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제24화 우아한 포식자와 거친 야수의 대면(2)
악수를 나누는 찰나의 순간, 두 사람의 턱관절에 찰나의 힘이 들어가는 것을 서아는 놓치지 않았다.
"아내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젊고, 재능 있고, 무엇보다 통제하기 힘든 예술가라고."
도진이 먼저 선제공격을 날렸다.
그의 말투는 칭찬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철저하게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오만함이 깔려 있었다."아, 윤 큐레이터님이 제 칭찬을 그렇게 하셨습니까? 작업실에서는 매번 잔소리만 하시더니."
이안이 서아를 힐끗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그의 시선이 서아의 아찔한 드레스 자락을 한 번 훑고 지나가는 것을, 도진은 묵묵히 관찰하고 있었다."칭찬이라기보단, 걱정에 가까웠죠. 거친 야생마를 갤러리라는 규격화된 마구간에 집어넣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도진이 맞잡았던 손을 빼며 와인잔을 고쳐 쥐었다.
제24화 우아한 포식자와 거친 야수의 대면(2)악수를 나누는 찰나의 순간, 두 사람의 턱관절에 찰나의 힘이 들어가는 것을 서아는 놓치지 않았다."아내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젊고, 재능 있고, 무엇보다 통제하기 힘든 예술가라고."도진이 먼저 선제공격을 날렸다.그의 말투는 칭찬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철저하게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오만함이 깔려 있었다."아, 윤 큐레이터님이 제 칭찬을 그렇게 하셨습니까? 작업실에서는 매번 잔소리만 하시더니."이안이 서아를 힐끗 바라보며 씩 웃었다.그의 시선이 서아의 아찔한 드레스 자락을 한 번 훑고 지나가는 것을, 도진은 묵묵히 관찰하고 있었다."칭찬이라기보단, 걱정에 가까웠죠. 거친 야생마를 갤러리라는 규격화된 마구간에 집어넣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도진이 맞잡았던 손을 빼며 와인잔을 고쳐 쥐었다."그래도 다행입니다. 오늘 전시를 보니, 아내의 고생이 헛되진 않은 것 같아서요.""어떤 면에서 말입니까?""권 작가님의 그 다듬어지지 않은 폭력성이, 결국은 제 아내의 기획과 통제 아래 완벽하게 제어되어 벽에 걸렸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이걸 '길들여졌다'고 표현하죠."도진의 도발.그것은 단순히 예술에 대한 평가가 아니었다.'내 아내가 너를 이용하고 통제하고 있다'는, 남편으로서의 노골적인 영역 표시였다.순간 이안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길들여졌다라……."이안은 샴페인 잔을 한 모금 마시며 도진을 향해 한 발짝 다가섰다."작가님은 글을 쓰시는 분이라 세상 모든 걸 활자 안에 가둘 수 있다고 믿으시나 봅니다.""…….""하지만 그림은 다릅니다. 특히나 살아 숨 쉬는 피
제23화 우아한 포식자와 거친 야수의 대면(1)갤러리 아르테의 메인 홀은 눈이 시릴 만큼 밝은 조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클래식 현악 4중주의 연주가 부드럽게 홀을 채우고 있었지만, 윤서아의 귀에는 그 어떤 우아한 선율도 들리지 않았다."수석님, VIP 명단 확인 부탁드립니다. K일보 문화부 기자님도 방금 도착하셨어요.""네. 안내해 드려요. 샴페인 잔 비지 않게 케이터링 팀에 전달해 주시고요."서아는 기계적으로 지시를 내리며 입가에 완벽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블랙 실크 드레스. 목선을 우아하게 드러내는 올림머리. 그리고 남편 도진이 작년 결혼기념일에 선물했던 다이아몬드 목걸이까지.오늘의 윤서아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갤러리 아르테의 수석 큐레이터였다.하지만 드레스 자락 아래, 하이힐을 신은 그녀의 발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샴페인 잔을 쥔 손가락은 너무 힘을 준 나머지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숨이 막혀…….'서아는 애써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전시회 오프닝 파티.수십 번도 더 치러본 행사였지만, 오늘만큼은 도살장에 끌려온 것 같은 끔찍한 압박감이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그녀의 시선이 홀 중앙의 벽면을 향했다.그곳에는 이안의 100호짜리 신작이 걸려 있었다.추상과 구상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폭력적일 만큼 강렬한 붉은색과 검은색의 붓 터치.그림 속에는 형체를 명확히 알 수 없는 여자의 실루엣이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었다.일반 관람객들의 눈에는 그저 역동적인 추상화로 보이겠지만, 서아는 알 수 있었다.저 붉은 물감의 궤적이 자신의 쇄골을 어떻게 타고 내렸는지.저 검고 거친 선들이 자신의 헝클어진 머리칼과 벌어진 허벅지를 얼마나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있는지
제22화 낯선 향기, 그리고 관찰자의 시선(2)그리고 거울을 노려보며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듯 중얼거렸다."아무 일도 없었어. 그냥 모델 서준 것뿐이야. 그림을 위해서. 큐레이터로서의 비즈니스라고. 도진 씨도 이해할 거야…… 아니, 알 필요조차 없는 일이야."필사적인 자기합리화.서아는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샤워기 아래로 들어갔다.같은 시각.주방에서 전기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있던 도진의 표정은, 방금 전 서아를 향해 짓던 다정한 미소와는 전혀 달랐다.그의 얼굴에는 묘한 활기와 기분 나쁜 흥분감이 서려 있었다.도진은 찬장에서 최고급 다즐링 티백을 꺼내며 낮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거짓말이 제법 늘었네. 우리 완벽한 아내께서.'도진은 서아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녀의 모든 미세한 변화를 감지했다.새로 산 원피스의 구김 없는 질감.평소보다 짙게 바른 립스틱.그리고 무엇보다, 그 코를 찌르는 역겨운 향수 냄새.그 향수는 서아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녀는 늘 과하지 않은 은은함을 추구하는 여자였다.그런 여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면서까지 그토록 자극적인 향을 뒤집어쓰고 왔다는 건, 그보다 더 끔찍하게 감추고 싶은 악취가 있다는 뜻이었다.테레빈유. 싸구려 유화 물감. 지포 라이터의 기름 냄새.그리고 젊고 거친 수컷의 체취.어젯밤 서아의 코트에서 났던 그 냄새가, 오늘은 훨씬 더 짙고 농밀하게 그녀의 피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배어 나오고 있었다.'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온 걸까.'주전자에서 물이 끓어오르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도진은 뜨거운 물을 찻잔에 부으며 생각에 잠겼다.상식적인 남편이라면 당연히 분노해야 마땅했다.자신의 완
제21화 낯선 향기, 그리고 관찰자의 시선(1)엘리베이터가 상승하는 내내, 서아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뚫어지게 살폈다.흐트러진 곳은 없는가.표정에 불안감이 묻어나지는 않는가.그녀는 핸드백에서 새로 산 샤넬 향수병을 꺼냈다. 오늘 퇴근길에 백화점에 들러 충동적으로 결제한, 아주 무겁고 관능적인 일랑일랑과 머스크 베이스의 향수였다.칙, 칙.귀 뒤쪽과 손목 안쪽에 향수를 한 번 더 뿌렸다.평소라면 머리가 아프다며 절대 쓰지 않았을 독한 향이었지만, 지금 서아에게는 이 숨 막히는 향기가 절실했다.'이 정도면…… 가려지겠지.'오후 내내 해방촌의 그 낡은 옥탑방에서 이안의 시선 아래 발가벗겨졌던 시간.그의 작업실에 배어 있던 테레빈유의 매캐한 냄새와, 그의 몸에서 나던 짙은 담배 냄새가 아직도 자신의 피부 밑에 들러붙어 있는 것만 같았다.옷은 갈아입었다.아침에 입고 나갔던 네이비색 수트와 블라우스는 갤러리 근처 세탁소에 쑤셔 넣듯 맡겨버렸다. 지금 입고 있는 베이지색 트렌치코트와 원피스는 백화점에서 향수를 사며 급하게 맞춰 입은 새 옷이었다.완벽하다.이성적으로 따져봤을 때, 남편 도진이 자신의 일탈을 의심할 만한 물리적 단서는 단 하나도 없었다.띠- 띠- 띠- 띠.철컥.익숙한 도어락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도진 씨. 나 왔어요."서아는 현관에 들어서며 평소처럼 차분하고 다정한 목소리를 꾸며냈다."……어, 왔어?"거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도진이 책을 덮으며 일어났다.늘 그렇듯 단정하게 다려진 면바지에 얇은 니트 차림. 흐트러짐 없는 완벽한 남편의 모습이었다."오늘 좀 늦었네. 갤러리에
제20화 시선이라는 이름의 해체(2)서아는 엉덩이를 떼고 당장이라도 문을 향해 달려가고 싶었다. 이 불결하고 숨 막히는 공간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서늘한 남편의 품으로 돌아가야 맞았다.하지만.스툴에 닿은 그녀의 몸은 마치 납덩이라도 매단 것처럼 무거웠다.이안의 시선.도망칠 테면 쳐보라는 저 오만하고 확신에 찬 눈빛.그 눈빛이 서아의 오기를, 아니, 그녀의 가장 깊은 곳에 억눌려 있던 기묘한 피학성을 자극하고 있었다."……빨리 끝내."침묵 끝에 서아의 입에서 새어 나온 목소리는 형편없이 갈라져 있었다."나 시간 많지 않아."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항복 선언.서아는 입술을 짓이기며 핸드백을 무릎 위에 꽉 끌어안았다.이안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말려 올라갔다.그는 만족스러운 포식자의 미소를 지으며 이젤 앞에 자리를 잡았다."자세가 너무 굳었어. 어깨에 힘 빼."이안의 지시가 떨어졌다."됐어. 그냥 그려.""내가 그리는 건 정물화가 아니라 인물화야. 그따위로 경직되어 있으면 죽은 사람을 그리는 거랑 다를 게 없잖아."이안이 스케치북을 내려놓고 성큼 다가왔다.그의 커다란 손이 서아의 어깨 위로 툭, 얹혀졌다.서아는 숨을 들이켰다."힘 빼."이안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그의 거친 굳은살이 얇은 실크 블라우스 너머로 서아의 쇄골을 지그시 눌렀다.단순히 자세를 교정하기 위한 터치였지만, 서아에게는 그 손길이 벌겋게 달아오른 쇠인두가 살갗에 닿는 것처럼 뜨겁게 느껴졌다.그녀의 어깨가 저항하듯 뻣뻣해졌지만, 이안은 개의치 않고 그녀의 승모근부터 목덜미까지 느릿하게 쓸어내렸다."하아…&hell
제19화 시선이라는 이름의 해체(1)해방촌의 좁고 가파른 골목길.도무지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오르막길을 오르며, 서아는 거칠어지는 숨을 몰아쉬었다."하아, 하아……."또각, 또각.아스팔트 바닥에 부딪히는 지미추 힐의 마찰음이 유난히 신경질적으로 울려 퍼졌다.자신의 매끈한 검은색 벤츠는 골목 초입에 간신히 구겨 넣듯 주차해 둔 상태였다. 평소라면 흠집이라도 날까 봐 절대 세워두지 않았을 비좁은 자리였지만, 지금 서아의 머릿속에는 그런 이성적인 판단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미쳤어. 내가 여길 왜…….'서아는 속으로 수십 번, 수백 번 같은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발걸음을 저주했다.당장이라도 뒤돌아 도망치고 싶었다.하지만 그녀의 발은 마치 보이지 않는 실에 조종당하는 인형처럼, 이안이 알려준 낡은 적벽돌 빌라를 향해 맹목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다음번엔 핑계 대지 말고, 그냥 작업실로 와.''그때는 진짜로 벗겨줄 테니까.'오전 내내, 아니 갤러리를 빠져나와 이곳으로 향하는 내내 이안의 그 오만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서아는 그 말도 안 되는 도발에 정면으로 맞서기 위해 온 것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했다.수석 큐레이터로서, 전시를 코앞에 둔 작가의 작업 진행 상황을 불시 점검하러 온 것뿐이다. 그 건방진 입에서 다시는 그런 천박한 소리가 나오지 못하도록, 자신의 지위와 권력으로 그를 완벽하게 짓눌러버리겠다고 다짐했다.하지만.빌라의 옥탑방으로 이어지는 철제 계단 앞에 섰을 때, 서아의 심장은 터질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녹슨 철계단을 밟고 올라서는 매 순간, 그녀가 겹겹이 껴입은 사회적 체면과 방어기제가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끼익
제7화 불협화음의 침입자(1)오후 2시 30분.서아는 책상 위에 놓인 탁상시계를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시곗바늘이 초 단위로 움직이는 소리가 유독 거슬렸다.약속 시간은 오후 2시 정각이었다.서아의 사전에서 '지각'이란 허용되지 않는 단어였다. 갤러리 아르테의 수석 큐레이터인 그녀와의 미팅을 위해 내로라하는 작가들도 30분 전부터 로비에서 대기하는 것이 당연한 관례였다.그런데 이름 없는 무명 작가, 이안이라는 남자는 무려 30분이나 약속 시간을
제3화 마침표가 없는 방(1)계단을 오르는 도진의 발소리는 대리석 바닥에 규칙적으로 부딪히며 서재 앞으로 향했다.문을 열자, 차갑게 식은 공기가 그를 맞이했다. 서재는 그의 성소이자, 거대한 감옥이었다.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고전부터 현대 소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선명하게 박힌 장편 소설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넓고 묵직한 마호가니 책상 앞에 앉았다. 의자에 몸을 기대자 기분 좋은 가죽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도진은 심호흡을 크게 한 번 내쉬고는, 전원 버튼을 눌렀다.부잉-, 하는 기계음과
"저는 그때의 거친 문장들도 참 좋아했는걸요.""지금의 내 문장이 더 완성도가 높다는 게 평단의 일관된 의견입니다. 서아 씨도 알다시피.""물론이죠. 지금의 당신은 완벽해요. 의심할 여지 없이."서아는 부드럽게 맞받아쳤다. 대화의 흐름이 조금이라도 위험한 곡선을 그리려 하면,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알아서 수위를 조절하고 안전한 평지로 돌아왔다. 그것이 이 결혼 생활을 5년 동안 파탄 없이 유지해 온 비결이었다.서아는 포크를 내려놓고 시계를 보았다. 7시 30분. 식사 시작 후 정확히 30분이 지난 시간이었다."오늘
제1화 완벽한 식탁의 조건(1)오전 6시 50분.정확히 조율된 스위스제 벽시계의 초침이 서늘한 거실의 공기를 갈랐다.서아는 눈을 떴다. 암막 커튼 사이로 스며든 미세한 아침 햇살이 정돈된 침대 위에 일정한 선을 그리고 있었다. 옆자리는 이미 비어 있었다. 시트에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김도진은 언제나 자신보다 20분 먼저 일어났고, 그가 머물던 자리는 마치 아무도 눕지 않았던 것처럼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서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크 가운의 끈을 단정하게 묶고 욕실로 향했다. 거울 속의 얼굴은 흐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