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5화

Author: 신선우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28 23:03:07

수능 전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불을 끄고 누웠지만 눈은 천장을 향해 열려 있었다. 공장에서 모은 돈으로 인터넷 강의를 결제하던 날. 점심시간마다 화장실 칸에 앉아 단어를 외우던 날들. 새벽 두 시에 눈꺼풀이 무너질 때마다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며 버티던 밤들. 그 모든 시간이 내일 단 하루로 수렴되는 밤이었다.

잠이 들었는지 들지 않았는지도 모를 때, 귓가에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형! 빨리 일어나요!"

재욱이었다.

시계를 보니 시험 시작까지 한 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손끝이 떨렸다. 속이 빈 것처럼 울렁거렸다.

"이러다 진짜 늦겠어요. 잠깐만요!"

그는 이미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입사 동기에게 오토바이를 빌리는 것 같았다. 다급하게 사정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말을 잃었다.

"...너, 출근은 어쩌려고."

"그게 지금 중요한가요. 얼른 타요."

---

오토바이에 올라 그의 등에 몸을 맡겼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얼굴을 후려쳤다. 온몸이 얼어붙었지만 오히려 정신은 점점 또렷해졌다. 달리는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엔진 소리와 바람 소리만 귓가를 가득 채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침묵이 불편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이 녀석의 등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것처럼 느껴졌다.

시험장 앞은 이미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떨리는 손에 따뜻한 음료를 든 수험생들, 응원하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이른 아침 공기 속에 뒤섞였다.

오토바이에서 내리자 재욱이가 헬멧을 벗고 나를 바라봤다. 이마에 얇게 땀이 맺혀 있었다.

"휴..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고마워."

"뭘요.. 시험이나 잘 봐요."

목이 메었다. 가족도 없이, 응원해줄 사람 하나 없이 이 자리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녀석이 있었다. 

새벽에 작업복 차림으로 달려온 이 녀석이.

"그래."

재욱이가 오토바이에 올라 시동을 걸다가 고개를 돌렸다.

"홧팅!"

그리고 차가운 아침 공기를 가르며 공장 쪽으로 달려갔다. 그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홀로 남은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버텼는지. 그 무게가 한꺼번에 가슴을 눌러왔다. 그리고 동시에 이상하게 가벼워졌다.

이제, 시작이었다.

---

시험장 안으로 들어서자 묘한 고요가 나를 감쌌다.

수험생들이 하나둘 자리를 찾아 앉았고, 감독관이 앞에 서서 주의사항을 읽어 내려갔다.

"시험지는 신호가 울리기 전까지 절대 펼치지 마세요."

딱딱한 목소리였다. 나는 가방을 발밑에 내려놓으며 자리에 앉았다.

옆자리 학생은 마지막으로 단어장을 펼쳐 눈으로 훑고 있었다. 손가락이 빠르게 페이지를 넘겼다. 그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또 다른 학생은 눈을 감은 채 입술을 조금씩 달싹였다. 무언가를 속으로 되뇌는 것 같았다. 기도인지, 공식인지, 아니면 그냥 버티는 건지.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볼 것도, 더 이상 준비할 것도 없었다.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 전부였다. 이 순간 단어장을 펼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감독관이 시험지를 배부하기 시작했다.

종이가 내 앞에 놓이는 순간,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뒤집어진 시험지를 손으로 덮은 채 나는 신호를 기다렸다.

잠시 후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울렸다.

나는 시험지를 뒤집었다. 첫 문제부터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두려움은 없었다. 기름 냄새를 맡으며 외웠던 단어들이, 형광등 아래에서 눈꺼풀을 부여잡으며 풀었던 문제들이 하나씩 손끝으로 흘러나왔다. 공장에서 12시간 서 있던 다리에 비하면 이 의자는 충분히 편안했다.

첫 시간 시험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자 감독관이 말했다.

"10분 쉬겠습니다. 화장실 다녀오실 분은 지금 다녀오세요."

몇몇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냥 앉아 있었다. 눈을 감고 잠깐 숨을 골랐다. 

느낌이 좋았다.

그렇게 마지막 영역. 마지막 문제까지 풀고 손을 멈췄다. 그리고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눌러왔던 긴장이 한꺼번에 풀렸다. 어깨가 무너지듯 내려앉았다.

끝났다. 정말 끝났다.

눈물이 고였다. 나는 아무도 보지 않는 척 고개를 숙이고 그 눈물을 조용히 삼켰다.

그리고 한달 후.. 

시험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태양을 닮은 달   134화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차갑고 서늘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수술실은 예상보다 컸다. 중앙에 놓인 수술대 위에 회장님이 누워 계셨다. 의료진들이 그 주위를 빽빽하게 둘러싸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기계음과 지시 소리들이 공간을 채웠다. 나는 회장님을 바라봤다. 처음엔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저렇게 누워 계신 모습이 낯설었다. 언제나 단단하고 권위로 가득했던 그 사람이 지금 생명을 의료진에게 온전히 맡긴 채 누워 계셨다. 산소 호흡기가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여러 줄의 관이 그의 몸에 연결되어 있었다. 가슴이 아팠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두려움인지 미안함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가슴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나는 회장님 옆에 놓인 보조 침대에 누웠다. 간호사가 내 팔에 굵은 바늘을 꽂으며 말했다. "통증이 있으실 수 있습니다. 참아주세요." "괜찮습니다." 큰 바늘이 들어오는 순간 뻐근한 통증이 팔을 타고 올라왔다. 하지만 그것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붉은 피가 관을 타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관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눈으로 따라갔다. 회장님의 몸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내 피가 지금 저 사람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같은 피.' 그 단어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관을 타고 흘러나가는 피의 감각이 팔 안쪽에서 느껴졌다.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했다. 내 온기가 저 사람에게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실감됐다. 한참이 지나서야 간호사가 다가와 말했다. "충분히 채혈됐습니다." 의료진 중 한 명이 말했다. "활력징후 안정되고 있습니다." 그 한마디에 수술실 안의 긴장이 조금 느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다시 회장님을 바라봤다. 창백했던 얼굴에 아주 미세하게 혈색이 돌아오고 있는 것 같았다. 착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조금 가벼워졌다. 내 피가 그를 살리고 있었다. 간호사가 내 팔에서 바늘을 빼며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고

  • 태양을 닮은 달   133화

    그곳은 이미 붉은 경광등과 사이렌 소리로 뒤덮여 있었다.어둠을 뚫고 번쩍이는 불빛이 사람들의 불안한 얼굴을 차례로 스쳐 갔다. 나는 깨진 차창 사이로 흘러드는 빗물을 맞으며 회장님을 바라봤다.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빗물과 뒤섞여 시트 위로 번지고 있었다.구급대원이 내 어깨를 잡아당겼다."괜찮으십니까? 움직일 수 있으세요?"나는 그 손을 붙잡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둔하게 쑤셨지만 그것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회장님부터요."구급대원들이 회장님을 들것에 옮기는 동안 수아가 조수석에서 빠져나왔다. 이마에 작은 상처가 나 있었고, 손이 떨리고 있었다."아빠!"그녀가 달려가려는 순간 구급대원이 막아섰다."응급환자분 치료가 우선입니다. 비켜주세요.""아빠······ 제발······."수아의 목소리가 빗속으로 번지며 사라졌다."환자 의식 없음! 맥박 약합니다!"구급대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순간 내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강인하고 흔들림 없던 그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들것 위에 누운 회장님은 산소 마스크를 낀 채 미동도 없었다.나는 수아의 팔을 잡았다."같이 가자."앰뷸런스 문이 닫히고 사이렌이 다시 울려 퍼졌다. 차 안은 긴박한 지시와 기계음으로 가득했고, 구급대원들의 손길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수아는 내 옆에 앉아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회장님을 바라봤다. 그 손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손을 잡았다.수아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하지만 잡은 손에 힘이 들어왔다.---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대기하던 의료진이 들것을 끌어내렸다."수술실로 바로 이송하세요!"들것이 복도를 따라 빠르게 밀려 들어갔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바퀴 굴러가는 소리와 발걸음이 메아리처럼 이어졌다. 잠시 후 수술실 문이 활짝 열리고 회장님의 몸이 그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붉은색으로 빛나는 수술 중이라는 불빛이 켜졌다.문이 닫히는 순간 수아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는 그녀를 복도 의자에 앉히고 옆에 앉

  • 태양을 닮은 달   132화

    뜻밖의 질문에 손이 멈췄다. 조심스레 숨을 고른 뒤 대답했다."없었습니다, 회장님.""나는 사람을 배경으로만 판단하고 싶진 않네. 그래서 지금껏 자네 가족 이야기를 묻지 않았지. 그런데 오늘 문득 궁금해졌어."그 시선 속에서 가벼운 호기심이 아닌 진심 어린 무게가 느껴졌다. 가슴 깊이 숨겨둔 기억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나는 조용히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저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유흥업소에서 일하시며 저를 키우셨고, 고등학교 때 돌아가셨습니다."순간 수아의 젓가락이 멈추며 놀란 시선이 나를 스쳤다. 그 눈길이 가슴에 닿았지만 나는 담담히 이어갔다."사실 아버지는 누군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술에 취하시면 가끔 그러셨습니다. 아버지를 찾으려 하지 말아라. 그러면 네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다. 그래서 애초에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회장님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소주잔을 손끝으로 천천히 돌리며 말씀하셨다.

  • 태양을 닮은 달   131화

    잠시 후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졌다.수아는 무대 옆에서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숨을 골랐다.조명이 자신을 향해 터져 오르는 순간 그녀는 무대로 걸어나갔다."안녕하세요. 태양그룹 부회장 김수아입니다."첫 마디가 공간을 가르며 퍼져나갔다. 수백 개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꽂혔다. 카메라 플래시가 연달아 터졌고, 앞줄에 앉은 기자들의 펜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오늘 저는 기술을 이야기하러 이 자리에 선 게 아닙니다."예상과 다른 첫 문장에 객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사람을 이야기하러 왔습니다."수아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 침묵이 공간을 더 단단하게 조였다."지난 3년간 저는 한 가지 질문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기술이 진짜로 사람 곁에 있을 수 있는가. 위급한 순간에 가족을 대신해줄 수 있는가."&n

  • 태양을 닮은 달   130화

    수아는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한 모금을 마셨다. 그리고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나 오래전부터 회사 물려받으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어.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근데 결혼까지 아버지 뜻대로 하라니까, 솔직히 너무 힘들어."체념이 깊게 스며 있었다."내가 뭘 골라본 적이 있나 싶어. 학교도, 전공도, 회사도. 다 정해진 데로 갔어."나는 잔을 내려놓았다."태양그룹 회장으로 산다는 건 다 가질 수 없다는 뜻이잖아. 너도 알잖아.""알아. 아는데."수아가 잠깐 눈길을 피했다가 다시 나를 봤다."오빠. 예전처럼 나한테 가끔씩 사랑을 줄 수 없어? 나 그때만큼 행복했던 적이 없어."그 말이 방 안에 조용히 번졌다. 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시선을 거뒀다.

  • 태양을 닮은 달   129화

    리허설은 예정보다 길어졌다.수아는 같은 문단에서 세 번 걸렸다. 원고를 외우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이 사람이 원고 때문에 걸리는 걸 나는 본 적이 없었다.네 번째에 겨우 넘어가고 조명이 꺼졌다. 수아가 무대에서 내려왔다."괜찮아?""나 많이 긴장하나 봐."그때 통로 쪽에서 누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낯익은 얼굴이었다.삼진그룹 둘째 아들 이준혁. 단정한 수트 차림에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우리 쪽으로 오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마주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수아야."수아가 고개를 돌렸다. 눈이 잠깐 멈췄다가 미소로 번졌다."준혁아. 너도 왔어?""응. 아버지가 경험 좀 쌓아보라고 보내셨어."그가 수아 옆에 서서 전시장을 한 번 둘러봤다. 그러다 다시 수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나 소식 들었어.""뭘.""민호 형이랑 약혼한다며."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수아의 얼굴이 굳었다. 아직 발표하지 않은 일이었다. 양가에서만 오간 이야기였는데 태평양 건너에서 듣고 있었다.수아는 담담하게 웃었다."그렇게 됐어.""우리 같은 사람들이 어디 마음대로 결혼 상대를 고르겠어. 부모님이 정해준 사람하고 살아야지."농담처럼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이 농담만은 아니었다. 이 사람도 어딘가에서 같은 통보를 받았을 것이었다."그래도 민호 형이면 괜찮은 선택이지.""어···""일 잘 마무리하고, 시간 되면 한국에서 보자."그는 손을 가볍게 들어 보이고 돌아섰다. 사람들 사이로 섞여 들어가며 사라졌다.수아는 그가 사라진 방향을 잠시 봤다.짧은 대화였다. 하지만 그가 남기고 간 말이 얼굴 위에 오래 남았다.우리 같은 사람들이 어디 마음대로 결혼을 고르겠어. 그 한마디가 위로인지 체념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둘 다였을 것이다.나는 그 옆모습을 봤다.수아가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무슨 말을 얹든 이 사람 편을 드는 말이 될 것 같았다.---호텔로 향하는 길, 차 안은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