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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불협화음의 침입자(1)

Author: 유리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23 11:00:44

제7화 불협화음의 침입자(1)

오후 2시 30분.

서아는 책상 위에 놓인 탁상시계를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시곗바늘이 초 단위로 움직이는 소리가 유독 거슬렸다.

약속 시간은 오후 2시 정각이었다.

서아의 사전에서 '지각'이란 허용되지 않는 단어였다. 갤러리 아르테의 수석 큐레이터인 그녀와의 미팅을 위해 내로라하는 작가들도 30분 전부터 로비에서 대기하는 것이 당연한 관례였다.

그런데 이름 없는 무명 작가, 이안이라는 남자는 무려 30분이나 약속 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수석님……."

문가에 서 있던 윤지수가 안절부절못하며 입을 열었다.

"아직도 연락이 안 되나요?"

"네. 포트폴리오 봉투에 적혀 있던 번호로 계속 전화를 걸고 있는데,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안내음만 나옵니다. 아무래도 오늘 안 올 것 같은데…… 다음 일정으로 넘어가실까요?"

서아는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며 미간을 좁혔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장 약속을 취소하고 그 보잘것없는 크라프트지 봉투를 파쇄기에 넣어버리는 것이 맞았다. 그것이 서아가 평생을 지켜온 규칙이었다.

하지만.

서아의 시선이 책상 한쪽에 놓인 이안의 포트폴리오로 향했다.

그 기괴하고 폭력적인 붉은 색채. 어제 처음 그 그림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등골을 타고 오르던 서늘한 전율이 아직도 생생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죠."

"네? 하지만 30분이나 지났……."

"기다려요."

서아의 단호한 목소리에 윤지수는 입을 다물었다.

그때였다.

쾅-!

노크도 없이 수석 큐레이터실의 육중한 유리문이 거칠게 열렸다.

"앗!"

문 앞에 서 있던 윤지수가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서아는 들고 있던 만년필을 내려놓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역광을 받으며 문가에 서 있는 남자.

"여기가 아르테 갤러리 맞나? 하도 미로 같아서 길을 좀 헤맸는데."

낮고, 긁히는 듯한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

남자는 삐딱하게 서서 사무실 내부를 훑어보고 있었다.

서아의 눈동자가 남자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빠르게 스캔했다.

정돈되지 않아 눈을 반쯤 가린 흑발. 피로감이 짙게 묻어나는 나른한 눈매.

계절감이 맞지 않는 낡은 가죽 재킷 아래로는 물감이 덕지덕지 묻은 늘어난 티셔츠가 보였다. 바닥을 딛고 있는 워커는 언제 닦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흙먼지와 페인트 자국으로 엉망이었다.

완벽하게 통제된 무균실 같은 서아의 사무실에, 절대 들어와서는 안 될 오물이 쏟아진 것 같은 강렬한 이질감.

서아는 본능적으로 불쾌감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안 작가님입니까?"

남자는 서아의 부름에 그제야 시선을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단정한 포니테일, 티끌 하나 없는 흰색 실크 블라우스와 H라인 스커트. 서아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남자의 시선에는 한 치의 주눅 듦도 없었다. 오히려 노골적이고 불손했다.

"그쪽이 나 불렀어?"

존대도, 반말도 아닌 애매한 어투.

옆에 있던 윤지수가 경악한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저기요, 작가님. 아무리 그래도 수석님한테 말씀이 너무……."

"지수 씨. 나가 있어요."

"네? 하지만……."

"나가보라니까."

서아의 차가운 명령에 윤지수는 남자를 흘겨보며 황급히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유리문이 닫히고, 사무실 안에는 서아와 이안 단둘만 남게 되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디퓨저의 무화과 향 사이로, 낯선 냄새가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싸구려 연초 냄새, 독한 테레빈유(기름) 냄새, 그리고 묘하게 사람의 신경을 자극하는 수컷의 체취.

서아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얕게 들이마시며 남자를 가리켰다.

"앉으시죠. 30분이나 늦으셨으니 긴 인사는 생략하겠습니다."

이안은 대답 없이 성큼성큼 걸어와 서아의 책상 앞 소파에 몸을 던지듯 앉았다.

손님이 앉으라고 마련해 둔 고급 가죽 소파였다. 이안은 긴 다리를 꼬아 올리며, 흙 묻은 워커의 끝을 뻔뻔하게 테이블 쪽으로 향했다.

"차는 뭘로 준비해 드릴까요."

서아는 끓어오르는 불쾌감을 억누르며 사무적으로 물었다.

"됐어. 냄새만 맡아도 머리 아프니까."

"……뭐라고요?"

"이 방 말이야. 무슨 병원 무균실 같네. 냄새도 그렇고, 인테리어도 그렇고."

이안은 주머니에서 찌그러진 담뱃갑을 꺼내며 툭 내뱉었다.

"숨 안 막혀? 이런 데서 어떻게 매일 그림을 봐."

서아의 입매가 서늘하게 굳었다.

이곳은 대한민국 최고의 갤러리, 그중에서도 가장 권위 있는 수석 큐레이터의 방이었다. 예술계에 발을 들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와 보고 싶어 하는 성소.

그런데 이 무례한 남자는 그 공간을 병원 무균실이라며 조롱하고 있었다.

"이안 작가님."

서아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이곳은 작가님의 개인 작업실이 아닙니다. 담배는 집어넣으시죠. 갤러리 전체가 금연 구역이니까."

이안은 담배를 입에 물려다 말고 픽 웃었다.

"규칙 참 많네."

그는 담배를 도로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소파 등받이에 기대어 서아를 빤히 응시했다.

그 시선이 너무도 날카롭고 직설적이어서, 서아는 마치 옷이 벗겨지는 듯한 묘한 불쾌감을 느꼈다.

"그래, 나 왜 불렀는데."

이안이 턱을 까딱이며 물었다.

서아는 책상 위에 있던 크라프트지 봉투를 집어 들어 이안의 앞으로 밀어주었다.

"이 포트폴리오. 본인이 직접 보낸 거 맞습니까?"

이안의 시선이 구겨진 봉투에 머물렀다. 그의 표정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는 것을 서아는 놓치지 않았다.

"아…… 그거."

이안이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렸다.

"친구가 미친 짓을 했네.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던 걸 기어코 주워서 보냈나 보군."

"친구가 보낸 거든, 본인이 보낸 거든 상관없습니다. 어쨌든 우리 아르테 갤러리의 1차 심사를 통과했으니까요."

"통과?"

이안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기뻐하거나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명백한 '불쾌함'이었다.

"누구 맘대로."

"아르테 갤러리의 공모전입니다. 수천 명의 작가들이 목숨을 걸고 지원하는 곳이죠. 작가님의 그림은 투박하고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확실히 시선을 끄는 에너지가 있었습니다."

서아는 완벽한 비즈니스용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상대를 통제하고 압도하기 위해 수없이 연습했던, 우아하고 서늘한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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