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갑자기 왜 암이야?”강준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재환도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다.남정은 줄곧 산에 머물며 요양을 해왔다.남수연의 일이 터진 뒤로는 한 번도 산을 내려오지 않았고, 그 무렵 강준의 상태도 계속 나아지지 않았다. 우울과 피로가 쌓여서 병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었다.“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급히 병원에 도착했지만, 강준은 곧바로 병실로 향하지 않았다.먼저 별아에게 말했다.“네가 먼저 가서 어머니 좀 봐줘. 난 의사부터 만나서 상태부터 자세히 듣고 올게.”강준의 목소리에는 꾹꾹 눌러 담은 아픔이 묻어 있었다.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산 시간이 거의 없었고, 겨우 자랐을 즈음엔 사고와 병이 겹쳤다.끝내 하루도 제대로 곁에 있어 주지 못했다.그 마음을 별아는 충분히 이해했다.“네.”강준은 의사를 만났고, 설명을 듣는 내내 묘한 기시감이 몰려왔다.“만성 중독으로 보입니다. 특정 독성 물질에 장기간 노출됐고, 방사성 자극이 계속 누적된 결과로 종양이 생긴 걸로 판단됩니다.”강준은 말을 되묻듯 되뇌었다.“방사성... 자극이요? 그럼 제 어머니도, 그런 물질에 오래 노출돼서 종양이 생겼다는 말입니까?”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아떨어졌다.은준의 병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남수연.은준에게만 손을 댄 게 아니었다.자신을 키워준 남정에게까지 같은 짓을 한 것이다.강준이 손끝을 말아 쥐면서 단단하게 주먹을 쥐었다.끓어오르는 분노를 삼킨 채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며 물었다.“치료는... 가능한가요?”“종양 위치를 보면 수술이 가능합니다. 예후도 아주 나쁜 편은 아닙니다.”그 말을 듣고서야, 강준의 굳어 있던 미간이 서서히 풀렸다.“그럼 최대한 빨리 수술 일정을 잡아 주세요.”...병실.남정은 별아를 보자 몸을 일으켰다.“별아야, 왔구나.”별아는 급히 다가가 남정을 부축했다.“움직이지 마세요. 누워 계세요.”“하루 종일 잠만 잤어. 네가 와서 다행이다. 잠깐 얘기 좀 하자.”남정은 별아의 손을 꼭 잡았
강준은 씩 웃었다.호민의 능력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예전에 괜히 자존심 세워 의사라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면, 호민의 사업 감각으로 볼 때 K시의 배성그룹이 지금처럼 정체되어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강준은 마음속으로 호민이라는 사람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별 수 없네. 그래도 나를 눈여겨봐 줬으니 말이야.”강준은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K시 돌아가면 나 찾아와. 그때 제대로 얘기해 보자.”“그럼 그렇게 하자.”호민은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괜히라도 의식을 차리듯, 강준의 잔과 가볍게 부딪쳤다.호민은 배성그룹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이 상태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강준은 다른 건 몰라도, 사업만큼은 믿을 만했다.머지않아 배성그룹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가능성이 컸다.카페를 나설 때, 결국 계산은 호민이 했다.“난 오늘 바로 올라갈 거야. 별아는 보석상 쪽이랑 아직 조율할 게 좀 남아서 며칠 더 있을 것 같아. 네가 옆에 있으니까 마음은 놓인다.”강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호민이 떠난 뒤, 강준은 별아와 함께 거래처를 돌았다.거래처 사람들은 옆에 선 남자가 바뀐 걸 보고, 슬쩍 눈치를 줬다.“송 사장님, 이분은...?”“최근에 새로 뽑은 비서예요. 합류가 늦어서 낯설게 보이실 거예요.”별아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거래처에서도 깊이 캐묻지는 않았다.다만 눈앞의 남자가 낯설지 않다는 느낌은 지우지 못한 듯했다.어디선가 본 얼굴 같은데, 정확히는 떠오르지 않는 표정이었다.미팅은 비교적 순조로웠다.별아는 원석 샘플과 몇 개의 핵심 물량을 확보했고, 이제 K시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이번 일정이 이렇게 풀린 건, 호민의 연결 덕이 컸다.떠나기 전, 별아는 R시의 백화점에 들렀다. 호민에게 줄 선물을 고르기 위해서였다.강준은 굳이 따라붙었다.별아가 자신에게 줄 깜짝 선물이라도 준비하는 줄 알고, 얼굴이 환해졌다.별아가 고른 건 남성용 브로치였다.진주와 보석이 조화된 디자인으로
하지만 별아가 강준에게 품은 감정은 사실 그리 많지 않았다.더 큰 이유는 부모에게 최소한의 설명을 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은준에게 아버지가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판단, 그 정도였다.강준은 그 사실을 모르는 척하지 않았다.별아가 지금 당장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느냐를 강요하지도 않았다.다만 하나의 조건만을 조심스럽게 꺼냈다.“네가 나랑 한번 해보겠다고 했잖아. 그럼... 우리 떨어져 지내지는 말자. 은준한테도 좋고. 은준이가 직접 말했어. 아빠랑 엄마가 떨어지는 거 싫다고.”그 말이 정말 은준의 입에서 나온 건지, 별아는 알 수 없었다.다만 은준이 강준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같이 사는 것 자체는, 별아에게 완전히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침대는 따로 써.”별아가 말했다.강준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안 돼. 따로 자면 나 잠 못 자.”“너 점점 선을 넘는다?”별아가 강준을 노려봤다.강준은 대답 대신 별아를 번쩍 안아 올려 세면대 위에 올려놓았다.“선 넘을 거야. 나는 향기롭고 말랑한 여보 끌어안고 자야 돼. 대신 약속할게. 매일 깨끗이 씻을게. 응?”“하강준, 너 진짜 무슨...”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준의 입술이 덮쳐왔다. 별아가 거절할 틈도 없었다.강준은 별아의 손을 붙잡고, 하나씩 깍지를 끼웠다. 열 손가락이 완전히 맞물린 뒤에, 입맞춤은 더 깊어졌다. 조절하려 애쓰면서도, 갈망을 숨기지 못한 키스였다.별아는 서서히 그 흐름에 휩쓸렸다.좁은 공간 안에서 욕망과 해소가 겹쳐지는 시간이 흘러갔다....별아는 여전히 바빴다.반대로 호민은 이번 협상이 무산되면서 한숨 돌릴 여유가 생겼다.호민은 강준에게 먼저 연락해서 자리를 만들었다.조용한 카페 안.두 사람 모두 정장 차림이었다.젊은 시절의 날카로운 기세 대신, 묵직한 안정감과 예리함이 배어 있었다.“왜 불렀어? 내가 너 보고 싶어 할 것처럼.”강준의 말투에는 익숙한 까칠함이 묻어 있었다.둘 사이는 주먹으로 쌓은 관계에 가까웠다.가깝
별아의 얼굴이 점점 더 달아올랐다. 무의식적으로 귀를 감싸 쥐는 바람에 오히려 더 눈에 띄고 말았다.호민은 의자에 느긋하게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이미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가볍게 웃을 뿐, 더 캐묻지는 않았다.별아는 강준이 깨어났다는 사실만큼은 호민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강준이... 이제 완전히 돌아왔어요. 더 이상 어리숙하지도 않고요.”“그럼 좋은 일이지.”호민은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단정하게 말했다.“저도... 좋은 일인 건 알아요.”별아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가라앉았다.“그런데...”말끝이 흐려졌다. 마음속은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로 뒤엉켜 있었다.호민은 금방이라도 몸을 웅크릴 것 같은 별아를 보며, 웃어야 할지 한숨을 쉬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이내 목소리를 낮추고, 부드럽게 말했다.“강준이 너를 잡아먹을까 봐 겁이 나? 그럴 사람 아니야. 돌아가. 너희 사이는, 언젠가는 제대로 얘기해야 해. 피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잖아.”별아는 잠시 말이 없었다가, 작게 대답했다.“네.”호텔로 돌아온 별아는 객실 문 앞에서 몇 차례 깊게 숨을 들이켰다.마음을 다잡은 뒤에야 문을 열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들어갔다.방 안은 비어 있었다.강준은 없었다.별아는 그제야 숨을 놓았다.‘강 비서가 와서... K시로 데려갔나 보다.’몸에 힘이 풀리자, 그대로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피로가 밀려들었다.시간이 한참 지난 후, 별아가 눈을 떴을 때, 시야를 가득 채운 건 가까이 다가온 얼굴이었다.강준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별아는 놀라 숨이 막힐 뻔했다.“뭐 하는 거야?”“자고 있는 얼굴이 너무 예뻐서.”별아는 말문이 막혔다.강준을 밀어내고 욕실로 들어가 세수를 했다.찬물에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이제 다 나았으면, K시로 돌아가.”별아가 말했다.강준은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너 일 끝날 때까지 같이 있고, 그 다음에 같이 갈 거야.”“하산그룹은 신경 안 써도 돼? 곧 주인이 바뀐다는 얘기 들었어.”별아는
남자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별아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너...”‘하강준이... 돌아온 거야?’‘더 이상 어리숙하지 않은 거야?’‘언제부터였지? 열 때문에 그런 건가, 아니면...’별아의 머릿속에 질문이 끝없이 떠올랐다.강준은 별아의 말을 기다리지 않았다. 얼굴을 별아의 가슴께에 파묻고, 큰 손으로 가느다란 등을 단단히 붙잡았다.“부탁이야, 별아야... 남은 인생을 네 곁에서 죗값을 치르게 해줘. 난 할 수 있어. 정말로... 그렇게 살고 싶어.”그제야 별아는 확신했다.강준은 이미 제정신으로 돌아와 있었다.기억도 잃지 않았다.별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정말로... 전부를 걸고 속죄하겠다는 걸까.’‘이 순간의 말은, 어디까지가 진심일까.’강준의 숨결이 별아의 희고 부드러운 목덜미를 태웠다.밀어내려고 해도, 빠져나올 틈이 없었다.강준은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입술을 가져왔다.겹쳐진 숨, 깊어지는 접촉, 물러설 여지를 주지 않는 집요함.남자의 체온이 점점 더 높아졌다.그날 밤의 관계를, 서로가 완전히 같은 마음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하지만 별아는 강준의 강렬한 열기를 밀어내지 않았다.강준이 원할 때마다, 별아는 그 흐름을 허락했다.한 번, 또 한 번.마지막이 가까워졌을 때, 별아는 강준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숨 가쁘게 물었다.“네 허리는...”“너 만나고 나서, 다 나았어.”강준은 별아의 입술을 가볍게, 여러 번 눌렀다.서로의 숨이 고르게 섞일 때까지, 그렇게 안긴 채 잠들었다....이른 아침.강준이 눈을 떴을 때, 별아는 이미 방에 없었다.가슴 한쪽이 급격하게 식었다.강준은 곧바로 호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내 와이프, 너랑 같이 있어?]탁자 위에 놓인 휴대전화가 진동했다.호민은 화면을 확인한 뒤, 시선을 거래처와 대화 중인 별아에게로 옮겼다.귀 아래와 목선에 애써 가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하강준, 이 자식은 여전하네. 급한 성격 하나는
“그래, 그럼 가만히 서 있어.”호텔에는 일회용 세면도구가 준비되어 있었다.별아는 강준의 입가에 쉐이빙 폼을 뿌리고, 일회용 면도기를 집어 들었다.손목에 힘을 주지 않고, 아주 조심스럽게 강준의 턱선을 따라 수염을 정리해 나갔다.강준은 무릎을 살짝 굽힌 채 고개를 들고 있었다.별아의 손끝이 닿을 때마다, 세심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이 그대로 전해졌다.강준이 멍하니 있었을 때, 별아가 전동 면도기 사용법을 가르쳐줬다.이렇게 직접 면도를 해주는 건, 별아도 처음이었다.강준의 큰 손이 무의식적으로 별아의 허리를 감쌌다.“장난치지 말고, 가만히 있어.”별아는 강준이 그냥 아이처럼 보채는 거라고 생각했다.다른 의미는 전혀 떠올리지 않았다.강준은 말없이 손을 거뒀다. 정말로 얌전히 있었다.수염을 다 정리한 뒤, 별아는 얼굴에 스킨까지 발라주었다.“잘했어. 이제 가서 자.”은준을 재우듯, 자연스러운 손길이었다.“응.”강준은 욕실 밖으로 밀려났다.욕실 안에서는 물소리가 잔잔하게 이어졌다.반투명한 유리 너머로 수증기가 차올랐고, 온기가 번지며 물방울이 흘러내렸다.젖은 머리카락과 목과 어깨의 곡선, 움직일 때마다 달라지는 실루엣이 흐릿하게 드러났다.강준의 목에서 울대가 크게 한 번 움직였다.열기가 가슴을 지나 아랫배까지 내려왔다.욕실 문 손잡이를 쥔 손가락 마디가 점점 하얘졌다.‘이 문을 열기만 하면...’ 그때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강준? 밖에 있어?”심장이 덜컥 내려앉았고, 강준은 나쁜 짓을 들킨 아이처럼 손잡이에서 급히 손을 뗐다.“별아, 나... 조금 무서워. 빨리 나와주면 안 돼?”“무서우면 문 앞에서 기다려. 나 금방 끝나.”별아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유리 너머의 형체가 더 또렷해졌다.바디워시 향이 문틈을 타고 강준의 코로 스며들었다.예상치 못한 따뜻한 액체가 흘러내렸다.강준은 급히 손으로 막고, 휴지를 집어 코를 눌렀다.‘한심하네.’강준은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해야만, 이 들끓는 감각을 잠재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