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폐하, 황비가 사라졌습니다: Capítulo 1 - Capítulo 10

30 Capítulos

제1화

"재헌 오라버니, 제가 일부러 연화의 눈을 멀게 한 것이 아닙니다. 몸을 보해 주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 약 때문에 두 눈을 잃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저 미안한 마음에 그랬을 뿐인데..."방 안에서 여인의 가냘픈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송연화는 앞을 볼 수 없었지만, 그 목소리만큼은 익숙했다.그 목소리의 주인은 송씨 가문에서 친딸처럼 자란 양녀이자, 지금은 송연화의 양언니가 된 송유란이었다.이윽고 문틈 너머로 낮고 서늘한 사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유란아, 네 잘못이 아니다."침착하고 다정한 음성에는 희미한 위로까지 묻어 있었다."연화가 박복한 탓이지."찬 바람이 사내의 목소리를 싣고 송연화에게 불어왔다. 그녀는 넋을 잃은 채 방 안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익숙한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서재헌이 얼마나 냉담하고 무심한 표정으로 송연화를 두고 그런 말을 했을지.'팔자가 박복하다고...'송연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서재헌의 말은 그녀가 살아온 스무 해를 더없이 정확하게 설명했다.송연화는 명문가의 귀한 딸로 태어났으나, 갓난아기 때 하인의 손에 신분이 뒤바뀌어 시골에서 평범한 여인으로 자랐다.열네 살에 송씨 가문으로 돌아왔지만, 가족들은 이미 송유란을 친딸로 여기고 있었다. 진짜 딸인 송연화가 오히려 양녀로 남아야 했다.열여섯 살 무렵, 서재헌과 송유란은 정혼한 사이였다. 하지만 약에 취한 채 서재헌과 하룻밤을 보내게 된 송연화는 언니의 정혼자를 빼앗은 천한 계집으로 낙인찍혔다. 한때 송연화를 유일하게 아껴 주던 서재헌마저 그날부터 누구보다 그녀를 미워하게 되었다.열일곱 살 때, 서재헌과 혼인한 지 일 년 만에 그가 권력 다툼에서 패해 도성 밖으로 쫓겨났다. 송연화는 그를 따라 북방 변경으로 가서 가장 고되고 쓰라린 삼 년을 버텼다.이제 스무 살이 된 그녀는 두 눈마저 잃었다. 그런데 부군이라는 사람은 그녀를 해친 이에게 괜찮다며, 송연화가 박복한 탓이라고만 했다.송연화는 갑자기 속이 울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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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다음 날, 서재헌의 말대로 송연화의 친어머니 김서영이 입궁했다.송연화는 몸단장을 마치고 잠시 기다렸다."연화야?"가느다란 떨림이 밴 목소리가 들렸다.송연화는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는 기척만 느낄 수 있었다.김서영은 송연화를 바라보았다. 감정이 모조리 사라진 듯 공허한 두 눈과 눈에 띄게 야윈 몸, 임신으로 불룩한 배는 가느다란 몸을 아래로 끌어당기는 듯했다. 송연화가 북방 변경으로 떠난 뒤 모녀가 얼굴을 마주한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김서영의 마음은 복잡하게 뒤엉켰고, 까닭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이 딸에게 못할 짓을 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하지만 어려서부터 품에 안고 기른 아이가 아니었다. 아무리 공평하게 대하려 해도 본능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어머니?"송연화의 목소리는 서늘하고 소원했다.김서영은 눈물을 훔쳤다."눈은 좀 나아졌니?"입궁하기 전부터 소문은 들었다. 송연화가 궁에서 큰 병을 앓았고, 아이를 가져 쓸 수 없는 약이 많았던 탓에 눈이 멀었다고 했다.송연화가 입술을 달싹였다."그럭저럭입니다. 태의 말로는 아이를 낳고 몸을 잘 돌보면 다시 보게 될 수도 있지만, 영영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대수롭지 않은 일을 말하듯 담담한 어조였다.김서영의 가슴 한구석이 바늘에 찔린 듯 아렸다. 송연화는 송유란과 달리 시골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몸이 튼튼했다.그래서 송씨 가문의 딸이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황자에게 시집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송연화를 골랐다.훗날 어떤 화를 입더라도 건강한 송연화가 송유란보다 살아남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여겼다.송연화에게 죄를 지었다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이해득실을 따지면 그것이 최선인 듯했다."다 나을 거야. 어미가 몸에 좋은 것을 잔뜩 가져왔으니 먹고 나면 좀 나아질 게다."김서영이 달랬다.송연화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보약을 받아 두라고만 명했다.모녀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방 안에는 냉랭한 기운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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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마마, 태후 마마께서 찾으십니다."연이가 몇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송연화는 가볍게 숨을 고른 뒤 물었다."조금 전에는 어디에 갔었느냐?"연이가 잠시 굳었다."소인은 마마께 올릴 약을 지키고 있었습니다."송연화의 표정에는 아무런 기색도 없었다.눈이 먼 뒤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더욱 헤아리기 어려웠다.연이는 긴장한 채 손을 움켜쥐었다.그러다 송연화가 입을 열었다."옷을 갈아입혀라. 태후 마마를 뵈러 가겠다."그제야 연이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몸단장을 마친 송연화는 청안궁으로 향했다.태후는 서재헌의 양모이자 송연화의 고모였다.송연화가 처음 송씨 가문으로 돌아왔을 때, 고모는 이미 황궁에 시집온 뒤였다.어려서부터 지켜본 조카 송유란을 송연화보다 더 아끼는 것은 당연했다.뒤이어 송연화가 서재헌의 침상에 기어들었다는 소문까지 듣고는 더욱 그녀를 혐오했다.혼인한 첫해에는 거의 날마다 태후 앞에서 예법을 지켜 서 있어야 했다. 오시가 되어서야 첫 끼니를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이후 서재헌에게 연루되어 함께 유배되었을 때, 며느리인 송연화가 삼 년 내내 정성껏 태후를 보살폈다. 그제야 태후의 태도가 조금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송연화를 달가워하지는 않았다.마침내 청안궁에 도착했다.송연화는 연이의 부축을 받아 방 안으로 들어갔다.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호방한 웃음소리와 여인들의 교태 어린 웃음이 들려왔다. 서로 어우러진 분위기는 더없이 화목했다.하지만 송연화가 모습을 드러내자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연빈이 왔구나? 어찌 아무도 알리지 않은 게야?"비꼬는 말투만으로도 연란 공주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연란 공주는 선황의 유일한 딸이자 태후가 직접 낳은 공주로, 어려서부터 온갖 총애를 받았다.혈연으로 따지면 송연화가 사촌 언니라 불러야 할 사람이었다.처음부터 송연화를 미워했던 것은 아니었다. 송연화가 한 번 목숨을 구해 준 뒤로는 제법 호의적이었고, 가장 가까웠던 시절에는 자주 송씨 저택을 찾아와 함께 어울렸다.하지만 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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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말을 마친 태후는 송유란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눈빛이며 표정에는 송유란을 향한 만족감이 가득했다.송유란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가슴속에서 차오르는 기쁨을 가까스로 억누르면서도 겉으로는 여전히 망설이는 척했다."하지만 고모님, 연화가..."끝까지 말하지 않은 채 곁눈질로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훔쳐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송연화는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가느다란 몸은 유난히 여리고 무력해 보였지만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마치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인 듯했다.그러나 서재헌마저 동의했다는 말을 들은 순간, 설명하기 힘든 쓰라림이 가슴을 채웠다는 것은 그녀만 알았다. 지난날의 기억이 차례로 떠올랐지만 끝내 남은 것은 무력감뿐이었다.'됐다.'머지않아 죽음을 가장해 황궁을 떠날 터였다. 이런 일로 더는 쓸데없이 마음을 흔들 필요가 없었다.태후는 송연화의 속마음을 알지 못했다. 답답할 만큼 말없이 굳어 있는 모습을 보자 짜증이 치밀었다.'어찌 내 며느리가 저런 아이란 말인가?'송유란에게 시선이 닿자 태후의 목소리가 다시 부드러워졌다."네가 자매의 정을 생각하는 건 안다. 하지만 연빈은 지금 아이를 가져 무리해서는 안 돼. 그러니 유란 네가 수고해 다오. 마음 쓰지 말거라."잠시 말을 멈춘 태후가 송연화를 향해 싸늘하게 명했다."연빈, 유란이가 대신 수고해 주는데 고맙다는 말도 못 하느냐?"'고맙다고?''송유란은 아직 입궁조차 하지 않았는데 봄맞이 궁중 연회를 주관하게 되었다. 누가 보아도 황후로 세우겠다는 뜻을 보이려는 것인데, 어째서 내가 고마워해야 한단 말인가...'송연화는 손가락을 꽉 움켜쥐었다가 문득 힘을 풀었다.가슴속에서 요동치는 감정을 억누르고 이를 악문 채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쨍그랑!발치에서 찻잔 깨지는 소리가 났다.곧 태후의 호통이 떨어졌다."송연화, 계속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내 결정에 불만이 있다는 뜻이냐?"태후가 노하자 주위 사람들은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태후 마마, 노여움을 거두시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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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죄송합니다."송연화의 목소리는 나지막했고 힘이 없었다.하지만 등만큼은 꼿꼿하게 세웠다. 무릎을 꿇고도 굽히지 않겠다는 고집이 역력했다.서재헌은 그런 송연화를 내려다보았다.여윈 몸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은 모습은 더없이 가냘프고 연약했다. 그런데도 결코 지지 않겠다는 기세가 느껴졌다.북방 변경에 있을 때 서재헌이 가장 좋아했던 모습이 바로 이런 강인함이었다. 그 모습을 다시 보자 그의 얼굴에도 저도 모르게 부드러운 기색이 번졌다.그 순간 낮은 부름이 들려왔다."폐하."서재헌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다시 송유란의 붉어진 눈가를 보자 방금 일었던 감정이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다.북방 변경에서 무슨 일이 있었든 지금 송연화가 송유란을 괴롭힌 것은 큰 잘못이었다.무릎을 꿇려 사과하게 한 것은 작은 훈계에 불과했다. 송연화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이었다.마음을 굳힌 서재헌은 송유란을 몇 마디 달랜 뒤 태후에게 다가가 예를 올렸다. 송연화는 아예 없는 사람처럼 외면했다.그 모습을 본 송유란은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서재헌의 변화를 눈치챘지만 개의치 않았다. 자신이 여전히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한 송연화 같은 여인이 몇 명 더 나타나도 소용없었다.그 시각 송연화의 정신은 온통 무릎의 통증에 쏠려 있었다.찻잔 조각에 찔린 상처는 두 번째로 무릎을 꿇으면서 더욱 깊어졌다.요동치는 통증이 아랫배까지 이어졌다. 쥐어짜듯 아파 오자 미간이 깊이 좁혀지고 입술은 저도 모르게 굳게 다물렸다.그때 태후가 문득 입을 열었다."아까 봄맞이 궁중 연회 이야기만 하느라 중요한 일을 하나 잊고 있었구나."서재헌이 물었다."어마마마께서 말씀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황후의 인장이다."그 말이 떨어지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태후에게 쏠렸다.송유란은 입을 반쯤 가린 채 기쁨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태후의 생각을 짐작한 것이다.황후의 인장은 틀림없이 자신에게 돌아올 터였다.역시나 예상대로였다.태후가 말을 이었다."유란이가 봄맞이 궁중 연회를 주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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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가엾다고?'송연화의 얼굴에 잠시 당혹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연란 공주는 줄곧 그녀를 살피다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그런 뜻이 아니라..."송연화가 말을 잘랐다."공주 전하의 뜻은 알고 있습니다. 다만 직접 나오신 것을 보니 태후 마마께 무언가 부탁을 받으신 모양입니다."태후는 늘 송연화를 싫어했다. 연란 공주가 볼일도 없이 핑계를 대고 청안궁을 나와 곧장 찾아왔을 리 없었다.예상대로 송연화의 말이 끝나자 연란 공주는 침묵에 빠졌다.송연화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무릎의 통증을 애써 참으며 두 궁녀의 손을 빌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은 송연화의 침전에 도착했다.오는 동안 답을 짐작한 송연화는 곁에서 시중드는 또 다른 궁녀 난희를 불렀다."황후의 인장을 가져와 공주 전하께 드려라."그 말을 듣자 연란 공주의 표정이 굳었다."네가 어찌 알았..."말을 잇다 멈춘 연란 공주의 표정에 희미한 쓸쓸함이 더해졌다. 송연화는 여전히 예전처럼 총명하고 사람의 속을 잘 헤아렸다.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몇 해 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지난 일을 떠올리자 아쉬움이 천천히 차올랐다. 그럴수록 송연화를 바라보는 눈빛은 더욱 복잡해졌다.'어째서?''어째서 송연화는 제 몸을 망쳐 가며 형부를 탐냈던 것일까?'송연화는 연란 공주의 생각을 알지 못했다. 눈을 내리깔고 있는 얼굴은 담담했다.몸이 약해진 탓에 그 평온함마저 위태롭고 연약해 보였다.송연화는 침묵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 천천히 말했다."돌아오는 길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주 전하, 황후의 인장을 받으시면 어서 돌아가십시오."연란 공주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지 않았다.송연화는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속으로 씁쓸해했다.그 일이 벌어진 뒤 먼저 자신과 거리를 둔 사람은 연란 공주였다. 몇 해 동안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이제 와 눈이 먼 내게 다시 다가오는 이유가 무엇일까?'아니.연란 공주는 자신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니라 황후의 인장을 가지러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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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말을 마치자마자 송연화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됐다. 역시 찾아가지 말거라."죽음을 가장해 황궁을 떠날 날만 기다리면 되었다. 지금 송유란과 맞서는 것은 괜한 문제를 만드는 일이었다.난희가 미간을 좁혔다."하지만 황실 주방 일은 어찌하시렵니까?"눈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마마는 아이를 가져 잘 먹어야 할 때였다. 황실 주방이 이토록 함부로 대하게 둘 수는 없었다.송연화는 침상 가장자리에 기대어 한 손으로 무심코 배를 쓸어내렸다.한참 뒤 나직이 말했다."내일 황실 주방의 책임자를 불러오너라."괜한 문제를 만들 수 없다면 책임자에게 단단히 경고하면 될 일이었다. 앞으로 몇 달만 견디면 끝이었다.난희가 입을 열기도 전에 곁에 서 있던 연이가 참지 못하고 나섰다."책임자를 불러 봐야 무슨 소용입니까? 마마께서는 폐하를 찾아뵈셔야 합니다. 지금은 아이까지 품고 계시니 절대로..."송연화가 살짝 고개를 돌렸다. 빛을 잃은 눈동자는 허공을 향했다.연이를 바라본 것도 아닌데, 그 두 눈을 마주한 연이는 말을 하다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정적 속에서 송연화가 눈을 감았다."둘 다 물러가거라."난희가 예를 올렸다."알겠습니다."연이는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다가 마침내 가볍게 예를 올리고 난희를 따라 나갔다. 끊임없이 구르는 눈동자에는 계산이 가득했다.다음 날 아침, 창살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었다. 송연화는 난희의 시중을 받으며 세수를 했다.그때 내민 손이 허공을 짚었다.줄곧 물건을 건네주던 난희가 갑자기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난희야?"이상하게 여긴 송연화가 다시 물었다."무슨 일이냐?"깜짝 놀라 정신을 차린 난희가 난처한 목소리로 말했다."마마, 연이가... 연이가 황실 주방에 간 뒤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송연화가 잠시 멈췄다."얼마나 되었느냐?""벌써 반 시진이 다 되어 갑니다."영휘궁에서 황실 주방까지 거리가 있다 해도 아침상을 가져오는 데 반 시진이나 걸릴 일은 아니었다.'무슨 일에 붙잡힌 것일까?'송연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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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연화야, 폐하를 원망하지 마. 그 두 궁녀가 너무도 모진 말을 했어. 궁중 법도대로라면 장형으로 처형해야 하지만, 폐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장형 오십 대로 줄이신 거야..."송유란은 가슴을 부여잡았다."나도 잘못했어. 네게 황후 책봉을 맡아 달라고 말하지만 않았어도 그 두 궁녀가 벌을 받는 일은 없었을 텐데."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몸이 휘청하며 앞으로 쓰러졌다."유란아! 여봐라, 어서 태의를 불러라!"서재헌은 재빨리 송유란을 안아 들고 다급히 외쳤다.그의 품에 기댄 송유란은 곁눈질로 송연화를 바라보며 득의에 찬 눈빛을 흘렸다. 이내 눈을 감고 온몸의 힘을 빼 버렸다.그 모습을 본 서재헌은 더욱 다급해졌다."어서 가서 태의를 재촉하라!"명을 내린 뒤 송연화를 바라보는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송연화, 잘 들어라. 황후 자리는 오직 유란의 것이다. 아무리 유란을 자극해도 네가 황후가 되는 일은 없을 게다."송연화는 몸이 굳었다. 두 사람이 어째서 영휘궁까지 찾아왔는지 처음부터 의아했다.알고 보니 그동안 벌어진 모든 일은 황후 책봉을 위한 포석이었다.송유란은 송연화에게 보란 듯 서재헌을 데리고 온 것이었다.그것도 모자라 곁에 남은 마지막 두 궁녀까지 벌받게 했다.'서재헌, 너는 진정 마음이 조금도 없는 사람이야?'요동치는 감정에 송연화의 몸이 천천히 웅크러졌다. 바닥의 냉기가 스며들자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머릿속에서는 온갖 말이 뒤엉켜 울렸다.팔자가 사납다.'네가 황후가 되는 일은 없을 게다.'서재헌의 말이 귓가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다. 그 순간 아랫배가 갑자기 쥐어짜듯 아파 왔다."여... 여봐라."송연화는 배를 감싸고 혼란스러운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주위의 적막이 갑자기 두려워졌다.눈앞의 어둠마저 일그러지는 듯했다.'너무... 너무 캄캄해.''너무 조용해!'마치 서재헌의 정적들에게 납치되었던 그때로 돌아간 듯했다. 온몸의 떨림이 갑자기 거세졌고, 배에서 이는 통증조차 느끼지 못했다.'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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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그때 반가움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들렸다."부인, 마마께서 깨어나셨습니다."침상 곁에는 줄곧 궁녀가 송연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까까지 움직임이 없어 깨어난 줄 몰랐던 것이다.송연화가 몸을 움직이자 곧바로 알아차렸다.태의와 이야기를 나누던 김서영이 황급히 다가왔다. 송연화를 바라보는 두 눈에는 걱정과 염려가 가득했다."연화야, 지금은 어떠니? 아직 불편한 곳이 있느냐?"송연화는 허공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지금은 위쪽을 향한 채 생각을 흘려보내고 싶었다.그 모습을 보던 김서영의 몸이 잠시 굳었다.잠시 뒤 김서영이 다정하게 말했다."폐하를 기다리는 게냐? 폐하께서는 유란이를 돌보느라 자리를 비우실 수 없어. 그래서 특별히 나를 입궁시켜 너를 보살피게 하셨단다.""연화야, 폐하는 지존인 황제이시다. 그런 분이 너를 이만큼 생각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이미 잘해 주시는 게야.""그렇습니까?"입을 열자 목소리가 끔찍할 만큼 쉬어 있었다."그럼."대답을 듣자 김서영은 안도하며 목소리를 낮췄다."폐하께서 너를 생각하지 않으셨다면 어찌 나를 입궁시켜 돌보게 하셨겠니?"송연화가 웃었다.하지만 창백한 얼굴 위에 걸린 웃음은 기이할 만큼 서늘했다."제가 넘어진 이유가 영휘궁의 궁인들을 송유란이 모조리 데려갔기 때문이라는 말씀도 하셨습니까?""몸이 아플 때 혼자 남겨지면 제가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도 말씀하셨습니까?"사실 송연화가 원래 두려워한 것은 어둠뿐이었다.하지만 아이를 가진 뒤부터 모든 감정이 크게 부풀었다. 한번 공포가 밀려오면 적막마저 마음을 뒤흔들었다.두 번의 추궁에 김서영의 표정이 굳었다. 본능적으로 곁을 살핀 뒤 사람들을 모두 물리고 송유란을 변호했다."유란이도 일부러 영휘궁 사람들을 데려간 건 아니야. 연회를 준비하려면 어쩔 수 없었단다. 네 눈이 멀지 않았다면 그 아이가 갑작스럽게 일을 맡아 사흘 만에 연회를 준비할 일도 없었겠지.""네가 참석하지 않아 모르겠지만 얼마나 완벽한 연회였는지 모른다.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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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송연화는 일부러 '실패'라는 말 뒤에서 멈췄다.김서영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천천히 입꼬리를 올린 뒤 말을 이었다."제가 실패하면 송유란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죽음을 가장해 황궁을 떠나는 것은 지금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소망이었다.김서영이 계획을 아는 이상, 그쪽에서 문제가 생기게 둘 수는 없었다.김서영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날 선 목소리로 쏘아붙였다."송연화, 물건까지 주었으니 이제 함부로 굴어서는 안 돼!"송연화는 눈을 감은 채 대꾸하지 않았다.김서영은 무언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송연화를 바라보자 다시 송유란이 떠올랐다.원래는 황궁을 떠나지 말라고 설득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송연화의 협박에 화가 치밀었다.'말해 봐야 소용없어.''됐다.''이제 송연화 일은 신경 쓰지 않겠어!''스스로 고른 길이니 대가도 제 스스로 치러야지.'김서영은 송연화를 오래 바라보다 몸을 돌려 나갔다.이제 송유란을 보러 갈 차례였다.침전에는 죽은 듯한 적막이 내려앉았다.송연화는 손을 더듬어 도자기 약병을 열었다. 짙은 약 향기가 코를 찔렀다.송씨 가문에 대대로 전해진 회혼단은 이제 단 한 알만 남아 있었다. 먹으면 죽은 것처럼 보였다가 다시 깨어날 수 있는 약. 지금의 새장에서 벗어나게 해 줄 유일한 길이었다.송연화는 눈을 내리깔았다. 온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두려워서가 아니었다. 기대와 기쁨 때문이었다.황후 자리와 아이를 내주고 얻은 기회였다. 이제 뱃속의 아이를 낳기만 하면 황궁을 떠날 수 있었다.그날까지 반드시 자신의 몸을 지켜야 했다.한편 송유란은 서재헌의 품에 기대어 물기 어린 두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폐하, 연화는 지금 어떻습니까?"서재헌이 달랬다."아직 분명한 것은 모른다. 태의가 갔고 상운에게 물건도 들려 보냈으니 곧 소식이 올 게다."송유란은 고개를 숙였다.부드러운 목소리에는 죄책감이 묻어났다."부디 연화가 저 때문에 놀라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 몸이 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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