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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Autor: 선넘음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8-29 19:19:59

교문 밖을 나서자 스산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다. 머릿속은 다른 열기로 가득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욱신거렸다.

"편하게 학교 다니는 너희가 뭘 알아···"

속으로 중얼이며 횡단보도 앞에 멈췄다. 신호등이 빨간불이었다. 분노는 이미 선을 넘고 있었지만, 발은 그 자리에 묶여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빨간불이 초록으로 바뀐 줄도 모르고, 나는 생각에 잠긴 채 멍하니 서 있었다.

파란불이 깜빡이는 걸 본 건, 정말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앞으로 내밀며 뛰어들려는 찰나,

"퍽!"

무언가가 내 몸을 강하게 밀쳐냈다. 공중으로 떠오르는 기분. 세상이 한 프레임씩 끊어지듯 천천히 움직였다.

하늘, 간판, 건물, 도로, 그리고 아스팔트.

몸이 몇 바퀴를 굴렀다. 등과 머리가 바닥에 부딪힐 때마다 숨이 튀어나왔다. 차가운 아스팔트가 온몸을 감싸 안았고, 고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귀에선 윙윙거리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고, 세상이 점점 안개 속으로 번졌다.

경적 소리, 비명, 달려오는 발소리. 모든 게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괜찮으세요?"

가까이서 들려온 목소리. 여학생이었다. 그녀의 얼굴엔 놀람과 걱정이 뒤섞여 있었지만, 내 시야는 이미 번져 있었고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다.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손끝이 차갑게 식어가고, 머리는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가라앉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멀어지더니, 그 뒤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나는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

눈을 떴을 때, 처음 보인 건 흰 천장이었다.

매끄럽고 차갑고, 아무 감정도 담지 않은 채 무심하게 나를 내려다보는 병실의 천장. 이곳이 어딘지,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머릿속이 하얬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커튼 틈 사이로 부드러운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몸은 무거웠고, 팔다리는 축 늘어져 있었다. 그래도 눈을 떴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짧은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살아 있다는 감각이 그렇게, 작게 스며들었다.

링거가 느릿하게 방울을 떨어뜨렸다. 조용한 병실에 생명의 리듬이 또렷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리듬 속으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부드럽게 섞였다.

흰 제복의 간호사가 들어왔다.

"이제 정신 좀 드세요?"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 바싹 말라 있었다.

"···여기가 어디죠?"

"병원이에요. 교통사고를 당하셨어요. 지금은 안전하니까 걱정 마세요."

교통사고.

그 단어가 뇌리를 스치는 순간, 무언가 덜컥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간호사는 테이블에서 물컵을 들어 내게 건넸다.

"목 마르셨죠? 천천히 드세요."

떨리는 손으로 컵을 받아 들었다. 손끝이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어색했다. 잔을 들어 올리는 그 짧은 동작조차 버거웠다.

"지금은 많이 쉬셔야 해요. 곧 담당 선생님도 오실 거예요."

그녀가 나가고 다시 고요가 내려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흰 가운의 의사가 천천히 들어왔다.

"드디어 깨어나셨군요."

목소리는 부드럽고 따뜻했다.

"여기가 어딘지, 본인이 누구신지는 알고 계시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기억이 흐릿할 수 있지만, 의식은 또렷하네요."

그는 차트를 집어 들며 말을 이었다.

"교통사고였습니다.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고, 뇌진탕이나 골절도 없어요. 타박상과 근육통 정도입니다."

잔뜩 조였던 심장이 스르르 풀렸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이 걸렸다.

"다만··· 꽤 오랫동안 의식을 잃고 계셨어요. 사고 당시 피로가 심하게 누적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충격과 피로가 겹쳐, 몸이 스스로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요."

나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그 말을 되뇌었다. 몸이 그렇게 무너졌던 걸까. 스스로도 몰랐던 한계가 그렇게 불쑥 튀어나온 것이었다.

"···퇴원은 언제쯤 가능할까요?"

"의식이 또렷하고 통증이 심하지 않다면 내일도 가능해요. 중요한 건 무리하지 않는 겁니다. 불편한 점 있으면 꼭 말씀해 주세요."

의사가 조용히 나가고 문이 닫혔다. 그 순간, 현실이 밀려왔다. 건강보다 먼저 떠오른 건 알바였다. 날 잘랐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쌓여갈 병원비 걱정. 평온했던 병실의 고요가 점점 무겁고 현실적인 침묵으로 바뀌어갔다.

그러다 문득, 사고 직전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나를 밀쳐냈던 무언가. 그리고 쓰러지는 나를 향해 달려오던 여학생의 얼굴. 초점이 맞지 않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그 눈빛만큼은 또렷이 기억났다.

놀라움이 아니었다. 두려움이었다.

마치 자신이 잘못한 것처럼.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 여학생은 누구였을까.

그리고 그 답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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