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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Autor: 선넘음
last update Data de publicação: 2026-09-01 11:00:15

우리가 도착한 곳은 스테이크 전문 레스토랑이었다.

문을 여는 순간, 따뜻한 나무 결이 살아 있는 인테리어에 은은한 조명이 어우러져 마치 포근한 담요 속으로 스며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공장 식당의 형광등, 편의점 도시락, 고깃집 플라스틱 의자. 내가 익숙한 공간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기죽지는 않았다. 여기 있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검정 앞치마를 맨 웨이터가 다가왔다.

"주문하시겠습니까?"

민호가 능숙하게 말을 건넸다.

"오늘 추천 메뉴는 뭐예요?"

"블랙라벨 스테이크와 블루밍 어니언이 가장 인기 많습니다."

민호가 우리를 보며 물었다.

"뭐 먹을래?"

"나는 이런 곳 처음이라··· 알아서 시켜줘."

그는 메뉴판을 넘기며 잠시 고민하다가 결심이 선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스테이크 세 개랑 샐러드 하나 주세요. 음료는 콜라 세 잔으로 부탁드릴게요."

주문이 끝나고 웨이터가 조용히 자리를 뜨자, 테이블에 다시 말랑한 공기가 퍼졌다. 조용한 틈 사이, 수아가 내 눈을 바라보며 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근데··· 나 뭐라고 불러야 해?"

눈동자가 흔들렸다. 웃는 얼굴이었지만, 그 안엔 묘한 망설임이 스며 있었다.

"학번은 같고, 민호 오빠랑은 동갑인데··· 선배라고 부르기도 좀 웃기고···"

말끝을 흐리는 수아를 보며 민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땐 그냥 오빠라고 하면 돼. 편하게 불러."

나는 컵에 남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으며 슬쩍 웃었다.

"그래. 다들 처음엔 오빠라고 부르더라. 그 다음엔···"

말을 흐리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나중엔 뭐요?"

"글쎄···"

수아는 한 박자 늦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손을 무릎 위에 모으고 작게 중얼거렸다.

"···오빠."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 테이블 위 공기가 살짝 바뀌었다. 장난이 아닌, 진심이 담긴 호칭이었다. 그녀도 스스로 그걸 느낀 듯, 말한 뒤 볼이 붉게 물들었다.

"좀 어색하네."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뭔가 더 가까워진 느낌인데?"

"진짜?"

수아는 웃음 띤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민호가 장단을 맞췄다.

"혁수 오늘 은근히 말 잘하네."

"어디서 배운 거 같은데?"

수아가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그 웃음엔 이제 조금 더 편안해진 마음이, 그리고 아주 살짝 설렘이 섞여 있었다.

---

잠시 후, 스테이크가 조심스럽게 테이블에 내려놓아졌고, 고소한 고기 향이 테이블 위에 잔잔히 퍼져나갔다. 

나는 접시를 바라보았다. 진한 갈색으로 노릇하게 구워진 겉면, 가장자리는 살짝 바삭해 보였고, 접시 가장자리엔 은은한 소스 자국이 윤기를 더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포크를 들고 칼을 댔다. 예상보다 부드럽게 잘렸다. 단면은 은은한 핑크빛. 따뜻하고 촉촉한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나··· 스테이크 처음 먹어봐."

내 말에 수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 이내 웃음이 터졌다.

"진짜?"

민호도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럼 천천히 먹어야지. 맛을 음미하면서."

포크로 고기 한 점을 찍어 조심스레 입에 넣었다.

··그리고, 멈췄다.

고기의 온기가 입 안을 천천히 채워나갔다. 육즙이 퍼지는 감각과 함께 고소한 풍미가 혀끝을 감싸며 잔잔하게 밀려들었다. 생각보다 훨씬. 아니, 솔직히 말해 믿기 어려울 만큼 맛있었다.

나는 조용히 한참을 씹다 말했다.

"···입 안이, 풍성하다는 게 이런 거였구나."

수아가 감탄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 표현력, 예상 밖인데?"

우리 셋은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웃고 있는 수아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녀가 나를 쳤고, 나는 쓰러졌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서, 나는 그 사고가 전부 나쁜 일이었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상한 감정이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감각이었다.

---

그날 밤,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민호가 툭 던지듯 물었다.

"수아, 어때?"

나는 한 박자 쉬었다가 대답했다.

"···밝아서 좋아."

민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근데 있잖아, 혁수야."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조금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수아 평범한 애 아냐. 집안이 그렇기도 하고. 가볍게 보지 마."

"그게 무슨 말이야?"

민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나란히 기숙사로 걸어 들어갔다.

방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되짚었다. 수아의 웃음, 민호의 말, 그리고 처음 먹어본 스테이크의 온기.

평범하지 않는 애.

민호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태양그룹의 딸. 병실에서 고개를 숙이던 그 모습. 그리고 골목에서 팔을 흔들며 걷던 그 뒷모습.

어떤 게 진짜 그녀인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나는, 그걸 알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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