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세나는 주말 내내 복잡한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마침 오늘 스케줄이 비어 있음을 확인하고는, 충동적인 마음으로 회사로 향했다.
여자의 직감은 무시 못한다고.
도국과 통화한 사람이 ‘하늘’이라고 하던데. 세나는 신하늘이 도국의 첫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어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
요즘 세나 자신이 대세 여자 아이돌이면서 도국과 스캔들이 났다는 사실을 분명 저 여자도 알 텐데. 사실 소속사에서 몇 번이나 마주쳤고, 자신을 스카우트한 것도 신하늘이라 인사 못할 이유도 없었다.
늘 원피스 차림만 봤는데, 오늘은 전혀 딴 사람처럼 느껴졌다.
후드티에 면바지, 모자까지 눌러쓴 모습은 평소 세련된 비서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지만, 오히려 그 소박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165에서 168센티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키에 슬림한 체형, 화장기 없는 청순한 이목구비는 그녀의 자연스러운 매력을 한
붕어빵과 바닐라 라떼라니.최기범의 뜻밖의 센스에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리며 봉투 안에서 따스한 붕어빵 하나를 집어 들었다.달콤하고 고소한 향기가 텅 빈 위장을 자극하자, 나도 모르게 군침이 돌며 한 입 베어 물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다.내가 통화를 하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고 편히 전화를 나누라며 세심하게 배려해 주고 간 그의 뒷모습에 새삼 마음이 따뜻해졌다.그때, 수화기 건너편에서 도국이 빠르게 말을 이어 붙였다.- 하늘아, 제대로 챙겨 먹고 일해.역시 오랜 친구는 달랐다. 먹을 것을 눈앞에 두고 침을 삼키던 찰나였는데, 녀석의 천리안은 거의 수준급이었다.“알았어. 고마워.”혼자 산 지 오래되다 보니 끼니를 대충 때우는 게 어느새 나쁜 습관으로 굳어졌다. 게다가 비서실에서 일할 때는 늘 흐트러짐 없는 옷 태만 신경 쓰느라 정작 가장 중요한 식사에는 소홀하곤 했었다.내가 직장 생활이 힘들어서 살이 빠진 건 아닐까 염려하며, 친구들은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마다 양손 가득 먹을 것부터 사 들고 오곤 했었는데.-이따 저녁에 뭐 좀 배달 시켜 줄까?멀리서도 이리저리 신경을 써주는 다정함이 그리 감사할 수가 없었다.“와, 우리 도국이가 애인인 사람은 참 좋겠다. 진짜 매일이 행복할 것 같아.”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진심이었다.하지만 아차 싶은 순간 이미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고, 내 몸은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모르게 친구 사이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건드린 것 같았다.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도국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수화기 너머에선 한참 동안 서늘한 침묵만이 돌아왔다.나는 잠
회사에 출근한 뒤, 나는 기묘할 정도로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오전 내내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고 흔한 메신저 하나 오지 않아, 오롯이 내게 주어진 업무에만 순수하게 집중할 수 있었다.그리고, 메신저 이름에 불이 계속 꺼져 있는 차준호 덕분이기도 했다.어차피 그와 내가 머무는 층수부터가 달랐고, 일개 과장급인 내가 회사의 최고 머리인 대표와 사적으로 마주칠 일 따위는 없었으니 자연스레 거리감이 생겼다.차라리 잘된 일이었다.그렇다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가 먼저 다가와 주길 바라는 미련 따윈 정말 단 1도 없었다. 더 정이 들면 나만 힘들어질 뿐이고, 그가 아무리 잘해준다 한들 결국엔 잔인한 희망 고문이 될 터였다.‘언젠가 흐지부지되겠지.’시간의 힘을 믿어보기로 하며 묵묵히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회사에 점심시간을 알리는 시각이 되었다.***회사 생활의 꿀맛 같은 점심시간.일단 무료로 제공해 주는 카페테리아지만, 매일 두유만 마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회사 1층 편의점이나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며 휴대전화를 챙겨 일어났다.혹시나 하고 기사나 검색할까 하며 화면을 켜자마자 단연 눈에 띄는 핫이슈는 역시나 강소희와 차준호의 이야기였다. 인터넷 여론은 이미 두 사람이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그래도 아무런 근거도 없이 강소희가 방송에서 그런 뉘앙스로 말하진 않았을 텐데.’여론의 반박 기사에도 불구하고 차준호의 이름은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었다. 이제는 어느 정계 인사의 딸과 정략결혼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자극적인 추측성 기사들까지 우후죽순 쏟아지는 상태였다.가슴 한구석이 쿡쿡 찌르듯 아려왔다. 차준호에 대한 생각을 끊어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그것 자체
관계가 시작되기 전, 강소희의 옷을 벗기던 주원형은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흉흉하게 말을 뱉었다.“너의 그 가벼운 입방정 때문에 오늘 아침 날아간 주가가 얼마인지 감이나 잡아?”결국 또 돈.강소희는 속으로 냉소했다.이 바닥에서 구른 지 10년이 넘어가니, 어느새 자신은 배우가 아니라 그저 움직이는 매물에 불과하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JW의 든든한 자금줄이었던 자신은 도국에게 서서히 밀려났고, 최근 이렇다 할 흥행작도 없으니 당연한 취급이었다.주원형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그녀의 몸을 탐하려 들자, 강소희는 천천히 단추를 풀며 감정 없는 밀랍 인형처럼 인위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어머, 대표님. 제가 인터뷰에서 누구라고 정확히 밝힌 것도 아니잖아요? 차준호가 아닐 수도 있다는 여지가 있으니까 CH 주가는 건재한 거 아니겠어요?”“······제발 그 입 좀 조심해.”기다리지 못했는지 슬슬 옷자락을 난폭하게 헤집는 주원형의 손길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강소희 역시 이미 각오한 바였기에, 오히려 그의 목덜미를 유연하게 끌어안으며 귓가에 대고 달콤한 교태를 부렸다.“도국이 스캔들 터졌을 때 대표님 톡톡히 이득 보셨잖아요. 이번에 하락장 온 김에 재투자하셔서 다시 메우면 되죠, 안 그래요?”돈, 그리고 돈.그가 목숨보다 사랑하는 돈 이야기를 미끼로 던지면 개처럼 누그러질 것을 알았다.과연 주원형은 그 파렴치한 제안이 마음에 들었는지, 거칠게 짓누르던 손길의 악력을 은근히 늦췄다. 고압적이던 방 안의 공기가 기묘하게 풀어지기 시작했다.&ldqu
·주말의 잔향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잔인하리만치 무심한 월요일 아침이 찾아왔다.청바지에 투박한 롱패딩. 지극히 평범하고 대수롭지 않은 차림으로 출근길에 올랐다.버스를 타고 회사로 가는 동안 거리 곳곳 거대한 빌딩 전광판마다 걸려 있는 강소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와 마음이 절로 심란해졌다.지난 토요일, 차준호와 최기범이 불쑥 집으로 찾아왔던 기억.그리고 그들이 떠난 뒤 멍하니 지켜보았던 강소희의 인터뷰 프로그램이 자꾸만 뇌리를 스쳤다.텔레비전 속에서 생글생글 웃던 강소희의 집요한 눈빛은 마치 차준호의 서늘한 뒷모습만을 좇고 있는 것 같았다.‘······하지만 지금 내 코가 석 자지.’실소 가벼운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 오만하고 도도한 남자가 내 비좁은 집에 드나들며 수제비나 얻어먹을 위인은 아니지 않은가.조만간 이 나라 경제계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설 차준호였다. 그의 곁에는 그에 걸맞은 정치계 뒷배를 둔 대단한 여자가 서게 될 터.그러니 나와는 애초에 상관이 없어야 했고, 앞으로도 상관없을 일이었다.문제는 마음이었다. 머리로는 명확히 아는 사실이 가슴에는 통 닿지 않았다.신호등을 기다리며 휴대전화를 들어 올렸다. 어제 내내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던 사진 한 장.우리 세 사람이 어색하게 모여 찍은 사진이 갤러리 한구석에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었다.화면 속 차준호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며, 그가 남긴 잔인한 말들을 하나하나 곱씹었다.늘 끝내야 한다고, 이 관계는 가짜일 뿐이라고 마음속으로 수없이 노래를 불렀건만, 막상 그의 기습적인 선언으로 마침표를 마주하니 이별은 생각보다 훨씬
제일 놀란 건 물론 나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다 함께 셀카를 찍자는 뜻인가?“진짜요?”“너 갑자기 왜 이래? 역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맞구나?”천하의 차준호가 사적인 기록을 남기겠다니, 최기범 역시 진심으로 경악한 눈치였다.“내 머리가 정상은 아니잖아. 오늘을 또 잊어버릴까 봐.”대꾸하는 차준호의 눈동자에 평소와 다른 망설임이 아주 잠깐 스쳤다.당연히 끝을 앞둔 사람과 사진이 웬 말이냐고 밀어내야 마땅한데, 이상하게 내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튀어 나갔다.“사진 찍으면, 저한테도 보내주세요.”오늘이 정말 그와의 마지막이라 생각해서였을까.나 역시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난 3년간의 추억이 연기처럼 손가락 사이로 허무하게 새어나가 버리자, 무의식중에 아쉬움이 덜컥 삐져나온 모양이었다.“그래.”차준호 역시 내 반응이 의외였는지,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팔을 길게 뻗었다. 그 짧은 찰나에 우리 세 사람은 하나의 좁은 프레임 안에 갇혔다.“그럼 나도 보내줘.”“알았어.”셋이 한데 모여 찰칵.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역사적인 순간이 휴대전화 속에 박제되었다.이별치고는 그리 나쁘지 않은 밤이라 생각하며 그들을 배웅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거실 한구석, 켜져 있던 텔레비전 화면에 강소희가 등장했다.***[역시 여배우는 극한 직업이에요. 저도 관리하느라 늘 다이어트를 달고 살거든요. 드레스 실루엣에 무조건 몸을 맞춰야 하니까요.]강소희의 조목조목한 발언에 진행자는 ‘천상의 몸매
“거실에서 먹죠.”텔레비전을 계속 보고 있던 그들을 위해 난 만든 음식들을 소파 테이블로 옮겼다.냉장고에 있던 감자와 달걀, 밀가루를 털어 서둘러 수제비를 끓여 냈다. 곁들일 반찬이라곤 파김치와 배추김치뿐인 조촐한 상을 차린 뒤 두 사람에게 수저를 건넸다.얼떨결에 음식을 내어 오자, 차준호와 최기범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신하늘, 재주꾼이네.”“오, 국물 맛도 좋습니다. 다시 봤습니다, 신 과장.”어떻게 그 짧은 새 음식을 뚝딱 완성했냐는 듯, 두 남자가 신기한 눈으로 테이블을 들여다보았다.그동안 날 어떻게 봤길래. 연신 이 둘은 감탄만 자아냈다.차준호의 대저택에서 보았던 화려한 식탁에 비하면 턱없이 초라해 민망했지만, 이게 내 최선이었다.“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최기범은 입에 잘 맞는지 국자로 수제비를 연신 냄비에서 대접에 덜어갔다. 차준호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나름대로 수제비를 즐기는 듯 보였다.평소 이들이 즐길 만한 부류의 음식은 아니었지만, 깨끗이 비워 주니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김치도 제대로네.”“이웃 어르신께 얻은 거예요.”차준호가 파김치를 집어 먹는 모습은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3년을 그리 가까이 지내면서도 이런 소박한 음식을 삼키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다.아픈 날 걱정해 주고, 보일러까지 고쳐주는 남자.하지만 몸은 가까이하면서 마음은 단 한 자락도 내어주지 않고, 과분한 물건을 안겨 주면서 정작 좁혀질 여지는 냉정히 거부하는 잔인한 사람.무엇이 진짜 차준호일까.그렇게 평범한 식사가 이
이아준은 통화 도중, 수면 위로 떠오르는 신하늘과 도국과의 옛 기억 속에 깊게 잠겼다.화려한 마천루가 즐비한 강남의 이면, 세종동 서쪽 끝자락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빈민가가 있었다. 그곳에 위치한 ‘하늘 보육원’은 세 사람의 유년이 뿌리내린 곳이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고 나이도 제각각이었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유일한 세계이자 가족이었다.이아준은 태어나자마자 차가운 보육원 앞마당에 버려진 신세였다. 그러나 운명은 잔인하고도 변덕스러웠다. 뒤늦게 그가 국내 최고 재벌가인 L그룹의 잃어버린 혈통임이 드러났고, 하루아침에
[1월 1일, 재벌가 차준호와 톱여배우 강소희! 둘만의 밀월여행이었나· 강원도에서 추락 사고!][CC그룹 후계자 차준호·한류스타 강소희! 과연 현재 상태는?][사고 직후 불거진 비밀 연애 의혹· 관계자들은 어떤 입장을···][과연 차준호와 강소희 사고에 관한 진실은 무엇인가!]새해의 태양이 채 떠오르기도 전, 대한민국은 단 하나의 소식으로 들끓었다. 차준호는 강소희를 자신의 세단에 태운 채 1월 1일 새벽 강원도 산길을 달리던 중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십여 미터 아래 낭떠러지로 추락했다.단순한 교통사고인지, 범죄와 연관된
‘이 나쁜 자식!’지난 3년간 내게 보인 그 모든 다정함은 한낱 유희였을까? 차준호에 대한 배신감에 속이 문드러져 욕지거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나는 부서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자존심을 끌어모아,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하며 도도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대표님은 그동안 절 어찌 보셨는데요?”나는 유리창 너머로 썰물처럼 번지는 화려한 야경을 사납게 응시하며, 심장에 박힐 날 선 말을 뱉어냈다.“네 주변에 남자가 들끓어 보였거든.”뻔질나게 전화를 걸어오는 남사친 둘을 두고 한 오해였을까. 설령 그렇다 해도, 그동안
종일 정신 없다가 이제는 머리가 하얗게 비어버린 것 같았다.커피에 의지해온 탓일까. 카페인의 날카로운 자극이 현기증을 부추겼다.그가 왜 하필 기억을 잃은 걸까.3년치 기억만 사라지다니. 비극 같으면서도 우습게 느껴졌다.빌어먹게도 나는 잊혀진 존재가 되어버린 것 아닌가.카메라 군단이 다시 몰려들었다. 간신히 버티던 나는 기계적인 목소리로 답변했다.그런데 병실 안에서 흘러나오는 고미주와 강진욱의 대화에 일순 어깨가 흠칫거려졌다.[강 박사님, 차 대표는 언제 일반 병동으로 이동하나요?][네, 최종 검사가 끝나는 대로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