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가태윤만 알았다. 진서준의 말 중에는 허풍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 역시 진서준의 도움이 없었다면 서울 병원에 가지 못했을 것이다.그러나 가태윤이 아무리 좋게 말해도 마연정 등은 믿지 않았다. 그들은 두 사람이 짜고 치고 거짓말한다고만 생각했다.그들이 아무리 차가운 반응을 보여도 아랑곳 하지 않은 진서준은 나수진을 바라보며 물었다.“혹시 탕두가결을 외울 줄 아나요?”나수진은 잠깐 멈칫했다. 그러고는 무의식적으로 되물었다.“탕두가결이 뭔데요?”진서준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서울 병원은 쓰레기장이 아니에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죠.”“지금 날 욕한 거예요?”나수진은 김원의 무릎에서 벌떡 일어났다. 분노 서린 눈빛은 진서준에게 단단히 고정되었다.“제가요? 그쪽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고요?”진서준은 바보를 보는 눈빛으로 나수진을 바라봤다. 나수진과 김원의 안색은 동시에 어두워졌다.“가태윤 씨, 당신 친구 미친 거 아니에요?”김원은 가태윤에게 화풀이했다. 시비를 건 쪽은 분명히 그들이다. 하지만 여자친구가 있기에 가태윤은 어쩔 수 없이 먼저 사과했다.“제 친구가 성격이 조금 불같아서 그래요, 신경 쓰지 마요.”“하, 불같다고요? 그 지랄맞은 성격을 감당할 능력은 있고요? 능력 없이 지랄만 할 줄 알면 그게 미친놈이지, 뭐에요!”“이 좋은 술도 네 입은 막지 못하는구나.”마연정은 자신의 만든 자리를 김원이 망치는 것을 마냥 보기만 할 수 없었다. 행여 소문이라도 난다면 체면이 깎일 것이기 때문이다.진서준을 힐끗 노려본 김원은 씩씩대며 양주 뚜껑을 땄다. 그대로 한 모금 마시고는 사레에 걸려 한참이나 기침했다.“연정아, 남친이 서울 병원에 들어갔으면 더 좋은 술을 사야 할 거 아니야. 이런 건 거지도 안 마셔!”김원의 말을 듣고 마연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테이블에 놓은 10병의 양주는 개당 16만 원이나 하는 고가였기 때문이다. 10병이면 무려 160만 원이었다. 이 방에 있는 모든 술을
진서준이 정말 따라 주문한 것을 보고 김원은 피식 웃었다.“그만두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예요. 이따가 계산할 때 잔액이 부족하다고 해도 대신 내주지 않을 거니까요.”“그쪽이 상관할 바는 아닌 것 같은데요.”이때 마연정이 말을 보탰다.“걱정하지 마, 서준아. 돈이 모자라면 나랑 태윤이 보태줄게.”가태윤의 카드에는 몇억 원 정도 있었다. 그저 술값에 팔 수 있는 돈이 아닐 뿐이다.직원은 금방 진서준과 김원이 주문한 양주를 가져왔다. 김원은 그중 한 병을 나수진에게 밀어줬다.“자기야,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나수진은 김원을 껴안으며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그녀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토록 비싼 술을 처음 받아봤다.마연정과 송예은은 잔뜩 부러운 눈치였다.“이쪽에는 두 병 더 주세요.”진서준이 말했다. 비록 그는 마연정과 송예은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가태윤의 친구들이기에 소홀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 두 사람은 그에게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서준아, 너 미쳤어?”가태윤은 이미 진서준 대신 술값을 내 줄 마음의 준비를 했다. 오늘 도움 받은 것도 있기 때문이다. 진서준이 마그레라의 사장에게 혼나는 모습은 절대 두고 볼 수 없었다.그러나 진서준이 윈스턴을 두 병 더 주문한다면 그도 감당할 수 없었다.“둘이 한 병을 마실 수는 없잖아? 난 남이랑 같은 술 안 마셔.”진서준은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말에 김원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가 술을 더 주문하는데 김원이 따르지 않는 건 체면이 깎이는 일이었다.두 사람 사이에는 이미 경쟁이 불붙었고 김원은 절대 뒤처지고 싶지 않았다.“이쪽도 두 병 더 줘요!”김원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곧이어 직원이 술을 더 가져오고 진서준은 단호하게 외쳤다.“전부 열어줘요!”듣기 좋은 소리와 함께 네 개의 술 뚜껑이 전부 열렸다.진서준은 김원을 향해 머리를 돌렸다.“이름이 김원 씨라고 했죠? 술을 좋아하시나 본데 주량은 어때요?”“그쪽보다는 좋을 거예요!”김원은 눈이 새빨개졌다. 윈스턴
상대는 다름 아닌 조금 전 주문 받았던 직원이었다. 그의 뒤에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과 얼굴 곳곳에 피멍 든 김원과 나수진이 있었다.이 장면을 보고 가태윤은 당황한 듯 안절부절못했다. 직원은 오래 대치하지 않고 본론을 꺼냈다.“감히 마그레라에서 돈 안 내고 도망치려고 하다니, 너희들 죽고 싶어서 환장했지?”김원과 나수진이 도망치려고 했다는 것을 듣고 가태윤을 눈을 크게 떴다.“야, 너 한 달에 1000만 원씩 번다며? 이 정도 술은 마실 수 있는 거 아니야?”마연정은 이때다 싶어서 김원을 비웃었다. 그의 얼굴은 이미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고 얼굴에 남은 흉터는 커다란 벌레와 같았다.“난 도망친 거 아니야! 급히 할 일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오해한 거라고!”김원은 새빨개진 얼굴로 외쳤다. 하지만 이 자리에는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이 없었다. 그의 말은 누가 들어도 변명이었다.“헛소리하지 마, 우리한테 잡혀 온 걸 다행으로 알라고. 만약 오늘 진짜 도망갔다면 몇 대 맞는 거로 끝나지 않았을 거야!”직원은 김원을 향해 발길질했다. 바닥에 쓰러진 그는 살려달라고 애원할 수밖에 없었다. 이 순간 사람들의 신경은 김원이 아닌 진서준에게 집중되었다. 진서준은 과연 몇 억 원의 술값을 낼 수 있을지 궁금했던 것이다.마연정과 송예은은 이런 자리에 자주 다녔다. 하지만 그녀들이 평생 먹은 술값을 합해도 오늘 진서준의 술값보다는 적었다.김원을 경고하고 난 직원은 진서준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어이, 똑같은 꼴 되고 싶지 않으면 돈 내시지.”이 말을 들은 진서준은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식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계산하는 법이 어디 있죠?”여러 술집을 다녀본 진서준에게 밥 먹다 말고 돈 내는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그에게 계산할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아, 너도 도망갈 생각이라는 말이구나.”직원은 피식 웃으며 경호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쟤도 똑같은 새끼예요. 빨리 때려요!”이제야 바닥에서 일어난 김원
“우리 사장님? 이봐, 너희들이 도망가려고 한 일을 우리 사장님이 알게 된다면 그냥 끝장나는 거야.”직원의 말에 가태윤은 서둘러 말했다.“서준아, 그냥 돈부터 내면 안 될까?”“그럴 돈이 있으면 내고도 남았겠죠! 내가 보기에 저 새끼도 그냥 거지예요!”나수진은 이를 꽉 악문 채 팅팅 부은 눈으로 진서준을 노려봤다. 김원과 나수진은 진서준도 자신들과 똑같은 꼴로 만들고 싶었다.진서준은 고집스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술 마시다 말고 계산하는 법이 어디 있어. 난 절대 안 해.”이 말을 듣고 직원은 목청껏 외쳤다.“그렇다면 내가 새로운 법을 만들어주지!”경호원들은 진작 기다리고 있었다. 진서준이 계산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은 이미 슬금슬금 모여들었다.키가 2m에 달하는 경호원들은 체격도 어마어마했다. 반대로 진서준은 근육 하나 없는 것이 한 번 맞으면 픽 쓰러질 것 같았다.눈에 뻔히 보이는 격차에 사람들은 눈을 찔끔 감았다. 경호원 중 한 명은 손을 뻗어 진서준의 멱살을 잡았다. 그렇게 그를 들어 올리려고 말이다.하지만 그가 힘을 주기도 전에 진서준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 그것만으로 그는 추호도 움직일 수 없었다. 경호원은 얼굴이 빨개졌다. 그 지경으로 힘을 줬는데도 움직일 수는 없었다.“꺼져!”진서준은 빠르게 발을 올려 경호원을 차버렸다. 그 경호원은 벽에 부딪히며 떨어졌다.경호원이 부딪혔던 자리에는 거미줄 같은 금이 가 있었다. 그것만 봐도 진서준의 힘이 얼마나 강했던지 알 수 있다.사람들은 전부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 수많은 경우가 있었지만 진서준이 맞서 싸울 줄은, 심지어 우세를 점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이게 어디서 감히... 때려눕혀!”경호원들은 일제히 진서준을 향해 달려갔다.퍽! 퍽! 퍽!룸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고 술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은 전부 검은색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었다.진서준을 바라보는 마연정의 표정은 아주 가관이었다
갑자기 들려온 굉음에 김성진은 인상을 썼다. 옷을 챙겨 입은 그는 분노 가득한 얼굴로 침대에서 일어났다.‘누군진 몰라도 오늘 내 손에 죽을 줄 알아!’하지만 문을 연 순간 그의 분노는 사르르 풀렸다. 분노가 사라진 자리를 대체한 것은 당황뿐이었다. 악마를 본 인간이 지을 법한 표정이었다.물론 진서준은 그에게 악마보다 무서운 존재였다. 만월호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그도 익히 알았기 때문이다.그는 원래 만원홀에서 만났던 고수들과 자리 한 번 마련할 생각이었다. 근데 그 고수 중 한 사람이 진서준일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아무튼 그는 진서준과 자리를 마련하려던 생각을 완전히 접었다. 대성 종사까지 손쉽게 상대하는 진서준이라면 그의 형인 김범수도 얌전히 고개를 숙여야 하는 레벨이었다.“사장님, 이 새끼가 술값을 내지도 않고 우리 애들을 팼어요. 아까는 제가 말렸어야 했는데 이 새끼가 너무 막무가내예요.”이때 직원이 뒤따라 들어오면서 진서준이 했던 일들을 얘기했다. 하지만 직원이 칭찬해달라는 듯이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김성진이 손을 들어 그의 뺨을 힘껏 때렸다.뺨을 맞고 머리가 어지러웠던 직원은 멍한 표정으로 김성진을 바라봤다. 그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하지도 못했다.“너 지금 누구한테 새끼라고 하는 거야. 죽고 싶어?!”김성진의 말을 듣고 진서준은 눈썹을 치켜떴다.“자꾸 나를 나쁜 사람 취급하네요. 난 식사가 끝나고 계산하겠다고 했을 뿐인데요.”“아닙니다! 서준 님이 저희 마그레라에 와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김성진은 굽신거리며 진서준의 앞으로 갔다. 그러고는 값비싼 담배까지 건넸다.그의 모습을 보고 직원은 입을 떡 벌렸다. 뺨을 맞은 고통까지 잊을 정도였다.“담배 안 피워요. 그나저나 이 가게는 직원 인성이 너무 더럽던데요? 밥 먹기도 전에 계산하라고 하질 않나, 깡패들을 데리고 와서 폭력을 쓰질 않나.”진서준의 말을 듣고 김성진은 손을 덜덜 떨었다. 담배마저 바닥에 떨어뜨릴 정도의 손 떨림이었다.‘서준 님한테 감히
지금은 과연 안전하게 집에 돌아갈 수 있는지도 문제가 되었다. 진서준이 돈을 내지 못하면 가태윤의 얼마 남지 않은 돈이 탈탈 털리게 된다.“내가 뭐 틀린 말 했어? 진서준 그 자식은 쫄보야. 해외에서 싸움질 좀 배웠다고 이 세상이 자기 거라도 되는 줄 알아?”마연정은 사정없이 말했다.“제기랄, 내가 여기에서 나가기만 해봐. 그 자식을 죽여버리고 말 거야!”김원은 표독한 눈빛으로 말했다.이때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들의 시선 끝에 진서준이 태연하게 걸어들어왔다. 몸에는 상처는커녕 생채기 하나도 없었다.“서준아, 너 왜 괜찮아?”마연정이 물었다.“내가 안 괜찮아야 하는 건가?”진서준은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너 여기 사장 만나러 갔다며?”“응.”자리에 앉은 진서준은 자신이 산 양주를 태연하게 마셨다.“그럴 리가! 마그레라의 사장은 널 가만히 내버려둘 사람이 아니야!”김원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진서준을 노려보며 말했다.“그래요? 근데 가만히 내버려뒀을 뿐만 아니라 선물까지 주던데요?”진서준은 차갑게 웃었다. 그가 말하는 새로 섹시한 드레스를 입은 여직원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그녀들이 품에 안은 술은 하나같이 2000만 원을 넘기는 것이었다.“서준 님, 이건 저희 사장님께서 드리는 서비스입니다.”예쁘게 생긴 여직원 한 명이 진서준의 앞으로 가서 공손하게 말했다.“전부 따줘요.”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게 다섯 개의 술 뚜껑은 전부 따졌다.“서준 님, 저희가 노래를 불러드릴까요?”여직원은 교태롭게 말하면서 윙크까지 했다. 다른 여직원도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그녀들을 보내기 전 김성진은 수도 없이 당부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진서준을 기분 좋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다.“됐어요. 필요할 때 부를 테니까 이만 나가요.”진서준은 그녀들을 보는 체도 하지 않았다.“네!”여직원들이 떠난 다음 룸에는 정적이 맴돌았다.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마치 귀신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
술자리가 끝났을 때는 어느덧 저녁 11시가 되었다. 카운터에서 계산하려고 할 때 김성진의 지시로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진서준은 김원을 호락호락하게 보낼 생각이 없었다.“그중 네 병은 이 두 사람이 주문한 거예요.”그는 김원과 나수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돈 절약 했다고 속으로 좋아하던 김원은 놀란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두 사람의 불편한 사이를 보아낸 직원은 눈치껏 김원에게 말했다.“잔돈 빼고 총 4500만 원입니다, 손님.”김원은 곧바로 카드를 꺼냈다. 그의 얼굴 꼴만 봐도 지금은 자존심을 부릴 때가 아니었다. 카드에서 돈이 긁혀 나간 순간 그는 가슴에서 피가 떨어질 것만 같았다.“서준 님, 이건 저희 사장님께서 선물로 드리는 VIP 카드입니다. 이 카드가 있다면 앞으로 마그레라에서의 모든 소비는 무료입니다!”직원은 카드 한 장 꺼내서 진서준에게 공손히 건네줬다. 진서준은 이 카드가 김성준이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주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별말 없이 받아서 들었다.곁에서 가태윤 등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그레라에서 무료라니, 이런 카드는 아무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마그레라에서 나간 다음 가태윤이 진서준이게 말했다.“서준아, 너 택시 타지 마. 내 차 타고 가자, 내가 대리기사 부를게.”“괜찮아, 내 차도 근처에 있어. 조심해서 돌아가.”진서준은 웃으면서 거절했다. 그러고는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마이바흐를 향해 걸어갔다.“서준 씨!”차를 마그레라에 두고 가라는 말에 조성우는 진서준이 술을 마셨으리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특별히 대리기사를 불러놓고 기다리고 있었다.“산성 별장으로 가주세요.”차에 올라탄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 기사는 곧바로 시동을 걸었고 그렇게 가태윤 등의 눈앞에서 사라졌다.“헐, 최고가 마이바흐?! 저거 족히 4억 원은 하는 차야!”마이바흐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면서 가태윤은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마연정은 후회하고 있었다. 자신이 저지른 멍청한 짓이 자꾸만
“수행하는 분들은 보통 일찍 일어나지 않나요?”주혁구는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서준 님은 저희와 달라요. 이따가 만난 다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죠?”전화를 끊은 다음 주혁구는 또 한 시간 기다렸다. 그러다 이승재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신성 별장으로 오라고 했다.주혁구가 도착했을 때 이승제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들어가죠!”차량은 진서준의 별장 앞에 가서 멈춰 섰다. 대문 앞으로 걸어간 이승재는 직접 초인종을 눌렀다. 진서라는 곧장 문을 열고 밖에 나왔다.“누구 찾으세요?”저희는 진서준 님과 만나러 왔습니다.”진서라를 알아본 이승재는 공손하게 말했다. 진서라는 잠깐 멈칫하다가 다시 물었다.“제 오빠를 만나러 왔다고요?”“네.”이승재는 고개를 끄덕였다.“일단 들어오세요. 제가 오빠를 부르러 갈게요.”“아닙니다, 저희가 직접 가면 됩니다!”이승재는 주혁구와 함께 진서준이 있는 옆 별장으로 향했다. 주혁구는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승재 님, 방금 전의 그 여자가 서준 님의 동생이에요? 저는 딸인 줄 알았어요!”주혁구는 이승재보다 강한 진서준의 나이가 절대 작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서라를 동생이 아닌 딸로 본 것이다.“서준 님은 아주 젊으신 분이에요. 들어가서 함부로 입 놀리면 안 돼요. 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말을 마친 이승재는 초인종을 눌렀다. 하지만 한참이 지났는데도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려오지 않았다.아직 방에 돌아가지 않았던 진서라가 그 모습을 보고는 열쇠를 들고 다가왔다.“오빠 아직 안 깨났나 봐요. 거실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제가 불러줄게요.”“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거실에 들어간 다음 이승재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소파에 앉았다. 주혁구도 덩달아 꼿꼿하게 앉아서 추호도 움직이지 못했다.“오빠, 일어났어?”2층에 올라온 진서라는 진서준의 방문에 노크했다. 수련 중이던 진서준은 진서라의 목소리를 듣고 옷매무시를 정리하며 문을 열었다.“무슨 일 있어?”진서라는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성미영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매년 혼자서만 집에 가다 보니 성미영에게 이성 친구가 있을 리 만무했다.성미영도 이제 3년만 지나면 서른이었기에 집에서는 성미영의 결혼 문제가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그런데 오늘 갑자기 이성 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이 들리자 가족들이 당연히 남자친구라고 착각한 것이다.그래서 기어코 성미영에게 진서준을 집으로 데려오라고 난리였다.“그냥 사실대로 말하면 되잖아?”진서준이 태연하게 말했다.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런 사소한 일이었다.“그게 통했으면 내가 지금 너한테 전화했겠어?”성미영이 짜증 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뭘 어쩌라는 거야? 설마 내가 직접 가서 해명하라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꼭 와야 해. 안 그러면 부모님이 날 가만히 안 둘 거라고.”성미영이 명령조로 말했다.“이봐, 지금 부탁하는 입장인데 말투가 그게 뭐야? 장난해?”진서준이 한마디 귀띔했다.“야, 진서준. 너 적당히 해. 지금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돼?”성미영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소리쳤다.“오후에 내가 너 안 도와줬어? 지금은 네가 나 도울 차례라고. 아니야?”진서준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정정하자면 너 없어도 난 하경범을 충분히 잡아 올 수 있었어. 오히려 너 배려해서 너희 성씨 가문 구역에서 난리 안 친 거라고.”“헛소리 작작 해!”성미영이 분노에 이를 갈았다.진서준의 말이 사실 틀린 말은 아닌데 왜 이렇게 재수 없게 들리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럼 끊는다?”진서준이 전화를 끊으려 했다.“끊지 마. 내가 지금 데리러 갈 거야. 오늘 밤에 확실히 설명하고 가. 안 그러면 부모님이 나 귀찮게 해 미칠 것 같다고.”성미영이 다급하게 말했다.“그럼 부탁해야지. 부탁할 땐 부탁하는 태도가 있는 법이거든.”진서준이 태연하게 말했다.사실 일부러 성미영을 약 올리는 건 아니었다.그냥 이 여자가 맨날 윗사람처럼 굴었고 매번 자기가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양, 가르
차 안.도지아는 직접 복수를 마친 뒤, 속이 어느 때보다 한결 더 시원했다.하지만 곧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진서준에게 물었다.“나중에 하경범이 복수하면 어떻게 하지?”“그럼 그냥 지옥에 보내버리면 돼. 너무 걱정되면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죽여버릴까?”진서준이 태연하게 말했다.어차피 그런 쓰레기는 살아 있을 가치도 없었다.진서준이 하경범을 바로 죽이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금단 현상이 올라올 때의 고통을 직접 맛보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죽여버리는 것보다 살아서 끔찍한 경험을 하게 하는 게 더 잔인한 법이었다.“아니야, 죽이는 게 오히려 그 녀석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이야.”도지아가 고개를 저었다.그 한마디로 도지아가 하경범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알 수 있었다.하경범은 도지아의 미래를 망가뜨렸고 행복했던 가족을 박살 내버렸다.이제 도지아는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도지아는 막막하기만 했다.호텔로 돌아오자 진서준이 물었다.“여기서 계속 있을 순 없잖아. 앞으로 어디로 갈 생각이야?”도지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예은에게 가볼까 해. 걔 집 넓잖아.”“그것도 괜찮네. 황예은은 돈이 넘치니까 황예은한테 붙어 있으면 먹고사는 걱정은 없겠네.”진서준이 장난스럽게 말했다.한편, 성현도가 빠르게 정보를 통제한 덕분에 하경범이 진서준에게 끌려갔다는 사실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하씨 가문 쪽에서도 하경범이 강제로 마약을 먹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집으로 돌아간 하경범은 곧장 본인이 키운 삼생파의 두목 이시언에게 연락했다.“하 도련님, 무슨 일입니까?”전화를 받은 이시언은 조금 의아해했다.하경범이 직접 연락해 오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때도 사람을 납치하라고 시켰을 때였다.“당장 나한테 와.”하경범의 목소리가 얼음처럼 차가웠다.“네, 바로 가겠습니다.”이시언은 하경범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즉시 출발했다.30분 후, 이시언은 부하들을 데리고 하경범의 저택에 도착
“그럼 이제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잖아. 왜 굳이 날 물고 자빠지는 건데?”하경범은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너 아니었으면 우리 가족이 납치당할 일도 없었겠지. 그럼 내 동생도 마약과 접촉할 일도 없었을 거잖아. 네 더러운 욕망만 아니었어도 우리 가족이 이렇게 풍비박산 날 일이 있었겠어?”도지아의 분노는 점점 극에 달했다.“내가 겪은 이 모든 고통은 전부 다 네 탐욕과 욕망 때문이야. 오늘 넌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해.”하경범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이제야 도지아가 진짜 죽을 각오로 덤비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내가 방금 조상규 삼촌에게 연락했어. 곧 도착할 거야. 삼촌이 오기 전까지는 너희가 아직 살아남을 기회가 남아 있어.”하경범은 이런 상황에서도 협박하기 시작했다.“그러니 함부로 날 건드리지 마. 날 손대는 순간, 너희 셋 다 살아서는 못 나갈 줄 알아.”“그 사람은 올 수 없어.”진서준이 느닷없이 말했다.“무슨 뜻이야?”하경범이 움찔하며 눈꺼풀을 떨었다.“이미 죽었거든. 이해했어?”진서준이 담담하게 대꾸했다.“뭐, 뭐라고?”하경범은 흠칫 떨더니 곧바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헛소리하지 마. 그럴 리 없어! 조상규 삼촌은 대종사야. 네놈 따위가 무슨 수로 대종사를 죽일 수 있어?”하경범은 조상규의 무도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예전에 습격당했을 때도 조상규가 나서서 하경범을 구해줬다.당당한 대종사인 조상규가 진서준 같은 애송이에게 당했을 리가 없었다.“못 믿겠으면 직접 전화해 봐. 전화 받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보지 그래?”진서준이 시큰둥하게 말하자 하경범은 급히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들려오는 건 통화 연결음뿐이었다.하경범은 이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다시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젠장, 전화 받아! 전화를 받으란 말이야!”하경범은 이제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졌다.“통화가 안 되지?”진서준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대체 왜 조상규 삼촌이 너 따위한테 당했는데?
“뭐가 두려워?”하경범은 자신만만했다.여긴 하씨 가문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르벨이었다.하경범은 진서준이 이곳에서 자기를 건드릴 용기가 있을 수 없다고 확신했다.“그럼 따라와 봐.”진서준이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 나갔다.“경범아, 저 녀석 꽤 강해. 조심하는 게 좋아.”성현도가 목소리를 낮춰 경고했다.“걱정 마.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하경범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진서준이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지 두고 보자는 심정이었다.차에 올라타자 하경범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의외네, 넌 여자들한테도 제법 인기가 많은 모양이구나. 황예은과 도지아만 있는 게 아니라 이번엔 또 새로운 여자가 곁에 있네.”하경범은 옆자리의 허사연을 힐끔 쳐다보며 능글맞게 웃었다.“아가씨, 저 녀석 따라다녀 봤자 아무런 미래도 없어. 나랑 함께하는 게 어때? 내 여자가 되면 평생 호화롭게 살게 해줄게. 명품, 스포츠카, 대저택, 뭐든 원하는 만큼 줄 수 있어.”허사연은 그 말에 쌀쌀하게 웃으며 대꾸했다.“그럼 네 목숨을 원한다면 줄 수 있어?”하경범 같은 부잣집 도령이 얼마나 많은 가정을 파탄 냈을지 모른다.진서준의 얘기를 들은 후, 허사연도 이 쓰레기를 당장 없애버리고 싶었다.“내 목숨을 달라고?”하경범은 어이없다는 듯 멍하니 있다가 곧 박장대소를 터뜨렸다.“날 죽이겠다고? 그래, 해봐. 근데 네 가족이 우리 하씨 가문의 분노를 감당할 수 있을까?”하경범의 목소리엔 살기가 서려 있었다.“거참 쉬지도 않고 조잘대네.”진서준은 쉴 새 없는 하경범의 멘트에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흥, 얼마 안 가 네가 내 앞에 무릎 꿇고 날 다시 보내게 될 거야. 내가 장담하지.”하경범은 눈을 가늘게 뜨며 진서준을 비웃었다.“오히려 네가 나한테 무릎 꿇고 목숨을 구걸하게 될걸?”진서준은 태연하게 받아쳤다.곧이어 진서준은 차를 한 폐기된 공장 앞에 세웠다.차에서 내리자 하경범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곳에 걸터앉아 휴대폰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