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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三十六

Author: 김굉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5 12:00:00

-깡!

강현은 궁에서 이 시간에 들려서는 안 되는 소리에 눈을 떴다.

‘쇳덩이끼리 부딪히는 소리.’

당연하다는듯 옷을 다 챙겨입고 검은 머리맡에 둔 채 누워있었다. 그대로 검을 허리에 패용하며 방에서 달려나갔다. 잠깐 귀를 기울여 민하의 숨소리를 찾는다. 지난 사흘간 명확히 새겨둔 잠든 소리다. 조용히 목련궁을 빠져나와 아까 들은 쇳소리의 위치를 가늠했다.

한 번 더 들려왔으면 좋겠는데, 반복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시하기에는 위험한 소리다. 들려온 곳은 아마 후궁과 동궁 사이의 경계다. 빠르게 가로지르기 위해 지붕을 타고 넘어간다. 기와를 밟는 소리가 나지 않게 발을 가볍게 하여 달리는데, 달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지붕이 거슬린다. 이거 금군의 옷은 금색으로 줘야하는 거 아닌가? 빛나는 지붕 위에서 검은 옷은 오히려 튀어보일 것 같다.

황궁의 북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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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향   철향鐵響 一百三十八

    강현의 고개가 의자 등받이 뒤로 젖혀지고 얼굴을 양손으로 가린다. 길게 늘어난 목과 위아래로 울렁이는 울대뼈를 바라보며 매령은 다시금 얼굴을 붉혔다. 그때 무시무시한 말이 강현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왔다. “와! 나 진짜. 그래서 형보고 널 임신시키랬나 봐. 그건 태자비로 넣는 게 안 되면 황제의 후궁으로라도 넣으란 뜻이었군. 너네 사병 말고 또 울 아버지가 요구한 게 있어? 어떤 문서라던지 도장이라던지 부절이라던지.”심장이 멎고 간이 떨어진다. 강현이 하는 말이 어이가 없고 무서워서 뒷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매령은 몸을 바들바들 떨며 소리쳤다. “뭔 소리야. 임신이라니! 여우놈이랑은 죽어도 싫어!”강현이 고개를 내려 바라본다. 눈이 이글이글 불타는 것 같다. 한결같은 먹색인데 그때그때 느낌이 다르다. “응. 내가 그렇게 안 둬.”매령은 입을 꾹 다물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정말 낌새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스스로 깨닫지 못한 것 같지만, 강현 역시 말을 반만 한다. “약 이리 줘.”역시나 현이는 바로 약을 가지러 가지 않고 물끄러미 바라만 본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느냐고 따지듯이. “이대로 여기 계속 있으면 나도 새빨간 독버섯이 될 거 같거든.”짐작이 맞았는지 강현이 일어나 탁자를 향해 간다. 강원은 궁에 들어왔을 때부터 강현이 내 몸에 손대지 못하게 했었다. 그런 이가 동생 손에 약을 쥐여 보내며 단둘이 있도록 만들었다. 궁의에게 맡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신이 다시 내 신변의 책임자가 되겠다는 선언이다. 내가 이 약을 받아 마시면 그 뜻을 승인하는 것이 된다.약사발을 쟁반 위에 올려 조심히 들고 오는 강현을 향해 말을 던졌다. “나 네 방에 가보고 싶어.”강현의 발걸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쟁반을 내 앞에 내려두고는 의자에 앉지 않고 그대로 서 있다. 고맙게도 대답도 미동도 않아 줘서 들

  • 철향   철향鐵響 一百三十七

    매령은 이런 살가운 인사를, 드디어 난향이 아버지의 측실로 들어오기로 마음먹고 건네는 친교인 줄 알았다. 그래서 건성으로 대답하고 말았다. 어차피 출가하면 볼 일도 거의 없을 것이니,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즐기며 사시면 될 일이다 싶었다.지나친 눈웃음도, 연지가 번져 지저분해진 입꼬리도, 뒤가 짓눌려 엉망이 된 머리채도, 발에 끌릴 정도로 흘러내려 가슴골이 보이던 치맛자락도 전부 나의 강현을 가로챘다는 과시였다. 그걸 이제야 알았다. 울화가 치민다. 그 모든 것들이 내게 일러 주던 것들을 하나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다 내 멋대로 좋게 해석하고 있었다. 강현과 연결 지을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바보가 되었고, 농락당했다.그리고 공교롭게도 그건 전부 강현이 나를 지키기 위해 한 일이다. 나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뭐라고 네가 그 굴욕을 감내해!” “너 때문 아니고, 내가.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고, 넌 전혀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없어.”매령은 이 모든 말장난 같은 일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나에게도 화가 나고, 강현에게도 화가 나고, 애매한 말로 이 모든 일을 초래한 어머니에게도 화가 났다. 속이 상하고 머리가 지끈거려 왼손의 아픔 따위는 느껴지지도 않았다. 무릎을 세워 감싸 안고 얼굴을 파묻었다. 강현이 조심스럽게 다친 왼손을 꺼내려는 것도 무시했다. “엄마가… 엄마가 널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아? 네 걱정만 하는 건 엄마한테 옮은 거야. 내가 아직 새끼돼지일 때 넌 키도 크고 눈도 부리부리해서 나와 같은 어린 아이라고 여겨지지 않았어. 난 그때 널 우러러봤다고. 그런 네가 작고 여린 아이처럼 보일 때가 있었는데, 엄마 무릎을 베고 낮잠을 잘 때였어. 그때마다 엄마가 조용히 하래서 네가 얼마나 괘씸했는지.” “응.”듣고 있다는 응답인지, 고개를 들어보라는 청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어머니를 회상하며 흘러나온 소리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강현의 첫사랑은

  • 철향   철향鐵響 一百三十六

    그래서 강원에게는 어릴 적 홀로 떠도는 바람에 몹쓸짓을 당해 그릇된 성애관이 생겼다거나, 수적들에게 당해 음경이 소실되었다거나 하는 뜬소문이 달라붙었다. 얼토당토않은 얘기라 여겼지만, 강원이 어떤 여자에게 거금의 지참금을 주고 처로 들인다는 소문이 이어졌다. 이건 돈으로 소문을 덮으려는 것이니, 결국 세간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냐는 억측이 이어졌다. 그리고 서서는 돈만 받고 혼담은 물러 입막음이 아니냐는 가설에 힘을 실어줬고, 그 이후 강원에 대한 구애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드니 강현은 다시 턱을 괴고 귀엽게 웃고 있다. “뭐가 그렇게 좋아?” “좋기는. 내가 고이 지켜온 곱고 예쁜 것이 상했는데, 이가 갈릴 정도로 화가 났으면 났지 좋을 리는 없지.” “근데 왜 웃고 있어?” “너한테 화낼 일은 아니니까.”둘 다 참이다. 화가 난 것도, 나에게 익숙한 미소를 보여주어 안심시키는 모습도. 그렇게 강현은 나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만 보여온 거다. “약았어. 왜 나를 지키는 거야?” “빨리도 물어보네. 네 어머니 유언이야. 언제나 널 지금처럼 지켜달라고.”매령은 전혀 몰랐다. 매령에게 남긴 어머니의 유언은 그저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라는 것이었다. “내가 네게 나 좀 망가뜨려 달라고 한다면? 산 사람의 청이 죽은 사람의 청을 이길 순 없어.”강현의 얼굴에서 미소가 걷혔다. 어머니 얘기가 나오면 강현은 항상 진지해진다. 강현은 몸을 뒤로 쭉 뻗어 기지개를 켠 뒤 자세를 바르게 했다. “산 사람의 청은 후에 취하될 수도 있고, 변경될 수도 있어. 그러나 유언은 내뱉어진 순간부터 영원불변이야.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내가 널 범할 일은 없어.”또다. 또다시 매령은 강현의 심연 같은 눈동자에 빨려 들어갔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럼 나는 평생 너를 못 가지는 거야? “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문

  • 철향   철향鐵響 一百三十五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매령은 눈을 몇 번 깜빡인 다음 나지막이 내뱉었다. “꿈인가.”피식 웃는 소리와 함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닐걸.”매령은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침상 옆에 곧은 자세로 앉아 있는 사내는 정말 강현이 맞았다. 오늘은 무복이 아닌 편안한 장저고리에 바지 차림이다. 그래서 더 긴가민가 했다. 짙은 녹색이 강현과 잘 어울리지만 저고리 목깃 사이로 하얀 붕대가 도드라져 아프게 빛났다. “야! 현! 네가 누워.”이불을 젖히며 침상 아래로 내려오는 매령의 다리를 강현이 잡아 올렸다. 입술을 삐죽이는 매령의 어깨를 눌러 다시 침상에 눕도록 유도한 후 이불을 덮어주고 토닥였다. “그랬다간 형이 이번엔 내 껍데기를 까버릴걸?” “그러니까! 네가 더 심하게 다쳤잖아. 네가 누워 있어야지!” “너 열 내린 지 얼마 안 됐다고. 좀 더 누워 있어. 그리고 난 이제 거의 다 나았어.”매령은 이불을 끌어올려 눈만 내밀었다. 강현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몸을 건드린다. 의식하게 되자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난폭하게 뛰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정말 어디 도망이라도 가고 싶다. 그러나 눈을 강현에게서 뗄 수 없다. 이제 다리를 꼬고 그 위에 팔꿈치를 올려 턱을 괴고 내려다본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사랑스러워서 할 수만 있다면 한입 베어 물고 싶다. 저 붉게 반짝이는 뺨은 얼마나 맛있을까. 흥분하면 네 얼굴도 더 붉어질까? “거짓말.” “뭐가?” “너 아직 아프잖아.”강현은 히죽히죽 웃기만 할 뿐 더 대답하지 않는다. 매령은 이불 속에서 실없이 따라 웃으며 자기가 얼마나 강현을 사랑하는지 다시금 깨달을 뿐이었다. “궁의들이 내 손을 치료하는데, 그 생각이 들더라고. 아플 때마다 항상 네가 간병해 줬는데 여기선 안 되겠구나.” “응.” “어떻게 왔어?” “형이 약을 지

  • 철향   철향鐵響 一百三十四

    강원은 군인들이 카사르를 따라 떠나는 소리를 들으며 앞에서 술을 홀짝이는 오드게렐을 바라보았다. 제법 시간이 지난 후 시선이 얽혔을 때 거뭇한 그늘이 내려앉은 오드게렐의 눈을 향해 강원이 물었다. “저자가 진정 바트 공자의 숙부가 맞습니까?” “피가 섞이지 않은 숙부다.”만족스러운 응답을 들은 강원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환관에게 일렀다. “방금 건 적지 마십시오. 그리고 나와서 참관하셔야 합니다.”도라가 문밖으로 나서는 강원의 뒤를 따르며 물었다. “그 옷차림으로 괜찮으시겠습니까?”강원은 남색 비단으로 지은 정갈한 정복에 집안의 상징인 박쥐무늬가 박힌 회색 장포를 걸치고 왔다. 발끝까지 닿는 장포는 움직임에 상당한 제약을 가한다. 아직 미혼이기에 머리도 반만 올려 묶고 비녀로 질렀다. 윤기가 흐르는 흑발이 허리까지 내려온다. “어쨌든 핑계는 많을수록 좋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무기도 빌리고 싶습니다만, 이미 저 자가 제 허리에 달린 이 검을 보았겠지요.”도라는 강원이 일부러 질 생각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마 트집이 잡히지 않을 정도의 실력만 보인 후에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날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밖에는 이미 연의 군인들이 빙 둘러서서 대련을 할 만큼의 공간을 비워두고 있었다. 사신관은 궁으로 들어가는 해자교에 면한 사거리에 자리한 곳으로 사거리 가운데를 비우니 충분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참관할 금군을 더……” 쉭-강원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카사르의 장검이 강원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강원은 옆으로 몸을 뒤틀어 피하며 검을 뽑았다.카사르는 자신의 측면에서 검을 뽑아들고 있는 강원을 고개만 돌려 바라보았다. 아무런 흠결을 발견할 수 없다. 정석적인, 재미라곤 눈곱만큼도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자세다. 다만 들고 있는 검이 조금 재밌다. “그런 장난감으로 몇 합이나 버티겠니?”강원은 뭐라 말을

  • 철향   철향鐵響 一百三十三

    “자자, 길게 끌 거 있겠니? 술이 마르기 전에 빨리 끝내자꾸나. 내가 원하는 것도 단순하고 말이다.”오드게렐이 보내온 협상안은 아주 단순했다. 바트에 대한 치료비와 운신이 어려워진 만큼 생계를 책임질 기술로 화약에 대한 제조법을 전수해달라는 것이었다. “불가합니다. 화약에 대한 기술은 모두 나라에 귀속되어 있습니다. 저희 가문의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번 협상에선 저뿐만 아니라 오드게렐님 역시 대리자입니다. 바트 공자가 원하는 것은 제 아우의 집안인 강씨 가문에서 들어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무엇보다 화약을 다루는 것 역시 안타깝게도 한 팔로는 무리입니다.”강원은 부러 강하게 응수했다. 일을 단순하게 만들고 싶은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반발이 빠르게 튀어나왔다. “헤에. 나라에서 전혀 책임이 없다면 얘는 왜 여기 와 있을까?”카사르가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글을 바삐 쓰고 있는 환관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이며 빈정거렸다. “궁안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그에 따른 지극한 응대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제 아우가 독단적으로 벌인 일로, 약관에 이르지 않은 어린 나이이기에 가문에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야야, 넌 좀 가만히 있으라.” 오드게렐은 카사르를 먼저 단속한 뒤 강원을 달랬다. “그래그래. 네 뜻은 잘 알겠다.” “그럼 그 새끼 팔을 자르면 되잖아.”그러나 카사르는 쉽게 다스려지지 않는 망아지 같은 놈이었다. 강원도 어쩔 수 없이 계속 카사르를 상대했다. “법도가 그러하지 않습니다. 그걸로 바트 공자에게 충분한 보상이 되리라 생각하십니까?” “야, 너 주둥이 좀 닥치지 못하겠니?”오드게렐은 어떻게든 카사르를 멈추려 했다. “사룰 공주님이 놀라 입은 심병은 어찌할 거냐?” “야익!! 너네! 얘 들고 나가라!” “대비 마마, 얘네 다 쟤 심복들입니다. 뒷방 늙은이는 거기서 술이나 홀짝이고 계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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