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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열 명의 이름

Author: 루니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8-02 19:45:05

생활비 카드가 정지된 다음 날,

준혁은 아내에게 계란 한 판을 사온 영수증까지 내놓으라고 했다.

“누나 카드값 빠질 때까지 네가 좀 굶어. 어차피 처먹고 토할 거잖아.”

서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미선이 가져간 카드로 결제된 금액은 하루 만에 680만 원이었다.

명품 매장, 피부과, 호텔 라운지. 하은의 유치원비는 미납으로 넘어갔지만

준혁은 누나가 스트레스 받아 쓴 돈이니 가족이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유치원비 먼저 내줘.”

“네가 무릎이나 제대로 꿇었으면 누나가 카드 안 가져갔지.”

“당신이 줬잖아.”

“네가 사고 친 대가를 가족끼리 나눠낸 거야. 또 피해자 코스프레 하지 마.”

준혁은 휴대전화를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잠시 뒤 야동 소리가 거실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충전기에 꽂아둔 보조 휴대전화였다.

화면은 잠기지 않았고 메신저 알림이 연달아 쌓였다.

[오빠 오늘 내 차례 맞지?]

[호텔 바꿨어. 네 돼지 마누라 동선 겹치면 귀찮아.]

[지난번처럼 와이프 전화 받으면 바로 식는다.]

서윤은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최근 대화방만 열두 개였다.

여자 이름 옆에는 요일과 장소가 붙어 있었다.

월요일 윤채린, 화요일 오유진, 수요일 최라희, 목요일 배지아.

사람을 만나는 일정이 아니라 거래처 관리표 같았다.

어떤 대화방에는 ‘원나잇’, 어떤 곳에는 ‘고정’, 또 다른 곳에는 ‘술만’이라고 적혀 있었다.

서윤은 첫 번째 대화방을 열었다.

[오빠 와이프 진짜 100 킬로야?]

[98. 곧 세 자리 찍을 듯.]

[그 몸이랑도 해?]

[해야 조용하지. 아직 사랑받는 줄 알아. 씨발 구멍찾다가 시간만 다 가지만ㅋㅋㅋ]

서윤은 대화를 위에서부터 캡처했다.

결혼기념일 밤 준혁이 회식이라던 시간에는 채린과 호텔에 있었고,

하은이 폐렴으로 응급실에 갔던 날에는 유진에게 ‘애는 엄마가 보면 된다’고 보냈다.

다른 대화방을 열자 서윤의 결혼사진과 최근 사진이 나란히 올라와 있었다.

[이게 같은 여자라고?]

[결혼할 때 사기당했지.]

[이혼해.]

[왜? 집 지키고 애 보고 부모님 상대해주는 공짜 도우미인데.]

[그래도 마누라랑 섹스는 해?]

[가끔. 아내 자리 뺏길까 봐 겁줘야 말 잘 듣거든.]

준혁은 여자들에게 아내의 섭식장애까지 웃음거리로 팔고 있었다.

[먹고 토해서 화장실 막혔다니까.]

[더럽다. 그런 여자랑 한 침대 써?]

[각방 쓴 지 오래야. 필요할 때만 불러.]

[병원은 왜 보내줘?]

[저기서 더 미친년되서 조현병이라도 와봐. 나 죽이면 어떡해, 치료비도 아까워 죽겠어.]

대화방은 끝이 없었다. 어느 여자는 서윤의 잠옷을 입고 사진을 찍었고,

어느 여자는 부부 침실에서 준혁과 함께 아내의 몸을 조롱했다.

준혁은 그때마다 웃는 이모티콘을 붙였고, 더 심한 말을 하는 여자에게 다음 약속을 먼저 잡아줬다.

서윤은 다음 대화방을 열었다. 거기에는 준혁이 여자들을 평가한 점수표가 있었다.

외모, 몸매, 섹스, 말 잘 듣는 정도, 돈 드는 정도. 이름 옆에는 유지, 보류,

교체가 적혀 있었고 맨 아래에는 아내라는 별도 항목이 있었다.

[한서윤 / 외모 0 / 몸매 마이너스 / 집안일 가능 / 육아 가능 / 이혼 시 재산 문제 있음 / 유지.]

사람도 아니었다. 준혁에게 서윤은 버리지 못한 재고였고,

여자들은 성능과 비용을 따져 갈아 끼우는 목록이었다.

욕실 물소리가 멈췄다.

서윤은 파일 공유를 눌러 자신의 이메일로 대화 기록과 점수표를 보냈다.

전송 표시가 끝나기 전에 준혁이 나왔다.

“너 지금 뭐 해?”

그는 허리에 수건만 두른 채 달려와 휴대전화를 빼앗았다.

서윤이 이미 보낸 메일함을 닫자 준혁은 대화방 목록부터 확인했다.

“썅년이 남의 사생활을 뒤져?”

“아내 몰래 여자 열두 명 만나는 게 사생활이야?”

“열두 명 아니야.”

“그게 지금 할 말이야?”

“예전에 정리 못 한 애들까지 남아 있어서 많아 보이는 거지. 실제로 만나는 건 얼마 안 돼.”

“얼마 안 되는 게 몇 명인데?”

“그걸 왜 네가 알아야 해? 네가 내 성욕을 책임졌어? 내 체면을 세워줬어?

돈을 벌어왔어? 아내 노릇 하나도 못 하면서 남편 사생활까지 관리하려고 들어?”

“나를 점수표에 올려놨어.”

“그래서 유지라고 했잖아. 버리진 않겠다는 뜻인데 고마운 줄은 모르고 또 지랄이네.”

“하은이 응급실에 있던 날에도 여자랑 있었어.”

“네가 애 엄마잖아. 내가 옆에 붙어 있으면 폐렴이 낫냐?”

“결혼기념일에는?”

“기념일 챙기면 네 살이 빠져? 의미 없는 이벤트에 돈 쓰느니 내가 즐기는 데 쓰는 게 낫지.”

서윤은 준혁의 손에서 휴대전화를 다시 가져오려 했지만 그는 기기를 머리 위로 올렸다.

“한 번만 더 뒤지면 진짜 이혼해버린다.

너 같은 년이 애 데리고 어디서 사나 보자.

친정도 없고 돈도 없고 몸은 저 꼴인데, 누가 받아줄 것 같아?”

“그 여자들한테 가. 열두 명 중 하나는 받아주겠지.”

준혁은 휴대전화를 식탁 위에 내려쳤다.

“착각하지 마. 걔들은 섹스하려고 만나는 거고, 너는 집 지키라고 데리고 사는 거야.

네가 걔들이랑 같은 급인 줄 알아? 걔들은 돈 주고라도 만나고 싶은 여자고,

넌 돈 줘야 겨우 데리고 사는 여자야.”

화면이 충격으로 다시 켜졌다.

고정된 대화방 하나가 목록 맨 위에 떠 있었다.

다른 여자들은 이름이나 요일로 저장돼 있었지만 그 여자만 등급이 붙어 있었다.

S급 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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