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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계약 남녀, 잠깐 한눈 좀 팔게

last update Veröffentlichungsdatum: 08.06.2026 12:05:50
인수인계도 그렇고 연초라 회사 일도 많아 깜박 하다 보니 벌써 밤 9시가 가까워져 왔다. 서둘러 백팩을 정리를 하고 외투를 입은 뒤 전원을 하나하나 꺼나갔다.

차가운 겨울 공기가 비서실의 유리창에 차단된 탓에 눈발이 창문에 부딪치고 있다는 것도 이제 알게 되었다.

내리는 눈은 커다란 꽃송이가 되어 눈앞을 가득 채웠다. 크리스마스의 그 밤도 이랬는데.

잊으려 애썼던 기억들이 눈처럼 쌓여 결국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내 가슴을 짓눌렀다. 차근차근 차준호와 멀어질 단계를 밟아가기 위해 애를 쓴 스스로에게 난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인생에 정답은 없고 남녀 관계 공식도 없지 않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홀로 비서실을 정리하면서도 하나하나 이곳에 스민 기억들도 버려낼 각오를 다졌다.

그때 비서실 문이 두드려졌다.

“네, 들어오십시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그도 퇴근하려는지 외투까지 차려입은 최기범이었다.

“신하늘 씨, 퇴근이 늦었군요.”

“아, 최 실장님. 이제 가려고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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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267. 예측불가능, 주사위가 던져졌다

    문 앞에 서서 차준호를 떠올린 나는 다시 거울 속으로 시선을 돌렸다.그곳에 비친 내 모습은 조만간 대한민국 정치인이 되어 거대한 권력을 포상받는 선택받은 자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생명을 제물로 바쳐서라도 남편을 살리려는 비정한 마녀의 형상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과연 무엇이 정답일까. 인생에서 오답을 낸다면 그 대가는 신에게서 받는 벌이 될까.그 오만하고 완벽한 남자가 화마로 얼룩진 몸을 회복시키느라 병원 신세를 진 차진아의 일상을 다시 훼손해 생명을 연장하는 상황을 견딜 리가 없었다.수술 후유증이 차진아에게 발생한다면 지독한 낙인이자 저주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난 이미 벌을 받고 있는 것 같은데, 빨리 이 지옥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두 주먹을 꽉 쥐던 그때였다.-그래도 전 대표님의 이식 수술을 권하고 싶습니다.강진욱의 냉혹한 설명이 내 폐부를 짓눌렀다.이를 어쩌나. 다시 스트레스를 받아서일까. 아랫배가 살살 아파 오기 시작했다.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다잡으며 말을 이었다.“저 역시 대표님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박사님, 신에게 의지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네요.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연락드리겠습니다.”전화를 끊고 거울 속의 또 다른 나와 마주했다.그리고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제 플랜 B로 넘어가야 할 시점이 온 것 같았다.***그 시각, 잠실 L그룹 본사 세미나실 옆 VIP 대기실.회장 대리라는 무거운 직함을 짊어지고 임원진과 전 본사 직원이 운집한 대형 행사를 무사히 치러 낸 이아준은 무대 뒤로 걸어 나오자마자 긴 한숨을 깊게 내뱉었다.오늘따라 이왕춘은 왜 부재중인 것인지. 마냥 기뻐야 하지만, 어깨 위를 짓눌러 오는 수천 개의 시선이 안겨 준 중압감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1. 사람 미치게 하는 거짓말 같은 날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의 정적을 깨우는 밤 11시 반 무렵.창밖으로는 하얀 눈꽃이 송이송이 흩날리며 세상의 모든 소음을 집어삼키고 있었지만, 강남 C 호텔 25층 로열 스위트룸 내부는 숨 막힐 듯 팽팽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조도를 최대한 낮춘 짙은 어둠 속에서 나는 차준호라는 거대한 포식자에게 온전히 잠식당한 채, 밤을 녹여내는 은밀하고도 위태로운 시간을 보냈다.내 몸의 지도를 그보다 더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는 존재는 세상에 없었다. 귓가를 어지럽히는 그의 뜨겁고도 습한 숨결이 예민한 목덜미를 따라 부드럽게 흘러내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9. 빌런을 좋아한 건가. 이런 망할.

    난 차준호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오전에 회사에 들른 뒤 자료를 챙겨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진창에 처박힌 내 마음처럼 흐릿했다.가던 중에 벨이 울려 확인하니 반가운 도국이었다.-하늘아, 어디야?요즘 부쩍 날 챙겨 주는 도국과 이아준이었다. 회사 일로 바쁜 날 염려해 주는 동시에 고민이 있는 엉망인 내 상태를 눈치챘는지 여러모로 신경 써주니 고맙기만 했다.“바쁜데, 뭘 또 전화까지. 난 병원 가는 길.”-어제도 밤새 게임같이 해 놓고 피곤하겠네.“오늘 3시 출근이라 늦잠 잤어. 참,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8. 내가 미쳤지.

    무슨 그런 거짓말을.내 머릿속에선 운명 교향곡이 요동쳤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거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수면 부족과 카페인의 부작용일까. 평소 차분함과 다혈질이 공존하던 내 감정은 이미 균형을 잃은 지 오래였다.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화살은 이미 날아갔고 물은 엎질러졌다.“재미있네. 나는 신 비서를 좋아하지도, 사귈 리도 없을 텐데?”차준호는 내 말을 믿지 않았는지 코웃음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목에 닿은 펜던트를 무의식적으로 만지다가, 그의 손길이 닿았던 순간이 떠올라 몸을 떨었다.이걸 그가 크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7. 완벽한 타인의 숨결

    사람들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유령처럼 떠돌던 이름의 실체.신하늘, 신 비서. 차준호는 누워 있는 내내 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울리던 그 이름이 내심 신경 쓰였다.하지만 드디어 눈앞에 나타난 실체를 마주한 순간, 관자놀이가 끊어질 듯 욱신거리며 지독한 두통이 밀려왔다.그녀의 이름 세 글자가 왜 이토록 심장 가장 깊은 곳을 거슬리게 긁어내리는 걸까. 기묘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졸졸 쫓아다녀 철벽만 치기 바빴던 강소희랑 같이 사고가 났다니. 하지만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한 톨의 아쉬움도 일지 않았다.대신 눈앞의 신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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