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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오월이
예주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미묘한 빛이 스쳤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오빠가 해인 언니한테 너무 잘해 주는 거죠. 언니가 그걸 몰라주는 거예요.”

그 말에 태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예주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까 그 진주 목걸이 말이에요...”

태겸은 대답하지 않고 해인 옆자리에 앉았다.

곧 첫 번째 경매 물품이 무대 위에 올려졌다.

진주 목걸이였다.

윤기 좋은 진주들이 조명 아래에서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다.

해인은 한눈에 마음이 갔다.

시작가는 4억 원.

해인은 망설임 없이 패들을 들었다.

“6억 원.”

그러자 뜻밖에도 예주가 함께 패들을 들었다.

“6억 5천만 원.”

‘산골 출신에 일한 지도 1년도 안 됐을 텐데 저 돈은 어디서 나온 거지?’

해인은 다시 패들을 들었다.

“10억 원.”

예주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해인 쪽을 바라봤다. 붉어진 눈가에는 억울함이 묻어 있었다.

“해인 언니, 언니는 그렇게 돈도 많은데 이런 보석이야 얼마든지 살 수 있잖아요. 그냥 진주 목걸이 하나인데, 왜 저하고 경쟁을 하세요?”

해인은 가볍게 웃었다.

“여긴 경매장이야. 높은 가격을 부른 사람이 가져가는 게 규칙이지. 왜 네가 억울해하는데? 하예주, 자신의 분수에 맞는 자리에 앉아야지. 여긴 네가 올 곳이 아니야.”

예주는 입술을 깨물며 눈시울을 붉혔다.

“네, 제가 부족하죠. 촌에서 올라온 사람이 이런 자리에 어울릴 리 없죠. 하지만 이 진주 목걸이는 저희 집안 대대로 내려온 보물이에요.”

“백 년 전에 잃어버린 걸 이제야 찾게 된 거예요. 그냥 추억으로라도 갖고 싶었을 뿐인데, 왜 그렇게까지 저를 몰아붙이세요?”

‘보물이라고? 백 년 전?’

‘이야기가 너무 허술하네.’

주변에서도 낮은 목소리로 수군거림이 퍼졌다. 시선들이 예주 쪽으로 쏠렸다.

예주의 안색이 점점 흐려졌다.

그때, 스태프 한 명이 무대 뒤에서 나와 경매사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속삭였다.

경매사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내 장내를 향해 또렷하게 알렸다.

“특별 응찰이 들어왔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객석 여기저기서 낮은 웅성거림이 번졌다.

특별 응찰은 특정 응찰자가 해당 작품에 대해 상한선 없이 경쟁 의사를 밝히는 방식이었다.

다른 참가자들이 모두 응찰을 포기할 때까지 가격은 계속 올라가며 마지막까지 남은 금액으로 낙찰이 확정된다.

누군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누가 특별 응찰을 건 겁니까?”

경매사의 시선이 객석 한쪽으로 옮겨갔다.

“하예주 씨를 대상으로 한 특별 응찰입니다. 이번 진주 목걸이는, 다른 응찰자가 없을 경우 하예주 씨 명의로 낙찰이 진행됩니다.”

“하예주 씨, 혹시 재벌가에서 잃어버린 딸 아니에요?”

“아니면 어떤 재벌이 이분한테 반해서 대신 질러준 건가?”

“...”

말들이 오가는 가운데, 예주는 태겸을 바라봤다. 눈빛에는 감격이 담겨 있었다.

이제야 여유가 생긴 듯 예주는 턱을 들고 말했다.

“해인 언니, 그래도 계속 하실 거예요?”

해인의 몸이 굳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돌려 태겸을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해인과 예주가 목걸이를 두고 팽팽하게 맞서던 동안, 태겸은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특별 응찰이 선언됐다.

해인의 시선이 닿자 태겸의 핸드폰 화면이 꺼졌다.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뜬 해인은 손끝이 떨렸다.

고씨 가문은 부유했지만, 고민건은 태겸이 돈을 함부로 쓰는 사람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태겸에게 거액의 자금을 준 적이 없었다.

태겸이 쓰는 돈은 모두 YD그룹에서 벌어들인 것이었다.

YD그룹은 지금도 임시 대표 체제였다.

해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 집에서 돈을 벌고, 우리 집안 돈까지 쓰다가, 나중엔 아예 뒤집어 엎겠다는 거야?’

‘이렇게까지 해야 해?’

주변의 공기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해인은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사람들의 놀란 눈길 속에서 다시 패들을 들었다.

“200억 원.”

‘고태겸이 하예주를 위해 계속 가격을 높이겠다면, 끝까지 가 보지.’

‘영웅 노릇을 어디까지 하는지 보겠어.’

200억이라는 숫자가 울려 퍼지자, 장내 분위기는 단숨에 달아올랐다.

경매사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진주 목걸이 하나가 200억 원이라니,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금액이었다.

해인 옆에 앉아 있던 태겸의 표정이 무너졌다.

조금만 더 올라간다면, 이 목걸이 하나로 전 재산을 털어 넣어야 할 판이었다.

다행히 해인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경매장을 빠져나갔다.

태겸이 뒤따라가려고 했지만, 예주가 팔을 붙잡았다.

예주는 감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말했다.

“오빠, 오빠가 저를 위해 끝까지 가격을 높일 줄은 정말 몰랐어요.”

사실 태겸은 후회하고 있었다.

돈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무모한 사람도 아니었다.

몇 억 원이면 끝났을 목걸이가 해인 때문에 200억 원까지 치솟았다.

그럼에도 태겸은 예주에게 약속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진주 목걸이를 꼭 찾아주겠다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해인의 마음에 들었던 물건은 그리 많지 않았다.

굳이 해인과 경쟁할 필요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태겸은 예주를 두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이미 해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

해인이 경매장을 떠난 건, 진이철에게서 전화가 걸려왔기 때문이었다.

YD그룹의 매수자가 윤곽을 드러냈고, 직접 만나 이야기하고 싶다는 전갈이었다.

“아저씨, 어떤 분이신가요?”

해인은 이 일이 꽤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상장사의 지분 정리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고, 그만한 자금력을 가진 쪽도 드물었다.

자금이 있어도 고씨 가문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선택을 쉽게 하진 않을 터였다.

[KH그룹입니다. 다만 조건은 아직 조율이 필요하고요. 회장님도 일단은 관심을 보인 단계입니다.]

해인은 잠시 말을 잃었다.

KH그룹.

최근 몇 년간 YD그룹의 주요 사업을 여럿 가져간 곳이었다.

태겸이 경쟁사라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고, 해인에게도 여러 번 언급한 이름이었다.

해인은 기업 간의 세세한 흐름까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KH그룹의 실질적인 책임자가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라는 점, 그리고 군 쪽과 연결이 있다는 소문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해는 이미 기울고 있었고, 해인은 약속된 장소인 회원제 클럽으로 향했다.

혹시 모를 변수를 대비해,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클럽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해인은 주차된 차들을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익숙한 번호판들이 여럿 눈에 들어왔다.

‘고태겸이랑 그 무리도 여기 있었네.’

경매장을 나온 뒤 태겸에게서 여러 통의 전화가 왔지만, 해인은 모두 받지 않았다.

직원이 다가와 예약된 룸이 있는지 물었다.

습관처럼 해인은 태겸이 늘 사용하던 룸 번호를 말하고 말았다.

문이 열리자 안의 공기가 잠시 가라앉았다.

검은 셔츠의 단추를 몇 개 풀어낸 태겸이 소파에 기대 앉아 있었다. 손가락 사이에는 담배가 끼워져 있었고, 다른 손에는 술잔이 들려 있었다.

해인을 본 태겸은 곧바로 담배를 껐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자리에서 일어나 해인에게 다가왔다.

“여긴 왜 왔어?”

태겸 몸에 밴 술 냄새가 가까이에서 느껴졌다. 열어 둔 셔츠 사이로 탄탄한 가슴이 드러나 있었다.

해인도 부인할 수 없었다.

태겸은 잘생겼고, 명문가 자제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룸 안에 있던 이들도 하나둘 해인을 알아보고 말을 붙였다.

“제수씨, 어서 들어와요. 태겸이가 아까부터 계속 해인 씨 얘기하던데요.”

“해인 누나, 우리 태겸 형한테 무슨 주문을 걸었길래 하루 종일 누나 얘기만 해요?”

“야, 누나 말고 형수님이라고 불러.”

“...”

해인은 그 사람들의 농담에 반응하지 않았다. 자신이 잘못 들어온 걸 깨닫자 바로 돌아서려 했다.

그때, 태겸이 해인의 손목을 붙잡았다.

“여보.”

해인은 태겸을 똑바로 바라봤다.

“하예주랑 같이 다니면서 나한테는 왜 이래?”

오늘 밤, 예주도 이 자리에 와 있었다.

태겸이 바로 설명했다.

“예주는 내가 부른 거 아니야. 저기 파란 옷 입은 애 보이지? 윤준이가 새로 만나는 여자친구야. 오늘 생일인데, 예주는 그 친구가 부른 거고.”

예주는 윤준의 여자친구 옆에 앉아 있었고, 태겸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태겸의 말이 틀려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해인은 사실 여부를 따질 생각이 없었다.

한 사람은 나가려 하고, 한 사람은 붙잡고 있었다.

해인과 태겸 사이의 공기가 묘하게 팽팽해졌다.

그 분위기를 눈치챈 누군가가 웃으며 말했다.

“해인아, 왜 그래? 태겸이랑 싸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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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인은 뒤로 밀리면서 중심을 잃었다.태겸은 뒤쪽에서 급히 끼어들었고, 그때의 반동으로 깨진 유리컵의 날이 해인의 손바닥을 파고들었다.손끝에서 전해지는 통증이 너무나 선명해서 해인은 미간을 찌푸렸다.예주 앞을 가로막고 선 태겸이 난처한 표정으로 해인을 바라봤다.“이게 뭐 하는 거야? 예주는 내가 부른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그 말을 듣자 해인은 쥐고 있던 컵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눈가가 젖은 채 태겸을 향해 말했다.“내가 난리야? 고태겸, 하예주가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한 번이라도 들어볼 생각은 있어?”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5화

    말을 꺼낸 사람은 윤준이었다.태겸의 오래된 친구였고, 오늘 이 자리를 만든 당사자이기도 했다.윤준이 웃으며 말했다.“무슨 일이 있든 오늘만큼은 잠깐 접어 둬. 오늘은 내 여자친구 생일이잖아. 내 체면 좀 세워줘.”곧바로 맞장구가 이어졌다.“맞아. 태겸이 마음속엔 늘 해인 씨밖에 없는 거 다들 알잖아. 둘 사이가 얼마나 좋은데. 해인 씨랑 조금만 삐걱해도, 나중에 태겸이 술 취하면 친구들 붙잡고 난리 나는 거 다들 봤잖아.”“야, 그런 소리 하지 마. 태겸이 언제 울어. 술병 안고 ‘여보, 사랑해’만 반복하지.”“...”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3화

    이소정의 안색이 단번에 굳어졌다.“사설탐정? 사설탐정을 써서 태겸이를 조사했다는 거야? 해인아, 그런 건 하면 안 되지. 부부 사이에 상처만 남겨.”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란이 서재 안까지 전해졌다.문이 열리며 고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인을 보자 자연스럽게 음성이 누그러졌다.“해인이, 왔구나.”고민건을 바라보던 해인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우리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지금쯤은 저분처럼 머리가 희끗해졌을까?’그해, 두 회사가 공동으로 추진하던 대형 프로젝트가 있었다. 원래는 고민건이 직접 협력사와 만나기로 되어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2화

    밖에서 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려왔다.해인은 더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잠시 뒤, 현관문이 열리며 태겸이 들어왔다.실내로 스며든 발소리는 조심스러웠고, 점점 가까워지다가 해인 등 뒤에서 멈췄다.이어 단단한 남자의 팔이 해인 뒤에서 감겨 왔다.해인의 허리가 갑자기 조여 들었다.“여보...”태겸의 입술이 머리칼 위로 내려앉았다.낮고 거친 숨이 섞인 남자의 목소리였다.“여보, 나 진짜 보고 싶었어.”밤공기를 머금은 태겸의 체온이 전해지자 해인의 몸이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다.해인은 그대로 굳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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