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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뜻밖의 스카우트

Author: 노에빌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30 04:10:39

오전 5시 58분.

나는 교수실 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오늘은 기필코 정시에 퇴근하리라. 아니, 그 전에 살아남으리라.

어제 강태혁이 보낸 문자 때문에 밤새 잠을 설쳤다.

[교수님, 혹시 제 사직서 보관함 만드셨습니까?]

[응. 네 이름으로 된 서랍 하나.]

이 인간은 진짜 어디까지 갈 생각인 걸까. 나는 손에 들린 커피를 결연하게 한 모금 마셨다.

문을 열자마자 강태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늦었네.”

나는 벽에 걸린 시계를 가리켰다.

“6시 2분 전인데요.”

“문 앞에서 뭐 했어?”

“교수님과의 만남을 앞두고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그럴 시간에 환자 상태나 한 번 더 확인하지.”

“환자는 어제 확인했고, 교수님은 매일 봐도 적응이 안 되니까요.”

강태혁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한채이.”

“네.”

“너 오늘 나한테 죽고 싶어?”

“아뇨. 오래 살고 싶습니다.”

“그럼 입 다물고 앉아.”

“네.”

나는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오늘도 나의 패배였다. 아니, 정확히는 전략적 후퇴였다.

“오늘 오전 회진 끝나고 성형외과에 가.”

‘…응?’

나는 눈을 깜빡였다.

“네?”

“못 들었어?”

“아니, 들었는데요.”

“그럼 왜 멍청하게 쳐다봐?”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교수님, 혹시 제가 어제 사직서 쓴 거 보셨어요?”

“네가 사직서를 쓴 게 하루 이틀이야?”

“그런데 왜 성형외과에 가라고 하세요?”

강태혁이 서류를 내밀었다.

“협진 의뢰야. 흉부외과 환자 수술 전 평가 때문에 성형외과에서 확인할 게 있어.”

나는 서류를 받아 들었다.

“아….”

“왜. 아쉬워?”

“아니요. 순간 제 인생이 드디어 정상화되는 줄 알았습니다.”

“꿈 깨.”

“네.”

“그리고 거기서 딴생각하지 마.”

나는 서류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딴생각? 성형외과에 가서 딴생각을 하지 말라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내가 무려 4년 동안 잊고 살았던 나의 원래 꿈이 성형외과였다. 아름다운 얼굴을 만들고, 환자의 만족도를 높이고, 개원해서 돈을 벌고, 건물을 사고, 더 큰 병원을 운영하는 삶. 그 모든 것이 아직 내 마음속에 살아 있었다.

성형외과. 아, 그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교수님.”

“왜.”

“저 성형외과에서 밥 먹고 와도 됩니까?”

“안 돼.”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네 표정이 이미 점심까지 먹고 오겠다고 말하고 있어.”

‘…이젠 독심술까지 하네.’

나는 서류를 품에 안았다.

“다녀오겠습니다.”

“한채이.”

“네?”

“한 시간.”

“네.”

“정확히 한 시간 뒤에 돌아와.”

“네.”

“그리고 네가 거기서 무슨 헛소리를 하고 다니는지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

나는 문 앞에서 멈췄다.

“교수님.”

“뭐.”

“혹시 저 좋아하세요?”

정적. 강태혁의 표정이 굳었다. 나는 웃음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어디 가는지까지 감시하시니까요.”

“…….”

“아, 아니면 제가 없으면 일할 사람이 없어서 그러시는 거죠?”

“한채이.”

“네.”

“지금 당장 나가.”

“넵!”

나는 냉큼 문을 닫았다. 복도로 나오자마자 웃음이 터졌다.

아, 오늘은 왠지 느낌이 좋았다. 성형외과에 가는 날이니까.

***

성형외과 외래는 평화로웠다. 정확히 말하면 흉부외과에 비해 평화로웠다.

사람들은 차분하게 진료를 기다렸고, 의료진은 비교적 여유롭게 환자를 안내했다.

나는 복도를 걸으며 감탄했다. 세상에. 여기는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누군가 차트를 던지지도 않는다. 교수가 복도에서 레지던트의 이름을 세 번 연속 부르며 살기를 뿜지도 않는다.

‘그래 이게 병원이지.‘

내가 원했던 삶이 바로 이런 거였다.

“어? 한채이 선생님?”

고개를 돌리자 성형외과 3년 차 레지던트 박수진이 서 있었다. 의과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수진아!”

“웬일이에요? 흉부외과에서 사람이 다 오네.”

“협진 왔어. 겸사겸사 이쪽 공기 좀 마시려고.”

수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도 흉부외과에 있어요? 진짜 대단하다.”

“대단한 게 아니라 탈출을 못 하는 거야.”

“교수님이 그렇게 무서워요?”

나는 수진의 어깨를 붙잡았다.

“박수진. 너는 지금 네가 얼마나 행복한 과에 있는지 알아야 해.”

“아, 진짜 왜 그래요!”

“여기는 밥을 먹을 수 있잖아.”

“여기도 바쁠 땐 못 먹어요.”

“그래도 너는 사직서 전용 서랍이 없잖아.”

수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요?”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는 한참 웃었다. 그때 외래 진료실 문이 열렸다.

“한채이 선생?”

고개를 돌리자 성형외과 과장인 서정민 교수가 서 있었다.

“오랜만이네. 흉부외과에서 고생한다며?”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협진 때문에 왔어?”

“네. 여기 의뢰서 있습니다.”

서정민 교수는 서류를 받아 훑어보더니 내게 물었다.

“그런데 한 선생, 아직도 성형외과 생각 있어?”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네?”

“인턴 때 기억나서. 그때 한 선생이 우리 과에 오고 싶어 했잖아.”

“그랬습니다.”

“손도 좋고 감각도 좋았지. 지금도 그럴 거고.”

교수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 과에 자리가 나면 지원할 생각 있어?”

‘…세상에. 이건 꿈인가? 나는 지금 성형외과 과장님에게 직접 스카우트 제안을 받고 있는 건가?’

“교수님, 저는….”

“당장 답할 필요는 없어. 전문의 취득 후 진로 고민할 때 연락해. 우리도 좋은 사람은 언제든 환영이니까.”

나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심장이 뛰었다. 4년 동안 잊고 있던 꿈이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성형외과 전문의. 개원. 내 병원. 내 인생.

나는 협진 의뢰서를 제출하고 외래를 나왔다. 그리고 복도 한쪽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강태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교수님, 협진 끝났습니다. 성형외과 과장님께서 저를 굉장히 좋게 봐 주시네요.]

보내고 나서 생각했다.

‘아. 이걸 왜 보냈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런데 10초도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지금 어디야.]

나는 웃었다.

[성형외과 복도입니다.]

[거기서 뭐 해.]

[숨 쉬고 있습니다.]

[한채이.]

[네.]

[당장 돌아와.]

‘…와. 진짜로 감시하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렇게 된 이상 오늘은 조금 더 개겨야겠다.

[교수님, 혹시 저 성형외과로 전과할까 봐 걱정되세요?]

이번에는 답장이 오지 않았다. 나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드디어 저 인간을 침묵시켰다. 그런데 곧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자: 강태혁.]

나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교수님.”

“한채이.”

목소리가 낮았다. 아주 낮았다.

“너 지금 나랑 장난해?”

“아니요. 문자로 대화하고 있습니다.”

“…….”

“교수님, 혹시 회의 중이세요? 바쁘시면 끊어 드릴까요?”

“5분.”

“네?”

“5분 안에 들어와. 안 그러면 내가 직접 데리러 간다.”

뚝.

전화가 끊겼다.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다봤다. 아무래도 미친개 목줄이 풀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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