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엘라가 황궁에 돌아온 지 이틀째 되는 아침, 그녀의 방문 앞에는 두 종류의 서류가 나란히 도착해 있었다. 하나는 황실 법무부에서 보낸 특별 임무관 직위 조정안이었고, 다른 하나는 북부 대공가의 혼인 예식에 관한 의전 문서였다. 문제는 두 서류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첫 번째 서류에는 엘라가 혼인 후에도 황실 특별 임무관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독립적인 권한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지만, 두 번째 서류에는 북부 대공비가 혼인과 동시에 따라야 할 의무들이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었다.엘라는 잠옷 차림으로 책상 앞에 앉아 두 서류를 번갈아 읽었다. 창밖에서는 황궁의 아침 종이 울리고 있었고, 복도에서는 시종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같았으면 따뜻한 차부터 마시고 천천히 하루를 시작했겠지만, 서류 첫 장에서 발견한 문장 하나가 그녀의 잠을 완전히 깨워 놓았다.북부 대공비는 혼인 이후 대공가의 명예와 안녕을 최우선으로 하며, 외부의 직무와 명예가 대공가의 이익에 반할 경우 이를 내려놓을 의무를 진다.엘라는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그리고 네 번째 읽었을 때는 종이를 책상에 내려놓았다.“……이게 무슨 소리야?”마침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엘라는 들어오라고 대답했고, 문이 열리자 단테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이미 검은 제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으며, 한 손에는 아침 식사가 담긴 쟁반을 들고 있었다.“아침 안 먹었다고 들었다.”“단테.”엘라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차분했다.단테가 걸음을 멈췄다.“왜.”“이거 읽어 봐요.”그녀가 서류를 내밀자 단테는 쟁반을 내려놓고 문서를 받아 들었다. 첫 장을 읽는 동안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문제가 된 조항에 이르자 그의 눈썹이 조금씩 좁혀졌다.“누가 보냈지?”“북부 대공가 의전실이요.”“휴고가?”“아니요. 의전실 명의로 왔어요. 결혼식 전에 확인하고 서명하라는데요?”단테는 문서 아래에 적힌 오래된 규정 번호를 확인했다. 가문에서 대대로 사용해 온
황궁 정원으로 내려가는 길은 엘라에게 익숙했다. 열세 살 무렵부터 황궁을 제집처럼 드나든 탓에 어느 계단이 가장 빨리 서쪽 정원으로 이어지는지, 어느 회랑의 창문이 오후가 되면 눈이 부실 만큼 빛을 받아들이는지까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단테와 손을 잡고 걷는 지금은 같은 길이 묘하게 다르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황제에게 불려 갔다가 잠깐 숨을 돌리거나 다음 임무로 끌려가기 전 도망칠 곳을 찾느라 지나던 길이었다면, 오늘은 정말 아무 목적 없이 걷고 있었다. 해야 할 일도, 막아야 할 미래도, 정해진 목적지도 없이 약혼자와 놀러 가는 길. 엘라는 그 사실이 새삼 우스워 걸음을 늦추며 단테의 손을 한번 흔들었다.단테가 곁눈질했다.“왜.”“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좋아서.”“뭐가.”“이렇게 걷는 거요. 황궁에서 제가 할 일 없이 돌아다녀 본 적이 거의 없거든요.”“일 없이?”“네. 늘 폐하가 뭔가 시켰어요. 누구 조사해라, 황자 하나 사람 만들어 놔라, 귀족가에 이상한 소문 도니까 확인해라, 국경에서 마법 사고 났으니까 가 봐라. 심지어 쉬려고 정원에 숨어 있으면 테오도르가 찾아왔고요.”단테가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황태자가?”“그때는 황자였죠. 제가 숨어 있는 장소를 귀신같이 찾아냈어요.”“왜.”“자기 수업 빼먹지 말라고.”단테의 눈빛이 미묘해졌다.“성실했군.”“제자가 스승을 잡으러 다녔어요.”“나보다 낫네.”엘라가 걸음을 멈췄다.“지금 제 교육생이 다른 제자 칭찬한 거예요?”“사실을 말했는데.”“단테도 이제 성실하거든요.”“그러면 됐잖아.”너무 당연하게 대답해서 엘라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웃었다. 요즘 단테와 대화하다 보면 자신이 이긴 건지 진 건지 모를 때가 많았다. 처음에는 한마디를 끌어내는 것부터 일이었던 사람이 이제는 말 몇 마디로 자신을 막아 세우기도 하고, 자신이 가르친 표현을 정확하게 돌려주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그것 역시 자신이 바라던 변화였다. 말 잘 듣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말할 줄 아는 사람을
귀족회의실로 향하는 복도는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조용했지만, 엘라는 걸음을 옮길수록 불길한 예감이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황궁에서 귀족회의가 열린다는 것 자체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황제가 주재하는 정식 회의에는 제국의 공작과 후작, 각 부처의 대신들이 모였고, 그 자리에서 나온 말 한마디가 영지 하나의 정책을 바꾸기도 했다. 그런 곳에 아렌이 들어갔다. 그것도 황제를 찾겠다는 이유로, 과자를 더 달라고 하러 갔다가. 거기까지는 어떻게든 어린아이의 실수라고 설명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다시 한번 확인할게요.”엘라는 빠르게 걸으면서 옆의 테오도르를 바라봤다.“아렌이 회의실에 들어가서 단테 초상화를 봤고, 누군가 단테는 원래 저렇게 무서운 사람이라고 했고, 아렌이 ‘우리 아빠는 엄마한테 혼나면 말 잘 듣는다’고 했어요. 여기까지 맞죠?”테오도르는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예.”“그다음에는 아무 말도 안 했죠?”테오도르가 대답하지 않았다.엘라의 걸음이 느려졌다.“테오도르.”“스승님.”“왜 대답을 안 해요?”“제가 처음부터 전부 말씀드리면 스승님께서 회의실에 도착하기 전에 돌아가실까 봐.”“제가 어디로 돌아가요?”“북부요.”엘라가 멈춰 섰다.단테도 따라서 멈췄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지만, 조금 전 자신의 초상화부터 없애고 싶다고 했던 사람답게 눈빛은 썩 좋지 않았다.“아렌이 또 뭐라고 했는데요?”테오도르는 잠시 망설이다 결국 말했다.“어느 후작께서 대공 전하께서 공녀님의 말씀을 그렇게 잘 들으신다면 북부의 실권은 앞으로 공녀님께 넘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농담을 하셨습니다.”단테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엘라도 웃음기가 사라졌다. 아이가 한 말을 두고 어른들이 웃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그것을 정치적인 이야기로 바꾸는 순간부터는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더구나 엘라는 조금 전 황제와 특별 임무관의 지위까지 조정했다. 황제 직속 특별 임무관이 북부 대공비가 되고, 북부 대공이 그 아내의 말을
수도의 성벽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북부를 떠난 뒤 며칠 동안 눈 덮인 산과 평원을 지나온 탓인지, 멀리서부터 겹겹이 이어지는 붉은 지붕과 높게 솟은 황궁의 첨탑은 이상할 만큼 낯설게 느껴졌다. 엘라는 마차 창가에 앉아 익숙한 풍경을 한참 바라봤다. 이곳에서 열세 살부터 황실의 일을 맡았고, 황자들을 가르쳤으며, 황제에게 불려 갈 때마다 이번에는 또 무슨 골치 아픈 일을 떠맡기려는 거냐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북부로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수도는 너무 익숙해서 특별히 돌아온다는 감각조차 없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달랐다. 자신이 떠났다가 다시 돌아가는 곳이 따로 생겼다는 사실을 알아 버렸기 때문이었다.“긴장했나?”맞은편에 앉은 단테의 물음에 엘라는 창문에서 시선을 떼었다. 무릎에는 이동 중 잠들었다가 막 깨어난 아렌이 기대어 있었고, 아이는 아직 졸린지 엘라의 팔을 끌어안은 채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조금요.”단테의 눈썹이 움직였다.엘라는 바로 웃었다.“알았어요. 많이.”“그래.”“왜 만족해요?”“이번엔 한 번에 인정했으니까.”“이제 제가 교육받는 것 같은데요?”“서로 배우는 거라며.”그 말을 자신이 언제 했는지까지 떠올라 엘라는 작게 웃었다. 처음 북부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단테에게 감정을 말하게 만드는 데 그렇게 애를 먹었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하고, 아픈데도 아무렇지 않다고 버티고, 두려운 순간에도 자신이 두렵다는 사실부터 부정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긴장했다고 하자 숨길 생각부터 하지 말라고 눈썹 하나로 지적하고 있었다.엘라는 손을 내밀었다.“그럼 선생님도요.”단테가 자연스럽게 그 손을 잡았다.“뭘.”“긴장돼요?”“그래.”“얼마나요?”단테는 창밖으로 가까워지는 수도 성문을 한번 본 뒤 다시 엘라를 바라봤다.“많이.”“뭐가 제일 긴장되는데요? 황제 폐하?”“아니다.”“제 직위 문제?”“그것도 아니다.”엘라가 고개를 갸웃하자 단테의 시선이 잠깐 그녀의 손가락으로 내려
수도행 당일 아침, 북부 대공성은 해가 뜨기도 전부터 소란스러웠다. 원래라면 대공이 수도로 향하는 일정쯤은 휴고가 전날 모든 준비를 끝내 놓고, 당일에는 확인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실제로 마차도 준비되어 있었고 호위 기사들의 교대 순서와 숙박 지점, 식량과 비상 약품까지 빠짐없이 정리되어 있었다. 문제는 이번 수도행이 평범한 대공의 이동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북부 대공 단테 아르젠트.황실 특별 임무관 엘라 에스텔.미래에서 온 또 한 명의 엘라.그리고 두 사람의 미래에서 온 아들 아렌.여기에 황궁으로 복귀하는 테오도르까지.휴고는 명단을 처음 받아 들었을 때부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전하.”마차 앞에서 마지막 짐을 확인하던 휴고가 결국 단테를 불렀다.“왜.”“다시 한번 여쭙겠습니다.”“뭘.”휴고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마차 쪽을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아렌이 자기 몸보다 큰 가방을 끌고 나오고 있었고, 미래의 엘라는 뒤에서 그 가방을 다시 빼앗으려 실랑이를 벌이는 중이었다.“저분들을 전부 데리고 황궁에 들어가시는 것이 맞습니까?”단테가 잠시 그 광경을 봤다.“그래.”“미래에서 오신 공녀님까지요?”“그래.”“아렌 도련님도?”“그래.”휴고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엘라에게 향했다. 엘라는 마차 옆에 세워 둔 자기 여행 가방을 열어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 안에 들어 있는 검 두 자루를 발견하고 있었다.“단테.”단테가 휴고에게서 시선을 돌렸다.“왜.”엘라가 검 한 자루를 들어 올렸다.“이게 왜 여기 있어요?”“검.”“그건 알아요. 제가 하나만 가져가라고 했잖아요.”“그래.”“그런데 왜 두 개예요?”단테는 아주 태연하게 대답했다.“내 가방에는 하나다.”엘라는 잠시 멈췄다.그리고 자기 가방을 내려다봤다.“……제 가방에 넣은 거예요?”“그래.”“그럼 두 개인 건 똑같잖아요!”“내 짐에는 하나다.”엘라가 기가 막힌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휴고는 조용히 시선을 내렸고, 테오도르는 처음부터 이 상황에 끼어
유안이 돈 쓰는 법을 배웠다는 말은 정확히 절반만 맞았다.엘라와 단테가 소란을 따라 중앙 홀까지 내려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양손 가득 상자를 든 기사들이었다. 그 뒤로는 천이 둘둘 말린 꾸러미와 꽃 화분, 빵 봉지, 작은 나무 상자와 이름 모를 장식품까지 줄줄이 들어오고 있었다. 시장 하나를 통째로 옮겨 온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한쪽 골목 정도는 털어 온 듯한 광경이었다. 사용인들은 물건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고, 그 한가운데서 카엘은 지갑을 든 채 넋이 나간 얼굴로 서 있었다.반면 유안은 아주 평온했다. 양팔에는 작은 종이봉투가 세 개나 들려 있었고, 목에는 시장에서 산 듯한 짙은 보라색 목도리까지 둘러져 있었다. 그 옆에서 아렌이 신이 난 얼굴로 상자 하나를 열어 보고 있었다.엘라는 계단 중간에서 걸음을 멈췄다.“……오빠.”카엘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구원자를 발견한 사람 같은 얼굴이었다.“엘라.”“이게 다 뭐예요?”“나도 묻고 싶다.”유안이 대답했다.“산 거.”“그건 보여요.”엘라는 계단을 내려가 가장 가까운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색색의 실뭉치가 가득 들어 있었다. 다음 상자에는 나무로 만든 작은 새 장식이 열두 개나 들어 있었고, 그 옆에는 잼 병 여섯 개와 향초, 찻잔 두 세트, 말린 꽃, 어린아이용 털장갑, 은색 단추, 빨간 리본까지 있었다. 물건 사이에는 도무지 공통점이 없었다.“왜 이렇게 많이 샀어요?”유안이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좋아서.”엘라는 눈을 깜빡였다.“뭐가요?”“다.”너무 단순한 대답이었다.유안은 자신이 들고 있던 봉투를 열어 안에 든 것을 보여 주었다. 설탕을 입힌 작은 견과류였다.“이것도 처음 봤어. 저것도 처음 봤고, 시장에 있던 것들이 거의 다 처음이었어.”목소리는 평온했지만 눈빛은 달랐다. 오래도록 이름조차 없이 갇혀 있던 사람이 처음으로 시장이라는 곳에 갔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않는 거리에서 물건을 고르고, 가격을 묻고, 동전을 건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