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헌 오라버니, 제가 일부러 연화의 눈을 멀게 한 것이 아닙니다. 몸을 보해 주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 약 때문에 두 눈을 잃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저 미안한 마음에 그랬을 뿐인데..."방 안에서 여인의 가냘픈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송연화는 앞을 볼 수 없었지만, 그 목소리만큼은 익숙했다.그 목소리의 주인은 송씨 가문에서 친딸처럼 자란 양녀이자, 지금은 송연화의 양언니가 된 송유란이었다.이윽고 문틈 너머로 낮고 서늘한 사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유란아, 네 잘못이 아니다."침착하고 다정한 음성에는 희미한 위로까지 묻어 있었다."연화가 박복한 탓이지."찬 바람이 사내의 목소리를 싣고 송연화에게 불어왔다. 그녀는 넋을 잃은 채 방 안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익숙한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서재헌이 얼마나 냉담하고 무심한 표정으로 송연화를 두고 그런 말을 했을지.'팔자가 박복하다고...'송연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서재헌의 말은 그녀가 살아온 스무 해를 더없이 정확하게 설명했다.송연화는 명문가의 귀한 딸로 태어났으나, 갓난아기 때 하인의 손에 신분이 뒤바뀌어 시골에서 평범한 여인으로 자랐다.열네 살에 송씨 가문으로 돌아왔지만, 가족들은 이미 송유란을 친딸로 여기고 있었다. 진짜 딸인 송연화가 오히려 양녀로 남아야 했다.열여섯 살 무렵, 서재헌과 송유란은 정혼한 사이였다. 하지만 약에 취한 채 서재헌과 하룻밤을 보내게 된 송연화는 언니의 정혼자를 빼앗은 천한 계집으로 낙인찍혔다. 한때 송연화를 유일하게 아껴 주던 서재헌마저 그날부터 누구보다 그녀를 미워하게 되었다.열일곱 살 때, 서재헌과 혼인한 지 일 년 만에 그가 권력 다툼에서 패해 도성 밖으로 쫓겨났다. 송연화는 그를 따라 북방 변경으로 가서 가장 고되고 쓰라린 삼 년을 버텼다.이제 스무 살이 된 그녀는 두 눈마저 잃었다. 그런데 부군이라는 사람은 그녀를 해친 이에게 괜찮다며, 송연화가 박복한 탓이라고만 했다.송연화는 갑자기 속이 울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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