실하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배우자의 상대를 확인하려는 줄 알았다.

지금은 조금 달랐다.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윤태오가 사라져 있었다.

방금까지 창 앞에 있던 남자가 화면에서 통째로 빠졌다. 소파, 테이블, 조명, 여자. 끝.

서하는 프레임을 왼쪽으로 옮겼다가 오른쪽으로 훑었다.

없었다.

옥상 출입문을 돌아봤다. 닫혀 있었다. 바람에 굴러간 빈 캔 하나가 벽에 걸려 멈췄고, 그 외에는 아무 움직임도 없었다.

“어디 갔어.”

다시 렌즈를 올린 순간, 서하의 손이 멈췄다.

윤태오가 창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전보다 훨씬 가까웠다.

그가 커튼 끝을 잡았다.

서하는 속으로 숫자를 셌다. 이제 닫는다. 그럼 여기까지 찍고 퇴실 시간만 확인하면 된다.

그런데 윤태오는 커튼을 닫지 않았다.

반대로 끝까지 밀어젖혔다.

1807호가 훨씬 선명해졌다.

“미쳤네.”

서하는 셔터를 눌렀다.

1장.

윤태오가 와인잔을 들었다.

2장.

그가 고개를 돌렸다.

3장.

손가락이 멎었다.

윤태오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창밖 풍경을 보는 게 아니었다. 맞은편 건물도 아니었다.

정확히 렌즈였다.

서하는 카메라를 몇 센티미터 옆으로 옮겼다.

윤태오의 얼굴도 따라왔다.

그는 잔을 입술에 가져갔다가 천천히 내렸고, 아주 짧게 고개를 기울였다. 인사도, 미소도 아니었다.

그래서 더 기분 나빴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이번에는 모르는 번호였다.

[더 당겨.]

서하는 화면을 보다가 다시 1807호를 확인했다.

윤태오는 그대로였다.

2번째 메시지가 왔다.

[그 각도면 셔츠 안까지 보이잖아.]

서하의 손이 멈췄다.

3번째.

[계속 찍어. 네가 어디까지 보는지 궁금하니까.]

“미친 새끼.”

서하는 즉시 번호를 캡처했다.

그 순간 메시지 하나가 더 도착했다.

사진이었다.

서하가 방금까지 숨어 있던 옥상.

그리고 사진 한가운데에는 카메라를 든 서하의 뒷모습이 찍혀 있었다.

촬영 시각은 22시 26분.

지금이었다.

서하는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뒤는 보지 마.]

곧 마지막 문장이 떴다.

[찍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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