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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약혼녀

그녀는 도대체 누구인 걸까? 이선우는 첫눈에 그녀의 외모와 몸매에 놀라긴 했으나 그보다도 그녀의 깊은 상처가 신경 쓰였다. 무술인이 틀림없었다. 최은영은 그런 이선우의 시선을 인식하지 못한 채 침대에 앉으며 물컵을 건넸다. 이선우는 물컵을 건네받고는 벌컥벌컥 들이켰다. 최은영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이선우 씨, 전 최은영이라고 해요. 당신 약혼녀고요.”

“네? 약혼녀요?”

이선우는 상황판단이 안 돼서 멍하니 최은영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때 최은영이 갑자기 그의 품에 안겼다.

“사실 어제 절 당신께 드리려고 했어요. 근데 술을 너무 많이 드셔서 인사불성이신 상태시더라고요. 이제 술도 깨셨고 오늘 날씨도 좋으니까 지금이 기회인 거 아닐까요?”

최은영은 말을 마치고 바로 이선우에게 입을 맞췄다. 이선우는 놀라서 최은영의 어깨를 잡고 그녀를 밀어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일단 진정하세요. 먼저 대화부터 나눠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약혼녀라고 하시는데 전 약혼을 한 적이 없어요. 저 그렇게 쉬운 사람 아닙니다.”

최은영은 그 말에 발끈했다.

“그럼 전 쉬운 여자라는 건가요? 좋아요, 어떤 게 쉬운 건지 알려드릴게요.”

그녀는 이선우를 덮치고는 그의 볼을 잡고 입을 맞췄다. 그녀는 진심으로 화가 났다. 전쟁터에서 신이라고 불리던 자신이 거절당한 것도 모자라서 쉬운 여자라는 취급을 받는 것이 참을 수 없게 분했다.

그 시각 이선우는 거칠게 입을 맞춰오는 최은영을 차마 밀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몸을 뒤집어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타는 방식으로 제압할까도 잠깐 생각했지만 최은영 몸에 난 상처가 떠올라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는 다시 한번 힘껏 그녀를 밀어내며 말했다.

“죄송해요, 일단 화내지 마세요. 제 말을 오해하신 것 같아요. 전 그런 뜻으로 얘기한 게 아니었어요. 상처도 깊으시면서 왜 이러시는 거예요. 목숨이 아깝지도 않아요?”

“제 상처를 보셨다고요?”

최은영이 깜짝 놀라 물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낯빛이 이렇게 안 좋은데 누가 못 알아봐요.”

“그럴 리가 없어요. 그럼 어디를 다쳤는지 한번 말해봐요.”

최은영은 갑자기 이선우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의 말을 믿은 건 아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가 아니었기에 일반인은 물론이고 명의라고 불리는 자들도 다쳤다는 걸 보아내지 못했었다. 혹시 이선우는 특별한 사람인 거 아닐까?

그를 만나기 전 최은영은 이선우에 대해 철저히 조사했었다. 그래서 감옥에 수감된 적이 있다는 것도, 애인에게 사기를 당한 것도 알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아무런 특이사항도 없는 정말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일반인이었다. 은인님의 제자였기에 최은영은 그에 대해 조금의 기대를 품고 있었다. 이때 이선우가 말했다.

“내상이네요. 폐 쪽에 피도 좀 고여있고 신경도 몇 군데 끊어진 것 같아요. 조금이라도 경력 있는 의사라면 다 알아차릴 수 있을 거예요. 전 의술에 어느 정도 능통한 편이라 방금 신체접촉을 통해서 진단할 수 있었어요.”

이선우의 말을 듣고 최은영은 매우 놀랐다. 그녀는 의사도 아니고 의술에 대해서도 아는 게 전혀 없었지만 이선우가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그저 짧은 신체접촉과 육안으로 보는 것만으로 진단을 내렸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다. 그녀는 점점 그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했다. 혹시 다른 재능도 있지 않을까 궁금증도 늘어갔다.

“일단 진정해요. 일단 전 의사이기도 해요. 제가 치료해 줄 수 있어요.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말이죠. 만약 절 믿으신다면 침을 놓는 방식으로 치료를 시도해 볼게요.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까 그동안 저희는 얘기를 좀 나눠보죠. 어때요?”

최은영도 더 이상 밀어붙이지 않고 일어나서 침대맡에 앉았다.

“네, 궁금하신 게 있으시면 물어보세요.”

“그럼 돌려 말하지 않을게요. 제 약혼녀라고 하셨는데 혼인을 약속한 증명 같은 거라도 있는 건가요?”

“아니요, 하지만 제 손에 있는 반지가 당신 손에 있는 반지랑 똑같은 거예요. 이게 예물이거든요. 그리고 그분 성함을 얘기하면 아실 거예요. 유동백 씨라고 아시죠?”

“유동백이요? 스승님을 아세요?”

최은영이 끼고 있는 익숙한 반지를 보고 그녀가 스승님 성함을 말하는 걸 듣고 나서야 이선우는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 이때 갑자기 그 일이 떠올랐다.

5년 전 감옥에서 스승님을 만나게 된 후 스승님이 자신에게 7명의 부인을 찾아주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스승님은 수라감옥을 떠나면서 또 한 번 7개의 혼사를 준비했다는 말을 하셨었다. 그리고는 반지를 하나 건네셨는데 그게 바로 지금 이선우가 착용하고 있는 반지였다.

스승님은 7명의 약혼녀에게 모두 이 반지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지만 이선우는 온통 양지은만 바라보고 있었기에 스승님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야 그 말이 모두 사실이었음을 깨달았다. 최은영은 4년 전 유동백이 자신과 아버지를 구해준 사실과 약혼을 약속한 사실을 모두 이선우에게 털어놓았고 그제야 이선우가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

“그랬군요. 혹시 지금 제 스승님이랑 연락되시나요? 절대 오해는 하지 마세요. 그쪽은 굉장히 아름답고 매력적인 분이세요. 하지만 이건 너무 갑작스럽고 게다가 지금 다치셨잖아요. 스승님이 저보다 훨씬 빨리 치료해 드릴 수 있을 거예요.”

이선우도 상당히 오랫동안 유동백과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오랜만에 만나 뵙고 인사도 드리고 싶으니 최은영에게 연락처가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됐어요, 당신이 그분 제자잖아요. 그럼 당신을 믿을게요. 이미 빚을 너무 많이 진 사람이라 이런 부탁까지 드릴 수 없어요. 그리고 이미 오래전에 르네르를 떠나신 분이세요. 이선우 씨도 연락이 안 되는데 저라고 연락이 되겠어요? 천천히 치료해 주세요. 평생이 걸리더라도 그쪽을 믿을게요.”

“아니…”

이선우가 망설였다. 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러워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전 우물쭈물거리는 남자 싫어해요.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리던지 믿고 기다릴게요. 치료를 못해주는 한이 있더라도 미워하지 않고 떠나지 않을게요.”

최은영은 이선우가 자신의 병을 고쳐줄 수 있었으면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 자신의 한평생을 바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영원히 이선우와 함께 지낼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귀찮은 집안일들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일단 잠시 이쪽에 누워보실래요? 침을 놔서 묵은 피부터 빼낼게요. 옷은 다 벗어주시면 되고요.”

이선우도 더 이상 치료를 미루지 않았다. 최은영은 잠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이선우는 간신히 이성의 끈을 부여잡으며 잡념을 뿌리치고 오직 침을 놓는데만 집중했다. 기다란 침이 최은영의 가슴 쪽에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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