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136화

Author: 신선우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7 13:30:29

회장님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묵직한 현관문이 열리는 순간 그가 들어서는 기운만으로도 공간이 달라졌다. 대리석 바닥 위로 울려 퍼지는 구두 굽 소리가 집 안 구석구석 스며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 소리가 텅 비어 있었다. 복도 끝까지 울려 퍼지다가 아무것도 없는 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예전에는 이 집이 이렇게 넓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집안일을 도맡아 관리하던 최 비서가 황급히 현관으로 나와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회장님은 손을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괜찮네. 별일 없었나?"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회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넓은 거실 한가운데 멈춰 서서 잠시 집 안을 둘러봤다. 가구 배치도 그대로였고, 벽에 걸린 그림도 그대로였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상하게 낯설어 했다.

그가 병원에서 보내는 동안 수아가 있었고 혁수도 있었다. 누군가 곁에 없다는 것이 그렇게 큰 차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태양을 닮은 달   136화

    회장님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묵직한 현관문이 열리는 순간 그가 들어서는 기운만으로도 공간이 달라졌다. 대리석 바닥 위로 울려 퍼지는 구두 굽 소리가 집 안 구석구석 스며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 소리가 텅 비어 있었다. 복도 끝까지 울려 퍼지다가 아무것도 없는 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예전에는 이 집이 이렇게 넓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집안일을 도맡아 관리하던 최 비서가 황급히 현관으로 나와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회장님은 손을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괜찮네. 별일 없었나?"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회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넓은 거실 한가운데 멈춰 서서 잠시 집 안을 둘러봤다. 가구 배치도 그대로였고, 벽에 걸린 그림도 그대로였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상하게 낯설어 했다. 그가 병원에서 보내는 동안 수아가 있었고 혁수도 있었다. 누군가 곁에 없다는 것이 그렇게 큰 차이인 줄 몰랐던 것이다. 그는 비서실장을 불러 말했다. "외국인 전문 마사지 인력 하나 채용하게." "네, 알겠습니다." 그의 시선이 잠시 더 깊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짧지만 명확한 지시였다. 그 일 이후 회장님은 여성에 대해 더 조심스러졌다. 며칠 후 최 비서가 서류를 가져왔다. 여러 후보자들의 이력서를 천천히 넘기던 회장님의 손이 한 장 앞에서 멈췄다. '난티아.' 방콕의 고급 호텔 스파 근무 경력. 간호사 출신. 한국어 능통. 하지만 회장님의 눈길을 멈춘 건 그것들이 아니었다. 사진 속 난티아는 온화한 미소를 지닌 여성이었다. 그 미소 속에 어딘가 고향을 떠나온 사람 특유의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 그 쓸쓸함이 이상하게 눈에 걸렸다. "이 사람을 불러오게." --- 공항에 그녀가 도착했다. 작은 체구에 긴 머리를 단정히 묶은 그녀는 커다란 여행 가방을 끌며 입국장을 나왔다. 긴 비행에 피곤함이 묻어났지만, 낯선 땅에서의 긴장감 속에서

  • 태양을 닮은 달   135화

    드디어 퇴원 날. 담당 의사가 차트를 덮으며 말했다. "회장님, 이제 퇴원하셔도 되겠습니다. 한국에 돌아가셔서도 당분간은 충분히 휴식을 취하셔야 합니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한 달을 누워 계셨던 병실을 천천히 둘러보시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 몸짓이 예전보다 조금 느렸다. 병원 앞에는 법인장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퇴원 수속을 마치고 회장님을 차량으로 안내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회장님, 다름이 아니라······." "말해보게." "김 실장 수혈 이야기가 언론에 알려지면서 이상한 기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는 태블릿을 내밀었다. '재벌가의 비밀. 태양그룹 회장 숨겨둔 아들 존재 의혹. 같은 희귀 혈액형의 기적.' 회장님은 그 화면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으셨다. "하하. 이제야 아들이 한 명 생겼구만." 수아도 웃으며 말했다. "우리 남매가 된거야?"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재벌가 이야기라면 사람들은 뭐든 흥미롭게 포장하잖아." 그녀가 말했다. "난 오빠가 내 옆에만 있으면 뭐라고해도 좋아." 나는 그 말을 가슴으로 받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차 창밖으로 공항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 오랜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자동문이 열리는 순간 고요를 깨는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출구 너머에는 이미 수십 명의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빽빽이 늘어선 카메라 삼각대와 눈부신 조명, 그리고 쉼 없이 흔들리는 마이크가 얽혀 하나의 벽처럼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회장님이 말했다. "내가 제일먼저 나가지." 출구를 밟는 순간 카메라 플래시가 폭죽처럼 연이어 터졌다. 기자들은 철책을 뚫고 달려드는 군중처럼 밀려들었다. "회장님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이쪽 좀 봐주세요!" 회장님은 한 치 흐트러짐 없는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셨다. 그 발걸음은 느긋했지만 주변의 공기를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마침내 준비된 위치에 서자 모든 카메라가 일제히 회장님께 초점을 맞

  • 태양을 닮은 달   134화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차갑고 서늘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수술실은 예상보다 컸다. 중앙에 놓인 수술대 위에 회장님이 누워 계셨다. 의료진들이 그 주위를 빽빽하게 둘러싸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기계음과 지시 소리들이 공간을 채웠다. 나는 회장님을 바라봤다. 처음엔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저렇게 누워 계신 모습이 낯설었다. 언제나 단단하고 권위로 가득했던 그 사람이 지금 생명을 의료진에게 온전히 맡긴 채 누워 계셨다. 산소 호흡기가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여러 줄의 관이 그의 몸에 연결되어 있었다. 가슴이 아팠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두려움인지 미안함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가슴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나는 회장님 옆에 놓인 보조 침대에 누웠다. 간호사가 내 팔에 굵은 바늘을 꽂으며 말했다. "통증이 있으실 수 있습니다. 참아주세요." "괜찮습니다." 큰 바늘이 들어오는 순간 뻐근한 통증이 팔을 타고 올라왔다. 하지만 그것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붉은 피가 관을 타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관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눈으로 따라갔다. 회장님의 몸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내 피가 지금 저 사람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같은 피.' 그 단어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관을 타고 흘러나가는 피의 감각이 팔 안쪽에서 느껴졌다.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했다. 내 온기가 저 사람에게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실감됐다. 한참이 지나서야 간호사가 다가와 말했다. "충분히 채혈됐습니다." 의료진 중 한 명이 말했다. "활력징후 안정되고 있습니다." 그 한마디에 수술실 안의 긴장이 조금 느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다시 회장님을 바라봤다. 창백했던 얼굴에 아주 미세하게 혈색이 돌아오고 있는 것 같았다. 착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조금 가벼워졌다. 내 피가 그를 살리고 있었다. 간호사가 내 팔에서 바늘을 빼며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고

  • 태양을 닮은 달   133화

    그곳은 이미 붉은 경광등과 사이렌 소리로 뒤덮여 있었다.어둠을 뚫고 번쩍이는 불빛이 사람들의 불안한 얼굴을 차례로 스쳐 갔다. 나는 깨진 차창 사이로 흘러드는 빗물을 맞으며 회장님을 바라봤다.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빗물과 뒤섞여 시트 위로 번지고 있었다.구급대원이 내 어깨를 잡아당겼다."괜찮으십니까? 움직일 수 있으세요?"나는 그 손을 붙잡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둔하게 쑤셨지만 그것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회장님부터요."구급대원들이 회장님을 들것에 옮기는 동안 수아가 조수석에서 빠져나왔다. 이마에 작은 상처가 나 있었고, 손이 떨리고 있었다."아빠!"그녀가 달려가려는 순간 구급대원이 막아섰다."응급환자분 치료가 우선입니다. 비켜주세요.""아빠······ 제발······."수아의 목소리가 빗속으로 번지며 사라졌다."환자 의식 없음! 맥박 약합니다!"구급대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순간 내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강인하고 흔들림 없던 그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들것 위에 누운 회장님은 산소 마스크를 낀 채 미동도 없었다.나는 수아의 팔을 잡았다."같이 가자."앰뷸런스 문이 닫히고 사이렌이 다시 울려 퍼졌다. 차 안은 긴박한 지시와 기계음으로 가득했고, 구급대원들의 손길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수아는 내 옆에 앉아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회장님을 바라봤다. 그 손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손을 잡았다.수아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하지만 잡은 손에 힘이 들어왔다.---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대기하던 의료진이 들것을 끌어내렸다."수술실로 바로 이송하세요!"들것이 복도를 따라 빠르게 밀려 들어갔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바퀴 굴러가는 소리와 발걸음이 메아리처럼 이어졌다. 잠시 후 수술실 문이 활짝 열리고 회장님의 몸이 그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붉은색으로 빛나는 수술 중이라는 불빛이 켜졌다.문이 닫히는 순간 수아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는 그녀를 복도 의자에 앉히고 옆에 앉

  • 태양을 닮은 달   132화

    뜻밖의 질문에 손이 멈췄다. 조심스레 숨을 고른 뒤 대답했다."없었습니다, 회장님.""나는 사람을 배경으로만 판단하고 싶진 않네. 그래서 지금껏 자네 가족 이야기를 묻지 않았지. 그런데 오늘 문득 궁금해졌어."그 시선 속에서 가벼운 호기심이 아닌 진심 어린 무게가 느껴졌다. 가슴 깊이 숨겨둔 기억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나는 조용히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저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유흥업소에서 일하시며 저를 키우셨고, 고등학교 때 돌아가셨습니다."순간 수아의 젓가락이 멈추며 놀란 시선이 나를 스쳤다. 그 눈길이 가슴에 닿았지만 나는 담담히 이어갔다."사실 아버지는 누군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술에 취하시면 가끔 그러셨습니다. 아버지를 찾으려 하지 말아라. 그러면 네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다. 그래서 애초에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회장님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소주잔을 손끝으로 천천히 돌리며 말씀하셨다.

  • 태양을 닮은 달   131화

    잠시 후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졌다.수아는 무대 옆에서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숨을 골랐다.조명이 자신을 향해 터져 오르는 순간 그녀는 무대로 걸어나갔다."안녕하세요. 태양그룹 부회장 김수아입니다."첫 마디가 공간을 가르며 퍼져나갔다. 수백 개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꽂혔다. 카메라 플래시가 연달아 터졌고, 앞줄에 앉은 기자들의 펜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오늘 저는 기술을 이야기하러 이 자리에 선 게 아닙니다."예상과 다른 첫 문장에 객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사람을 이야기하러 왔습니다."수아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 침묵이 공간을 더 단단하게 조였다."지난 3년간 저는 한 가지 질문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기술이 진짜로 사람 곁에 있을 수 있는가. 위급한 순간에 가족을 대신해줄 수 있는가."&n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