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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마침표가 없는 방(1)

Author: 유리구슬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6-22 12:36:16

제3화 마침표가 없는 방(1)

계단을 오르는 도진의 발소리는 대리석 바닥에 규칙적으로 부딪히며 서재 앞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차갑게 식은 공기가 그를 맞이했다. 서재는 그의 성소이자, 거대한 감옥이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고전부터 현대 소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선명하게 박힌 장편 소설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넓고 묵직한 마호가니 책상 앞에 앉았다. 의자에 몸을 기대자 기분 좋은 가죽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도진은 심호흡을 크게 한 번 내쉬고는, 전원 버튼을 눌렀다.

부잉-, 하는 기계음과 함께 하얀 모니터가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며 깨어났다.

화면 중앙에는 마침표 하나 없는 빈 문서가, 마치 조롱하듯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키보드 위에 양손을 가볍게 올렸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자, 시작해보자.'

도진은 눈을 감고, 소설 속 첫 장면을 그려보려 애썼다.

하지만 머릿속은 마치 거대한 안개 속에 갇힌 것처럼 뿌옇기만 했다. 어떤 이미지도, 어떤 단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타닥, 타다닥, 타닥.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며...]

그는 이내 'Back Space' 키를 연타했다.

투투투투툭.

비? 너무 진부해. 창밖을 바라보며? 소설의 시작치고는 너무 나약해.

도진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다.]

그는 또다시 'Back Space' 키를 눌렀다.

투투투투툭.

견딜 수 없었다? 무엇을? 전화를 걸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가슴 한구석에서 묵직한 덩어리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3년이다. 3년 동안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한 거지?'

도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대한민국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 중 한 명이었다. 첫 소설부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평단과 대중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세 번째 소설이 출간된 이후, 그의 글은 멈춰버렸다.

처음에는 그냥 잠시 쉬어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빈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고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책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이름이 박힌 소설들이 빛바랜 종이 위에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책장 앞으로 걸어갔다.

가장 처음에 출간했던 소설을 집어 들었다.

표지는 빛바래 있었지만, 자신의 이름은 여전히 선명했다.

그는 소설의 첫 장을 넘겼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날은...]

그는 책을 거칠게 덮고 다시 책장에 꽂아 넣었다.

과거의 영광은 지금의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부담감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빌어먹을."

도진은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는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와 앉았다.

모니터는 여전히 켜져 있었다. 빈 문서는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키보드 위에 다시 손을 올렸다.

'이번에는 진짜다. 무조건 써야 해.'

그는 눈을 질끈 감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닥치는 대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타다닥, 타다닥, 타닥, 타다닥.

[어둠 속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짐승의 소리도, 인간의 소리도 아니었다. 그녀는 공포에 질려 어쩔 줄 몰랐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그는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손가락이 아려왔지만, 멈출 수 없었다.

타다닥, 타다닥, 타닥.

어느새 화면의 절반이 글자들로 가득 찼다.

도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그래, 이 정도면 괜찮아. 나쁘지 않아.'

그는 자신이 쓴 글을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어둠 속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짐승의 소리도, 인간의 소리도 아니었다. 그녀는 공포에 질려 어쩔 줄 몰랐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그는 이내 또다시 'Back Space' 키를 연타했다.

투투투투툭, 투투투투툭.

이게 무슨 글이야? 이딴 건 초등학생도 쓸 수 있겠어.

도진은 키보드를 거칠게 밀어버렸다.

모니터 화면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았다.

절망감이 그의 온몸을 갉아먹는 것 같았다.

'나는 소설가가 아니야. 나는 사기꾼이야.'

도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자신을 믿어주는 편집장과, 자신의 소설을 기다리는 독자들을 생각했다.

그들을 실망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텅 비어버렸고, 그의 영감은 메말라버렸다.

그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담배 한 갑과 라이터가 들어 있었다.

그는 담배를 한 대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켜자, 작은 불꽃이 어둠 속에서 피어올랐다.

그는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알싸한 니코틴이 그의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는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연기가 모니터 화면 위로 퍼져나가며 빈 문서를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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