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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모연미
'가엾다고?'

송연화의 얼굴에 잠시 당혹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

연란 공주는 줄곧 그녀를 살피다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런 뜻이 아니라..."

송연화가 말을 잘랐다.

"공주 전하의 뜻은 알고 있습니다. 다만 직접 나오신 것을 보니 태후 마마께 무언가 부탁을 받으신 모양입니다."

태후는 늘 송연화를 싫어했다. 연란 공주가 볼일도 없이 핑계를 대고 청안궁을 나와 곧장 찾아왔을 리 없었다.

예상대로 송연화의 말이 끝나자 연란 공주는 침묵에 빠졌다.

송연화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무릎의 통증을 애써 참으며 두 궁녀의 손을 빌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은 송연화의 침전에 도착했다.

오는 동안 답을 짐작한 송연화는 곁에서 시중드는 또 다른 궁녀 난희를 불렀다.

"황후의 인장을 가져와 공주 전하께 드려라."

그 말을 듣자 연란 공주의 표정이 굳었다.

"네가 어찌 알았..."

말을 잇다 멈춘 연란 공주의 표정에 희미한 쓸쓸함이 더해졌다. 송연화는 여전히 예전처럼 총명하고 사람의 속을 잘 헤아렸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몇 해 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지난 일을 떠올리자 아쉬움이 천천히 차올랐다. 그럴수록 송연화를 바라보는 눈빛은 더욱 복잡해졌다.

'어째서?'

'어째서 송연화는 제 몸을 망쳐 가며 형부를 탐냈던 것일까?'

송연화는 연란 공주의 생각을 알지 못했다. 눈을 내리깔고 있는 얼굴은 담담했다.

몸이 약해진 탓에 그 평온함마저 위태롭고 연약해 보였다.

송연화는 침묵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 천천히 말했다.

"돌아오는 길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주 전하, 황후의 인장을 받으시면 어서 돌아가십시오."

연란 공주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지 않았다.

송연화는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속으로 씁쓸해했다.

그 일이 벌어진 뒤 먼저 자신과 거리를 둔 사람은 연란 공주였다. 몇 해 동안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이제 와 눈이 먼 내게 다시 다가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니.

연란 공주는 자신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니라 황후의 인장을 가지러 온 것이었다.

그 생각에 송연화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연란 공주가 먼저 다가왔다는 생각은 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때 궁녀가 함을 받쳐 들고 와 연란 공주의 수행인에게 공손히 건넸다.

떠나려던 연란 공주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그때 너는 어째서..."

송연화는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초점 없는 두 눈이 연란 공주가 있는 쪽을 향했다.

하지만 잠시 뒤 들려온 것은 멀어지는 발소리뿐이었다.

송연화는 씁쓸하게 웃었다.

'분명 몇 해 전의 일을 묻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미 수년이 지난 지금, 진상을 안들 무엇이 달라질까?'

'더구나 내가 말한다고 연란 공주가 믿어 주겠는가?'

그만한 믿음이 있었다면 애초에 두 사람의 사이가 멀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송연화는 고개를 저어 생각을 떨친 뒤 연이의 행방을 물었다.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답을 듣자 침묵했다.

연이가 문제를 일으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마마, 괜찮으십니까?"

걱정스러운 물음에 정신을 차린 송연화가 손끝으로 무릎을 가리켰다.

"태의를 불러오너라."

상처를 치료해야 했다.

"알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태의가 찾아왔다. 송연화의 상태를 살핀 뒤 상처에 바를 약을 남겼다.

한창 약을 바르던 때 연이가 밖에서 뛰어 들어왔다.

"마마, 어찌 홀로 돌아오셨습니까? 소인이 얼마나 애타게 찾았는지 모릅니다."

송연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희가 약을 다 바르고 나서야 나직이 물었다.

"사람을 부르러 어디까지 갔었느냐?"

연이의 눈빛이 흔들렸다.

"소인은... 소인은 청안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다시 나와 보니 마마께서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털썩.

무릎 꿇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연이가 울먹였다.

"전부 소인의 잘못입니다. 마마를 홀로 두어 놀라게 해 드렸습니다."

말끝에는 흐느낌까지 섞였다.

송연화는 연이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귓가에 들리는 울음이 거짓처럼 느껴졌다.

"마마, 소인은 기꺼이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무슨 말씀이라도 해 주십시오. 소인은..."

"물러가거라."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연이의 말을 끊고 먼저 나가라고 명했다.

"하지만..."

"물러가라."

송연화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손으로는 배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연이는 무언가 말하려다 끝내 입을 다문 채 물러났다.

한편 연란 공주는 청안궁으로 돌아가지 않고 사람을 시켜 황후의 인장만 보냈다.

태후는 만족한 기색을 보였다.

송연화가 보잘것없는 아이이기는 해도 분수는 아는 모양이었다.

"유란아."

뒤에 서 있던 송유란이 곧장 앞으로 나왔다. 마음은 이미 기쁨으로 가득했지만 겉으로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고모님, 이 인장은..."

태후는 송유란의 손을 잡고 가볍게 두드렸다.

목소리는 다정했다.

"네가 무엇을 염려하는지 안다. 하지만 황후 자리는 처음부터 네 것이었어. 그러니 이 인장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 마음 쓰지 말거라."

"송연화는 자격이 없다."

송유란이 고개를 숙였다.

"고모님, 그렇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동생은 결국... 송씨 가문의 친딸입니다. 제가 몸이 약하지만 않았더라면 진작..."

태후의 손이 멈췄고 얼굴에는 짙은 혐오가 떠올랐다.

'송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송연화가 진짜 딸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시골 진창에서 기어 나온 쓸모없는 계집이 어찌 귀하게 자란 장녀와 견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송연화가 아주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송유란에게 아이 하나는 줄 수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기만 하면...'

태후는 코웃음을 치며 화제를 넘겼다.

잠시 담소를 나눈 뒤 태후는 경험 많은 궁인 몇 명을 송유란에게 붙여 주었다.

"연회 일을 하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이들에게 물어보거라."

"예, 고모님."

송유란은 온순하게 답하고 예를 올린 뒤 궁인들을 데리고 떠났다.

햇빛 아래 올라간 입꼬리에는 득의양양함이 가득했다.

'송연화, 이제 좋은 시절도 끝이야.'

...

"마마, 유란 아가씨 쪽에서 연회 준비에 일손이 모자란다며 전각 사람의 절반을 보내 달라 합니다."

"마마, 유란 아가씨가 남은 사람 중 절반을 또 데려갔습니다."

...

시간은 흘러 어느새 닷새가 지났다.

그동안 영휘궁 사람들은 하나둘 다른 곳으로 불려 갔다. 끝내 곁에서 시중들 사람은 연이와 난희, 두 궁녀만 남았다.

넓은 궁은 적막에 잠겼다. 일손이 모자라 손이 닿지 않는 구석은 벌써 낡고 황폐한 기색까지 보였다.

곧 음식도 달라졌다.

임신 중인 송연화에게 필요한 보양식은 차츰 끊겼다. 음식은 식어 있었고 양마저 줄어들었다.

마침내 송연화 한 사람만 겨우 먹을 만큼의 음식만 들어왔다.

또다시 저녁이 된 어느 날, 난희는 푸성귀 한 접시만 들고 돌아왔다. 두 눈은 분해서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마마, 황실 주방에서 너무도 심하게 굴었습니다! 그들이 감히... 감히..."

조금 전 일을 떠올리자 난희의 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 그들은 마마를 염치도 모르는 음탕한 계집이라 욕하며 그런 사람에게는 자신들이 만든 음식을 내줄 수 없다고 했다.

'감히 마마에게 그런 모욕을 퍼붓다니!'

곁에 있던 연이가 말했다.

"마마, 폐하를 찾아뵙는 것이 어떠십니까? 폐하께서 나서시면 이 일은 해결될 것입니다."

'서재헌이 나선다고 정말 이 일이 해결될까?'

송연화는 고개를 저었다.

"난희야, 송유란을 불러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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