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수능 전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불을 끄고 누웠지만 눈은 천장을 향해 열려 있었다. 공장에서 모은 돈으로 인터넷 강의를 결제하던 날. 점심시간마다 화장실 칸에 앉아 단어를 외우던 날들. 새벽 두 시에 눈꺼풀이 무너질 때마다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며 버티던 밤들. 그 모든 시간이 내일 단 하루로 수렴되는 밤이었다.
잠이 들었는지 들지 않았는지도 모를 때, 귓가에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형! 빨리 일어나요!"
재욱이었다.
시계를 보니 시험 시작까지 한 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손끝이 떨렸다. 속이 빈 것처럼 울렁거렸다.
"이러다 진짜 늦겠어요. 잠깐만요!"
그는 이미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입사 동기에게 오토바이를 빌리는 것 같았다. 다급하게 사정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말을 잃었다.
"...너, 출근은 어쩌려고."
"그게 지금 중요한가요. 얼른 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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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에 올라 그의 등에 몸을 맡겼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얼굴을 후려쳤다. 온몸이 얼어붙었지만 오히려 정신은 점점 또렷해졌다. 달리는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엔진 소리와 바람 소리만 귓가를 가득 채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침묵이 불편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이 녀석의 등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것처럼 느껴졌다.
시험장 앞은 이미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떨리는 손에 따뜻한 음료를 든 수험생들, 응원하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이른 아침 공기 속에 뒤섞였다.
오토바이에서 내리자 재욱이가 헬멧을 벗고 나를 바라봤다. 이마에 얇게 땀이 맺혀 있었다.
"휴..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고마워."
"뭘요.. 시험이나 잘 봐요."
목이 메었다. 가족도 없이, 응원해줄 사람 하나 없이 이 자리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녀석이 있었다.
새벽에 작업복 차림으로 달려온 이 녀석이.
"그래."
재욱이가 오토바이에 올라 시동을 걸다가 고개를 돌렸다.
"홧팅!"
그리고 차가운 아침 공기를 가르며 공장 쪽으로 달려갔다. 그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홀로 남은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버텼는지. 그 무게가 한꺼번에 가슴을 눌러왔다. 그리고 동시에 이상하게 가벼워졌다.
이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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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장 안으로 들어서자 묘한 고요가 나를 감쌌다.
수험생들이 하나둘 자리를 찾아 앉았고, 감독관이 앞에 서서 주의사항을 읽어 내려갔다.
"시험지는 신호가 울리기 전까지 절대 펼치지 마세요."
딱딱한 목소리였다. 나는 가방을 발밑에 내려놓으며 자리에 앉았다.
옆자리 학생은 마지막으로 단어장을 펼쳐 눈으로 훑고 있었다. 손가락이 빠르게 페이지를 넘겼다. 그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또 다른 학생은 눈을 감은 채 입술을 조금씩 달싹였다. 무언가를 속으로 되뇌는 것 같았다. 기도인지, 공식인지, 아니면 그냥 버티는 건지.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볼 것도, 더 이상 준비할 것도 없었다.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 전부였다. 이 순간 단어장을 펼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감독관이 시험지를 배부하기 시작했다.
종이가 내 앞에 놓이는 순간,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뒤집어진 시험지를 손으로 덮은 채 나는 신호를 기다렸다.
잠시 후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울렸다.
나는 시험지를 뒤집었다. 첫 문제부터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두려움은 없었다. 기름 냄새를 맡으며 외웠던 단어들이, 형광등 아래에서 눈꺼풀을 부여잡으며 풀었던 문제들이 하나씩 손끝으로 흘러나왔다. 공장에서 12시간 서 있던 다리에 비하면 이 의자는 충분히 편안했다.
첫 시간 시험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자 감독관이 말했다.
"10분 쉬겠습니다. 화장실 다녀오실 분은 지금 다녀오세요."
몇몇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냥 앉아 있었다. 눈을 감고 잠깐 숨을 골랐다.
느낌이 좋았다.
그렇게 마지막 영역. 마지막 문제까지 풀고 손을 멈췄다. 그리고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눌러왔던 긴장이 한꺼번에 풀렸다. 어깨가 무너지듯 내려앉았다.
끝났다. 정말 끝났다.
눈물이 고였다. 나는 아무도 보지 않는 척 고개를 숙이고 그 눈물을 조용히 삼켰다.
그리고 한달 후..
시험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다음 날 오후.강의가 끝나고 강의실을 나서는데, 복도 끝에 누군가 서 있었다.수아였다.손에는 작은 쇼핑백이 들려 있었고, 오가는 학생들 사이에서 유독 그녀만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나를 발견하자마자 환하게 웃었다.나는 순간 멈칫했다."어떻게 여기를···""민호 오빠한테 강의 시간표 물어봤어. 미리 알려줬으면 됐는데, 오빠가 거절할까 봐"그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거절할까 봐 미리 알아왔다는 말이 이상하게 가슴에 걸렸다.그녀는 쇼핑백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이거."안을 들여다보니 반짝이는 최신형 휴대폰이 박스째 들어 있었다. 귀여운 미키마우스 케이스까지 함께.
우리가 도착한 곳은 스테이크 전문 레스토랑이었다.문을 여는 순간, 따뜻한 나무 결이 살아 있는 인테리어에 은은한 조명이 어우러져 마치 포근한 담요 속으로 스며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공장 식당의 형광등, 편의점 도시락, 고깃집 플라스틱 의자. 내가 익숙한 공간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기죽지는 않았다. 여기 있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자리에 앉자마자 검정 앞치마를 맨 웨이터가 다가왔다."주문하시겠습니까?"민호가 능숙하게 말을 건넸다."오늘 추천 메뉴는 뭐예요?""블랙라벨 스테이크와 블루밍 어니언이 가장 인기 많습니다."민호가 우리를 보며 물었다."뭐 먹을래?""나는 이런 곳 처음이라··· 알아서 시켜줘."
오늘따라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이 유난히 가볍다.합의금이 통장에 들어온 뒤로, 처음으로 숨을 제대로 쉬는 기분이었다. 당장 이번 달 생활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고, 과외를 잃은 빈자리를 메울 시간도 충분히 생겼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이 조금 달라 보였다. 사람이 이렇게 단순한 존재인가 싶기도 했다. 돈 걱정이 사라지자, 그제야 캠퍼스가 눈에 들어왔다. 봄이 오고 있었다. 교정 곳곳에 연두색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고, 바람은 차갑지 않았다.수업이 끝난 뒤, 민호에게 말했다."나 이번 MT 참석할께."내가 조심스레 말을 꺼내자, 민호는 잠시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활짝 웃으며 물었다."진짜? 아르바이트는 어쩌고?"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짤렸어. 내가 원해서 그런 건 아니고··· 뭐, 결과적으론 잘 된 거지."민호는 진심 어린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가 되자 병실 문이 조용히 열렸다.낯선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남자가 들어섰다. 단정한 넥타이, 광이 나는 구두, 무릎 위에 딱 맞게 접힌 두툼한 서류철. 마치 로펌에서 갓 나온 변호사처럼 말끔한 인상이었다."김혁수 님 되시죠?"나는 침대 머리를 살짝 올리며 몸을 일으켰다."네, 맞습니다."그는 품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며 고개를 숙였다."태양 손해보험 이승안 과장입니다."악수를 나누는 순간, 손끝에서 전해지는 촉감이 매끄러웠다. 오랫동안 사무실에서 서류만 만져온 사람의 손이었다. 그는 명함 케이스를 닫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몸은 괜찮으신지요?""네, 괜찮습니다. 사고 덕분에 오랜만에 푹 쉬었어요."나는 가볍게 웃으며 어깨를
나는 병원 복도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아직 머리는 멍했고, 발걸음은 낯설 만큼 무거웠다. 마치 내가 아닌 누군가의 몸을 빌려 걷는 기분이었다. 병실 문을 나서는 순간, 형광등 불빛이 눈에 날카롭게 꽂혔다. 눈을 가늘게 뜨며 적응하는 데만도 몇 초가 걸렸다. 몸이 이 정도라면, 내가 얼마나 오래 의식을 잃고 있었던 걸까.원무과 창구에 다다르자, 투명한 유리 너머로 환한 얼굴의 직원이 나를 바라보았다."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뜻밖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따스했다. 이곳의 공기보다도, 약 봉투보다도 더 포근하게 다가왔다."저... 병원비 좀 확인하고 싶은데요."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이름과 생년월일을 물었다. 몇 번 키보드를 두드리던 그녀가 화면을 확인한 뒤 고개를 들었다."김혁수 씨 맞으시죠?"미소가 담긴 눈빛이 나를 스쳤다."
교문 밖을 나서자 스산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다. 머릿속은 다른 열기로 가득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욱신거렸다."편하게 학교 다니는 너희가 뭘 알아···"속으로 중얼이며 횡단보도 앞에 멈췄다. 신호등이 빨간불이었다. 분노는 이미 선을 넘고 있었지만, 발은 그 자리에 묶여 있었다.언제부터였을까. 빨간불이 초록으로 바뀐 줄도 모르고, 나는 생각에 잠긴 채 멍하니 서 있었다.파란불이 깜빡이는 걸 본 건, 정말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반사적으로 몸을 앞으로 내밀며 뛰어들려는 찰나,"퍽!"무언가가 내 몸을 강하게 밀쳐냈다. 공중으로 떠오르는 기분. 세상이 한 프레임씩 끊어지듯 천천히 움직였다.하늘, 간판, 건물, 도로, 그리고 아스팔트.몸이 몇 바퀴를 굴렀다. 등과 머리가 바닥에 부딪힐 때마다 숨이 튀어나왔다. 차가운 아스팔트가 온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