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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9화

Author: 오월이
차씨 저택을 나온 유호는 해인의 어깨를 가볍게 감쌌다.

해인이 멍하니 생각에 빠져 있는 걸 보고 물었다.

“무슨 생각해?”

희정은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받은 셈이었다. 마지막에 가족 누구도 유해를 찾으러 가지 않게 된 것 역시 스스로 불러온 결말이었다.

차장섭도 도수희도 희정이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줬다.

하지만 희정은 그 기회를 걷어차고 자신의 불륜을 숨기기 위해 친아버지까지 죽였다.

친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질 일이었다.

이제 희정이 죽었다고 해서 안타까워할 이유는 없었다.

모든 결과는 희정 자신의 선택에서 시작됐다.

해인은 정신을 가다듬고 조용히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유호는 해인이 마음이 여린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마음이 여린 사람은 죽음이나 이별을 마주하면 본능적으로 생각이 많아진다.

해인은 희정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것도, 지난 일을 아쉬워하는 것도 아니었다.

한 사람의 생이 끝났다는 사실 자체가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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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789화

    차씨 저택을 나온 유호는 해인의 어깨를 가볍게 감쌌다. 해인이 멍하니 생각에 빠져 있는 걸 보고 물었다. “무슨 생각해?”희정은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받은 셈이었다. 마지막에 가족 누구도 유해를 찾으러 가지 않게 된 것 역시 스스로 불러온 결말이었다.차장섭도 도수희도 희정이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줬다. 하지만 희정은 그 기회를 걷어차고 자신의 불륜을 숨기기 위해 친아버지까지 죽였다.친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질 일이었다.이제 희정이 죽었다고 해서 안타까워할 이유는 없었다. 모든 결과는 희정 자신의 선택에서 시작됐다.해인은 정신을 가다듬고 조용히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유호는 해인이 마음이 여린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마음이 여린 사람은 죽음이나 이별을 마주하면 본능적으로 생각이 많아진다. 해인은 희정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것도, 지난 일을 아쉬워하는 것도 아니었다. 한 사람의 생이 끝났다는 사실 자체가 남기는 씁쓸함이 있었을 뿐이다.둘은 차에 탔다. 유호가 해인의 손을 한 번 꼭 잡아 주었다.“차희정한테 아무도 안 찾아가서, 그렇게 끝나는 게 마음에 걸리면 내가 같이 가 줄게. 교도소에 한 번 다녀오자.”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얽힌 원망과 빚도 더 이어 갈 수는 없는 법이었다.그저 좋은 일 한 번 한다고 생각하면 됐다.해인은 고개를 저었다. “차희정 성격이면 우리가 챙겨 줘도 고마워하지 않을 거야. 오히려 쓸데없는 짓 한다고 생각하겠지. 게다가 이미 우리보다 먼저 움직인 사람이 있을 것 같아.”유호의 눈썹이 살짝 모였다.잠깐 생각하던 유호가 물었다. “천서진 말하는 거야? 천서진이 차희정 유해를 찾아간다고?”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둘은 진작 끝난 사이 아니야?”희정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안 뒤 서진은 그녀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듯 굴었다.사랑보다는 미움이 더 크게 남은 것처럼 보였다.해인이 낮게 말했다. “정말 마음이 끝났으면 아무 감정도 없어야 해.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788화

    가사도우미가 문을 열었다가 밖에 서 있는 공무원들을 보고 멈칫했다. “실례지만 어디에서 오셨습니까?”상대가 정중히 말했다. “갑자기 찾아와 죄송합니다. 여기가 차희정 씨 가족이 거주하는 곳이 맞습니까?”가사도우미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그럼 가족분이십니까?”가사도우미는 자기가 함부로 대답할 수 없어서 곧바로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사모님께 말씀드리고 오겠습니다.”가사도우미는 곧장 안으로 들어가 도수희에게 그대로 전했다. “밖에 공무원들이 찾아왔습니다. 희정 아가씨 일로 온 것 같습니다.”희정이 이 집에서 살던 시절부터 가사도우미는 늘 ‘희정 아가씨’라고 불렀고, 오랜 습관이라 지금도 그 호칭이 입에 붙어 있었다.하지만 희정은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돼 있었다. 관련 기관끼리 기록이 공유될 텐데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 왜 집까지 찾아온 걸까?도수희가 말했다. “들어오시라고 해.”가사도우미가 사람들을 안내하러 가자 해인은 무심코 유호를 바라봤다.유호가 물었다. “왜?”“괜히 찾아온 건 아닌 것 같아.”유호는 별다른 말 없이 상황을 지켜봤다.공무원은 자리에 앉자마자 용건부터 꺼냈다. “차희정 씨 가족분들이 맞으시죠? 수용자가 사망해서 유가족 확인과 인계 절차가 필요해서 방문했습니다.”도수희의 표정이 굳어졌다. “누가 죽었다고요?”“차희정 씨입니다.”너무 갑작스러운 소식이라 도수희는 바로 반응하지 못한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해인이 물었다. “사인은 뭔가요?”희정은 재판 도중 법정에서 흉기를 휘두른 사건까지 더해져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상태였다.처음에는 사형까지 거론됐지만, 피해자 건훈의 부모가 이례적으로 선처 탄원서를 제출했고 결국 무기징역이 확정됐다고 들었다.외아들을 잃은 진씨 집안이 선처를 요청했다는 것 자체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해인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예전에 차장섭의 비서와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다가 들었기 때문이었다.해인은 건훈의 부모가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787화

    해인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래도 한마디 더 해 보려는데 유호가 눈짓을 보냈다.해인은 도와주는 아주머니에게 먼저 퇴원 짐을 정리해 달라고 부탁한 뒤 병원 복도로 나왔다. “왜?”유호가 낮게 말했다. “장모님이 싫다고 하시면 그만하자. 네가 걱정되면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을 골라서 곁에 붙여 둘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우리한테 연락하게 하고. 억지로 우리 집에 모셔와도 장모님께서 편하지 않을 수 있어.”“그래도 엄마가... 너무 과거에만 붙잡혀 있을까 봐 걱정돼. 아빠와의 기억이 가득한 집에서 계속 지내면 더 못 빠져나올 것 같아.”유호가 되물었다. “꼭 빠져나와야 해? 그 기억 속에 있는 편이 장모님을 더 편하게 해 준다면, 굳이 나오지 않아도 되잖아.”해인은 조금 놀란 눈으로 유호를 봤다.유호가 설명했다. “누구나 자기가 어떤 삶을 살지 선택할 권리가 있어. 다른 사람의 마음은 그 사람이 아니면 다 알 수 없는 거고.” “우리가 겉으로만 보고 그 삶이 행복한지 아닌지 단정할 권리도 없어.”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었다. 세상이 말하는 행복의 기준이 모두에게 맞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결혼하고 누군가는 혼자 살며, 아이를 여럿 낳는 사람도 있고 아이 없이 둘이 사는 길을 택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 틀렸다고 말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었다.퇴원 수속을 마친 뒤 해인과 유호는 도수희를 차씨 저택으로 데려다주었다.오랫동안 병원에서 지낸 탓에 도수희가 집으로 돌아온 것도 꽤 오래간만이었다.집 안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차장섭이 좋아하던 목련도 활짝 피어 있었다. 익숙한 집인데 익숙한 사람이 보이지 않자, 도수희의 가슴 한쪽이 텅 빈 듯 쓰렸다.서재 책상 위에는 차장섭이 생전에 가장 아끼던 책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절반을 넘게 읽은 낡은 책 사이에는 책갈피가 얌전히 끼워져 있었고, 여백에는 차장섭이 남긴 메모와 짧은 감상이 적혀 있었다.도수희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정신이 잠깐 먼 곳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786화

    처음 유전자 검사를 꼭 하고 싶었던 시기가 지나자, 서정란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한원랑도 더는 검사를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죽은 아내에 대한 좋은 기억을 제 손으로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유호가 정말 자신의 아들인지 아닌지는 그렇게 한원랑 마음에 평생 풀리지 않는 응어리로 남았다.그래서 유호에게 손을 댈 때마다 한원랑은 자기 친아들을 때리는 게 아니라고 스스로 여겼다. 한원랑 마음속에서 맞고 있는 사람은 이선보의 아들이었다.사랑과 의심, 미움이 뒤엉킨 지독하게 모순된 감정이었다....초봄의 3월, 며칠째 이어지던 비가 그치고 모처럼 하늘이 맑게 개었다.오늘은 도수희가 퇴원하는 날이었다.몇 달 가까이 꾸준히 회복 치료를 받은 덕분에 몸 상태는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격한 운동이나 무거운 일을 할 수 없다는 점을 빼면 일상생활의 질은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애초에 이런 집안에서 도수희가 힘든 집안일을 직접 할 필요도 없었다.의사도 도수희의 나이에 큰 수술을 받고 이 정도까지 회복한 것은 상당히 좋은 경과라고 했다.해인은 유호와 상의한 끝에 도수희를 자신들 곁으로 모셔와서 돌보고 싶어 했다.지난 20여 년 동안 함께 살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도수희의 사정을 알게 되고 오랜 오해까지 풀고 나니, 친딸인 해인은 어머니가 몹시 안쓰러웠다.도수희도 해인과 마찬가지로 이제 가까운 가족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그래서 해인은 도수희가 자신의 곁에서 편안히 여생을 보내길 바랐다.유호도 반대하지 않았다. 도수희가 생활하기 편하도록 일찌감치 1층의 햇볕 잘 드는 방을 비워 두게 했다.하지만 해인과 유호가 아침 일찍 병원으로 퇴원 수속을 도우러 온 날, 도수희는 두 사람의 제안을 거절했다.“해인아, 너랑 한 서방은 둘이 잘 살아. 결혼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젊은 부부한테는 둘만의 공간이 필요해. 내가 들어가 살면 괜히 불편하게 만들잖아.”해인이 미간을 좁혔다. “그게 왜 불편해요? 엄마는 제 어머니고, 제가 모시는 게 당연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785화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서정란을 보며 한원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정말 잃을 뻔했다는 공포를 처음으로 실감했다. 두 사람이 함께했던 행복한 기억이 연달아 떠올랐다.한원랑은 병상 곁에서 서정란의 손을 붙잡고 울었다.한원랑 같은 사람이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서정란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자신이 서정란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는지, 결코 잃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절실히 깨달았다.서정란이 의식을 되찾은 날, 두 사람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난 정말 유호가 어디 있는지 몰라. 숨긴 적도 없어. 대체 어떻게 해야 내 말을 믿어 줄 거야?”한원랑이 사람을 풀어 찾지 않는 상황에서, 서정란 혼자 아이를 찾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여기에 남편의 냉대까지 이어지자 서정란은 석 달 사이 심한 우울 증상을 겪었고, 결국 수면제를 먹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그럼 유호가 사라진 날 왜 이선보를 혼자 만났어? 둘이 무슨 얘기를 했는데? 나 몰래 무슨 짓이라도...”한원랑은 익명의 편지에 대해서도 모두 털어놓았다.편지 내용을 들은 서정란은 그제야 모든 조각이 맞아떨어지는 듯 눈을 크게 떴다.“이제 알았어. 그날 이선보가 갑자기 나타나서 중요한 얘기가 있다며 유호를 따로 보내라고 했거든. 처음부터 전부 이선보가 꾸민 일이었어.”한원랑이 미간을 좁혔다. “무슨 뜻이야?”“그날 이선보가 나한테 할 말이 있으니 단둘이 얘기하자고 했어. 마침 유호가 솜사탕을 먹고 싶다기에 돈을 주고 잠깐 사 오라고 했고.”“그런데 유호가 자리를 뜨자마자 목에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전혀 다른 동네였고 유호도 없었어. 내가 의식을 잃은 사이에 아이가 사라진 거야.”“그동안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계속 생각했어. 이제야 알겠어.” “목이 따끔했던 건 이선보가 나한테 약물을 주사했기 때문일 거야. 그래서 완전히 정신을 잃었던 거고.”“목적은 하나였어. 당신과 나를 갈라놓는 것.”서정란은 눈물 어린 눈으로 한원랑을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784화

    한원랑은 유호가 돌아오면 서정란과 먼저 이야기를 나누고, 그래도 의심이 풀리지 않으면 유전자 검사를 해 볼 생각이었다.확인만 하면 진실은 금방 드러날 일이었다. 그런데 서정란이 유호를 데리고 친정에 다녀오던 길에, 다섯 살이던 유호가 갑자기 사라졌다.너무 절묘한 시점이었다.‘하필 유전자 검사를 하려고 마음먹은 때에 유호가 사라졌다고?’한원랑은 서정란을 몰아세웠다. “혹시 그 익명의 편지 얘기 알고 있었어? 그래서 일부러 애를 숨긴 거야?”서정란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익명의 편지? 무슨 편지? 아들이 없어졌는데 지금 그런 얘기가 중요해? 당장 사람 풀어서 유호부터 찾아!”한원랑이 서정란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주변 사람이라면 다 알았다. 오랜 결혼 생활 동안 목소리를 높인 적조차 거의 없었고, 얼굴을 붉히며 다툰 일도 드물었다.하지만 그날 두 사람은 결혼 후 가장 격렬하게 싸웠고, 그 뒤 한 달이 넘도록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한원랑은 서정란이 연기를 하고 있다고 의심했다. 부부 사이의 신뢰가 전에 없던 시험대에 올랐다.“그만 연기해. 네가 유호가 어디 있는지 모를 리 없잖아.”“정말 몰라!”대화는 끝내 다툼으로 끝났다.한원랑이 유전자 검사를 생각한 이유는 마음의 의심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유호가 사라진 뒤 그 의심은 오히려 뿌리를 내렸고, 한때는 익명 편지의 내용을 사실처럼 믿으며 유호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여겼다.한씨 집안의 유일한 후계자가 사라졌는데도 한원랑은 사람을 풀어 찾지 않았다. 집에서 일하던 가사도우미들마저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정도였다.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그 무렵 서정란의 이동을 전담하던 운전기사가 한원랑에게 한 가지 사실을 전했고, 그 말을 들은 뒤 한원랑은 서정란을 더욱 냉대했다.운전기사의 말로는 서정란이 친정으로 가는 길에 이선보를 따로 만났다고 했다. 둘만 이야기를 나눠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는 기사도 알지 못했다.당시 기사는 식당 밖에서 오래 기다려도 서정란이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2화

    밖에서 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려왔다.해인은 더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잠시 뒤, 현관문이 열리며 태겸이 들어왔다.실내로 스며든 발소리는 조심스러웠고, 점점 가까워지다가 해인 등 뒤에서 멈췄다.이어 단단한 남자의 팔이 해인 뒤에서 감겨 왔다.해인의 허리가 갑자기 조여 들었다.“여보...”태겸의 입술이 머리칼 위로 내려앉았다.낮고 거친 숨이 섞인 남자의 목소리였다.“여보, 나 진짜 보고 싶었어.”밤공기를 머금은 태겸의 체온이 전해지자 해인의 몸이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다.해인은 그대로 굳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1화

    달빛이 서늘하게 식어 있었다.버려진 제약 공장 안, 강해인의 몸은 거칠게 꼬인 밧줄에 묶여 있었다.차갑고 단단한 콘크리트 벽에 기댄 채, 여자의 가느다란 손목은 높이 들어 올려진 채 벽에 고정돼 있었다.그리고 뒤에서 다가온 남자가 해인의 허리를 움켜쥐었다. 얇은 여자의 허리가 남자의 손아귀 안에서 움츠러들었고, 남자의 입가에는 음습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강해인 씨. 아무도 몸값을 들고 안 오면, 그땐 미안하지만 말이야.”해인의 뒤쪽에서 벨트를 푸는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리는 순간, 해인의 심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7화

    해인은 말문이 막혔다.오늘의 유호는 그날의 단정한 군복 차림과는 전혀 다른 인상이었다. 해인 앞에 있는 유호는 검은 셔츠의 단추를 풀어 헤친 상태였고, 언뜻 드러나는 가슴 근육의 선이 거친 생기를 더했다.해인이 앉은 자리에서는 그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음... 한유호... 몸은 정말 좋네...’유호가 고개를 살짝 돌리며 별생각 없는 듯 물었다.“손은 왜 다쳤어?”해인은 멈칫했다. 고개를 숙이고서야 언제 그랬는지 모를 새, 유리컵에 베인 손바닥에서 선혈이 번져 나온 것을 알아챘다.입술을 살짝 다문 해인은 손등을 위로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6화

    해인은 뒤로 밀리면서 중심을 잃었다.태겸은 뒤쪽에서 급히 끼어들었고, 그때의 반동으로 깨진 유리컵의 날이 해인의 손바닥을 파고들었다.손끝에서 전해지는 통증이 너무나 선명해서 해인은 미간을 찌푸렸다.예주 앞을 가로막고 선 태겸이 난처한 표정으로 해인을 바라봤다.“이게 뭐 하는 거야? 예주는 내가 부른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그 말을 듣자 해인은 쥐고 있던 컵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눈가가 젖은 채 태겸을 향해 말했다.“내가 난리야? 고태겸, 하예주가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한 번이라도 들어볼 생각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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