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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에서 폐세자를 주웠습니다

Author: 유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4 22:23:38

“……실례했습니다.”

서하가 먼저 시선을 피했다.

이현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너도 그날 일을 알고 있군.”

“도성에서 모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나를 의심하나?”

서하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이현의 눈썹이 움직였다.

“아직은?”

“제가 본 것은 열이 심한 환자와 이상한 약탕, 그리고 등에 생긴 붉은 흔적뿐입니다. 그것만으로 삼 년 전 일을 판단할 수는 없지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현은 서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잡힌 손목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모르는 것을 안다고 말하지 않았다.

반역자라고 단정하지도 않았다.

그 점이 조금 뜻밖이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연서하입니다.”

“연화약방?”

“예.”

“오늘 약재를 가져온 사람인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직 대금도 못 받았습니다.”

이현이 잠시 말을 멈췄다.

“이 상황에서 돈 이야기가 나오나?”

“전하께서 살아나셔도 제가 굶어 죽으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그의 입가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웃음인지 어이없음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그러나 곧 그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서하는 즉시 손목을 빼내 그의 어깨를 받쳤다.

“전하!”

이현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뜨거운 이마가 서하의 어깨 가까이 내려왔다.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그녀의 소매를 적셨다.

“정신 차리세요.”

“……괜찮다.”

“전혀 안 괜찮으십니다.”

서하는 그의 몸을 받친 채 문 쪽을 바라봤다.

“사람을 불러야겠습니다.”

“부르지 마라.”

“왜요?”

“누가 오는지 알 수 없으니까.”

그 말에 서하의 움직임이 멈췄다.

“……무슨 뜻입니까?”

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하는 그제야 이 별궁의 기묘한 적막을 떠올렸다.

폐세자가 쓰러졌는데도 아무도 달려오지 않았다.

약탕을 준비했다는 내관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전 이현은 누가 오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서하의 시선이 천천히 욕탕으로 향했다.

‘설마.’

그녀는 다시 물의 색을 살폈다.

이상한 향.

붉은 막이 남은 잔.

설명할 수 없는 고열과 기억 공백.

각각은 별개의 증상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 같은 욕실에서 발견되었다.

서하는 결심했다.

“전하, 오늘 약탕은 더 이상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이유는?”

“아직 모릅니다.”

“모르면서?”

“모르기 때문에 더 위험합니다.”

그녀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제가 가져온 약재와 다른 냄새가 섞여 있습니다. 무엇인지 확인하기 전까지는 다시 몸을 담그지 마세요.”

이현이 그녀를 바라봤다.

“독이라는 뜻인가?”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나를 죽이려 했다는 말이군.”

“그렇게 단정하기도 이릅니다.”

“너는 참 답답하게 말하는군.”

“확실하지 않은 것을 확실하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낫습니다.”

서하의 대답에 이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낮게 물었다.

“확인할 수 있나?”

“약재와 잔에 남은 흔적을 살펴봐야 합니다. 시간이 조금 걸릴 겁니다.”

“얼마나?”

“모릅니다.”

“또 모른다는군.”

“전하께서 질문하실 때마다 정답이 나오는 신통한 약재상은 아닙니다.”

이번에는 이현의 입가에 분명한 웃음이 스쳤다.

아주 짧았다.

그러나 서하는 보았다.

‘웃을 줄도 아는 사람이었네.’

그 생각을 하자마자 이현의 눈빛이 다시 차가워졌다.

“그렇다면 네가 확인해라.”

“제가요?”

“네가 이상하다고 했으니.”

“저는 오늘 약재를 배달하러 온 사람입니다.”

“알고 있다.”

“약방도 운영해야 하고요.”

“그것도 들었다.”

“그러니까 저는―”

“연서하.”

낮게 불린 이름에 서하의 입이 다물렸다.

이현은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그녀를 바라봤다.

“내가 오늘 죽었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 같으냐.”

서하의 얼굴이 굳었다.

“…….”

“네가 가져온 약재가 이곳에 있다. 그리고 너는 내 욕실까지 들어왔지.”

그제야 서하는 상황의 심각성을 다시 깨달았다.

폐세자가 죽었다면 가장 먼저 의심받을 사람 중 하나가 자신이었을 것이다.

이현은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내가 살아 있는 편이 네게도 유리할 것이다.”

“……그건 맞습니다.”

“그러니 거래하자.”

서하는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무슨 거래입니까?”

“네가 내 몸에 생긴 이상과 오늘 약탕에 섞인 것을 알아내라.”

“그러면요?”

“네가 이곳에서 본 일 때문에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지 않도록 하겠다. 네 약방도 보호하지.”

서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게 거래입니까?”

“아닌가?”

“협박 같은데요.”

“황궁에서는 그것도 거래라고 한다.”

서하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황궁은 참으로 이상한 동네라고.

그러나 그녀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조건이 있습니다.”

“말해라.”

“약재값과 배달비는 먼저 주셔야 합니다.”

“…….”

“그리고 제가 쓰는 약재는 별도로 계산합니다.”

이현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또?”

“제 치료 방법에는 간섭하지 마세요.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약탕도 중단할 겁니다. 그리고 제가 직접 확인하지 않은 약재는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현은 서하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있습니다.”

“조건이 많군.”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인데 이 정도는 받아야죠.”

“말해라.”

서하는 그의 등에 남은 붉은 선을 바라봤다.

“치료 중에는 몸을 살펴야 합니다. 등에 난 흔적이 어떻게 변하는지 확인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그때마다 왜 옷을 벗기느냐고 묻지 마세요.”

이현이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느릿하게 대답했다.

“그건 장담하기 어렵군.”

“전하.”

“네가 이상한 짓을 하면 물을 수도 있지 않나.”

“치료라니까요.”

“아직 치료법도 모르면서?”

서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 사람과는 앞으로 상당히 피곤할 것 같았다.

⸻

한참 뒤, 서하는 이현을 욕실 옆 온돌방에 눕혔다.

그녀가 몇 번이나 사람을 부르겠다고 했지만 이현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서하가 문밖에서 뜨거운 물과 마른 옷을 요구하자 어디선가 늙은 내관이 나타나 필요한 물건만 내려놓고 사라졌다.

서하는 내관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봤다.

그는 방 안의 폐세자가 어떤 상태인지 묻지도 않았다.

이상했다.

그러나 지금은 따질 시간이 없었다.

서하는 이현의 체온과 맥을 다시 확인하고, 마른 옷과 이불을 준비했다. 그가 직접 옷을 갈아입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준 뒤에는 욕실로 돌아가 남은 약탕을 작은 병에 담았다.

깨진 백자 잔의 조각도 천으로 감쌌다.

그녀는 약재 꾸러미에서 가져온 작은 종이에 오늘의 상태를 기록했다.

고열. 손끝의 냉증. 불규칙한 맥. 일시적인 기억 공백.

잠시 붓을 멈췄다.

그리고 한 줄을 더 적었다.

척추를 따라 세 갈래의 붉은 선. 압박해도 색이 옅어지지 않음.

서하는 마지막 문장을 한참 바라봤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붉은 선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단순한 피부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기묘했다.

그렇다고 특정한 독의 흔적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라면 알았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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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서하는 결국 그날 밤 청운별궁의 침전에 머물기로 했다.물론 이현과 같은 침상에서 자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녀는 침상에서 세 걸음쯤 떨어진 곳에 작은 탁자를 옮겨 놓고, 그 옆에 두툼한 방석과 얇은 이불을 준비했다. 밤새 환자의 상태를 살피기 위한 자리였다.문제는 이현이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전하.”“말해라.”“그렇게 보고만 계시지 마시고 누우십시오.”“네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서.”“보시면 모르시겠습니까?”“내 침전에 살림을 차리는 줄 알았다.”서하가 이불을 내려놓았다.“전하.”“왜.”“자꾸 그러시면 저는 나가겠습니다.”“알겠다.”이현은 순순히 침상에 누웠다.그러나 입가에는 여전히 웃음이 남아 있었다.서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남자는 분명 삼 년 동안 별궁에 갇혀 지냈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 어디에서 이런 능청스러운 말투를 익혔는지 알 수 없었다.그녀는 작은 등불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오늘 밤에는 향을 피우지 않겠습니다.”“이미 알고 있다.”“대신 제가 한 시진마다 맥을 확인할 겁니다. 잠을 깨우더라도 놀라지 마십시오.”“네가 깨우는 것이라면 괜찮다.”“그런 말은 필요 없습니다.”“그럼 무슨 말을 해야 하지?”“그냥 주무시면 됩니다.”이현은 눈을 감았다.서하는 그제야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침전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바깥에서는 가을바람이 처마 끝을 스치고 있었고, 멀리서 야경꾼의 발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침상 곁에 놓인 작은 등불이 흔들릴 때마다 벽에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서하는 품에서 아버지의 약서를 꺼냈다.낡은 종이에는 오랜 세월 손때가 묻어 있었다. 몇몇 장은 가장자리가 닳아 글자를 읽기 어려웠고, 중간에는 물에 젖었다가 마른 흔적도 남아 있었다.그녀는 붉은 꽃잎에 관한 기록을 다시 펼쳤다.꽃이 완전히 피기 전에 막아야 한다.그 아래에는 먹으로 지워진 문장이 있었다.서하는 등불을 가까이 가져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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