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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Autor: 선넘음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9-01 20:00:22

다음 날 오후.

강의가 끝나고 강의실을 나서는데, 복도 끝에 누군가 서 있었다.

수아였다.

손에는 작은 쇼핑백이 들려 있었고, 오가는 학생들 사이에서 유독 그녀만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나를 발견하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나는 순간 멈칫했다.

"어떻게 여기를···"

"민호 오빠한테 강의 시간표 물어봤어. 미리 알려줬으면 됐는데, 오빠가 거절할까 봐"

그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거절할까 봐 미리 알아왔다는 말이 이상하게 가슴에 걸렸다.

그녀는 쇼핑백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이거."

안을 들여다보니 반짝이는 최신형 휴대폰이 박스째 들어 있었다. 귀여운 미키마우스 케이스까지 함께.

"이게 뭐야···?"

"사고 때 오빠 폰 완전히 박살났잖아."

"이렇게까지 안 해줘도 되는데..."

나는 손을 허공에 멈춘 채 망설였다. 받아야 할지, 거절해야 할지. 이렇게까지 받아도 되는 건지. 돈으로 충분히 보상 받았는데, 이런 것 까지 받는 게 맞는 건지... 결국 나는 천천히 받아 들었다.

"고마워."

"그럼 다음에 밥 한 번 사."

수아는 그 말을 남기고 가볍게 손을 흔들며 돌아섰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쇼핑백 안을 다시 들여다봤다. 박스 위에 작은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이쁜동생 수아 010-xxxx-xxxx'

나는 그 메모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쁜동생.

---

기숙사로 돌아와 새 휴대폰을 켜고 연락처를 옮기기 시작했다.

메모지에 적힌 이름을 다시 보며 천천히 저장했다.

'이쁜동생 수아.'

저장 버튼을 누르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냥 연락처 하나일 뿐인데, 어쩐지 그 이름이 오래 눈에 남았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천장을 바라보며 누웠다. 눈을 감으면 그녀의 웃는 얼굴, 반짝이는 눈빛, 그리고 조심스레 내민 작은 손이 떠올랐다.

결국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어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폰 정말 마음에 든다.]

보내고 나서 화면을 끄려는데, 금세 답장이 왔다.

[다행이다.  근데 오빠, 아르바이트는 새로 구했어?]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답장을 적었다.

[아직. 당분간 새벽 배달 할까 생각 중이야.]

[새벽 배달?? 많이 힘들지 않아?]

[괜찮아. 예전에 더 힘든 것도 했어.]

[예전에 뭐 했는데?]

[신발공장.]

잠시 답장이 없었다. 나는 괜히 말이 길어졌나 싶어 화면을 내리려는데, 메시지가 왔다.

[오빠 진짜 대단하다. 난 못 할 것 같아.]

[누구나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하게 돼.]

[그런가? 근데 오빠, 나한테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이번에 고2야. 과외 선생님 알아보고 있거든. 오빠 한번 만나볼래? 엄마도 좋다고 하셨어.]

나는 화면을 한참 들여다봤다.

수아의 제안은 너무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내 안의 자존심 한쪽이 조용히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교통사고 피해자라는 이유로 합의금에 휴대폰을 받은 것도 모자라 이제 과외 자리까지 연결해 주려 한다는 것이... 정말 받아도 되는 건지, 아니면 이게 오히려 나를 작게 만드는 건지. 복잡한 감정이 뒤엉켰다.

[이번 주엔 MT 있어서 안 될 것 같아. 그리고 미안한 마음은 이미 충분히 전했잖아. 이런 도움까지 받는 건 좀 부담스러워.]

답장이 조금 늦게 왔다.

[오빠는 내가 철없는 재벌 딸처럼 보이지? 근데 나, 어릴 때부터 아빠한테 경영 수업 받으면서 자랐어. 숫자 보는 눈, 사람 보는 눈 하나는 꽤 정확해. 오빠는 분명 나중에 정말 큰 사람 될 거야. 그게 보여. 그래서 투자하는 거야.]

나는 그 문장을 두 번, 세 번 읽었다.

누군가에게 나는 '크게 될 사람' 이었다.

그 사실이 너무 벅차올랐다. 오랫동안 혼자 버텨오면서 나를 믿어준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삼촌이 해줬던 말 이후로는. 그런데 지금, 이 짧은 문자 한 줄이 가슴 어딘가를 세게 두드렸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울컥한 감정을 조용히 삼켰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럼 다음 주에 갈게.]

수아의 답장은 빠르게 왔다.

[알았어 잘 자, 오빠ㅎㅎ]

나는 그 메시지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답장을 보냈다.

[너도 잘 자.]

보내고 나서 화면을 끄는데, 또 메시지가 왔다.

[근데 오빠는 왜 말이 짧아?]

[원래 이래.]

[앞으로 고쳐봐ㅎㅎ]

나는 한동안 그 메시지를 바라봤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결국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방 안이 어두워졌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밝았다.

그리고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처음부터 수아의 동생 과외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가 날 위해 억지로 만들어낸 자리였다. 그 다정한 거짓말이 더 깊숙이 날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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