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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가 날 버려? 좋아, 그럼 용상에 올라주지
태자가 날 버려? 좋아, 그럼 용상에 올라주지
مؤلف: 곤원

제1화

مؤلف: 곤원
동궁의 춘화전, 참새 떼가 요란스레 지저귀며 밤공기를 갈랐다.

전각 안.

“저를 가지시옵소서.”

얼굴이 붉게 물든 연정은 몽롱한 눈빛을 한 채 사내 아래에 깔려 있었다.

촛불 아래, 팔로 바닥을 짚은 사내의 구릿빛 피부는 탄탄했고, 등은 곧게 뻗어 있었다. 준수한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눈빛에는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위압감이 깊게 서려 있었다.

그는 눈을 내리깔아 밑에 있는 젊은 여인을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궁녀복은 이미 잔뜩 구겨져 있었다. 느슨해진 옷깃 사이로 가느다란 목덜미와 반쯤 드러난 어깨, 깊은 가슴골이 내비쳤다.

그런데도 그녀는 두 손으로 옷깃을 계속 잡아당겨 더 많은 속살을 드러냈다.

사내의 얼굴에도 홍조가 번졌고 숨결은 점점 거칠어졌다.

그녀를 향한 두 눈에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정욕이 이글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양옆을 짚은 손은 관절이 하얗게 질릴 만큼 굳게 쥐어져 있었다. 끓어오르는 욕망을 가까스로 억누르는 모습이었다.

그는 강압적으로 연정의 턱을 쥐어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그녀와 시선을 마주한 그의 눈빛이 순간 흐려졌고, 이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침상에 오르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알고 있느냐?”

그가 말을 뱉을 때마다 뜨거운 숨결이 피부를 스쳤다. 연정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가늘게 떨었고, 흰 살결마저 연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연정은 그에게 답하는 대신, 눈을 가늘게 뜨고 힘껏 그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려 하였다.

사내는 뜻대로 끌려가지 않고 허리를 곧추세웠다. 연정이 목을 감은 팔을 놓지 않는 바람에, 그녀는 그대로 그의 다리 사이에 올라앉아 야릇한 자세가 되었다.

극도로 가까워진 거리 때문에 분위기가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부탁이오니… 저를 품어주시옵소서.”

연정은 사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헐떡이는 숨결로 애원했다.

그녀의 손이 사내의 옷깃 안으로 파고들어 곳곳에 불을 지폈다. 사내는 끝내 억눌린 신음을 흘렸다. 요물처럼 휘감기는 여인의 손길에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마침내 마지막 한 가닥 남은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연정의 옷이 찢겨 바닥에 나뒹굴었다.

곧이어 거센 입맞춤이 귓불과 목덜미 위로 빗발치듯 쏟아졌다.

연정이 참지 못하고 신음을 내뱉자, 더욱 깊은 입맞춤이 그녀에게 쏟아졌다.

그녀는 사내를 껴안은 채, 마음껏 자기 몸에 흔적을 남기게 했다.

그러나 사내는 알지 못했다. 그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연정은 몽롱한 기색을 말끔히 거두고, 계략이 뜻대로 풀린 듯 미소 짓고 있었다.

연정은 태사(太師: 황제를 보좌하는 최고위 문관 직책 중 하나)의 적녀이자 막내딸이었다. 어려서부터 궁에 들어가 삼공주의 글동무가 되었고, 태자 진소림과는 오랜 벗으로 정을 나누었다.

연정은 물론 경성의 관가 사람들까지 그녀가 태자의 정실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성인이 된 태자는 태부(太傅: 황제나 태자의 교육을 맡은 최고위 스승)의 둘째 적녀 도명주를 택했다.

혼인을 하사하는 황제의 성지가 내려오고서야 진실을 알게 된 연정은 삼공주의 핑계를 대며 입궁해 태자를 만났다.

“연정아, 명주는 나의 사촌 누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마침, 복사꽃 꽃잎 하나가 그녀의 머리칼에 내려앉았고, 태자는 전처럼 아주 자상하게 그 꽃잎을 떼어내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의 손은 허공에 멈추었다.

한 걸음 물러난 연정이 곧장 몸을 돌려 궁을 떠났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정을 나누던 이가 이토록 쉽게 자신을 버릴 줄은 몰랐다.

믿기지 않는 진실이었다.

어릴 적의 꿈은 산산조각 났지만, 그녀는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다. 태사 가문이 매우 빠르게 그녀의 낭군 후보를 찾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태사 가문은 자기 집안의 적녀가 누군가의 첩이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설령 상대가 태자라 할지라도 말이다.

후보가 정해지기도 전에 또 다른 성지가 내려졌다.

연정을 포함한 네 명의 관가 규수가 함께 입궁하여, 태자비와 함께 궁중 예법을 배우라는 것이었다.

네 가문이 모두 나라의 동량을 배출한 공신가이니, 그 여식들이 태자비와 함께 예법을 배우며 군신의 정을 이어가게 한다는 명분이었다. 겉으로는 가문의 위상을 높여주는 듯했지만, 실상은 태자의 측비 두 명을 고르려는 것이었다.

지난 두 달간 일어난 일을 떠올리던 연정은 헛웃음이 났다.

자기 목덜미에 파묻힌 사내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엔 오직 혐오감만 존재했다.

조무제 진태우는 도황후를 지독히 사랑해, 열여섯 살에 군공을 세운 뒤 직접 청혼했고, 같은 해 두 사람은 적장자 진소림을 얻었다.

그러나 도황후는 아이를 낳다 난산으로 세상을 떠났다. 진태우는 비통에 잠겨 오 년 동안 재혼하지 않았다. 황제로 즉위한 뒤에야 빈 중궁을 채우기 위해 새 황후를 맞았는데, 그 역시 도씨 가문의 여인이었다. 몇몇 비빈도 구색을 갖추듯 함께 책봉했을 뿐이었다.

같은 해, 황제는 겨우 다섯 살인 진소림을 태자로 봉하였다.

천하의 귀하고 화려한 것은 모두 태자가 누려야 했고, 공신의 여식인 그녀들마저 태자의 측비가 되어야 했다. 이는 공신들로 하여금 태자를 보필하는 마음을 흔들림 없이 지키게 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내가 왜?’

연정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연정은 일부러 태자와 어릴 적부터 맺어온 정을 내세워 태자비 도명주의 질투심을 자극했다.

그녀는 그저 적당한 소란만 일으킨 뒤 일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태부 가문의 규수였던 도명주는 겉모습과 달리 잔인하면서도 결단력 있는 사람이었다.

태자의 혼례 당일 연정이 사람들 앞에서 추태를 부리게 할 작정으로 도명주는 그녀에게 최음제를 먹이려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연정은 내색하지 않고 있다가, 연회에 참석한 황제 진태우의 술잔에 약을 타버렸다.

그리고 용상에 오를 계략을 꾸몄다.

그토록 자애로운 부친과 효성스러운 아들의 관계가 어디까지 버틸지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녀의 뒤에는 태사인 부친과 십수만의 정예 병사가 있었다. 그것이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춘화전 안에서는 두 남녀가 세상일도 잊은 채 정신없이 서로를 탐하고 있었다.

앞마당의 악기 연주 소리가 모든 추잡한 소리를 덮어버렸다.

*

태자와 태자비는 황제와 황후의 증인 아래 혼례를 마쳤다. 황제가 사정이 있는 듯 급히 자리를 비운 탓에, 황후 혼자 복잡한 절차를 주관하고 있었다.

“태사의 적녀 소연정과 태보(太保: 황제나 태자를 보좌하고 가르치는 최고위 대신) 서녀 김화월을 불러오라.”

상석에 앉은 도황후는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잘 가꾼 피부는 희고 매끄러웠다. 빼어난 미인은 아니었으나, 단아하고 온순한 분위기와 황후다운 기품이 어우러져 더없이 우아해 보였다.

아래에는 붉은 혼례복을 입은 태자와 봉관하피를 두른 도명주가 서 있었다.

입가에 미소를 띤 태자는 온화하고 예의 바르게 보였으며, 고개를 숙인 도명주는 현숙하고 조신해 보였다.

내전 양옆에는 황실 친척들이 서서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사람들은 도황후가 연정과 김화월을 태자의 측비로 공표하려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조정에서 태사는 막강한 병권을 쥐고 있었고, 태부와 태보는 문관들 사이에서 지위가 비범하였다. 곧 그들의 여식은 모두 동궁에 속할 것이다.

맨 앞줄에 있던 이황자와 사황자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유지하였다.

“예, 황후마마.”

유상궁이 무릎을 굽히고 대답한 뒤, 몇 명의 궁인을 데리고 물러났다.

그들을 바라보는 태자의 시선이 한층 부드러워진 것을 발견한 도명주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도명주는 소매 속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가 펴며, 입가에 알아채기 힘든 냉소를 띠었다.

도명주는 가문의 위세가 막강한 데다 태자와 오랜 정까지 나눈 여인이 동궁에 들어오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본래 도명주는 시간을 두고 연정을 병들게 한 뒤 동궁에서 내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연정이 태자와의 오랜 정을 내세워 심기를 건드리자, 결국 계획을 앞당겨 손을 쓴 것이다.

사람들의 축하 인사가 오갔고, 태자는 웃으며 일일이 손을 맞잡아 인사하였다.

“황후마마, 화월 소저께서는 도착했으나 연정 소저의 행방이 묘연하옵니다.”

유상궁이 들어와 도황후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그 말에 도황후는 미간을 찌푸리다가,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고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바로 그때 어린 궁녀가 급히 들어오다 문턱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고,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히 궁녀에게 향했다.

도황후가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어느 궁의 사람이기에 이리도 천박한 것이냐?”

“황후마마, 살려주십시오. 저는 동궁 정원을 청소하는 국화라 하옵니다. 속히 보고할 일이 있어 급히 왔사옵니다.”

도황후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위엄 있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국화는 울상을 지으며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온몸을 떨며 바닥에 머리를 찧던 그녀는 결심한 듯 말했다.

“황후마마께 아뢰옵니다. 춘화전에서 음란한 소리가… 마치 남녀가 엉켜 있는 듯한 소리가 들리옵니다.”

춘화전은 동궁의 비워진 전각으로,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다. 드나드는 사람이라곤 청소하는 궁녀뿐이었다.

쾅!

도황후가 탁자를 세게 내리쳤다. 얼굴을 구긴 도황후에게서는 숨길 수 없는 분노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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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자가 날 버려? 좋아, 그럼 용상에 올라주지   제30화

    연정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폐하께서 혹 신첩이 가식적으로 군 것이라 여겨지신다면, 기꺼이 순빈에게 사죄하겠사옵니다. 두 분 사이를 이간질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옵니다.” 고개를 숙이면서 가느다랗고 하얀 뒷목이 드러났다. 참으로 아름다웠다. 억울하면서도 쓸쓸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황제의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 황제가 가냘프고 교태로운 여인을 좋아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 일부러 가식적으로 굴었다고 인정할 수는 없었다. 황제의 의심을 받는 것과, 스스로 잘못을 시인하는 것은 엄연히 별개의 문제였다. “소태사는 천군만마를 통솔하며 사방을 누비며 적을 수없이 벤 장군이고, 너의 두 오라비 또한 성정이 강직한데, 어찌하여 너는 이토록 유순한 것이냐?”황제는 연정의 귓가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겨 가려진 얼굴을 드러냈다. 황제의 말은 모호했으나, 연정은 황제가 자신이 애처로워 묻는 것이라 여겼다. “신첩은 집안의 막내딸이기에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오라버니, 언니들의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자랐사옵니다. 세상 물정은 모른 채 컸고, 몸이 허약하여 늘 병치레를 했지요. 집안에서 하도 오냐오냐해주신 탓에 도리어 겁 많고 나약하게 자랐사옵니다. 장군 집안의 여식으로 보여야 할 면모를 보이지 못해 송구할 따름이옵니다.”연정은 부끄러운 기색으로 답했고,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유라면 납득이 갔다. 소태사가 여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여인이 유순한 것은 당연한 이치이니 부끄러워할 것 없다. 다만, 궁에서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지 마라. 소태사가 마음 아파할까 염려되니 말이다.” “예.” 연정이 순종적으로 대답했다. 황제는 연정의 등을 다독이며 계속 말했다. “내가 이미 너를 신빈으로 책봉하고 영수궁을 하사했으니, 가서 둘러보거라.” “예, 폐하의 은혜에 감사드리옵니다.”인사를 올리고 물러나던 연정은, 도중에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렸다. 황제가 재빨리 팔을 뻗어 부축한 덕에 넘어지지는

  • 태자가 날 버려? 좋아, 그럼 용상에 올라주지   제29화

    연정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으나, 이내 평소 표정을 되찾았다. 연정은 순빈을 직접 만난 적은 없었지만, 복경공주의 배동으로 궁에 드나들며 그녀가 황제의 총애를 믿고 교만하게 군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었다. 빈 이상의 비빈은 모두 황제의 총애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순빈은 빈 이하의 후궁이 조금이라도 총애를 얻으면 곧장 견제하고, 뒤에서 온갖 시기와 질투를 일삼기로 유명했다. 순빈은 속을 감추지 못했다. 좋고 싫은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황제는 그녀를 꽤 오랫동안 곁에 두었다.연정은 신빈이라는 봉호가 마음에 들었다. 황제가 나름의 양심은 있는 모양이었다. 실리를 챙겼으니, 견제를 좀 받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신첩, 폐하를 뵈옵니다.” 연정이 다가가 무릎을 굽혀 인사했다. 황제가 손을 들어 보이자,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이어 순빈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궁에 처음 들어와 모르는 것이 많사옵니다. 순빈께서 환영해 주시니 앞으로 자주 찾아뵙겠사옵니다. 부디 귀찮게 여기지 않으시길 바랄 뿐이옵니다.” 그녀는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말했다. 마치 순빈이 자신을 반기지 않을까 봐 겁을 먹은 것처럼 굴었다. 나약한 척, 아둔한 척하는 것은 연정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순빈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굳어졌다. 그녀는 웃는 둥 마는 둥 대꾸했다. “무장 집안 출신이라더니 성품은 참 가냘프고 겁이 많군요. 장군 집안의 딸답지 않사옵니다. 참으로 사랑스러우십니다. 폐하께서 입궁하자마자 빈으로 책봉하신 이유를 알겠사옵니다.” 순빈은 온화한 안색을 꾸며내고 있었으나, 말에는 뼈가 있었다. 겉으로는 고상한 척 꾸며대면서도, 질투심을 감추지 못하는 연정을 비꼬았다. 연정은 붉어진 눈시울로 애써 미소를 지었다.“순빈께서 오랫동안 총애를 받으셨으니, 폐하께서 가장 아끼시는 것도 순빈이겠지요.”순빈은 연정이 굴복하며 아첨하는 것에 속으로 흡족했으나, 곧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고는 다시 화가 치밀었다. ‘가식

  • 태자가 날 버려? 좋아, 그럼 용상에 올라주지   제28화

    함복궁 주전으로 돌아온 순빈은 화를 참지 못하고 찻잔을 내던졌다. “마마, 노여움을 푸십시오. 몸 상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시중드는 궁녀 청대가 다가와 순빈을 달래며, 어린 궁녀에게 바닥의 사기그릇 조각들을 치우고 차를 새로 올리라고 지시했다. 순빈은 창가 평상에 앉아서도 좀처럼 분이 풀리지 않았다.“정비마마께서 마마의 총애를 시기하시는 것이옵니다. 나이 들고 쇠약해진 데다가 폐하의 총애도 없으니 당연히 성격이 나쁠 수밖에요. 일일이 반응할 필요 없사옵니다.” 청대가 다시 다가와 부드럽게 권했다. 순빈은 정육품 태원부 현령의 딸로, 궁에서의 출신은 분명 낮았다. 팔 년 전, 황제가 태원 일대의 민정을 살피러 순시를 나갔다가 우연히 그녀를 발견해 궁으로 데려왔다. 그렇지 않았다면 대진국의 율법상 정오품 이하 관원의 딸인 그녀는 간택에 참여할 자격조차 없었다. 그렇기에 순빈은 입궁 초기에 신분 때문에 늘 고개를 들지 못했고, 때로는 궁인들에게 녹봉을 떼이기도 했다. 그렇게 이 년간 고생스럽게 보내다 우연한 하룻밤의 행운으로 점차 총애를 얻게 된 것이었다.총애를 얻은 후로 순빈은 겉으로는 여전히 가냘프고 매혹적인 모습을 유지했으나, 실상은 뒤에서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안달하며 경쟁심을 불태웠다. 달래기는 쉽지만, 그만큼 자극을 받으면 금세 발끈하는 성미였다.순빈의 안색이 점차 누그러졌으나, 분한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정비는 시야가 너무 좁아서 문제다. 소씨는 예전에 태자와 추문이 났던 여인이지. 그런데 이제 궁에까지 들어와 폐하의 총애까지 받았으니, 결코 얕봐선 안 된다.”“신빈을 견제할 생각은 않고 되려 본궁을 비웃다니! 명백히 본궁의 미천한 가문을 업신여기는 것이 아니더냐!” 순빈은 손에 쥔 손수건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는 내심 어렵게 얻은 총애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까 봐 두려웠다. 만약 가문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뒷배가 조금만 더 튼튼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온갖 방법을 동원해 남을 이간질하려 애쓰지는 않았을 것이다.“마

  • 태자가 날 버려? 좋아, 그럼 용상에 올라주지   제27화

    그녀는 근 이 년 동안 황제에게 가장 총애를 받은 순빈이었다. “본궁은 신빈의 출신이 고귀하고 삼공주의 배동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네. 성내는 물론이고 궁중에서도 그 명성이 아주 대단했다지? 본궁은 벌써부터 얼굴을 뵙고 싶어 견딜 수가 없네.”“아쉽게도 본궁은 출신도 미천하고 아이 하나 두지 못했으니… 그랬다면 진작 상서방에 들러 신빈의 고고한 자태를 뵙고 올 수 있었을 텐데.”순빈은 얼굴 가득 공격성 없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달걀형 얼굴에 둥근 눈을 가진 명랑한 인상이라 더욱 친근하고 진심처럼 보였다. 하지만 많은 이가 그녀의 말에 숨은 비유와 눈빛에 어린 야유를 알아차렸다. 그녀는 복경공주를 무시하며 연정을 높임으로써 연정과 가비 사이를 이간질하려 했다. 동시에 은근슬쩍 연정이 상서방에 있었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상서방은 공주들이 주로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태자와 황자가 공부하는 곳이었다. 연정과 태자의 옛일을 들춰 도황후를 불쾌하게 만들려는 의도였다. 도황후가 신빈을 더 미워하게 말이다. 과연 도황후의 얼굴에 걸려 있던 미소가 반쯤 사라졌고, 순빈을 보는 눈빛도 차가워졌다. 곁에 있던 가비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자기 딸의 배동이었던 아이가 후궁이 되었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저열한 이간질까지 일일이 반응할 수 없어 상덕 앞에서는 티를 내지 않았다.“순빈마마, 신빈마마께서는 현재 태사 부저에서 휴식을 취하고 계시며, 내일 진시에 황후마마께 문안 인사를 드리러 오실 예정이옵니다.” 상덕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척 태연하게 보고하고는 물러났다. 어전의 사람이 봉의궁을 떠나기 무섭게 순빈이 다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도대체 미색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폐하께서 직접 책봉하시는 영광을 누리는지 모르겠사옵니다. 게다가 봉호도 신이라니요, 모든 봉호 중에서도 으뜸이라 황후마마의 자리를 겨냥한 것 같기도…”순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도황후의 오른팔이었던 정비가 말을 끊었다. “순빈, 출신도 미천하고 학식이 없으면 말

  • 태자가 날 버려? 좋아, 그럼 용상에 올라주지   제26화

    연정은 손을 멈추고 더는 만지지 않았다. 그녀는 황제의 몸과 그가 주는 쾌락을 좋아했지만, 더는 버티기 힘들었다.황제는 그대로 연정을 품에 안았다. 두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친밀하고 행복한 부부처럼 조용히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한참 뒤, 황제의 호흡이 서서히 안정되었고, 연정은 이미 그의 품에서 다시 잠들었다. 그는 연정을 조심스럽게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 뒤에야 몸을 돌려 나갔다.밖으로 나와 용상에 앉은 황제는 평소의 위엄을 되찾고 직접 책봉 교지를 써 내려갔다. “태사의 적녀 연정을 빈으로 책봉하고, 봉호는 신(宸)으로 하며 영수궁에 거처하게 하라.” “네가 직접 처리하거라.”황제는 관심을 가진 여인에게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상덕은 놀란 티를 감추고 황급히 대답했다. “예, 분부 받들겠사옵니다.”그는 공손히 두 손으로 성지를 받았다. 상덕은 눈치 없이 신빈의 행방을 물을 수 없었다. 그날 밤의 일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인 데다, 오늘 아침 황제를 깨우러 갔을 때 난각 안의 소리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신빈의 입궁은 이미 확정된 일이었다. 번거로운 절차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를 하루빨리 궁에 들이는 일이었다.상덕은 직접 사람들을 이끌고 궁무사로 가 기록을 남겼다. 옥첩에 올릴 날짜를 택하고 영수궁을 청소하라는 명도 내렸다. 이어 성지를 내리는 내관들을 이끌고 동서 육궁에 두루 알렸다.*상덕이 사람들을 이끌고 봉의궁에 도착했을 때, 육궁의 비빈들은 황후에게 문안 인사를 올리고 흩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하늘의 뜻을 받들어 황제는 조서를 내리노라. 태사 소씨의 딸 연정은 성품이 온유하고 품격이 단정하며 용모가 우아하고 현숙하다. 이에 신빈으로 책봉하고 영수궁 주전에 거처하게 하라.”간결 명쾌한 성지는 누가 봐도 황제가 직접 쓴 것이었다. 관례대로 한림원에 초안을 맡겼다면 최소 하루는 걸렸을 터였다. 난해하고 화려한 어구로 천자의 위엄을 드러냈겠지만, 황제가 친히 쓴 조서만큼 무게와 의미가 실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황제가 직

  • 태자가 날 버려? 좋아, 그럼 용상에 올라주지   제25화

    거대한 행렬이 서서히 출발했다. 드높게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등지고 궁문을 나선 그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높은 말 위에 오른 태자는 뒤따르는 긴 행렬과 물자를 돌아보았다. 어둡게 가라앉은 눈에는 그 광경이 그저 눈이 시릴 만큼 따갑게 비칠 뿐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손에 든 영락(瓔珞)을 내려다보았다. 연정이 생애 처음으로 만들어 준 선물이었다. ‘이번엔 내 잘못이다. 그 아이를 오해하지 말아야 했다. 그 아이를 내세워 이익을 취하려 해서도 안 됐다. 다행히 연정은 이 모든 사실을 알지 못한다. 공을 세우고 돌아가서 다시 청혼을 시도해야겠다. 정 안 된다면…’ 태자의 표정이 점차 매서워졌다. 그는 영락을 소중히 품에 넣고, 저 높이 떠오른 해를 쳐다보았다. ‘아바마마께서도… 결국 언젠가는 세상을 뜨실 거다.’일행은 서둘러 진주로 향했다.*한편, 백관들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황제가 사라진 뒤였다. 황제의 뒷모습을 향한 상덕의 외침만이 공허하게 울렸다. “폐하, 거동하시옵소서.” “폐하, 조심히 가시옵소서.”황제는 어서방으로 돌아와 의복을 갈아입고 난각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연정이 잠들어 있었다. 연정은 그가 떠날 때와 같은 자세로 웅크린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비단 이불이 허리께까지 흘러내려 둥그스름한 어깨와 가느다란 목덜미가 드러났는데, 그 위에 남은 야릇한 흔적들은 지난밤의 광기 어린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폭포 같은 머리카락이 베개 위에 흐드러져 있어 그녀의 작은 얼굴을 더욱 창백하고 투명하게 보이게 했다. 반쯤 가려진 모습이 더 유혹적이었다.황제가 다가가 연정의 얼굴을 덮은 검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귀 뒤로 넘겼다. 불그스레한 그녀의 예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입술은 빗물을 머금은 꽃잎처럼 살짝 부어 있었다. 누군가 꺾어가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황제는 잠시 망설였고, 그의 눈에는 욕망이 소용돌이쳤다. 결국 연정은 황제의 입맞춤으로 잠에서 깼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황제의 품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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