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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불청객과 감시자

Author: yeye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12 09:21:22

성 빈센트 병원의 밤은 뉴욕의 화려한 야경과는 대조적으로

서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리나는 응급실 구석에서 차트를 정리하다가,

자꾸만 휴게실 소파에 정좌한 채 허공을 응시하는 카시엘을 힐끔거렸다.

"카시엘, 아까부터 뭘 그렇게 봐요? 무섭게."

카시엘의 푸른 눈동자가 천장의 환풍구를 향해 있었다.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곳에는 검은 타르 같은 액체가 뚝뚝 떨어지며 기괴한 형상을 만들려 하고 있었다.

아리나의 퇴근길을 노리던 하급 악마들의 잔재였다.

"공기의 질이 좋지 않습니다.

 아리나, 오늘 밤은 제 옆에서 떨어지지 마십시오."

"참 나, 누가 누굴 보호한다는 건지.

 어제 샌드위치 먹다가 입천장 다 까진 건 누구였더라?"

아리나가 핀잔을 주자 카시엘의 귀끝이 살짝 붉어졌다.

그는 인간의 음식 중 '뜨거운 소스'라는 존재가

천계의 그 어떤 형벌보다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어제야 깨달았다.

카시엘이 뚝딱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휴게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커피, 블랙으로. 설탕은 절대 넣지 마."

등장한 사람은 테리였다.

그녀는 며칠째 잠을 못 잤는지 눈 밑이 검게 변했지만,

여전히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있는 카시엘을 위아래로 훑었다.

"아리나, 이 환자... 아니, 이 친구. 신분증은 나왔어?

 경찰서에 지문 조회라도 해봐야 하는 거 아냐?

 루카스 형사한테 부탁하면 금방일 텐데."

"아, 테리 교수님. 그게... 조만간 해결될 거예요.

 워낙 사정이 복잡해서요."

테리는 의심쩍은 눈초리로 카시엘의 손을 낚아채 맥박을 짚었다.

"이상하단 말이야. 맥박이 너무 일정해. 기계처럼.

 당신, 정체가 뭐야? 아리나 꼬셔서 등쳐먹으려는 사기꾼은 아니지?"

카시엘은 무표정하게 테리를 응시했다.

"저는 사기를 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리나의 등은...

 작고 연약해서 쳐먹을 만한 곳이 못 됩니다."

"뭐? 푸흡!"

테리가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아리나는 얼굴을 감싸 쥐며 절규했다.

"카시엘! 그런 관용구는 그렇게 쓰는 게 아니라고 했잖아요!"

그때였다. 병원 복도의 전등이 일제히 지직거리며 점멸했다.

테리는 단순히 전력 문제라고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카시엘의 표정은 급격히 굳어졌다. 병원 로비 저 멀리서,

정장 차림을 한 사내 하나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 사내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카시엘의 눈에는 그가 두르고 있는 차가운 납색 날개가 보였다.

'감시자... 라파엘...?'

카시엘은 본능적으로 아리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사내는 휴게실 문앞에 멈춰 서서 카시엘을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군, 카시엘.

 수호천사의 긍지를 버리고 인간의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다니.

 꼴이 말이 아니네."

테리와 아리나의 눈에는 그저 '잘생긴 신사'가 아는 체를 하는 것으로 보였겠지만,

카시엘의 귀에는 천계의 언어로 된 서늘한 경고가 꽂혔다.

"라파엘... 당신이 지상에는 왜 온 거지?"

"위에서 말들이 많아. 네가 지상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특히 저 여자, 아리나를 위해 금기를 어겼다며?"

라파엘의 시선이 아리나에게 향했다. 순간,

아리나는 이유 없는 오한에 몸을 떨었다.

카시엘은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인간의 몸이라 예전처럼 강력한 신성력을 뿜어낼 수는 없었지만,

그의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는 아리나의 공포를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돌아가라. 나는 내 방식대로 그녀를 지킬 것이다."

"글쎄, 네 방식이 저 여자를 더 위험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라파엘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는

안개처럼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테리는 그 광경을 보고 중얼거렸다.

"뭐야, 저 재수 없는 놈은? 카시엘, 당신 친구야?"

카시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리나의 손을 잡은 힘을 늦추지 않았다.

아리나는 카시엘의 옆모습을 보며 평소와 다른 기운을 느꼈다.

늘 바보처럼 뚝딱거리던 남자의 눈에 깃든

형용할 수 없는 깊은 슬픔같은 불안과 단호함.

"카시엘, 괜찮아요? 손이 너무... 너무 꽉 잡아서 조금 아픈데...."

아리나가 다른 쪽 손으로 카시엘의 손등을 덮자 

힘껏 쥔 카시엘의 손에 힘이 빠졌다.

카시엘은 그 따뜻한 접촉에

가슴 한구석에서 이상한 욱신거림을 느꼈다.

인간의 통증은 참으로 이상했다.

다쳤을 때보다, 누군가 걱정해 줄 때 더 아프게 느껴지기도 하니까.

한편, 병원 밖 주차장에서는 루카스가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그래, 성 빈센트 병원 근처에서 일어난 연쇄 실종 사건.

 피해자들의 공통점이 전부 '선행'으로 유명했던 사람들이라고? ...

 알았어. 내가 밀착 감시한다."

루카스는 차창 너머로 아리나의 병동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뒤로 거대한 수호천사가 날개를 퍼덕이며

어둠 속으로 숨어드는 악마의 기운을 쫓고 있었다.

도시의 어둠이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천사, 악마, 그리고 그들 사이에 낀 인간들의 운명이

뉴욕의 밤공기 속에서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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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사를 사랑한 간호사   5화. 전염되는 선행?

    루카스는 치료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 아리나와 마주쳤다.아리나는 루카스의 상처를 보며 진심으로 걱정했다."형사님, 고생 많으셨어요. 정의를 위해 싸우시는 모습도, 다른 분을 먼저 배려하시는 모습도, 정말 멋있고 존경스럽습니다. 리스펙해요"루카스는 수많은 칭찬을 들어봤지만, 아리나의 한마디는 결이 달랐다.그녀의 눈에는 가식이 없었다. 루카스의 거친 심장이 조금 느리게 뛰었다."아... 뭐, 당연한 일을 한 건데요. 간호사님도 고생이 많으시네요."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카시엘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 천사를 사랑한 간호사   4화. 강력한 수호자, 루카스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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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사를 사랑한 간호사   2화. 인간의 육체 적응기

    응급실에서 퇴원한 카시엘은 갈 곳이 없었다.아리나는 이 신원 미상의 남자를 길바닥에 버려둘 수 없었다.결국 자신의 작은 자취방 거실을 내어주기로 했다."여기가 제가 사는 곳이에요. 좁지만 지내기엔 나쁘지 않을 거예요."카시엘은 거실 한복판에 꼿꼿하게 서서 집안을 응시했다.천사의 눈으로 본 그곳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고,아리나가 매일 올리는 기도와 선행의 향기가 은은하게 배어 있었다.하지만 인간의 육신을 입은 카시엘에게 당장 닥친 문제는 영적인 것이 아니었다."아리나, 제 다리가... 제멋대로 접히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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