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사설탐정의 다리는 이미 후들거리고 있었다.그런데 뒤에 서 있던 하이석이 태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정말 그 집이 당신 집 맞습니까?”남자는 떨리는 입술로 문패를 한번 확인하더니, 맞은편 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아, 제가 착각했네요. 저희 집은 아마 저쪽인 것 같습니다.”그는 간신히 발을 떼어 맞은편으로 향했다.하이석은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그쪽 역시 지문 인식 도어락이었다.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검지를 인증부에 올렸다. 하지만 곧바로 오류음이 울렸다.순간 그의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그 집이 당신 집 맞습니까?”하이석이 되물었다.“마, 맞습니다….”남자는 다시 지문을 인식시켰다. 하지만 또다시 오류.그때 등 뒤로 발소리가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겁에 질린 그는 황급히 옆으로 비켜섰다.하이석이 천천히 오른손 검지를 인식부에 가져다 댔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사설탐정은 그대로 얼어붙었다.“아.”하이석이 느긋하게 말했다.“제가 아까 착각했군요. 맞은편이 아니라 이 집이 제 집이었네요.”그는 이제야 깨달았다.자신이 완전히 놀아났다는 걸.남자는 당장이라도 머리를 박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아니, 저 정도 되는 사람이 왜 우리 같은 인간을 가지고 놀아?“야옹.”문틈 사이로 하랑이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하이석은 허리를 숙여 자연스럽게 고양이를 안아 들었다.그가 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 온유란은 막 다락에 원단을 정리해두고 내려오던 참이었다.그녀는 하이석 뒤에 선 남자를 보고는 자연스럽게 그의 친구인 줄 알았다.“친구분 데려오셨어요?”하이석은 대답하지 않았다.온유란은 오히려 바깥에 선 남자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밖에 서 계시지 말고 들어오세요.”남자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하이석이 그를 흘끗 바라봤다.“들어오시죠.”남자의 발은 마치 시멘트에 박힌 것처럼 무거웠다.온유란과 하이석이 어느정도 관계가 있을 거라 의심만 하던 때와, 직접 눈으로 확인한 건 완전
현정민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돌아갔다.그런데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옷 여기저기에 고양이 털이 잔뜩 묻어 있는 걸 발견했다.그 조그만 녀석이 이제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털이 이렇게 빠진다고? 다음에 보면 설마 털 다 빠진 대머리 고양이가 되어 있는 건 아니겠지.*현정민이라는 가장 큰 고비는 일단 넘긴 셈이라 그 뒤로 한동안은 꽤 평온한 날들이 이어졌다.그 사이 육강민은 한턱내겠다며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서은주가 공고 기간을 무사히 통과하고 경성 의과대학에 정식 합격한 걸 축하하기 위해서였다.심지어 그는 합격 증서까지 자랑스럽게 올렸다.온유란도 서은주에게 따로 메시지를 보내 축하를 전했다.예전 그녀도 디자인을 배우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길은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온창섭은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도정숙에게는 그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그래서인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붙잡고 살아가는 서은주가 조금 부러웠다.디자인 이야기를 떠올리다 보니, 온유란은 문득 현정민에게서 받은 값비싼 팔찌 생각이 났다.그렇게 귀한 걸 받았는데, 뭐라도 돌려드려야 하지 않을까.현정민은 돈도 많고 좋은 물건도 수도 없이 봐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온유란은 도정숙 수술 전까지의 시간을 이용해 직접 옷을 한 벌 디자인해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 패턴도 직접 뜨며 손수 만들 생각이었다.그날 그녀는 원단 시장으로 향했다. 마음에 드는 천이 있는지 보러 간 것이었다.그리고 그 뒤를 누군가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녀는 하이석과 통화 중이었다.“곧 집 도착해요. 하이석 씨는 언제 퇴근해요?”“이미 퇴근하는 중이에요. 한 10분 정도면 도착할 것 같아요.”“그럼 비슷하게 들어오겠네요.”온유란은 차를 세우고, 고른 원단을 품에 안은 채 엘리베이터에 올랐다.그녀가 들어간 뒤, 한 그림자가 수상쩍게 튀어나와 급히 엘리베이터 앞으로 달려왔다.그는 올라가는 층수를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대체 몇 층
두 사람이 헤이엘에 도착했을 때, 하이석은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었다.그 모습에 현정민은 웃으며 말했다.“너 원래 반려동물 안 좋아하지 않았어? 지난번 육강민네 갔을 때 행복이 보고는 새까만 연탄덩이 같다고 하더니, 웬일로 고양이까지 키워?”“유란이가 좋아하니까요.”하이석이 자연스럽게 답했다.유, 유란이?하이석이 자신을 그렇게 부른 건 처음이었다.온유란은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물론 현정민 앞에서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서라는 건 알고 있었다.“우리 아가, 이리 와. 할머니한테 와야지.”현정민은 새끼 고양이가 꽤 마음에 드는 듯 품에 안고 연신 쓰다듬었다.“고양이는 털 많이 빠진다던데, 얘도 그래요?”“아직은 괜찮아요.”온유란이 답했다.“근데 고양이 키우면 나중에 아이 가질 때 문제 없겠어? 애들은 호흡기가 예민하잖아.”대화가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 이야기로 넘어갔다.온유란은 대답 대신 슬쩍 하이석을 한 번 바라본 뒤, 장 본 봉투를 들고 얼른 주방으로 들어갔다.“엄마, 저희 이제 막 혼인 신고한 거예요. 유란이는 낯도 많이 가리고요.”하이석이 고양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를 바라봤다.그의 대답에 현정민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내가 뭐라고 했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그리고 너 지금 무슨 뜻이야? 네 아내는 낯가린다고 감싸고, 나는 낯 두꺼운 사람이라는 거야?”“그런 뜻 아니에요.”“맞구만.”하이석은 더 말하지 않았다.“내가 보니까 이 아가씨도 소문처럼 이상한 애는 아니더라. 예쁘고 성격도 좋고, 너한테 속아 혼인 신고까지 할 정도니... 이런 순한 애 흔치 않아.”“다른 건 모르겠고, 너희 둘이 잘 지내기만 해. 시간 나면 같이 쇼핑도 다니고 영화도 보고 그래. 혼자 살 때처럼 일 없으면 집에 틀어박혀 열흘이고 보름이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지 말고.”숙취가 남아 있던 하이석은 머리가 더 지끈거렸다.“거기 가만히 서서 뭐 하니?”“엄마 말씀 듣고 있었죠.”현정민은 혀를 찼다.“나무토막처럼
‘역시 행동이 빨라. 내 아들다워.’온유란은 현정민 앞에만 서면 괜히 긴장됐다. 혹시라도 자신과 하이석 사이의 일을 물어볼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 정작 가장 걱정했던 질문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현정민은 그저 언제 시간이 괜찮은지만 물으며, 헤이엘에 가서 같이 식사 한번 하고 싶다고 했다. 두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 직접 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온유란은 하이석을 바라보며 눈빛으로 의견을 물었다. 하지만 그가 별말을 하지 않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저는 언제든 괜찮아요.”“그럼 오늘 가요. 마침 주말이기도 하고.”하이석은 괜히 머리가 지끈거렸다.“그럼 어머님과 하이석 씨는 먼저 들어가 계세요. 저는 장 좀 보고 갈게요.”온유란은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집에 있는 식재료도 넉넉하지 않았다.“제가 같이 갈게요.”현정민은 손을 휙 내저었다.“너는 먼저 들어가 있어.”*결국 하이석만 홀로 버려졌다.그는 호텔을 나서자마자, 강희진과 방주헌을 마주쳤다.전날 밤 술에 잔뜩 취했던 방주헌은 하이석 집안 사람들이 호텔을 포위했다는 얘기를 듣고 허둥지둥 뛰어나온 참이었다.그리고 하이석을 보자마자 첫마디를 내뱉었다.“이모가 사람들 한 부대 끌고 와서 불륜 현장을 덮쳤다던데?”“듣자 하니 넌 어젯밤 희진 씨 내팽개치고 허경빈이랑 껴안고 잤다며?”방주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하이석, 너 말 함부로 하지 마. 나랑 허경빈은 그런 사이 아니라고!”“어젯밤 형수님 앞이라 차마 말 못 했는데, 어제는 내 청혼날이었다고! 내가 얼마나 공들여 준비했는데 너는 말도 없이 형수를 데리고 나타나? 놀라게 해준다면서 이게 뭐야! 양심이 있긴 해? 그리고 지난번 밥값도 결국 내가 냈잖아!”하이석이 담담히 말했다.“다음에 내가 다시 한턱낼게.”“한 번?”방주헌이 코웃음을 쳤다.“밥 한 번으로 끝내려고? 최소 세 번은 사야지.”“그래.”강희진은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걸 보며 옆에서 웃음만 터뜨렸다.*한편 온유란은 현정민과 함께 장을 보면서도
하이석은 한숨을 내쉬었다.“하이석. 그래 이 엄마가 계속 네게 맞선과 결혼을 재촉하긴 했어. 그렇다고 해도 인생의 큰일은 아무렇게나 넘길 수 있는 게 아니야. 결혼하면 너희는 평생을 함께할 거야. 자신만 책임지면 되는 게 아니라, 그 아가씨의 인생까지 짊어져야 한다는 걸 알아야 해.”“엄마, 저도 알아요.”현정민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대화 몇 마디 만에 대략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네가 그 아가씨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 아이가 반드시….”그 말은 여기서 멈췄다. 현정민은 온유란을 직접 만나, 성격과 기질을 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하려 했다.*레스토랑 안.하씨 가문은 사람을 전부 물린 참이라, 온유란을 제외한 주변에는 모두 하씨 가문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들이 노골적으로 바라보진 않아도, 온유란은 모두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 덕분에 그녀는 자연스럽게 긴장했다.“사모님, 오셨습니까!”그 소리에 온유란은 급히 일어섰다.잠시 후, 현정민과 하이석이 등장했다.현정민은 그저 예전 하씨 집안 연회에서 잠깐 본 적이 있을 뿐이었다.사람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미인이었지만, 그날은 화장을 하고 있었고, 오늘은 민낯에 입술만 살짝 물들인 상태였다.진정한 아름다움은 피부가 아닌 뼈대에서 나오는 법. 온유란은 확실히 눈길을 끄는 외모라 같은 여성인 현정님조차 한참을 바라보게 만들 정도였다.“현정민 여사님, 안녕하세요.”온유란이 공손히 인사했다.“앉으세요.”현정민이 웃으며 말했다.하이석은 익숙한 듯 온유란 옆에 앉았다.눈길이 테이블 위의 보온병에 머물렀다.“안에 뭐 있어요?”“어제 밤 하이석 씨가 술을 많이 마셔서, 숙취로 힘들까 봐, 해장에 좋다는 다시마 국을 집에서 끓여 가져왔어요.”온유란이 보온병을 열자, 향긋한 다시마 국 냄새가 퍼졌다.그녀가 현정민을 바라보며 덧붙였다.“아침은 드셨어요? 드셔보실래요?”현정민은 즉시 주변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내, 몇 개의 그릇을 가져오게 했다.하이석은
하이석이 목을 가볍게 정리했다.“바람피우는 걸 잡으러 온 게 아니예요.”“그럼 뭐예요?”“우리 엄마가 저와 당신 잡으러 온 거예요.”온유란은 예상치 못했다. 강 건너 불구경인 줄 알았는데, 그 불이 자신한테 붙었을 줄이야.“우리 엄마가 당신 보고 싶어 해요. 준비가 안 됐으면, 다음에 다시 시간 잡아도 괜찮아요.”하이석은 상대를 강제로 몰아붙이지 않는 점에서 온유란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저는 준비한 것도 없고, 화장도 안 했어요.”온유란은 집에 다녀오길 잘했다며 안도했다. 전날 입었던 옷은 두 사람 손길에 이미 엉망이 되어버렸다.“괜찮아요. 화장 안 해도 충분히 예뻐요.”온유란은 꼭 처음 시댁 인사를 가는 새색시가 된 기분이었다.곧 하이석 집안에서 출입구를 지키던 사람들은 철수했고, 온유란은 보온병을 들고 하이석이 알려준 대로 호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하이석은 그녀를 데리러 가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막았다.온유란이 오기 전, 묻고 싶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현정민은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을 다듬고, 옷을 정리했다.“말해 봐, 그 여자한테 돈 주고 가짜 결혼 꾸민 거야?”“아니거든요.”“그럼 약점이라도 잡은 거야? 아니면 협박? 세상 사람들이 우리 하씨 가문이 얼마나 무섭다고 말하든 난 상관 안해. 그런데 이런 비도덕적인 짓은 하면 안 되지.”“어머니 눈에는 제가 도둑 같아요?”“거짓말 안 했다고 말할 수 있어?”거짓말이라고 해야 할까?현정민은 콧방귀를 뀌며,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봐, 그럴 줄 알았어!’“자, 가자. 조식 먹으러.”현정민은 옷을 마무리하고 하이석을 바라보며 물었다.“오늘 내 옷차림 괜찮아? 너무 막 입었나?”그녀는 급히 나오느라 제대로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괜찮아요.”“괜찮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현정민이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며느리는 처음 보는 거라 경험이 부족해서 그래.”“아참, 정신없이 들이닥치느라 이름도 못 물었네.”“온유란이에요.”“아, 온유란.”현정민은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