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재워 줄게, 마서현.”
저를 보고 씩 웃는 지음의 얼굴이 서서히 뿌옇게 번졌다. 뜨근해진 눈시울이 기어코 눈물을 퐁퐁 쏟아냈다.
서현은 눈물을 지우며 뿌연 시야 속에서 지음의 얼굴을 다시 찾았다. 그의 웃는 입매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굽이굽이 인생을 달려왔지만, 그의 웃는 얼굴은 단숨에 사랑 그 비슷한 것을 알려주는 듯했다.
이런 게…반한 건가?
지음의 커다란 손이 서현의 눈가를 투박하게 쓸었다. 굳은살이 박인 거친 손끝은 이상하게도 따뜻했다.
서현은 그런 지음의 손길에 몸이 가늘게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간질거리는 감각이 낯설지만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이어져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서현의 허리가 구부러졌고, 지음의 얼굴이 눈앞에 가까워져 있었다.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그의 숨결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엔 제 얼굴이 비쳐 보였다.
심장이 미친 듯 뛰어댔다. 그러다 그냥 미쳐버린 걸까.
이번에는 다른 생각이 들기도 전에 서현의 입술이 지음의 입술에 닿았다.
부드럽고 말랑한 감촉은 다른 모든 감각을 마비시킬 듯 짜릿했다.
아…마서현. 이 미친 것…! 이거 성추행 아냐…? 신고하면 어떡하지.
입술을 가져다 대기 전 했으면 좋았을 그 생각이 이제야 뇌리를 스쳤다. 제 미친 짓에 간담이 서늘해진 서현이 얼른 입술을 회수하고 허리를 세웠다.
일은 저질렀는데, 이 좁은 집엔 홧홧한 얼굴과 달아오른 몸을 숨길 곳이 없었다.
그때, 서현의 손을 감싸는 커다란 지음의 손. 굳은살이 가득하고 거친 그의 손이 느껴졌다. 도망치려던 손이 쉽게 빠져나가지 못했다. 아니, 뿌리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지음은 잡은 손에 살짝 힘을 주며 물었다.
“너 원래 처음 본 남자한테 뽀뽀하고 그래?”
지음의 목소리가 미세한 떨림과 함께 늘어져 들렸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은데.”
단단하려 애쓴 서현의 목소리가 숨소리와 섞여 빠르게 튀어 나갔다.
“나는 처음 본 여자랑 뽀뽀해 본 적도 없고…”
잠깐 말을 멈춘 지음의 시선이 서현의 입술 위에 머물렀다.
“……”
나도 처음이라니까.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미안하다고 해야겠지.
미안함과 약간의 억울함이 서현의 얼굴 위로 스쳐 지나갈 즈음, 지음이 좀 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처럼 예쁜 여자랑 뽀뽀해 본 적도 없어.”
“그 나이 먹도록 뭐했는데.”
'예쁜 여자'라는 말에 온몸이 간지러워 사과하려던 입이 제 멋대로 움직였다.
아차, 싶어 미간을 구겼지만 지음은 서현의 말에 푸스스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게. 진작 할걸.”
“…뭐?”
“심장 터져서 이대로 죽겠다 싶게 좋아한 거라고는 내 평생 야구뿐이 없거든?”
뭐야, 야구 선수 맞잖아 그럼. 아깐 왜 아니래.
서현은 샐쭉한 표정으로 지음을 바라보았다. 야구의 ‘야’ 자도 모르는 무지에서 나온 표정이었다.
지음은 그런 서현을 보며 피식 웃었다.
“미치겠다.”
진짜 미치겠네.
야구 말고 이렇게 심장 뛰어본 적이 없는데.
“…와 근데 투수가 뭔지도 모르는 애랑…”
다시 한번 지음이 작게 웃었다.
서현은 왠지 말하면서 계속 웃는 지음이 미웠다.
“왜 자꾸 웃어? 투수가 뭔데? 그리고 그거 모르면 뽀뽀도 못 해?”
지음은 대답 없이 약 꾸러미를 들고 일어나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서현에게 다가섰다. 자기보다 한참 큰 지음은 허리를 구부려 서현의 눈높이를 맞추고 한없이 다정한 눈빛과 목소리로 말했다.
“강지음. 인터넷에 검색해 봐.”
“뭐야. 왜?”
“인터넷에 내 이름 치면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나와. 나 나름 열심히 살았거든.”
지음이 숨을 한번 삼켰다. 이에 서현도 그를 따라 숨을 삼켰다.
찰나의 정적을 두 사람의 빨라진 호흡이 천천히 메웠다.
이제껏 뽀뽀를 해본 적도 없던 두 사람이 고작 박치기 같은 뽀뽀 한 번에 곧 벌어질 일이 무엇인지를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나쁜 놈 아니고, 사기꾼도 아니고, 변…태 아니라고.”
“상관없어.”
대답과 동시에 서현이 발그레한 광대를 어색하게 올리며 웃어 보였다. 그리고 지음의 시선은 한동안 서현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투둑. 투둑. 쏴아아―
잦아들었던 빗소리가 오피스텔 창문을 거세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창문을 타고 쉴 새 없이 미끄러지던 빗방울들은 이내 두 사람의 뜨거운 하얀 숨결 뒤로 희미해져 갔다.
낯설었던 체온은 어느새 가장 편안한 온기가 되었고, 두 사람은 동이 틀 무렵에야 서로를 품은 채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이날은 10년이 흘러서도 가장 잊고 싶지 않은 날임과 동시에 거지 같은 운명의 수레바퀴가 굴러간 날로 기억되었다.
몇 년 후,내리쬐는 햇볕이 아스팔트를 뜨겁게 달구는 한여름이었다. 쨍쨍 울어대는 매미 소리 위로 해맑은 아이의 웃음소리가 겹쳐 들렸다.“맴!맴! 까하하항”“맴맴이가 그렇게 재밌어?”횡단보도 앞에 선 작은 아이가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나무 위를 올려다보며 연신 까르륵거렸다.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삐져나온 햇빛이 아이의 얼굴 위로 드리우자, 엄마의 손이 얼른 아이의 눈가에 그늘을 만들어주었다.“눈부시다, 그치?”“반짝반짝 예뻐!”“우리 아들은 여름을 많~이 좋아하네.”“아빠!”“응?”“아빠야!”아이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으로 엄마의 시선이 향했다.횡단보도 건너편.유난히 키가 큰 남자가 긴 팔을 휘휘 젓고 있었다.“그러게, 아빠네.”곧, 신호등의 색깔이 바뀌었다.남자를 바라보던 여자의 얼굴 위로 환한 미소가 번졌다.“아빠한테 빨리 갈까?”“응!”여자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아이의 작은 보폭에 맞춰 총총 뛰기 시작했다.“꺄아하하하하”아이가 좋은지 소리 내어 웃어댔고, 그런 아이의 모습에 여자도 웃음이 터졌다.
지음의 책 《마음의 자리》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했다. 그 이후 국내에서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멜로 영화의 부활을 알리듯 영화화 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다.덕분에 서현의 하루하루는 늘 바쁘게 흘러갔다.작고 소중한 출판사 ‘마음의 숲’은 이제 대작을 만들어낸 출판사가 되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아…또다…”서현은 코 밑을 적시는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에에? 팀장님 또!!”프린터기에서 서류를 받아오던 채연이 서현을 보며 소리쳤다.모니터에 고정되어 있던 서현의 고개가 그제야 뒤로 넘어갔다. 그리고 얼른 코에 휴지를 가져다 대는 서현의 손. 흰 휴지는 금세 빨갛게 물들었다.요즘 들어 몸이 조금 무거웠다. 코피도 잦아졌고, 심한 날에는 눈앞이 핑 돌기도 했다.하지만 서현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일이 워낙 많아서 그런가 보다 했고, 무엇보다 일에 재미가 붙은 지금의 생활이 싫지 않았다.“팀장님, 진짜…그러다 쓰러지시면 큰일 나요. 강 작가님이 우리 가만 안 둘걸요.”채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서현에게 다가와 휴지를 더 뽑아 건넸다.“뭐야? 마서현 또 야? 코피?!”2층에서 내려오던 권지혁 실장이 서현을 발견하곤 익숙하게 놀라며 물었다.&ldq
다시 1년 뒤, 마음의 숲 출판사 안.“팀장님! 퇴근 안 하세요?”오늘의 야근 동지였던 주승이 먼저 일어서며 서현에게 물었다. 서현은 대답 없이 손만 뻗어 휘휘 흔들었다.“정말 불편하게 하시네…저녁 드실 거 사다 드릴까요?”“아니. 지금 참았다가 야식 먹을 거야. 얼른 가.”주승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마저 인사를 마치고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곧 서현의 비명이 들렸다.“아아아아악!”비명과 함께 벌떡 일어난 서현은 서둘러서 짐을 챙겼다. 그녀는 엉터리로 묶은 머리를 덜렁이며 문을 박차고 나갔다.문을 열고 나오자, 툭.툭……툭툭툭.난데없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현의 잔발은 잠시 멈칫거렸지만, 이내 굵어지는 빗줄기 속으로 뛰어들었다.그러다 마당을 가로지르던 서현의 발걸음이 문득 멈췄다.출판사 마당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는 서현의 눈에는 어느새 햇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1년 전, 봄.지음과 강원도에서 웨딩 촬영을 마친 후, 두 사람은 바로 이곳 ‘마음의 숲’에서 결혼식을 올렸었다. 출판사 직원들과 함께 작은 파티처럼 치른 결혼식이었다.새파란 하늘과 반짝이는 햇빛 사이로 달큰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이토록 아름다운 날, 초대
그리고 그날 새벽.엎드려 잠든 서현의 머리 위로 익숙한 온기가 스며들었다. 서현의 눈꺼풀이 스르륵 열렸다.“우리 서현이, 깼어?”그녀의 미몽을 틔우는 지음의 나지막한 음성이 들려왔다.서현의 고개가 불쑥 올라왔다.등을 기댄 채 비스듬히 앉아 있던 지음이 말간 얼굴로 빙글 웃어 보였다.“강지음!!”“쉬잇. 병원 사람들 다 깨우려고?”1인실이라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서현은 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고 주위를 살폈다. 지음은 그런 그녀를 보며 키득거렸다.서현은 목소리를 조금 낮춰 다급하게 물었다.“다 잔 거야? 몸은 어때. 응? 사람이 무슨 일주일을 넘게 자…! 진짜…,”“그러게…미안해.”“아니야. 아니야. 진짜 잘했어. 잘했어, 강지음….”서현은 문득 지난날을 떠올렸다.아빠를 피해 있는 힘껏 달아나 경찰서 앞에 주저 앉아 있던 날. 바보처럼 도망친 자신을 바라보며, 지음은 잘했다고 말해주었다.이번에는 서현도 그 말을 돌려주고 싶었다.“…서현아.”“응. 말해. 다 얘기해.”
1년 전, 병원 응급실 안.“선배.”서현은 이대로 보내면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건하의 뒷모습을 불러 세웠다. 돌아선 건하는 다시 한번 자신을 향해 웃어 보였다.“이대로 그냥 가려고?”서현의 물음에 건하가 잠시 대답을 머뭇거렸다. 그는 손끝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답했다.“응, 곧 뉴스에 나올 것 같아서 도망가려고 그랬지.”“그건 그거고.”따라오라는 듯 단호한 얼굴로 건하를 지나쳐 걸어가는 서현을, 건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뒤따라갔다.응급실 빈 베드에 걸터앉은 건하의 이마에는 작은 밴드 하나가 붙어 있었다. 서현은 그런 건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오늘은 괜찮을지 몰라도 좀 지나면 여기저기 아플 수 있어. 내일이라도 병원 다시 가 봐.”“그래, 그럴게.”“그리고.”건하가 고개를 들어 서현을 올려다봤다.“언제 올 거야?”“응?”“권 팀장님, 그만두겠다고 난리셔. 윤건하가 자기한테 사기쳤다고.”건하는 픽 웃으며 고개를 떨어트렸다.“……곧 좋
“…선배?”―서현아, 너 어디야. 내가 그리로 갈게.“왜 오빠 전화를 선배가 받는지 얘기를 해줘야지.”당황함에 떨리던 서현의 목소리가 서서히 불안으로 바뀌었다.―그래, 얘기해 줄 거니까…어디야.“오빠한테 무슨 일 있구나.”그때, 서현의 핸드폰에 알림음이 울렸다.흔들리는 시야를 붙잡고 화면을 확인하자 주승이 보낸 기사 링크가 떠 있었다.[속보] ‘마음의 자리’ 강지음 작가, 라디오 스케줄 후 귀가길 교통사고서현의 손에 들려있던 편의점 봉지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건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서현아, 내가 금방 데리러 갈게.“…선배.”―응.“내가 가요. 갈 수 있어. 그런데…,”서현은 급하게 차오르는 숨을 삼키며, 짓눌리는 듯한 고통에 얼굴을 구겼다. 꺼내려던 말이 가시가 되어 제 목구멍을 찌르는 것만 같았다.혹시 오빠가…잘못…―…서현아, 다 괜찮아.그 순간 들려온 건하의 ‘괜찮아’라는 말에 서현의 입에선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