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루카스는 아리나의 집 옆방에서 매일 밤 들려오는 낮은 클래식 음악 소리와 붓이 캔버스를 긁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카시엘에게 자신의 수호천사 기운을 나눠준 뒤로 기묘한 연결감을 느끼고 있었다. 카시엘이 고통스러워하면 루카스의 가슴도 저릿했고, 카시엘이 그림에 집중해 평온을 찾으면 루카스 역시 깊은 단잠을 잘 수 있었다. "형사님, 요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예요? 범인 잡는 속도가 예전 같지가 않네." 동료 형사의 농담에 루카스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퇴근길에 항상 아리나와 카시엘은 위한 최고급 식재료를 사들고 오피스텔로 향했다. 그는 이제 자신이 아리나를 지키는 것이 육체적인 보호를 넘어, 카시엘이라는 존재가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는 역할까지 확장되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어느 날 저녁, 루카스는 아리나의 집 거실에서 카시엘이 갓 완성한 그림을 보았다. 그것은 어두운 숲속에서 길을 잃은 한 여자를 지키는 두 개의 그림자를 묘사한 작품이었다. 한 명은 빛의 날개를 가졌고, 다른 한 명은 단단한 값을 입고 있었다. "이거... 우리를 표현한 건가?" 루카스가 툭 던지듯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카시엘은 어리숙하게 붓을 씻었다. "그림은 보는 이의 몫입니다. 하지만, 루카스... 당신의 황금빛이 없었다면 이 여자는 이미 숲에서 영영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루카스는 카시엘이 인정에 묘한 패배감과 유대감을 동시에 느꼈다. 아리나를 향한 호감이 여전히 가슴속에 썸의 형태로 남아있었지만, 카시엘이 아리나를 위해 자신의 본질까지 바꿔가며 헌신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루카스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좋아. 당신이 그림으로 방패를 만든다면 난 법으로 칼을 만들지. 그 이사벨라인지 뭔지 하는 소속사, 내가 반드시 털어버릴 테니까..." 루카스는 아리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녀를 안심시켰다. 아니라는 두 남자
뉴욕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던 런웨이의 참사는대중의 기억 속에서 자극적인 가십으로 소모되고 있었다.하지만 그 폭풍의 한 복판에 서 있던 카시엘에게는영혼의 궤적이 뒤바뀌는 거대한 사건이었다.그는 더 이상 턱시도를 입고 카메라 앞에 서지 않았다.대신 그는 오피스텔 25층,루카스가 철저히 봉쇄한 요새 안에서 붓을 들었다."카시엘이, 물감은 여기 두었어요. 테리가 추천해 준 천연 안료들이에요.당신의 몸에 해롭지 않아야 한다며 직접 공수해 왔대요."아리나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거실 한 쪽에 마련된 화실로 들어왔다.카시엘은 빳빳한 리넨 셔츠의 소매를 걷어붙인 채 대형 캔버스 앞에 서 있었다.그의 손등에는 여전히 루카스에게 수혈받은 황금빛 기운과 자신이 본인이 은빌백색광이 기묘하게 섞여 흔들리고 있었다.카시엘은 어리숙한 동작으로 붓을 적셨다.그는 인간의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지만,캔버스에 긋는 한 줄기 선은 지상의 물리 법칙을 초월한 깊이감을 만들어 냈다.그는 자신이 천게에서 보았던,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을 화폭에 옮기기 시작했다."아리나, 저는 이제야 깨달앗습니다.모델로서 시선을 받는 것은 나의 빛을 갉아 먹는 행의였지만,이 캔버스 위에 나의 시선을 담는 것은...나의 신성력을 견고하게 쌓는 수행이라는 것을요."카시엘의 말대로, 그가 그림을 그릴수록오피스텔 내부의 공기는 맑아졌고,아리나를 괴롭히던 악몽도 잦아들었다.카시엘은 얼굴을드러내지 않는 조건으로 뉴욕의 권위 있는 갤러리와 계약을 맺었다.이름은 오직 'K'.사람들은 이 신비로운 천재 화가의 정체에 열광하기 시작했고,그림 한 점의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 액수가 어마무시했다.하지만 카시엘에게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오직 이 그림들이 아리나의 주변에 보이지 않는 성벽을 세워주고 있다는 사실만이 그를 안도 시켰다.그는 오늘도 아리나를 위해 지상에소 가장 성스러운방어선을 그려나가고 있었다.
카시엘은 이사벨라와의 모든 계약을 파기했다.루카스의 변호인단이 법적 공방을 방어하는 동안,카시엘은 오피스텔 베란다를 화실로 개조하고,라는 익명으로 활동하며 뉴욕의 화랑가에 충격을 던졌다.얼굴 없는 작가의 그림은 금방 소문을 타고 유영해졌다. "사람들이 당신의 그림을 사려고 줄을 섰대요, 카시엘. 이제 더 이상 무대 위에서 각혈하지 않아도 돼요."아리나의 말에 카시엘은 붓을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의 손에는 피 대신 물감이 묻어 있었다.그는 이제 깨달았다.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자신을 소모시키지만,창작의 고통은 오히려 자신의 신성력을 단단하게 뭉치게 한다는 것을.루카스는 아리나의 방 옆에 카시엘의 작품들을 걸어 두었다.그림에서 쁨어져 나오는 기운이자신이 설치한 보안 장비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아리나를 지켜 줄 것 같았다."카시엘, 당신 그림 값으로 이 오피스텔 한 층 전체를 다 사버렸어. 이제 우리 셋이 이 25층의 진정한 주인이 된 거지."루카스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요새 같았던 오피스텔에 처음으로 울려 퍼졌다아리나는 두 남자의 등 뒤에서 감사 기도를 드렸다.카시엘은 다시 뚝딱거리고, 어리숙한 걸음걸이로아리나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이번에는 손이 따뜻해져 있었다.보호를 향한 그의 두려움이,예술이라는 새로운 날개를 달고 희망으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기력을 회복했지만 카시엘은 깊은 슬픔에 빠졌다.모델이라는 직업이 아리나를 지키기는 커녕,그녀뿐 아니라 세강까지 더 큰 위험에 빠뜨렸다는 자책감이 그를 짓눌렀다.그는 이제 밖으로 나가는 것을 거부했다.화려했던 턱시도는 구석에 처박혔고,카시엘은 온종일 어두운 거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카시엘, 뭐라도 좀 먹어봐요. 당신을 위해 준비했어요."아리나의 위로도 소용없던 어느날,아리나가 환자들의 미술 치료를 위해 챙겨두었던 캔버스와 물감을 거실 테이블에 두고 출근을 했다.카시엘은 멍하니 그 도구들을 한참을 바라보았다.그리고.... 홀린 듯 붓을 들었다.그는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천계의 풍경을,캔버스에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태초의 빛, 선한 인간의 영혼이 내뿜는 맑은 광채,그리고 그런 인간을 위협하는 어둠의 형체들을 마구 쏟아내듯 그렸다.어리숙한 손놀림이었지만,붓이 지나간 자리에는 인간의 솜씨로는 흉내낼 수 없는신비로운 색채가 피어났다.슬픔은 분노가 아닌,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되고 있었다.매일 아리나가 출근을 하고 나면 카시엘은,캔버스에 모든 복잡함을 쏟아내었고,그 작업들은 카시엘의 영혼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었다.어느 날, 퇴근한 아리나와 수사를 마친 루카스, 그리고 카시엘의 상태를 확이하러 온 테리는거실에 세워진 그림들을 보고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그것은 단순한 낙서도, 그림도 아니었다.그림에서 은은한 향기와 함께 마음을 정화하는 파동이 흘러나오고 있었다."이거...뭐야? 카시엘이 그린건가?"루카스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너무... 아름다워요.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평화로워져요."아리나는 그림속에 묘사된 빛의 형상이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테리는 과학적, 의학적 관점에서 접근했다."음.... 이 그림, 영적인 치유 효과가 있어. 카시엘은 모델처럼 자신을 노출하지 않아도, 그림을 통해 자신의 에너지를 세상에 전달할 수 있겠는 걸?
카시엘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었다.투명했던 그의 피부는 회색빛으로 변해갔고, 호흡은 잦아들었다.테리는 루카스을 카시엘의 옆에 앉혔다."루카스. 당신 등 뒤에 있던 그 황금빛 날개가... 카시엘을 도울 순 없어?""어떤 방법으로? 내 피라도 주어야 하나?"바로 그때, 지지직-.입구의 경찰 동료에게서 루카스에게 무전이 왔다. 밀러가문에서 루카스의 누나인 루이자가 찾아 왔다는 보고였다.루이자는 인사도 생략한 채 카시엘의 상태를 보고는 가문의 문장 목걸이를 루카스의 목에 걸어 주며 말했다."루카스,너의 수호령은 순순한 선의 에너지야. 카시엘 천사님은 지금 그게 필요해.""어떻게 전달해?""손을 잡아. 그리고 네 수호령에게 간절히 빌어. 아리나를 지키고 악을 막기 위해 이 천사님이 필요하다고. 너의 에너지를 천사님에게 전해 준다고 생각하면서.그리고 아리나. 당신의 기도도 필요합니다."루카스는 카시엘의 차가운 손을 꽉 잡았다.아리나는 곁에서 두 사람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루이자도 한 걸음 뒤에서 양 손을 올리고 그들을 향해 손바닥을 향하며자신에게 주어진 따스한 빛을 흘려보냈다.잠시 후, 루카스의 온 몸에서 눈부신 황금빛 아우라가뿜어져 나왔다.루카스는 자신의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듯한 극심한 피로감을 느꼈지만손을 놓지 않았다.황금빛 기운이 추카스의 팔을 타고 카시엘의 몸으로 스며들었고,아리나의 오로라빛 연기 같은 성령이 방안에 보호막을 치듯 감쌌으며루이자의 보라빛 온기가 세 사람을 감싸 안았다.카시엘의 가슴속에 멈춰버린 신성력의 핵이,세 사람의 에너지를 받아들여 다시 진동하며 채워지기 시작했다.카시엘의 안색과 호흡이 안정을 찾으며 돌아오기 시작하자,그는 긴 숨을 내뱉으며 눈을 떴다.아리나를, 세상을 어둠에 물들일까봐 두려움에 떨던 그의 눈동자에다시 희미한 백색광이 깃들고 몸에서도 천천히 은빛이 비치기 시작했다.이 모든 것을 경이롭게 지며보던 테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패션위크의 참사 이후 뉴욕은 발칵 뒤집혔다.카시엘의 정체에 대한 온갖 추측성 보도가 쏟아졌고,광기 어린 파파라치들과 이사벨라가 보낸 악의 하수이들이오피스텔 주변에 포위하듯 진을 치고 있었다.루카스는 즉각 행동에 나섰다.그는 밀러 가문의 막강한 영향력을 동원해아리나와 그들이 사는 30층 전체를 폐쇄하고 요새화했다."카시엘, 정신 차려. 여기는 이제 외부와 완전히 차단 되었다."루카스는 거실 전면에 강화 장갑판을 설치하고,자신의 팀원들 중 믿을 만한 이들을 층 입구에 배치해 두었다.아리나는 침대에 누어 신음하는 카시엘의 이마를 닦으며 눈물을 참았다.카시엘은 의식이 가물거리는 와중에도 아리나의 손을 더듬어 찾았다."앙리나... 내 빛이... 옅어지고 있어.. 사라져 가나봐..."카시엘의 목소리는 공포로 젖어 있었다.그가 두려워 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었다.자신의 신성력이 인간들의 욕망에 완전히 더럽게 오염되어더 이상 아리나를 덮쳐오는 어듬을 막아냊 못할까 봐 그것이 너무나도 두려웠다.루카스는 그 광경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자신이 가진 총과 공권력으로 막을 수 없는 영적인 위협이아리나를 노리고 있었다.테리는 응급 장비들을 점검하며 차갑게 말했다."이 오피스텔이 아무리 튼튼해도 카시엘의 에너지가 바닥나면 다 끝이야. 이곳이 요새가 아니라 무덤이 될 거라고. 우리는 지금 이 녀석의 에너지를 다시 채워줄 방법을 찾아내야 해."
다음 날부터 카시엘의 이 시작되었다.아리나는 그를 집에 두려 했지만,카시엘은 며말도 안되는 협박으로 억지를 부렸다.결국 그는 아리나를 따라 병원으로 향했다.병원은 카시엘에게 지옥이나 다름없었다.수많은 환자의 고통과 원망,그리고 그 사이를 파고드는 하급 악마들의 속삭임이 가득했기 때문이다.아리나는 그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그녀는 난폭한 환자의 손을 잡아 진정시키고, 보호자 없는 노인의 식사를 도왔다."저 간호사는 바보야. 저러다 자기가
루카스는 치료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 아리나와 마주쳤다.아리나는 루카스의 상처를 보며 진심으로 걱정했다."형사님, 고생 많으셨어요. 정의를 위해 싸우시는 모습도, 다른 분을 먼저 배려하시는 모습도, 정말 멋있고 존경스럽습니다. 리스펙해요"루카스는 수많은 칭찬을 들어봤지만, 아리나의 한마디는 결이 달랐다.그녀의 눈에는 가식이 없었다. 루카스의 거친 심장이 조금 느리게 뛰었다."아... 뭐, 당연한 일을 한 건데요. 간호사님도 고생이 많으시네요."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카시엘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날 오후, 응급실은피범벅이 된 환자와 그를 데려온 경찰들로 아수라장이 되었다.그 중심에 루카스가 있었다.그는 범인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어깨를 다쳤음에도 불구하고동료들의 안위부터 챙기고 있었다."난 괜찮으니까 저쪽부터 봐줘요! 저 친구가 피를 더 많이 흘렸어!"루카스의 외침에 카시엘은 눈을 가늘게 떴다.루카스의 등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황금빛 기운.그것은 대대로 선을 행한 집안에서만 나타나는 강력한 가호였다.'저 남자다.'카시엘은 직감했다.저 남자 곁에 아리나를 둔다면,자신이 뚝딱거리며 바닥을 닦지 않
응급실에서 퇴원한 카시엘은 갈 곳이 없었다.아리나는 이 신원 미상의 남자를 길바닥에 버려둘 수 없었다.결국 자신의 작은 자취방 거실을 내어주기로 했다."여기가 제가 사는 곳이에요. 좁지만 지내기엔 나쁘지 않을 거예요."카시엘은 거실 한복판에 꼿꼿하게 서서 집안을 응시했다.천사의 눈으로 본 그곳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고,아리나가 매일 올리는 기도와 선행의 향기가 은은하게 배어 있었다.하지만 인간의 육신을 입은 카시엘에게 당장 닥친 문제는 영적인 것이 아니었다."아리나, 제 다리가... 제멋대로 접히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