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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이럴 줄 알았다면

Penulis: 소라닌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8-10 16:00:52

장대비가 오던 날 영락없는 거지꼴로 내달리던 스무 살의 나는 어느덧 서른 살이 되었다.

서른 살의 마서현은 이제 비가 오는 날이면 출근길부터 걱정하는 영락없는 직장인이 되었다.

평범한 서른 살의 직장인. 가져본 타이틀 중 가장 근사한 타이틀이다.

물론 그 타이틀을 얻기까지 쉽지 않았다. 지옥 같던 집안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온 힘을 다 써야 했으니까.

10년 전 그 일이 있고, 강지음에게서 도망친 나는 가족에게서도 도망쳤다. 죽을힘을 다해서. 몇 년 뒤 어렵게 만난 친엄마마저도 도박 빚에 허덕이고 있었으니, 그때의 나에겐 도망치는 것만이 사는 길이었다.

그래서 나를 아는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쳤다.

그나마 그 끔찍한 굴레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던 건,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내 힘으로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부터였다. 대학 생활에 대한 낭만은 없었다. 그저 1분1초라도 멀쩡하게 살고 싶어 죽기 살기로 공부했다. 알코올중독에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버지를 버렸고, 다시 만난 친엄마도 버렸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남자도 버렸다.

그러니까 ‘나’만큼은 멀쩡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 독기가 통했는지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고, 몸을 쓰지 않고 돈을 버는 경험도 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은 끝내 익숙해지지 않았다. 혼자 살아남기 위해 가장 먼저 버린 것이 가족과 사랑이었는데, 생판 남에게 얼마나 상냥할 수 있었겠는가.

외모 때문인지 다가오는 남자들은 있었지만, 얼마 못 가 재수 없다, 싸가지 없다는 소문만 남겼다. 그러면 같은 집단 사람들은 그 소문을 쉽게 믿고 따돌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오래 머물 수 있는 회사가 없었다.

그때, 내 앞에 나타나 준 사람이

“마서현!”

있었다. 항상 그럴 때마다 나타나 주는 사람.

“선배, 아니…대표님. 오셨어요?”

윤건하. 서른다섯의 그는 서현의 대학 선배이자, 현재 서현의 직장인 ‘마음의 숲’ 출판사 대표다.

“둘이 있을 땐 그냥 선배라고 하라니까. 아니, 오빠라고 좀 해 봐. 혹시 사람들이 듣고 오해하고 그러면 진짜 재미겠다. 그치?”

고급 외제 차에서 내린 건하가 차 키를 주머니에 넣으며 서현의 옆에 와 툭 부딪히며 장난스레 말했다.

그는 큰 키에 밝은 갈색 머리, 희끗한 피부. 특유의 날티와 귀티가 묘하게 공존하는 사람이었다.

건하는 자연스럽게 서현의 어깨에 팔을 걸며 장난스럽게 ‘오빠 말고 여보 해볼까?’라며 연신 키득거렸다.

그렇게 두 사람은 3층짜리 주택을 개조한 출판사로 들어섰다. 작은 마당 한편의 오래된 나무와 장독대 위에는 오색 낙엽이 소복이 내려앉아 있었다. 서현은 잠시 장독대 위 낙엽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윤건하 대표님. 어제 또 술 드셨죠? 아침에 회의 있는 날은 좀 그러지 말라니까.”

“내가 너한테 그 잔소리 들으려고 마시는 거잖아. 얼마나 좋아. 마누라 같고.”

“아, 귀신은 뭐 하나 몰라. 이런 인간 안 잡아가고.”

“어우, 또! 이 애늙은이. 너 그럴 때마다 소름 돋아. 우리 집 왕 여사 생각나서.”

건하의 말에 픽 웃는 서현의 머리 위로 노란 낙엽이 포록 떨어져 얹혔다. 서현보다 한참 키가 큰 건하가 얼른 서현의 머리 위 낙엽을 쏙 집어 서현의 눈앞으로 쑥 내밀었다.

“애늙은이 아가씨. 자, 선물. 가을이다.”

바스락, 바스락. 걸음걸이마다 낙엽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10년이 지난 서현의 가을은……

“대표님, 이렇게 부하 직원한테 쓰레기 주고 그러는 거 다 직장 내 괴롭힘이거든요.”

“와, 출판사 다닌다는 애가 이렇게 낭만이 없고, 무드가 없어.”

여전히 흑백사진이었다.

*

“네? 이연 작가요?”

“응, 나 아는 형이 그… 이연 작가 ‘사라진 계절’ 작업한 출판사 대표거든. 거기가 대형출이라 다음 작품도 바로 계약할 줄 알았더니, 그 작가가 안 한다고 했다는 거야?”

‘마음의 숲’ 출판사 내부는 고즈넉한 외관과 달리 현대적인 우드 톤으로 꾸며져 있었다. 공간 곳곳엔 크고 작은 식물들이 놓여 있었고, 중앙에는 온실 같은 회의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회의실에는 건하와 직원들이 회의하고 있었고, 기획과 편집을 함께 맡는 서현도 자리에 앉아 있었다.

기획팀 사원 임주승이 ‘이연’ 작가 이야기에 여전히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재차 질문했다.

“그래서 대표님이 이연 작가를 잡아 오신 거예요?”

“내가 또 남자는 사냥을 안 하잖아.”

“아…이연 작가 정말 남자분이셨구나…”

왠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는 주승을 보며 건하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서현을 바라보았다.

“마 대리가 좀 잡아 오자.”

유리잔을 만지작거리던 서현이 썩 마뜩잖은 얼굴로 고개를 기울이며 답했다.

“제가요?”

벌써 가시 돋친 서현의 반응에 건하가 톤을 올렸다.

“마 대리가 우리 출판사 에.이.스 잖아.”

“대표님, 강은하 작가님 작품 끝나면 다음 건은 기획업무 배제 해주신다고 하셨는데요. 저 이 회의 그냥 그만할까요?”

싸늘한 서현의 반응에 주승과 인턴 김채연이 입을 꾹 닫고 눈알을 굴리며 분위기를 살폈다.

하지만 건하는 서현의 반응에도 아랑곳이 없었다.

“알지. 알지. 그러려고 했지!”

“그런데 저보고 섭외라니요. 그것도 컨택도 하기 힘들다는 그 작가를. 그리고 전 그 작가 별로예요.”

이연 작가는 현시점 가장 주목받는 작가였다. 하지만 알려진 정보는 거의 없었고, 함께 일했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까칠하고 제멋대로라는 평이 많았다.

서현은 까칠하고 제멋대로인 건 저 하나로 족했다.

“맞지. 마 대리 말이 백번 천번 맞지. 그 자식 콧대가 하늘이 아니라 우주를 찌르잖아.”

서현이 건하를 노려보았다. 바른대로 말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이에 건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어 말했다.

“우주가 아니라 우주 할아버지를 찌른대도 모셔 와야 해. 이연 작가.”

곧 회의실엔 여전히 서늘한 표정의 서현과 난감한 얼굴로 미소 짓는 건하 만이 남았다.

“선배, 회사 또 뭐 문제 있어?”

“뭐겠어. 우리 집 노인네 또 노망났지.”

“그냥 결혼을 해라, 선배! 어? 우리 좀 편하게 먹고 살자!”

“그러지 말고 나 좀 살려주라, 마 대리야. 아니 내가 제일 사랑하는 후배 서현아. 응?”

건하의 친부 윤대웅은 법조계를 거쳐 정치권 입문을 앞둔 인물이었다. 성고만 알고 살아온 그에게 유일한 골칫거리는 자유분방한 늦둥이 외동아들 윤건하였다.

건하는 집안이 원하는 길 대신 출판사를 택했고, 그 때문에 출판사는 종종 집안의 압박을 받곤 했다. 자금 대부분이 집안에서 나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부모님이 해주시는 선봐서 결혼해. 왜 버텨? 어차피 해야 한다며.”

“아버지 돈 없이 이 출판사 일으키기 전까지는 싫어.”

“하, 진짜 개똥고집.”

“마 대리가 갈래?”

“아 뭐래. 그리고 선배 아버지가 퍽이나. 나를? 어후 끔찍해라.”

“그치. 그 노인네 앞에 데려가서 고초를 겪게 할 순 없지. 아 그니까, 서현아! 응?”

“아 몰라.”

“이번 목표 매출만 찍으면 절대 출판사 안 건드린대. 그러니까 이연 작가만 잡아 오자..”

서현은 애처로운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건하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거칠게 밀어버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연 작가 데려오면, 나 이번엔 기획팀에서 빼주는 거다?!”

“와, 역시 나의 메시아! 마서현!”

“진짜 싫다, 윤건하.”

다른 회사였다면, 다른 사람이었다면 절대 응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건하는 달랐다. 늦깎이 대학생 시절 늘 제 옆자리에 앉아주던 선배였고, 번번이 치업에 실패하던 제게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럴 줄 알았다면.

선배한테는 미안하지만, 이 출판사가 망한다 해도 거절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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