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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eur: 오월이
이소정의 안색이 단번에 굳어졌다.

“사설탐정? 사설탐정을 써서 태겸이를 조사했다는 거야? 해인아, 그런 건 하면 안 되지. 부부 사이에 상처만 남겨.”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란이 서재 안까지 전해졌다.

문이 열리며 고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인을 보자 자연스럽게 음성이 누그러졌다.

“해인이, 왔구나.”

고민건을 바라보던 해인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우리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지금쯤은 저분처럼 머리가 희끗해졌을까?’

그해, 두 회사가 공동으로 추진하던 대형 프로젝트가 있었다.

원래는 고민건이 직접 협력사와 만나기로 되어 있었지만, 급한 일이 생겨 자리를 비웠다.

대신 해인의 아버지와 두 오빠가 고민건을 대신해 나섰다.

협력사 측에서 마련한 차량으로 돌아오던 길, 사고가 났다.

강씨 집안의 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하룻밤 사이에 해인은 가장 의지하던 아버지와, 늘 곁을 지켜주던 두 오빠를 잃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어머니마저 해인을 떠났다.

과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가자, 해인은 시선을 내렸다.

그러나 곧 다시 고개를 들었다. 부드럽게 다듬어진 얼굴 위로 흔들림 없는 표정이 자리했다.

“저, 태겸 씨랑 이혼할 생각이에요. 아버지 회사도 제가 다시 가져올 거고요.”

목소리는 낮았지만, 시선은 분명했다.

말이 끝나자 거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고민건이 놀란 기색으로 물었다.

“갑자기 왜 이혼 이야기를 하는 거니? 태겸이가 너한테 잘못이라도 했어?”

태겸과 해인이 결혼한 지 따져 봐도 며칠 되지 않았다.

둘이 식은 올리지 않았지만, 절차와 예는 빠짐없이 치렀다.

해인에게 친정이 없다는 걸 알았기에, 고민건은 스스로 결정해 혼례 예물을 해인에게 직접 넘겼다.

시가로 상당한 단독주택이었다. 공사비만 해도 2천억 원이 넘는 집이었다.

누가 봐도 고씨 가문이 해인을 가볍게 대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해인은 가늘게 미간을 좁혔다.

“자세한 이유는 어머니께 여쭤보세요.”

그녀는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당시, 해인은 아직 미성년자였다. 회사를 홀로 책임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동안 YD그룹은 고민건이 대신 관리해 왔다.

이후 고씨 가문의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손이 모자라게 되었고, YD그룹은 자연스럽게 태겸에게 맡겨졌다.

어차피 고민건 부부의 생각 속에서 해인과 태겸의 결혼은 예정된 일이었다.

지금은 태겸이 YD그룹의 임시 대표이사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소정은 이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이 굳었다.

“해인아, 작은 다툼 때문에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니? 이혼이 그렇게 쉽게 입에 오를 말이야? 어느 부부가 안 싸우고 살아.”

이어 말이 길어졌다.

“그리고 태겸이도 지금 대표이사로 잘 하고 있잖아. 갑자기 회사를 되찾겠다는 건데, 너 회사 일 해본 적 있니? YD그룹이 네 손에서 흔들리면, 그건 네 아버지가 평생 쏟은 노력을 망치는 거야.”

해인은 차분하게 이소정을 바라봤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래도 그게 잘 되든 안 되든, 제 일이잖아요.”

이소정은 더 이상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 아이가, 또 말을 왜 그렇게 해.”

해인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제가 틀린 말 했나요?”

“너...”

그때 고민건이 이소정을 날카롭게 쳐다봤다. 이소정은 그제야 말을 삼켰다.

고민건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내 아들이 또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말해 봐.”

이소정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태겸이는 늘 잘해 왔어. 무슨 큰 잘못이 있겠어? 전부 오해야. 해인이가 괜히 일을 키우는 거지...”

...

해인은 더 이상 고민건 부부의 말을 듣지 않았다. 조용히 몸을 돌려 고씨 가문의 본가를 나섰다.

이곳은 해인의 집이 아니다. 고민건 부부가 아무리 잘해 준다 해도, 해인은 결국 며느리일 뿐이었다.

차에 오르자마자, 해인은 아버지가 생전에 가장 믿고 의지하던 사람인 진이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가씨.]

“아저씨,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YD그룹을 매각하려고 해요. 적절한 인수자를 찾아주실 수 있을까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미 결심하신 겁니까?]

“네.”

해인은 회사 경영에 재능도, 흥미도 없었다. 이미 자신의 일은 따로 있었다.

태겸과의 관계를 정리하기로 한 이상, 미련 없이 정리하고 싶었다.

회사를 되찾은 뒤 억지로 끌고 가느니, 제대로 된 사람에게 넘기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게 아버지가 남긴 회사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어가는 길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해인은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아저씨, 이 일은 조용히 진행해 주세요. 태겸 씨에게는 아직 알리지 말아 주세요.”

YD그룹에서 태겸이 보낸 시간은 6년이었다.

지금 회사 안팎은 대부분 태겸의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가 미리 알게 되면, 모든 일이 복잡해질 뿐이었다.

진이철은 곧바로 답했다.

[알겠습니다, 아가씨.]

...

B시에서는 요 며칠 대형 경매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해인은 초대장을 받아 들고 잠시 바람을 쐴 겸, 기분 전환도 할 겸 행사장에 가기로 했다.

경매는 시내에서도 손꼽히는 고급 호텔에서 열렸다.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선 해인은 사람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하예주였다. 연한 노란색의 트레인 달린 머메이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허리를 따라 밀착된 라인이 몸선을 또렷하게 드러냈다.

그 옆에는 말끔하게 차려입은 태겸이 서 있었다.

예주는 한 손으로 태겸의 팔을 자연스럽게 끼고, 몸을 가까이 붙여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공개된 자리였지만, 두 사람은 주변을 신경 쓰지 않는 듯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해인은 곁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었다.

“고 대표님, 이분이 여자친구시죠?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예주는 그 말에 얼굴이 붉어지며 태겸을 한번 바라봤다.

“고 대표님이 여자친구분을 정말 아끼신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강해인 씨랑 같이 경매에 오신 거면, 좋은 소식이 곧 있는 건가요? 결혼 준비로 보석 보러 오신 건가요?”

상대는 예주를 해인으로 착각했지만, 태겸은 굳이 바로잡지 않았다.

해인은 두 사람 곁을 아무 표정 없이 지나쳐 갔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해인의 존재감은 쉽게 묻히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태겸은 뒤늦게 시선을 돌렸고, 해인을 발견하자 잠시 표정이 굳어졌다.

곧바로 예주를 두고 해인 쪽으로 걸어왔다.

“왜 여기 있어?”

예전 같았으면 다툼이 있어도 길어야 몇 시간이었다.

서로 감정이 상해도 결국 해인이 먼저 손을 내밀었고, 그렇게 정리됐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태겸이 예상했던 시간보다 갈등은 훨씬 길어졌다.

해인의 생일에 함께하지 못했던 건 분명 자신의 잘못이었다.

태겸 역시 며칠 사이 마음을 가라앉혔다.

‘나이도 아직 어린데, 내가 조금 더 양보하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며, 이번에는 태겸이 먼저 다가가기로 마음먹었다.

마주 선 채 시선이 맞닿았다.

해인은 태겸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신혼여행은 잘 다녀왔어?”

태겸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소리야? 무슨 신혼여행?”

해인은 미간을 좁혔다.

“끝까지 모른 척하는 거야? 그게 재미있어?”

태겸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설마 내가 예주랑 신혼여행 갔다고 생각한 거야? 오해야. 나 K국 몰디도에 간 건, 너 때문에...”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해인은 태겸을 지나 좌석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태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예주랑 같이 경매장에 온 건데,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해?”

그 순간 태겸이 해인의 손목을 붙잡았다.

“예주는 여기서 만날 친구가 있어서 내가 태워다 준 것뿐이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 아니야.”

이어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여보, 여기서까지 이러지 말자. 오늘 밤에 지윤준이 자리를 만들었어. 나랑 같이 가.”

해인은 이 자리에서 모든 걸 터뜨릴 생각은 없었다.

아직 회사 매각 문제도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목소리는 담담했다.

“난 가기 싫어.”

태겸은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우리가 결혼식은 못 했지만, 반지는 있어야지. 이번에 일부러 해외에서 너 주려고 산 거야.”

해인은 잠시 그 상자를 내려다봤다.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전 세계에 단 하나뿐인 한정 제품.

‘공교롭게도 며칠 전에 예주가 끼고 있던 그 반지네.’

해인은 잠시 눈을 감았다.

감정을 가라앉히는 데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이내 손을 뻗어 반지를 받아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태겸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해인이 선물을 받았다는 건, 이번 다툼이 일단락됐다는 신호였다.

연애하던 시절부터 두 사람 사이에 암묵적으로 정해진 규칙이었다.

하지만 숨을 고를 새도 없이, 태겸의 표정이 굳어졌다.

해인이 반지를 가볍게 던지자, 반지는 곡선을 그리며 쓰레기통 안으로 떨어졌다.

경매 시작을 알리는 안내가 흘러나왔다.

해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해인이 멀어지자, 예주는 쓰레기통으로 다가가 반지를 꺼냈다.

“오빠... 이건 오빠가 정성 들여 산 거잖아요. 오빠 마음이 담긴 건데, 해인 언니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요...”

태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겸의 표정은 아주 좋지 않았다.

해인이 고씨 가문 본가를 다녀간 날, 고민건에게서 전화가 왔다.

‘강해인이 부모님까지 끌어들이고, 별것 아닌 일로 이혼 얘기까지 꺼내더라.’

‘사랑에 굶주린 고아 출신이잖아. 게다가 YD그룹도 결국 내 덕에 굴러가고 있는데.’

‘강해인이 나 없이 살 수 있겠어?’

그런 말들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태겸은 낮게 중얼거렸다.

“내가 너무 잘해줘서 저렇게 변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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