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한사예의 5년의 결혼 생활은 혼자만의 외로운 연극이었다. 아이를 위해 참고 또 참던 그녀는, 언젠가 남편 송기현이 달라질지도 모른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첫사랑이 나타났다. 그 순간, 기현의 모든 따뜻함과 미소는 오롯이 그 여자에게로 향했다. 아들도 다른 여자를 ‘엄마’라 부르며, 사예와 함께 있기를 피했다. 그때 사예는 완전히 깨달았다. 이제 이 결혼과 이 가족을 자신이 굳이 지킬 이유가 없었다. 사예는 결심했다. 남편도, 아이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겠다고. 이혼 서류 한 장,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고, 아이의 양육권까지 전부 기현에게 넘겼다. ... 이혼 후, 사예는 일에 몰두했다. 성공이 뒤따랐고, 그녀를 향한 구애도 끝이 없었다. 그제야 알았다. 지난 세월의 희생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하지만, 수많은 구혼자 사이로 전남편 송기현이 나타났다. 그는 사예의 곁을 맴도는 남자들을 하나하나 밀어내며, 결국 그녀를 벽으로 몰았다. 사예는 비웃듯 미소 지었다. “송 대표님, 우린 이미 이혼했잖아요.” 기현은 사예의 목덜미를 가볍게 쥐며 낮게 웃었다. “이혼? 서류에 내가 서명이라도 했나?”
View More사예는 그 순간,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작은 방 안에 들리는 고양이의 고른 숨소리와 아이의 웃음소리...‘이 평온함이 영원했으면 좋겠어... 정말로...’그때, 욕실 문이 열렸다.기현이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머리카락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따뜻한 조명이 그의 어깨와 팔 선을 따라 흘러내렸다.문가에 선 남자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며 방 안을 덮었다.그는 아무 말 없이 문틀에 기대섰다.시선은 오롯이, 사예와 동우에게 향해 있었다.어린 아들과 아내가 고양이 옆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따뜻하고, 낯설게 평화로웠다.기현은 그 장면을 깨뜨리지 않으려는 듯 조용히 숨을 죽였다.그런데 동우가 먼저 아빠를 발견했다.“아빠!”동우는 반갑게 달려가 기현의 손을 잡았다.“아빠, 이거 봐요! 제 고양이에요. 제가 아까 우유도 먹였어요!”아이의 눈동자가 자랑스럽게 반짝였다.기현은 그 눈빛을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짧게 대답했다.“그래, 잘했네. 앞으로도 잘 돌봐야 해.”그 순간, 사예는 무심코 그들을 바라봤다.‘이런 모습, 진짜 오랜만이야.’기현의 입가에 미묘한 웃음이 번졌다.그는 평소처럼 차갑지도, 무심하지도 않았다.아들을 향한 눈빛은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했다.그 모습을 보는 순간, 사예의 마음 어딘가가 묘하게 흔들렸다.‘이게... 우리가 잃어버린 거였나.’하지만 다음 순간, 동우의 한마디가 그 따스함을 무너뜨렸다.“걱정 마세요, 엄마. 이건 애진 이모가 준 고양이에요. 제가 꼭 잘 키울게요.”사예의 손끝이 갑자기 얼었다.‘그래, 잊을 뻔했네. 이건 고애진의 고양이지.’‘내 남편도, 내 아들도... 결국 다 그 여자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어.’사예는 얼른 일어서며 말을 돌렸다.“이제 잘 시간이야. 늦으면 내일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알겠어요, 엄마. 바로 잘게요. 아빠, 엄마, 안녕히 주무세요.”“그래, 잘 자.”기현과 사예는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문이 닫히자, 방 안
사예는 기현의 눈빛에 담긴 불만을 읽을 수 있었다.‘또 나한테 화난 거야?’‘이번엔 내가 아이를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고 생각하겠지.’기현은 늘 그런 식이었다. 동우가 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있거나, 사소한 문제라도 생기면 결국 사예의 책임으로 돌렸다.사예는 입술을 꼭 다물었고, 반박할 말이 없었다.최근에는 기현이 아이를 훨씬 더 자주 챙긴 것도 사실이었다. 자신이 나서서 돌보려 하면, 동우는 여전히 엄마를 불편해했고, 그럴수록 사예는 점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이젠 나도 내 아들한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겠어.’기현의 짧은 한숨이 공기를 가르고, 사예는 조용히 그 비난을 받아들였다.그러고는 동우 앞으로 다가가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물었다.“배고프지? 밥은 먹었어?”동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벌써 먹었어요. 아직 숙제가 덜 끝나서... 올라가서 할게요.”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우는 재빨리 계단으로 올라갔다.작은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사예는 허공에 머물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결국, 나에게서 이렇게 도망치듯 사라지는구나.’거실에는 다시 조용함이 내려앉았다.기현은 아무 말 없이 서재로 향했다.남자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사예만 덩그러니 남았다.작은 월셋집에 혼자 있을 땐 편했다.하지만 이 넓은 공간에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되면,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그래도 동우 곁에는 있고 싶어.’‘내 아들이 나를 피하더라도... 나는 그냥, 옆에라도 있고 싶어.’사예는 조심스레 동우의 방문을 열었다.그곳에서 동우는 작은 상자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아이의 손에는 아기용 젖병이 들려 있었고, 상자 안에는 조그만 새끼 고양이가 있었다.그 고양이는 애진이 동우에게 선물한 아이였다.털이 아직 보송보송했고, 몸집은 손바닥만 했다.한 달도 채 안 된 새끼고양이였다.작은 입으로 ‘야옹’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고, 동우는 난감한 표정으로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었다.‘고애진이 준 거였구나... 그렇겠지.’사예
사예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그 눈빛은 분명히 기현을 향해 묻고 있었다.기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되물었다.“그 말, 무슨 뜻이야?”차가운 밤공기가 두 사람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얼음 같은 바람에 사예의 머릿속이 조금은 맑아졌다.‘이게 무슨 소용이람. 이미 이혼합의서에 도장까지 찍었는데...’사예는 아이의 양육권을 포기했다. 더 이상 따질 권리도, 붙잡을 이유도 없었다.무엇보다 동우는 자신을 좋아하지 않았다.억지로 데려온다 한들, 아이의 마음에 상처만 남을 것이다.‘그래, 차라리 당신이 키우는 게 나을지도 몰라.’‘그게 그 애한테는 제일 좋은 일일 거야.’기현과의 결혼은 결국 인연이 아니었다.사예는 이제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그저 긴 한숨을 내쉬며 작게 중얼거렸다.“술김에 헛소리 좀 했네. 송 대표님, 너무 진지하게 듣지 마.”기현은 그런 사예를 한참 바라보다가, 눈빛이 차가워졌다.“그 말은 알아듣겠다. 그런데 그 꼴로 집에 가면 애가 뭐라고 생각하겠어.”남자의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다.기현은 늘 그랬다. 칭찬 한마디 없고, 모든 말이 비난 일색이었다.‘그래, 당신답지. 나에게 따뜻한 말 한번 한 적 없으니까.’사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미 그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 없었고, 기현이 그런 말을 하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정말 이혼할 생각이 있는 걸까?’‘아니면... 아직 이혼 서류를 안 본 걸까.’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그 서류... 혹시 봤...”“송 대표님!”성수의 목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를 끊었다.그가 급히 달려와 기현 앞에서 숨을 고르며 말했다.사예는 입을 다물고 한발 물러섰다.“무슨 일이지?”기현이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성수가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했다.차들이 지나는 소리에 묻혀, 사예는 잘 들을 수 없었다.하지만 기현의 표정이 변했다. 그리고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고, 그 시선이 차갑게 사예를 향했다. 거기엔 분명 불쾌감이 섞여 있었다.성수가 말을 마
“그러게요, 결혼하신 게 사실이라면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조용할 수가 있나요?”기현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그는 와인잔을 들고 천천히 한 모금 입에 머금은 뒤, 담담하게 말했다.“아들이 네 살입니다.”그 한마디에 공기가 멎었다.누군가 들고 있던 잔이 덜컥 흔들렸고, 곳곳에서 낮은 탄성이 터졌다.“송 대표님, 아드님이요? 네 살이라고요? 진짜입니까?”“세상에, 그렇게 숨기실 줄이야. 아무도 몰랐잖아요!”“...”사예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잔 속의 술이 넘쳐흘러, 치마에 붉은 얼룩이 번졌다.“괜찮아?”호빈이 급히 휴지를 꺼내 건넸다.사예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를 받아 들었다.“아, 네. 괜찮아요.”기현이 그쪽을 힐끗 바라봤다.짧은 시선, 굳게 다문 입술.남자의 표정은 여전히 냉정했다.사람들은 그 반응이 장난이 아님을 단번에 알아차렸다.“송 대표님, 정말 결혼하신 게 맞습니까? 게다가 아드님이 벌써 네 살이라니요. 아무 소문도 없던데, 사모님이 아주 대단하신 분인가 봅니다.”기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잔을 들고 있을 뿐, 시선은 멀리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왜 지금, 이런 말까지 하는 걸까?’사예는 이해할 수 없었다.기현이 결혼 사실을 숨기는 건 늘 애진을 의식한 탓이라 생각했는데...결국 두 사람은 이혼할 테고, 그때가 되면...기현은 애진에게 당당히 기현의 아내라는 타이틀을 내줄 수 있을 텐데...‘그런데 왜, 지금에 와서 이런다고?’결혼을 인정하는 건 기현에게 아무 이득도 없는 일이다.정확히 말하면, 오히려 자기 발목을 잡는 일이었다.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이젠... 감출 이유도 없어졌다는 건가?’“아이고, 송 대표님 너무하십니다. 결혼 같은 인륜지대사를 아무한테도 말씀 안 하시고, 덕분에 축의금 낼 기회도 놓쳤네요. 다음번 자리에는 꼭 사모님도 모시고 나와주세요. 정말 궁금합니다. 어떤 분이길래 송 대표님을 가정으로 이끌었는지!”사람들의 웃음 섞인 말에
고애진은 송기현의 오랜 첫사랑이었다.그리고 여전히 기현이 마음 깊은 곳에 소중히 간직한 여자.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고, 이젠 기현이 그녀를 집에 데려와도 사예로서는 이상할 게 없었다.사예는 마음 한켠이 불편했다. 아주 미세하게 몸을 옆으로 틀었는데, 그 작은 움직임조차 기현은 놓치지 않았다.기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손목의 시계를 매만졌다.남자의 의도적인 행동이 읽히자 사예는 숨이 답답해졌다.‘이 사람의 이런 버릇을 나만큼 아는 사람은 없지.’기현은 짜증이 나거나, 뭔가에 대해 혐오를 느낄 때 이런 행동을 했다.‘역시, 송기현은 나를 정말 싫어하나 봐.’집 안에서는 사예를 대놓고 무시했고, 밖에서는 그조차도 꾸미려 하지 않았다.사예는 굳이 서로 굳이 얼굴 붉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둘 다 이혼한 사람, 앞으로도 종종 공식 석상에서 얼굴을 봐야 하는데 관계를 더 망가뜨릴 이유는 없었다.그래서 사예는 옆자리에 앉은 호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저 선배랑 자리 좀 바꿔도 될까요?”호빈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그리고 바로 일어나 사예와 자리를 바꿨다.사람들은 사예가 먼저 기현과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송 대표님처럼 잘생기고, 능력 있고, 스캔들도 없는 분이 요즘 세상에 드물죠.”“그런데 한 선생님은 왜 이렇게 멀찍이 떨어져 앉으셨어요? 송 대표님 냉정한 표정에 겁먹으신 거 아니에요?”기현은 언제나 화제의 중심이었다.이 남자의 사소한 행동 하나까지도 이야깃거리가 되었다.사예는 굳이 휘말리고 싶지 않아 담담히 답했다.“송 대표님은 스캔들이 없으시잖아요. 그래서 더더욱 옆자리에 남자가 앉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괜히 오해 사면 안 되니까요.”사예는 몇 마디로 상황을 넘겼다.하지만 기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호빈을 한번, 그리고 사예를 또 한 번 바라보았다.그 시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이야기는 점점 흥미로운 방향으로 흘러갔다.“제가 듣기로는 송 대표님한테 대시하는
사예는 사람들의 농담에 그저 멋쩍게 웃었다.‘아휴, 또 이런 분위기네.’사실 사예와 호빈은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선후배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두 사람은 실험이나 공모전 준비할 때 잠깐씩 부딪힌 적은 있지만, 그 외에는 거의 말을 섞은 적이 없었다.‘호빈 선배가 날 좋아한다니,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있나?’그때 한 선배가 장난스럽게 소리쳤다.“호빈아, 너 설마 사예랑 이미 사귀는 거 아니지? 사예는 수준급 미모에 뛰어난 머리까지 겸비한 인재인데, 그런 여친 숨겨두고 있는 거면 진짜 너무했다!”장난이 점점 커지자, 호빈이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아니에요. 진짜 아니에요. 그만 놀려요. 전 그냥 사예를 친한 후배로 아끼는 거예요. 괜히 오해 생기겠네요.”사예도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웃으며 말했다.“다들 제발 그만하세요. 이러다 정말 소문 나면 큰일 나요.”그 말에 사람들이 더 크게 웃었고, 농담은 점점 더 가벼워졌다.웃음소리와 장난이 오가는 그 공간에서 호빈과 사예는 그저 난처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하지만 아무도 몰랐다.문 바로 밖, 면접위원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는걸...그중에는 기현도 있었다.안에서 흘러나오는 대화가 기현의 귀에 그대로 꽂혔다.‘호빈? 대학 선배?’가벼운 웃음소리가 유난히 거슬렸다.기현의 귀 끝이 미묘하게 뜨거워졌다.‘결혼한 지 몇 년인데, 내가 모르는 남자 이름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오는구나.’사예는 늘 조용했다. 결혼 후에도, 그녀 곁엔 다른 남자가 없었다. 항상 루틴이 일정하고 주변은 단정했다.그런데 지금 낯선 이름이 사예 곁에 떠돌았다.문이 열리며 기현 일행이 들어섰다.문턱을 넘자마자 방 안의 웃음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송 대표님.”누군가가 허둥지둥 일어나 인사했다.자리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심국명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다들 앉아요. 이제 인원 다 모였네요.”그 말에 사람들은 조심스레 자리에 앉았다.한쪽 구석에서는 여자 연구원들이 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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