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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Autor: 선넘음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8-29 07:10:21

대학 합격자 발표 날 아침.

전날부터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누우면 눈이 떠졌고, 눈을 감으면 화면 속 숫자들이 아른거렸다. 수능 점수는 충분했다. 하지만 충분하다는 것과 합격이라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발표 시각은 오전 아홉 시였다.

여덟 시 오십 분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화면을 켜고, 수험번호를 미리 입력해두고, 조회 버튼 위에 마우스를 올려놓은 채 시계만 바라봤다. 초침이 움직일 때마다 심장이 함께 뛰었다.

아홉 시 정각.

손가락이 마우스를 클릭했다. 잠시 멈춘 듯한 화면. 그 몇 초가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페이지가 열리지 않으면 어쩌나, 오류가 뜨면 어쩌나.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화면 중앙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합격을 축하합니다. 한국대학교 법학과 최종합격"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눈물이 터졌다. 온몸이 떨렸다.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엉엉 울었다. 울음을 삼키려 했는데 삼켜지지 않았다. 감정이란 게 이렇게 한꺼번에 밀려올 수 있는 거구나, 그제야 알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눈을 감았다.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새벽에 하이힐 소리를 내며 돌아오던 뒷모습. 내 어깨에 기대어 소리 없이 울던 그 밤. 그리고 마지막으로 했던 말.

'너는 엄마처럼 살지 마.'

"엄마. 해냈어."

소식을 들은 재욱이가 뛰어왔다. 아무 말 없이 나를 꽉 안았다.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냥 안고 있었다.

어떤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

그날 저녁, 우리는 공장 근처 허름한 고깃집으로 향했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불판을 올리고 고기를 얹었다. 지글지글 익는 소리, 피어오르는 연기, 소주잔이 부딪히는 소리.

재욱이가 잔을 채우며 말했다.

"저도 형을 보고 달려갈께요."

그 말이 소주보다 더 깊이 내려갔다. 나는 말없이 잔을 부딪혔다.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의 삼겹살은 이상하리만치 짭조름했고, 놀라울 만큼 따뜻했다.

그리고 몇일 후 나는 회사를 퇴사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

입학금과 기숙사비는 간신히 해결했지만 학비에 생활비, 교재비까지 따지니 계산기 앞에서 한숨만 깊어졌다. 

나는 과외 사이트에 글을 올렸고, 한국대 법학과 합격생이라는 한 줄이 생각보다 빠르게 연락을 불러왔다. 

그리고 며칠 뒤 한 집에서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

지하철을 타고 강남으로 향하는 동안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공장이 있는 쪽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높고 반듯한 건물들, 깔끔하게 닦인 인도, 잘 차려입은 사람들.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았다.

학생의 집 앞에 섰다.

공장 작업복 대신 새로 산 셔츠를 입고. 그 차이가 아직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주름을 손바닥으로 한 번 쓸어내리고 초인종을 눌렀다.

"어서 오세요, 선생님."

어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넓은 거실, 정돈된 가구, 벽에 걸린 그림들. 나는 눈에 띄지 않게 주변을 훑어봤다. 이런 집에서 자란 아이는 어떤 고민을 하며 공부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한국대 법대에 합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아이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실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이도 나왔다. 중학교 2학년이라고 했다. 눈빛이 또렷했다. 나쁘지 않았다.

"공부하기 싫을 때도 있어?"

"네."

"그럼 됐어. 공부하기 싫은 거 정상이야. 그걸 어떻게 버티느냐가 중요한 거거든."

아이가 잠깐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옆에서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후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과외비는 월 150만 원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괜찮으실까요?"

그 순간 짧은 정적이 내 안에서 일었다.

공장에서 밤낮없이 일해도 버거웠던 액수였다. 감탄과 놀람, 그리고 어딘지 모를 씁쓸함이 한꺼번에 스며들었다.

"네, 감사합니다."

집을 나서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하루 두 시간 아이를 가르치는 일로 받는 돈이 철야 근무 끝에 손에 쥐던 월급보다 많았다. 기름 냄새 자욱한 공장의 공기, 쉬지 않고 돌아가는 기계 소리, 퇴근길에 겨우 붙잡던 청춘.

왜 이렇게 가까운 기회들이 그토록 멀게만 느껴졌던 걸까.

마음 한켠이 조금 억울했고, 또 한켠은 허전했다.

하지만 이제는 뒤를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어두운 공장을 빠져나와 밝은 교실로 들어가는 이 전환이, 나를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 세상이 어떤 곳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했다.

다시는 그 공장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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