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S급 세라.
서윤이 대화방을 누르자 가장 먼저 뜬 사진은 결혼식 전날 밤의 준혁이었다.
호텔 침대에 걸터앉은 채 셔츠 단추를 풀고 있었고,
바닥에는 다음 날 예식장에서 신을 구두가 아무렇게나 벗겨져 있었다.
사진이 찍힌 시각은 밤 11시 47분.
서윤은 같은 시간 신혼집에서 혼자 청첩장 봉투를 정리하며 준혁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 아래에는 문세라의 메시지가 붙어 있었다.
[내일 결혼하는 새끼가 오늘 나랑 자도 돼?]
준혁의 답장은 더 짧았다.
[결혼한다고 고추까지 묶이는 건 아니잖아.]
서윤은 화면을 위로 올렸다. 두 사람의 대화는 결혼식 전날부터 시작된 게 아니었다.
준혁이 서윤에게 프러포즈한 날, 상견례를 한 날, 웨딩드레스를 고른 날에도 세라는 같은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오늘 네 여자 드레스 골랐다며?]
[응. 살 조금만 더 찌면 터질 것 같던데.]
[결혼하기도 전에 질렸어?]
[원래 오래 만난 여자는 여자가 아니라 가족이야. 꼴리려고 데리고 사는 거 아니지.]
세라는 그 말을 비웃듯 답했다.
[가족한테는 고추 안 서고, 나한테는 선다? 편리한 논리네.]
[그러니까 네가 S급이지.]
서윤은 십 년 동안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겪었다.
준혁의 셔츠에서 낯선 향수 냄새가 나거나, 새벽에 여자에게서 전화가 오거나,
모텔 결제 문자가 뜰 때마다 그는 마지막이라고 했다.
“남자들이 술 먹으면 실수할 수도 있지.”
“걔가 먼저 달라붙었다니까?”
“결혼하면 다 정리할게. 지금은 아직 총각이잖아.”
그 말을 믿은 건 서윤이었다. 십 년을 버티고 결혼까지 하면 준혁도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연애 중 바람은 철없는 남자의 실수지만, 남편이 되면 가정을 지킬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준혁에게 결혼은 바람을 끝내는 약속이 아니라,
아내가 쉽게 떠나지 못하게 묶어두는 계약이었다.
서윤이 화면을 넘기자 웨딩드레스를 입은 자신의 사진이 나타났다.
드레스숍 직원에게만 보냈던 가봉 사진이었다.
[이게 네 신부야?]
[사진빨이지. 실제로 보면 허벅지 장난 아냐.]
[그래도 이때는 지금보다 사람 같네.]
[임신만 안 하면 유지할 줄 알았지. 애 낳고 이렇게 돼지 될 줄 누가 알았냐.]
그 아래에는 최근 서윤의 뒷모습을 몰래 찍은 사진도 있었다.
주방에서 하은의 도시락을 싸고 있을 때였다.
[와, 엉덩이야 짐짝이야?]
[저 살 속에 보지 있는 거 맞아?]
[나도 맨날 못 찾아. 씨발, 구멍 찾다가 고추 죽는다니까.]
준혁은 아내의 몸을 훔쳐 찍어 상간녀에게 보냈고, 세라는 그 사진 위에 돼지 이모티콘을 붙였다.
서윤이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려는 순간 준혁이 손목을 잡아 기기를 빼앗았다.
“세라 방까지 봤어?”
“결혼식 전날에도 호텔에 있었네.”
“그게 몇 년 전 일인데 이제 와서 지랄이야?”
“그날 나한테는 회사 사람들하고 술 마신다고 했잖아.”
“결혼 전이었잖아.”
“결혼식 열두 시간 전이었어.”
“식 올리기 전이면 법적으로 남이야. 내가 누구랑 섹스하든 네가 뭔 상관인데?”
“십 년 만난 여자한테 할 말이 그거야?”
준혁은 휴대전화를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십 년 만났으니까 결혼까지 해줬잖아. 솔직히 네가 나 아니면 누구랑 결혼했겠어?
친정도 별거 없고, 외모도 애매하고, 성격은 질척거리고. 내가 책임져준 걸 사랑으로 착각하지 마.”
“그럼 왜 나한테 결혼하면 달라진다고 했어?”
“네가 안 그럼 헤어진다고 울고불고했으니까. 그때 대충 달래려고 한 말을 평생 계약서처럼 들이미냐?”
“나는 그 말 믿고 결혼했어.”
“그건 네가 멍청한 거지, 내가 사기 친 게 아니야.”
준혁은 식탁에 놓인 서윤의 결혼사진을 집어 들었다.
사진 속 서윤은 45킬로였고, 아직 남편의 바람을 자신의 부족함으로 계산하지 않던 얼굴이었다.
“그나마 이때는 데리고 다닐 만했네. 지금처럼 처먹고 토할 줄 알았으면 결혼식장에서 도망갔지.”
“세라랑 결혼하지 그랬어.”
“세라는 너랑 급이 달라. 걔는 내가 원한다고 가질 수 있는 여자가 아니야.”
“나는 가질 수 있어서 결혼했고?”
“너는 안 버리고 데리고 있어도 되는 여자였지.”
준혁은 결혼사진을 식탁 위로 던지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잠긴 뒤 서윤은 다시 보조 휴대전화를 켰다.
삭제되지 않은 사진 정보에는 촬영자 이름까지 남아 있었다.
결혼식 전날 밤, 호텔 침대 위의 준혁을 찍은 사람.
문세라.
“대표님 몸으로 직접 찍는 건 반대입니다.”촬영팀이 가져온 모델 후보는 전부 마른 여자들이었다.서윤은 사진을 한 장씩 넘기다가 마지막 장에서 손을 멈췄다.“제품은 모든 체형을 위한 건데 광고에는 왜 한 체형만 있어야 하죠?”촬영 담당자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아기띠 광고는 화면이 예뻐야 하니까요. 대표님은 인터뷰만 들어가도 충분합니다.”“그러면 우리 제품이 왜 만들어졌는지는 안 보이잖아요.”리본베이비가 시작된 이유는 예쁜 몸을 더 예쁘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기존 육아용품에서 밀려난 몸도 소비자라는 사실에서 출발했다.서윤은 가방에 넣어둔 건강검사 결과표를 한 번 만졌다.체중은 70kg대로 내려왔다.97.8kg이던 때보다 많이 줄었지만 감량이 끝난 몸은 아니었다.그렇다고 더 빠질 때까지 기다릴 생각도 없었다.지금 이 몸으로 제품이 필요한 사람이 이미 있었다.“제가 모델 할게요.”촬영 담당자가 다시 물었다.“대표님이 직접요?”“네.”“얼굴 위주로 찍는 방법도 있습니다.”서윤은 아기띠 샘플을 들어 올렸다.“얼굴만 찍을 거면 이 제품을 만든 이유가 없어요.”촬영 당일, 서윤은 몸을 가려주는 옷 대신 활동하기 편한 셔츠와 바지를 골랐다.카메라 앞에 서자 몸부터 움츠러드는 습관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97.8kg 시절 사진을 생방송에 띄워놓고 웃던 채린의 목소리도 떠올랐다.돼지가 아기띠를 판다고 했다.서윤은 셔츠 끝을 아래로 잡아당기다가 손을 놓았다.촬영 담당자가 위치를 잡아줬다.“대표님, 조금 옆으로 서실게요. 그러면 훨씬 날씬하게 나와요.”“정면으로 찍어주세요.”“정면은 배가 그대로 보여요.”서윤이 카메라를 바라봤다.“그래서 정면으로 찍는 거예요.”아기띠를 허리에 둘렀다.한쪽 끈을 당기고, 반대쪽도 몸에 맞게 조절했다.예전 제품을 사용할 때는 자신의 몸을 끈 안으로 욱여넣어야 했다.이번에는 제품이 움직였다.몸은 그대로 있었고 끈의 길이가 달라졌다.찰칵.첫 사진이 모니터에 떴다.서윤의 시선은
“리본베이비 지분 51%는 내 앞으로 돌려.”어제까지 재봉틀을 치우라던 준혁이 오늘은 최대주주 자리를 요구했다.서윤은 노트북에서 시선을 들었다.“당신이 왜?”“왜긴 왜야. 가족 사업이잖아.”300개가 팔리기 전까지는 서윤 혼자 벌인 장난이었다.미선의 허위 후기까지 무너지고 추가 문의가 계속 들어오자 갑자기 ‘가족’이라는 말이 붙었다.실패할 때는 서윤의 일이었고, 돈이 될 것 같아지자 가족 사업이 됐다.“51%인 이유는?”“경영권은 한 사람이 잡아야 하니까.”“왜 그 한 사람이 당신인데?”준혁은 기다렸다는 듯 의자를 당겨 앉았다.“네가 어디서 만들기 시작했어? 내 집이잖아. 전기세, 수도세, 생활비도 내가 냈고.내가 그 기반을 만들어줬으니까 사실상 초기 투자자인 셈이지.”서윤이 물었다.“리본베이비에 얼마 넣었는데?”“방금 설명했잖아.”“회사에 넣은 돈.”준혁이 입을 다물었다.“재봉틀 살 때 얼마 보냈어?”“그런 식으로 계산할 문제가 아니야.”“원단비는?”“한서윤.”“외주비, 샘플 제작비, 안전시험 비용은?”준혁의 얼굴이 굳었다.서윤은 더 묻지 않고 사업 초기 자금 내역을 열었다.중고 재봉틀.원단과 버클.봉제 외주.샘플 제작.안전시험.사업 준비 비용.출금 계좌는 전부 하나였다.혼인신고 전 광고회사에서 받은 서윤의 퇴직금 계좌.“여기서 시작했어.”준혁이 화면을 훑었다.“결혼했으면 그 돈도 가족 돈이지.”“생활비 카드 막을 때는 가족 아니었잖아.”“그거랑 지금은 다르지.”“뭐가?”“사업은 커지면 재산이 되잖아.”서윤은 그제야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가난할 때는 자기 돈.돈이 되면 부부 돈.준혁에게 가족이라는 말은 함께 책임진다는 뜻이 아니라 가져갈 것이 생겼다는 뜻이었다.서윤은 화면을 아래로 내렸다.투입 자금 항목을 이름별로 정리해둔 표가 나왔다.한서윤.퇴직금 일부.그 아래 강준혁.0원.준혁이 표를 보고 인상을 썼다.“이딴 표 하나로 부부 사이를 나눌 거야?”“지분 51%를
300개를 아직 한 개도 보내지 않았는데, 첫 사용 후기는 별점 1점이었다.‘아기가 떨어질 뻔했습니다. 이런 제품을 어떻게 팔죠?’서윤은 후기보다 주문번호부터 확인했다.없었다.안전시험이 끝나기 전이라 예약자 누구에게도 제품을 발송하지 않은 상태였다.사용자가 존재할 수 없는데 사용 후기가 먼저 올라온 것이다.10분도 지나지 않아 비슷한 글이 붙기 시작했다.‘착용 중 버클이 풀렸어요.’‘끈이 끊어져 아이가 다칠 뻔했습니다.’‘아이 쓰는 제품을 이렇게 만들어도 되는 건가요?’글의 표현은 달랐지만 모두 같은 곳을 찔렀다.안전.서윤은 댓글을 달지 않았다.작성 계정과 구매 이력, 게시 시각만 따로 정리했다.계정 대부분은 최근 만들어졌고, 리본베이비 구매 기록은 하나도 없었다.오전이 되기도 전에 같은 내용의 글이 육아 커뮤니티 여러 곳으로 퍼졌다.그때 미선에게 전화가 왔다.“버클 풀린다며? 그러게 내가 뭐랬어.”서윤의 손이 멈췄다.“형님은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뭐?”“저 아직 어디에도 해명 안 했는데요.”잠깐의 침묵 뒤 미선이 목소리를 높였다.“인터넷에 다 떠 있는데 내가 못 볼 이유가 있어?”“그렇죠.”서윤은 화면에 떠 있는 후기 하나를 열었다.“그런데 이상하네요.”“뭐가?”“아직 한 개도 출고 안 했거든요.”이번에는 미선이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사용하다 버클이 풀렸다는 사람들은 어디서 제품을 받았을까요?”“나한테 그걸 왜 물어?”“저도 그게 궁금해서요.”서윤은 통화를 끊었다.화면에는 또 새로운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시험도 안 받은 제품을 파는 대표랍니다.’서윤은 처음으로 움직였다.제품 페이지 맨 위에 문장 하나를 올렸다.현재 출고 수량: 0건.그 아래 허위 후기 하나를 그대로 붙였다.‘사용하다 버클이 풀렸습니다.’설명은 더하지 않았다.두 문장이 나란히 놓인 것만으로 충분했다.댓글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출고를 안 했는데 어떻게 썼다는 거죠?’‘구매 인증부터 해야 하는 거
“돼지가 아기띠를 판대요.”윤채린은 웃으며 서윤의 97.8kg 시절 사진을 생방송 화면 가득 띄웠다.아이를 안고 마트 앞에 서 있던 사진이었다. 서윤조차 언제 찍힌 줄 몰랐던 모습이었다.“이 몸으로 직접 테스트했나 봐요. 그래서 이름이 체형 조절형인가?”채팅창에 웃는 표시가 빠르게 올라왔다.‘진짜 대표 맞아요?’‘아기띠보다 대표가 더 무거운 거 아니야?’‘저 사진 실화?’채린은 기다렸다는 듯 리본베이비 제품 페이지까지 띄웠다.“엄마의 몸을 줄이지 않습니다. 제품의 기준을 넓힙니다.”문구를 읽은 채린이 웃었다.“그냥 살 안 빼겠다는 말을 이렇게 포장한 거죠.”서윤은 집 식탁에서 방송을 보고 있었다.전날 17건의 사전예약이 들어온 뒤에도 문의는 계속됐다.서윤은 봉제 작업실과 보강 샘플 일정을 다시 맞춘 다음 예약 가능 수량을 300개까지 늘렸다.안전시험을 통과하기 전에는 발송하지 않고, 결과에 따라 전액 환불한다는 조건도 그대로였다.채린은 서윤의 사진 옆에 아기띠 이미지를 붙였다.“근데 이거 보세요. 끈이 왜 이렇게 많아? 그냥 여기저기 덕지덕지 붙여놓은 거 아니야?”그녀가 비웃으려고 허리 부분을 확대했다.바로 그때 댓글 하나가 올라왔다.‘잠깐만. 저거 양쪽에서 따로 줄이는 거예요?’곧 다른 댓글이 붙었다.‘그러면 남편이랑 같이 써도 매번 처음부터 조절 안 해도 되겠는데?’‘허리끈 최대 길이 몇이에요?’채린은 댓글을 읽다가 표정이 굳었다.“아니, 제품을 보라는 방송이 아니고요. 이 대표가 얼마나 웃긴지 보라고...”‘제품 링크 주세요.’‘저 제왕절개하고 기존 아기띠 못 쓰는데 배 부분 궁금해요.’‘큰 사이즈만 만든 게 아니라 조절 폭 자체를 넓힌 건가요?’채린은 오히려 제품 설명 화면을 더 크게 띄웠다.“별거 없어요. 여기 보세요. 그냥 끈을 양쪽에 더 붙인 거잖아.”그 순간 질문이 더 쏟아졌다.‘양쪽 따로 조절되는 거 맞네요.’‘남편이랑 체격 차이 큰 집에는 좋겠다.’‘저거 혼자 당길 수 있는 위치인
서윤은 아침을 다 먹고도 화장실로 가지 않았다.체중계 숫자는 어제와 거의 같았다.그래도 그날 처음으로, 먹은 것을 없애지 않고 하루를 시작했다.식탁 위에는 병원에서 받은 기록표가 펼쳐져 있었다.아침 식사.먹음.구토 여부.서윤은 그 칸을 비워둔 채 펜을 내려놓았다. 아직 하루가 끝나지 않았다.‘없음’이라고 쓰기엔 자신이 없었다.준혁이 주방으로 나오다 빈 그릇을 봤다.“병원까지 갔다면서 그렇게 먹어?”“병원에서 먹으라고 했어.”“체중은?”“오늘은 안 볼 거야.”“무서우니까?”서윤은 잠깐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응. 무서울 때는 안 볼 거야.”예전 같으면 인정하지 못했을 말이었다. 숫자가 무섭다는 사실보다,그 숫자 때문에 다시 하루 전체를 망칠 자신이 더 무서웠다.준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냉장고 문을 닫았다.“그러고도 살이 빠지겠냐.”서윤은 기록표를 자기 쪽으로 당겼다.“오늘 목표는 그게 아니야.”준혁이 비웃었지만 서윤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노트북을 열자 어젯밤 첫 사전예약 결제 화면이 그대로 떠 있었다.서윤은 첫 주문을 몇 번이나 확인한 뒤 예약 페이지를 다시 정리했다.안전시험 통과 후 발송, 시험 결과에 따라 전액 환불,제작 단계와 변경 사항 공개. 조건은 그대로 두고 사전예약 수량만 20개로 늘렸다.설문 참여자들에게도 짧은 공지를 올렸다.‘첫 샘플의 약한 부분을 보강 중입니다. 정식 판매가 아니라 개발 과정에 동의한 분만 예약해주세요.’곧 문의가 들어왔다.‘체형 조절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요?’‘제왕절개 후에도 쓸 수 있나요?’‘안전시험 결과는 언제 공개되나요?’서윤은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지 않았다.‘현재 샘플 보강 단계입니다.’‘사용 가능 범위는 시험 뒤 공개하겠습니다.’‘안전시험을 통과하기 전에는 발송하지 않습니다.’원단 업체 확인.버클 규격 비교.보강 샘플 재제작.안전시험 기관 문의.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업체 정보를 비교하다 보니 오후 4시가 넘었다.그제야 점심을 먹
준혁이 사업자등록 화면에 적힌 ‘리본베이비’를 지웠다.대신 입력한 이름은 ‘강림베이비’였다.“내 집에서 시작했으면 강림 이름으로 해야지.”서윤은 준혁의 손에서 노트북을 가져왔다.‘강림’ 세 글자를 지운 뒤 화면을 자기 쪽으로 돌렸다.“당신 집안 이름은 안 써.”“왜? 강림 붙이면 사람들이 믿어줄 텐데?”“내가 만든 물건에 강림이 한 일이 없으니까.”준혁은 식탁 위에 놓인 중고 재봉틀과 첫 샘플을 훑어봤다.미선이 던져 박음질이 벌어졌던 부분에는 이중으로 보강할 위치가 표시돼 있었다.“집도 내 집이고, 여기서 먹고 자면서 만든 거잖아. 그런데 내 이름은 빼겠다고?”“당신이 보탠 건 장소가 아니라 방해야.”“재봉틀이랑 원단 살 돈은 어디서 났는데?”서윤은 혼인신고 전 날짜가 찍힌 통장 내역을 띄웠다.결혼 전 다니던 광고회사에서 받은 퇴직금 가운데 쓰지 않고 남겨둔 돈이었다.“재봉틀, 원단, 버클, 외주비, 등록 비용까지 전부 여기서 나갔어.”서윤이 지출 내역을 차례로 짚었다.“당신 돈은 1원도 안 들어갔고.”준혁은 화면을 보고도 물러서지 않았다.“결혼했으면 그것도 가족 돈이지.”“당신 여자들 선물값도 가족 돈이라서 나한테 허락받았어?”“또 그 얘기야?”“당신 돈은 늘 당신 거고, 내 돈만 가족 돈이라는 얘기잖아.”서윤은 통장 화면을 닫았다.준혁이 첫 샘플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렸다.“이 천 쪼가리 하나 만들고 회사라도 차릴 생각이야?”“응.”“대표도 하고?”“그것도 내가 해.”준혁이 웃었다.“사업이 장난인 줄 알아? 주문도 없고, 안전시험도 안 했고, 생산할 공장도 없잖아.”“그래서 지금 등록하는 거야. 하나씩 만들려고.”“누가 돼지가 만든 아기띠를 돈 주고 사?”미선이 남기고 간 말을 준혁이 그대로 주워 말했다.서윤은 반박하지 않았다. 설문 응답을 정리한 화면을 열었다.아기띠 허리끈, 복부 압박, 어깨 통증,혼자 착용하기 어려운 버클에 관한 답변이 1,003건이나 모여 있었다.“적어도 이 사람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